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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 이후 재택근무를 하는 직장인들이 늘고 있습니다. 그저 일하는 공간이 바뀐 것뿐인데, 돌이켜보면 잃은 것이 참 많습니다. 출근길 지옥철에서 쌓인 피로를 녹여주던 따끈한 아메리카노의 맛, 정신없는 오전 업무를 마치고 한숨 돌리며 먹던 점심식사의 맛, 퇴근길 마음 맞는 동료에게 하소연과 푸념을 실컷 늘어놓고 시원하게 들이키던 맥주 한 잔의 맛... 지루한 직장 생활에 생기를 더해주던, 그리운 모든 순간들에 대해 이야기해봅니다. [편집자말]
매일 아침, 빵과 커피 향이 사무실에 가득했다.
 매일 아침, 빵과 커피 향이 사무실에 가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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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빵 사 왔어요. 배고프신 분들 드세요."

오전 9시 전, 과장님은 아침에 막 구운 식빵 한 봉지를 들고 등장한다. 삼삼오오 커피를 마시며 담소를 나누던 동료들이 웃으면서 과장님에게 인사한다. 출근 시간에 맞춰 아침 식사도 못 먹고 서둘러 오던 터라 자연스럽게 탕비실에 가서 잼을 발라 식빵을 나눠 먹는다. 빵과 커피 향이 사무실에 가득하다.

과장님은 공복 상태인 직장동료들을 신경 썼다. 사무실에 냉장고도 있었지만 그녀의 서랍 안에는 배고플 때 언제든 꺼내 먹을 수 있는 간식거리가 넘쳐났다. 구운 계란, 초코파이, 소시지, 컵라면, 음료수 등.

간식으로 점심을 대체하고 다이어트할 거라는 과장님의 발언은 늘 무산되었다. 일하면 왜 그리 자주 배가 고프던지. 초코파이가 군대에서 그렇게 맛있다는데 난 직장 생활하면서 초코파이가 맛있다는 걸 처음 알았다.

고단할지언정 외롭지 않던 그때 

시곗바늘이 12에 가까워지기를 흘금흘금 쳐다보다 12시 땡! 하자마자 누구라 할 것 없이 뛰쳐나갔다. 직장 근처에 맛집이 많았던 터라 오늘은 무엇을 먹을지 우리는 늘 진지하게 고민했다.

새로 생긴 헝가리 요리 굴라쉬, 따끈하고 얼큰한 뼈다귀 해장국, 햄이 푸짐한 부대찌개, 바삭한 누룽지까지 싹싹 비벼 먹는 찜닭 등등. 맛집에 줄 서서 먹을 각오가 되어 있는지, 아니면 빨리 먹고 여가를 즐길 것인지, 그날의 스케줄과 컨디션에 따라 선택되는 점심 메뉴는 초미의 관심사였다.

아주 가끔 밥보다 휴식이 필요할 때는 텅 빈 사무실에서 혼자 쉬었다. 근무시간의 꽃, 점심시간을 만족스럽게 보내고 1시에 돌아오면 무엇을 먹었는지 팀원들끼리 늘 안부처럼 물었다. 뭐 드셨어요? 우리는 서로 무엇을 먹었는지 공유하고, 다음날 점심을 기다렸다.
 
가족 같던 회사 분위기는 정겨웠다.
 가족 같던 회사 분위기는 정겨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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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명 정도의 직원이 있는, 가족 같던 회사 분위기는 정겨웠다. 사장님은 초복, 중복, 말복마다 점심시간에 직원들을 데리고 가서 삼계탕이든 보신탕이든 몸보신을 시켜주었다. 그중에 비건을 추구하는 동료가 있어서 다른 식당에서 파는 메뉴를 배달시켜주셨다.

가끔 간부와 팀장, 팀원끼리 소통하기를 바란다며 전산팀, 편집팀, 영업팀 팀끼리 나눠 패밀리 레스토랑에 데려가셨다. 그때 회식은 술을 권유하거나 저녁 시간을 침범하는 자리가 아니었다. 맛있는 식사를 하러 간다는 설렘으로 가득 찼다. 동료들이 마주 앉아 시원한 맥주 한 잔 마시면서 그날의 스트레스를 나누기도 했고, 영화를 보러 가기도 했다. 연인이 없는 직원들이 모여 크리스마스이브를 같이 보낼 정도로 우리는 참 가까웠다.

그중에 생각만 해도 배시시 웃음이 나는 추억은 야유회다. 일 년에 한 번 꼭 1박 2일로 야유회를 갔다. 숯불에 고기를 구워 먹고, 배드민턴도 치고, 퀴즈를 맞추며 건전하게 놀았다. 레크리에이션 강사보다 더 웃긴 과장님의 재능이 있었다. 다른 해에는 비슷한 업종의 회사와 '쪼인(join, 함께)'해 야유회를 갔다. 강변을 따라 자전거도 타고, 짝피구도 하고, 보물찾기 하면서 상금도 탔다.

대하를 가져오라고 하니까 넓직한 고무대야를 가져온 동료에게 얼마나 낄낄댔는지. 밤늦게 술 마시다 취해서 난동을 피우는 사람이 꼭 생겨나고, 옆에 있는 친한 동료는 괜히 울고 있고. 다음날 머쓱하고 민망한 얼굴을 봐도 아무렇지 않게 함께했던 동료들.

이제는 추억이 되어버린 시절이지만 

아, 그리운 시절이여. 내 인생에 황금기 같았던 시절은 아마도 이십 대 직장 생활을 하던 때일 것이다. 일에 대한 성취도 있었지만, 다시 만나기 힘든 좋은 사람들이 있었다.

일하는 실력이 부족하면 동료들에게 피해를 줄이고자 30분 일찍 출근해서 필요한 업무를 배웠고, 늦게 퇴근하며 부족한 부분을 메웠다. 실력을 향상하기 위해 업무와 관련한 학원을 다니면서 보충했다. 경쟁에서 이기거나 인정을 받기보다 회사에 오래 다니고 싶었던 마음이었다.

그때 우리는 일이 주는 보람도 나누었고, 스트레스도 나누었다. 같이 뛴다는 동료의식이 있었다. 힘들면 기다려주고, 지치면 끌어주고, 우리 모두의 꿈을 이루는 협업이었다. 일하는 게 서툴고, 돈 버는 게 어렵다는 걸 아는 시기에 만나서 그런지 각별한 전우애가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들은 나에게 선배였고 상담가였으며 동료였기에 야근으로 고단했을지언정 외롭지 않았다.

분명 아침에 일찍 출근해서 밤늦도록 일하는 치열한 사회생활이었을 텐데, 지금은 쉽게 갖지 못하는 기회여서 그런지 동화 같은 이야기로 기억되는 걸까. 대학 졸업하고 막 회사에 취직해서 세상 물정 모르던 시기, 사람들을 어찌 대할지 몰라서 막막해서 집에서 울던 날도, 또 일이 너무 하기 싫어서 도망가고 싶었던 순간도, 주말에 출근해서 책상에 앉아 엉엉 울던 시간도 있었지만 견디는 동안 여물어가던 시기라서 그런지 그립기만 하다.
 
잠시라도 직장 생활에 삶이 활기가 넘치고 아름답게 소환할 수 있었던 그때 그 사람들에게 고마움을 전한다.
 잠시라도 직장 생활에 삶이 활기가 넘치고 아름답게 소환할 수 있었던 그때 그 사람들에게 고마움을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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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같이 일하면서 돈독했던 동료들은 지금도 연락하고 지낸다. 한 손에 식빵을 사 오던 과장님이 비슷한 또래 아이를 키우는 엄마 동지가 되면서 언니라고 부를 만큼 편해졌다. 가끔 만나면 커리어우먼으로 정장 입은 모습이 아닌 학부모로서 근심을 나누는 얼굴이 낯설어 깜짝 놀란다. 직장을 다니는 동안에는 하나의 목표를 가지고 일했던 사람들이 이제는 각자의 삶의 목표를 가지며 향방을 찾고 있다.

나는 집에서 가사노동과 함께 아이들을 돌보고 있다. 내게 주어진 시간과 상황을 맡았을 뿐이다. 직장 생활이 편한 분도 계시고, 집에서 아이를 돌보는 게 편하다고 생각하시는 분들도 계실 거다. 일과 근무환경, 동료마다 사정이 다르기에 어떤 게 좋다 나쁘다를 논하고 싶은 게 아니다.

나는 회사 생활에 적응했을 즈음 똑같은 하루가 반복되고, 매달 숨이 넘어갈 듯 마감을 쫓는 일도 반복되니 무료함을 느꼈다. 내년에 진급이 될지, 물가상승률에 따라 월급이 얼마나 인상될지 초조했던 순간 말고는 비슷한 시간이 흘렀다. 반복되는 업무를 하니 무미건조한 일상에서 특별함을 찾기란 쉽지 않았다.

근무시간 내내 컴퓨터 화면을 보면서 눈이 따가웠고, 손목터널 증후군으로 손목이 자주 시렸다. 실력은 좀처럼 늘지 않고, 되려 후퇴하는 기분도 들었다. 결혼과 임신으로 직장을 그만두면서 삶의 의미를 발견하고자 했던 일에 대한 숱한 갈등은 끝이 났다.

직장 생활에서 배웠던 업무가 현실에 활용되는 건 없으나 꾸준하게 반복되는 하루를 성실히 살아가고자 했던 여운이 아직 남아 있다. 매일매일 꾸준하고 반복하는 훈련을 견디는 것이야말로 살아가는 힘이라는 걸 배웠다. 그것이 매일 무리 없는 하루를 마감하는 일이라고 말이다. 서로 어우러진 팀워크를 만들어가는 거야말로 좋은 공동체이고, 특별한 시간이라는 사실이다.

팍팍한 업무에 단비 같았던 사람들, 축복 같았던 점심 메뉴, 고정적이고 안정적인 월급, 한밤에 목마름을 적셔주던 맥주. 잠시라도 직장 생활에 삶이 활기가 넘치고 아름답게 소환할 수 있었던 그때 그 사람들에게 고마움을 전한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개인 브런치에도 실립니다.


태그:#회사, #직장생활, #점심시간, #야유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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땡감이 홍시로 변하는 감, 생각이나 느낌이 있는 감, 어디론가 향해 가고 있는 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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