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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간, 나는 내 귀를 의심했다.

"뭐라고? 니가 뭘 받았다고?"
"효자상."
"효자손 말하는 거 아니고?"
"누나는 속고만 살았나? 내가 전국 효도 가족 100쌍에 뽑혔다 아이가."
"푸하하하!!! 웃기시네~"


나는 폭소를 터트렸다. 효자상이라니. 갑작스런 귀농 결정으로 엄마의 눈물 콧물 뽑게 했던 사연의 주인공께서 무슨~ 이건 신분세탁 감이라며 한껏 비웃어 주었다.

동생은 그러거나 말거나 연신 '헤헤' 거리며 상장과 자신의 사연이 담긴 책, 시상품을 사진으로 찍어 메시지를 보내왔다. 그리고 그 뒤에 달린 한 마디!

"니도 효도해라."
"자진 반납이나 하시지!"


가장 부모님 가까이 있는 동생
 
효자상은 전래동화에만 나오는 거 아닌가요? 불효자가 효자로 인정받던 날. 효자상을 실제로 보니 신기했다.
▲ 동생이 효자상 받던 날  효자상은 전래동화에만 나오는 거 아닌가요? 불효자가 효자로 인정받던 날. 효자상을 실제로 보니 신기했다.
ⓒ 조영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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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리 생각해도 수상쩍었다. 민간 효 단체에서 받은 상이라는데 실수로 준 건 아닐까 싶어 찾아보았다. 그런데 웬걸? 지역별로 추천을 받아 심사를 한 뒤 100쌍을 뽑는 식으로 진행되는 제법 유례 있는 상이었다. 수상 가족에겐 상장과 사연집, '이 집이 효자 집이오' 하는 문패와 시계가 부상으로 주어졌다. 

상을 받게 된 과정을 들어보니, 우선 추천이 있었다고(누군지는 모름) 한다. 그에 따라서 원래는 직접 현장조사 인터뷰를 하는데, 올해는 코로나로 인해 비대면으로 장시간 전화 인터뷰를 했다는 것. 그 인터뷰 내용이 책에도 실렸다. 

옛날로 치면 효비가 세워진 것만큼 경사 중에 경사일 터. 하지만 나는 동생의 스펙터클한 불효 인생을 너무나 가까이에서 지켜봐 온지라 선뜻 실감이 나지 않았던 게 사실이다.

학창 시절엔 가출과 비행을 일삼는 최강의 사춘기를 선보이며 부모님의 애를 태웠고, 대학 시절엔 자퇴를 하겠다고 해서 또 한 번 애를 태웠고 갑자기 퇴사를 해서 귀농한다고 애를 태웠더랬다. 적다 보니 내 자식이었음 기냥 '콱!' 하는 분노가 일지만 금세 입을 닫는 것은 '나 역시 효녀는 아니었구나'라는 사실을 방금 전에 깨달았기 때문이다.

어쨌거나 내 눈에 '돌아온 탕아'였던 녀석이 효자로 등극하자 뭔가 이상하면서도 웃기면서도 기분이 묘했다. 마냥 어리고 철없던 동생이 전래동화에 나올 법한 효자반열에 오르다니... 또 한편으로 생각해보니 인정하지 않는 건 나뿐이지, 주변에선 효자라고 끄덕끄덕 하던 동네어른들 모습도 간간히 떠올랐다. 

아침저녁마다 문안을 살피고, 부모님이 어렵고 귀찮아하는 일들을 대신 처리해주며, 날다람쥐 같은 손주들과 자주 식사를 하는 것, 그리고 날다람쥐의 예쁨이 피곤함으로 느껴질 때쯤 제 집으로 돌아가는 것. 요즘 시대에 딱 맞는 효도세트를 동생은 매일 행하고 있었다.   

동생은 군대 시절을 제외하곤 한 번도 부모님과 떨어져 지낸 적이 없다. 나는 멀리 산다는 이유로 부모님의 나이듦을 멀찌감치서 지켜봐오고 있다면 동생은 매일매일 코 앞에서 느끼고 있다. 얼굴 곳곳에 늘어나는 주름, 예전같지 않은 기력, 먼 산을 바라보며 짓는 한숨 같은 것들... 그런 모습을 보며 드는 감정들이 볏단처럼 쌓이면 효도라는 이름을 붙이지 않아도 잘 해야겠다는 마음이 자연스레 드는 법이다. 

효(孝)는 한자로 풀이하면 지팡이를 짚고 있는 부모를 자식이 업고 간다는 뜻이다. 하지만 요즘 시대엔 물심양면으로 부모를 봉양하며 헌신하는 자식들이 흔치 않다. 옛날을 기준으로 치면 동생이나 나나 어디 감히 효라는 이름을 갖다 붙일 수 있을까? 다행이라면 이 시대는 효의 기준이 조금은 관대해졌으니 이렇게라도 묻어갈 수 있는 것이다.

요즘 시대 현실적인 효도는 무엇일까

부모 세대보다 못 사는 최초의 세대. 지금 우리의 현실은 부모를 업긴커녕 여태 업혀 있는 꼴이다. 이것이 비단 우리 남매만의 일은 아닐 터. 가까운 주변만 둘러봐도 부모에게 도움을 주는 쪽보다 받는 쪽이 훨씬 더 많다. 그러니 제 앞가림만 잘해도 효자 효녀 소리를 듣는 세상이 된 것이다.

그렇다면 요즘 시대에 현실적인 효도는 무엇일까? 반드시 부모를 업어야만 효라고 말할 수 있을까? 나는 부모님 마음에 근심 걱정이 없도록 만들어 드리는 것, 허툰데 마음 쓰이지 않도록 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불과 몇 달 전만 해도 마음의 근심을 얹은 동생은 불효자였으나, 근심을 털어내자 바로 효자 칭호를 받으며 신분이 격상된 것처럼 말이다.  

날로 먹는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이것이 은근 힘든 일이다. 결혼을 하고 독립을 했어도 부모님의 마음에 돌덩이를 얹지 않았던 날들이 몇이나 되랴.  

자식을 낳아 키워보니 내 눈엔 효녀 심청도 효녀가 아니다. 자식이 부모 때문에 목숨을 버린 것을 안다면 부모로서 어찌 남은 생을 편히 살겠는가... 심청이가 진짜 효녀라면 인당수에 뛰어들기 전에 공양미 삼백석에 대한 환불 원정을 떠났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바이다. 그랬다면 뭘 해도 될 자식이라며 심봉사도 기뻐했을 게 틀림없다. 

나 역시 내 아이가 나를 위한답시고 자신의 행복을 포기한다면 그것은 효가 아니라 불효라고 일러줄 것이다. 자신의 삶을 행복하게 잘 꾸려나가주는 것이 진정한 효자 효녀의 길이라고 생각한다.

사회적으로 어려운 시기 탓인지 부모도 자식에게 대단한 효도를 기대하는 것 같진 않다. 연락을 자주하고 몸과 마음이 평안하신지 들여다보는 것. 그것만으로도 아주 후한 점수를 받을 수 있다. 효도는 하는 입장보다 받는 입장에서 더 정확하게 판단할 수 있는 일. 나는 부모님에게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OO이가 효자상을 받을 만하다고 생각하나?"

그랬더니 '하하 허허' 웃으시며 "틀린 말도 아니지 뭐"라고 답했다. 역시, 후하다 후해. 나 역시 초라한 효행이지만 늘 후한 점수를 받고 있는 딸이다. 이것 보라. 효자 효녀 되기란 이렇게 쉽지 않습니까?

불효 막심한 자식도 환골탈태 해 효자가 될 수 있는 시대! 몰아서 하려 하지 말고, 1일 1팩처럼 1일 1효를 작게나마 행한다면 나중에 '불효자는 웁니다' 노래에 그렇게 가슴 치며 울지 않아도 될 것이다. 지금이 효도하기 가장 좋은 시간, 당장 부모님께 전화를 거는 것부터 시작해보자.

덧붙이는 글 | 개인 브런치에 실린 글입니다


태그:#효도 , #이시대의 효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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