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엄마가 되고 나서 손끝으로 전해지는 세상을 알게 됐다.
 엄마가 되고 나서 손끝으로 전해지는 세상을 알게 됐다.
ⓒ unsplash

관련사진보기

 
아이를 키우면서 가장 부지런하게 움직인 곳은 손이었다. 아이를 안고, 먹이고, 씻기고, 재울 때마다 손에 들어가는 힘의 정도가 달라졌다. 아이를 안을 때는 손끝에 힘을 바짝 쥐어야 했고, 칼로 곱게 다져 만든 이유식을 부드럽고 살며시 입안에 넣었다. 소화를 시키기 위해 등을 문지르고 씻길 때는 손가락이 섬세한 수건이 되어 찰방거렸다. 한밤중에 아이가 칭얼거리면 본능적으로 손바닥에 솜털 같은 무게를 실어 아이를 토닥이며 재웠다.

손목이 너덜너덜해지는 일, 아대를 껴도 소용없었다. 손가락 마디마디가 쑤셔서 견딜 수가 없다고 난 종종 신음했다. 손아귀에 힘이 약해져서 물건을 자주 떨어뜨리고 흘렸다.

그때부터였을까. 손으로 노동하는 일은 나에게 너무나 아끼고 싶은 노동력으로 인식됐다. 손으로 아이를 일구며 알게 된 세상만큼 손은 나에게 작은 습관을 만들어주었다.

아이들을 데리고 식당에 가면 괜히 눈치가 보였다. 밥알을 흘리고, 수저를 떨어뜨리고, 물을 엎는 등 진상 같은 손님이 되는 현실이 속상했다. 한 끼를 차리는 일이 얼마나 소중한지 알게 된 이상, 서빙하시는 분들에게 막중한 짐을 얹어드리고 싶지 않았다. 한 끼를 대접받는 데 밥값을 돈의 액수로만 지불한다는 게 왠지 송구스러웠다. 작은 예의와 감사를 표현하고 싶었다. 맛이 좋든 없든 식사를 내보이기까지 그들의 수고와 노동은 가치 있는 것이었다.

식사를 마치면 식기류를 정리했다. 가족이 먹고 흘린 식탁을 닦는 일도 힘든데 타인이 흘리고 묻히고 간 식탁을 그저 보여드리기가 민망했다. 컵은 컵끼리, 수저와 젓가락, 국자, 집게를 같이 두고, 큰 그릇은 큰 그릇끼리, 작은 그릇은 작은 그릇끼리, 기름기가 있는 것과 없는 것, 반찬이 남은 것과 빈 그릇을 구별해 정리하고 일어섰다. 조금이라도 깔끔하게 정리해서 그분들의 수고를 덜어드리고 싶었다. 얼마나 도움이 되겠냐마는 은혜를 보답하는 까치의 마음이었다.

여행 간 숙소에서 퇴실하면 할 수 있는 만큼 청소했다. 썼던 이불을 제외한 모든 물건을 처음 있었던 그대로 두려고 노력했다. 싱크대 배수구망을 탈탈 털고, 화장실에 물 고인 휴지통을 비웠다. 내가 미처 보지 못하는 부분을 정리하고 청소하실 그분들의 수고가 더 크다는 걸 알기 때문이었다. 내가 생각하기에 고마운 마음을 표현하는 가장 좋은 방법이었다.

덕분에 잘 묵고 간다는 공공연한 나의 방식이 통했는지 숙박업을 운영하는 좋은 분들을 만났다. 제주에서 만난 주인장은 배 타고 서울까지 운전해서 가는 길이 걱정된다며 공진단을 입안에 재빨리 털어 넣어주셨다. 봉화에 사시는 민박집 할머니는 아이들에게 주고 싶다며 이웃 과수원에 파는 사과를 보내주시기도 했다. 그분들의 호의를 바라고 한 일이 아닌데 몸 둘 바를 모를 정도로 고마워서 나도 선물을 보내드렸다. 서비스를 제공한 사람과 받은 사람을 넘어서 관계가 생긴 기분이었다. 다시 만나기를 기약했다.

도서관에 가서 아이가 시리즈 책을 빌리면 서가를 기억해두었다가 반납할 때 정확한 위치에 꽂아두었다. 책을 빌리는 주민의 권리만큼 책을 소중히 여길 수 있는 권한도 있다고 생각했다. 책이 귀한 만큼 책을 관리하는 사서들은 더 고귀하다는 생각. 아무렇게나 책을 빼고 올려두면 책을 꽂아두는 사서들의 일은 끝이 없을 거라는 오지랖. 하루에도 수십 권, 수백 권의 책을 빼고 꽂느라 파스를 붙이고 있는 그분들의 손목도 소중하다는 마음이었다.

미용실에 가면 가위질하는 그분들의 손놀림이 당연한 게 아니라는 것을. 머리를 감겨줄 때마다 그들의 손가락 마디의 골수가 빠져나갈지도 모른다는 걱정에 머리를 감고 미용실을 찾았다. 줄줄이 오는 고객들로 밥도 제대로 못 먹는 단골 미용실의 사정을 알게 되니 김밥 한 줄이라도 사가는 마음이 생겼다. 너무나 작은 성의지만 손끝으로 사는 사람들이 얼마나 고된 노동을 하시는지 내 손목과 손가락이 그랬던 것처럼 아끼고 싶은 마음이었다.

손끝에서 마음이 느껴질 때가 많았다. 손으로 완성된 그들의 노동과 봉사에 얼마나 많은 감동이 있었던가. 손수 뜨개질한 수세미, 컵받침대, 책덮개, 가방을 선물 받을 때면 가슴에 꼭 끌어안고 손의 온기를 느꼈다.

손으로 일하시는 분들뿐이겠는가. 머리로, 목소리로, 어깨와 등으로, 다리로, 발로 더한 노동으로 일하시는 분들의 수고를 내가 어찌 열거할 수 있겠는가. 숭고한 노동력으로 자신을 내어주는 사람들을 어찌 다 헤아릴 수 있겠는가. 노동한 만큼 대가가 주어지는 세상에서 그들의 몫과 수고가 당연한 게 아니라는 것을 기억할 뿐이다. 팁이라는 문화가 있지만 도저히 몇 푼의 돈으로는 측정할 수 없는 가치. 엄마가 되고 겪으면서 알게 된 세상이었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개인 브런치에도 실립니다.


태그:#손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땡감이 홍시로 변하는 감, 생각이나 느낌이 있는 감, 어디론가 향해 가고 있는 감입니다.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