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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의 사진은 필름을 이용하여 촬영하고 직접 스캔하였으며 사이즈 조정 등 기본적인 보정만 했음을 밝힙니다. 괄호 안에 간단한 기종과 필름 종류를 기재하였습니다.[기자말]
나는 대안학교 교사이다. 학교의 유형을 정확히 말하자면 '공립 대안교육 특성화 고등학교'이다. 우리나라에서 5개만 존재하는 공립 대안 고등학교이자, 일반계 학교에서 계열을 변경한 케이스로는 유일하다.

많은 대안학교가 그렇듯 해외 이동학습이 계획되어 있었다. 다른 점이 있다면 교육법과 교육지침을 따라야 하는 공립학교의 특성으로 인해 일정을 길게 할 수 없다는 것. 이동하는 시간을 빼면 6박 7일 정도의 시간을 해외에서 보내고 그동안 학생들은 문화교류 및 봉사활동 등을 할 예정이었다.

본교로 부임하기 1달 전 코로나19가 터졌다. 하필이면 해외이동학습을 추진해야 할 2학년 부장을 맡게 되었다. 4월 중순까지 고민과 토론을 거듭하다가 국내 기행으로 방향을 돌렸다. 이마저도 11월에 시행이 가능할지 불투명한 상태로 말이다. 

이 시기에 학교가 얼마나 혼란스러웠는지는 이 지면에 다 표현 못한다. 학생들이 없는 상태에서 모든 결정을 해야 했고 지침이 하루가 멀다 하고 바뀌곤 했다. 평소 필름카메라와 야영장비를 들고 오지로 여행을 다녔던 경험들을 총동원하여, 학생 체험활동으로는 전무후무한 계획을 홀로 짜기 시작했다.
 
(캡처)완주에서 전세버스로 일단 이동을 한 후 현지에서 이동하는 방법 및 경로를 표시한 그림
▲ 전체 이동경로 (캡처)완주에서 전세버스로 일단 이동을 한 후 현지에서 이동하는 방법 및 경로를 표시한 그림
ⓒ 안사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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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제는 '생활 속 거리두기 수준의 상황에서 해당 지역에 신규 확진자가 없을 때'였다. 가능할 것이라고 생각하고 모든 계획을 짰다. 백패킹 배낭 45개와 텐트 16개를 포함하여 2천만 원어치 야영장비를 구입했다.

총액으로만 보면 대단한 가격이지만 45명이 백패킹을 시행할 장비로서는 매우 저렴한 수준이다. 소위 가성비가 좋은 물건들을 선택하고 본사와 직접 연락해서 에누리를 하고 계약을 맺었다.

최초로 계획을 발표했을 때 교사와 학생의 반응이 극명하게 나뉘었다. 교사들은 참으로 교육적인 계획이라며 만장일치로 찬성했고, 학생들은 해외로 나가지 못하는 것에 대해 볼멘 소리를 해댔다. 4차례가 넘는 설명회를 통해 아이들을 설득했고 2학기에는 실제 연습을 위해 운동장 야영을 시작했다. 반전은 여기서부터 시작됐다.

야영은 훌륭한 노작교육 컨텐츠였다

실제로 타프를 치는 과정은 그야말로 아수라장이었다. 교실에서 그토록 설명하고 영상으로 보여주었건만 팩을 박지도 않고 지주폴부터 올려놓고, "쌤, 이거 어떻게 해야해요?"라는 아우성이 빗발쳤다. 스토퍼 사용법부터 팩 박는 각도, 타프 치는 순서를 다시 차근차근 일러주고 모둠을 돌아가며 직접 가르쳐주었다. 어느 때보다도 아이들의 눈이 반짝거렸다.
 
(SW612/Portra800) 어떤 모둠은 타프 하나를 치는 데에 1시간 가까이 걸렸다.
▲ 처음 타프를 진 날 (SW612/Portra800) 어떤 모둠은 타프 하나를 치는 데에 1시간 가까이 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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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핸드폰)4시간 안에 타프, 텐트를 친 후 컵라면을 먹고 정리까지 하는 것이 첫 번째 실습의 미션이었다.
▲ 첫 날의 미션 중 하나 "컵라면 먹기" (핸드폰)4시간 안에 타프, 텐트를 친 후 컵라면을 먹고 정리까지 하는 것이 첫 번째 실습의 미션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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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6명 정도의 아이들이 기숙사 말고 운동장에서 잠을 자도 되냐고 물어왔다. 코로나19로 인해 주중 외박은 병결이나 인정결석에 준하는 사유 말고는 불가능하지만 운동장은 학교 내이기 때문에 융통성을 발휘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기숙사 부장과 관리자 선생님들과의 상의 끝에 내가 곁에서 함께 자는 조건으로 운동장 취침이 허가되었다. 새벽 3시쯤 학생들의 상태를 살필 겸 잠시 나와 본 하늘은 매우 환상적이었다.
  
(핸드폰)삼각대가 없어서 조명 스탠드에 세워놓고 16초 동안 노출했다.
▲ 텐트와 학교와 오리온자리 (핸드폰)삼각대가 없어서 조명 스탠드에 세워놓고 16초 동안 노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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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 회차에는 타프와 텐트를 비롯해 모든 장비를 세팅하고 캠핑요리경연대회를 열었다. 화기와 조리도구를 사용할 때 충분한 연습이 있어야 안전하기 때문에 기획한 행사였다. 점심시간 전 1시간을 이용하여 모둠별로 마트로 걸어나가 장을 보았고 오후 시간에는 계획한 레시피에 따라 요리를 했다.

작은 코펠세트와 버너 하나, 4명이 쓰기에는 턱없이 작은 백패킹용 테이블이 전부이다보니 상당히 불편하게 식재료를 다듬을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오히려 그러한 제약 때문에 더욱 집중하고 몰입할 수밖에 없었다. 두 시간이 훌쩍 지나갈 만큼 아이들은 버너와 코펠에 온 감각이 집중되어 있었다.
 
(67ii/Portra160)하트 모양으로 플레이팅을 할 볶음밥을 만들기 위해 즉석밥을 덥히고 있는 학생들
▲ 요리 중 (67ii/Portra160)하트 모양으로 플레이팅을 할 볶음밥을 만들기 위해 즉석밥을 덥히고 있는 학생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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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7ii/Portra160)조리를 마치고 담당 선생님께 간보기를 부탁하는 모습
▲ 간 좀 봐주세요 (67ii/Portra160)조리를 마치고 담당 선생님께 간보기를 부탁하는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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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재미있었던 것은 백패킹 국내 기행을 끝까지 못마땅해했던 몇몇 학생들이 보여준 모습이었다. 막상 야영이 시작되니 어떤 학생들보다도 집중해서 주어진 과정들을 해내기 시작했다. 어찌나 열심히 하던지 얄미워 보일 정도였다고나 할까.

'운동장에서 대화하자!' 프로젝트

우리학교는 1달에 한 번 '달매듭'이라는 시간을 가진다. 모든 학생들이 한 자리에 모여서 일과 시간 및 기숙사 생활에 대한 반성과 토의를 하는 것이다. 많은 선생님들도 함께 자리하여 학생들의 인지, 사회적 활동을 돕는다. 

그런데 코로나19 때문에 학년 간의 교류가 불가능하게 되었다. 실내에서 50인 이상 집회가 불가능했기 때문이다. 그러다보니 올해의 신입생들은 상대적으로 선배들과 잘 섞이지 못했다. 이미 2, 3학년들은 사이가 돈독했기 때문에 더욱 그랬다.

2학년들이 처음 타프와 텐트를 치던 날, 1학년과 3학년들이 부러운 눈빛으로 하루 종일 운동장을 기웃거리는 것을 목격했다. 어떤 생각이 번뜩이며 뇌리를 스쳤다.

'그래! 운동장에서 대화하면 되겠다.'

곧바로 교무실 컴퓨터에 앉아 2주 뒤의 행사를 기획하여 문서로 만들기 시작했다. 2학년이 야영 장비를 설치하고 요리경연대회를 하는 그 날부터 시작하여 전교생의 운동장 야영 및 실외 달매듭을 계획했다. 첫 날은 가장 서먹한 1학년과 2학년이 함께 만나는 날이 되었다.
 
(캡처) 첫 날 주간과 야간의 운동장 야영 배치도
▲ 운동장 야영 배치도 (캡처) 첫 날 주간과 야간의 운동장 야영 배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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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7ii/Ektar100)이 날의 화합을 예견이라도 하는 듯 황홀했던 석양
▲ 운동장의 저녁노을 (67ii/Ektar100)이 날의 화합을 예견이라도 하는 듯 황홀했던 석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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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행사를 기획했다는 소식을 듣자마자 운영위원장이자 학부모인 한 분은 집에서 LPG 가스통과 큰 솥을 가지고 오셨다. 시장을 돌며 어묵과 야채를 사서 50인분 어묵탕을 뚝딱 끓여내셨다. 목공 선생님은 폐 목재를 제공하여 캠프파이어를 할 수 있도록 해주었고 어떤 선생님은 아이들을 지킬 겸 차박을 자청하기도 했다.

기숙사부장이 임원진 학생들과 함께 모둠을 짰고 아이들은 작은 의자에 앉아 간식을 먹으며 도란도란 이야기를 시작했다. 어떤 모둠은 웃음이 넘쳤고 어떤 모둠은 침묵이 흐르기도 했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다들 비슷한 수준으로 평준화 되었다.
 
(67ii/Portra160)대화 후에는 추운 날씨 속 '오들오들 영화감상' 시간이 펼쳐졌다. 30초의 노출 시간 동안 움직이지 말 것을 요청하였으나 얼추 성공한 학생은 둘 정도. 당연히 마스크는 사진 찍을 때만 잠시 내린 것.
▲ 대화 후 영화 감상 시간 (67ii/Portra160)대화 후에는 추운 날씨 속 "오들오들 영화감상" 시간이 펼쳐졌다. 30초의 노출 시간 동안 움직이지 말 것을 요청하였으나 얼추 성공한 학생은 둘 정도. 당연히 마스크는 사진 찍을 때만 잠시 내린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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텐트 취침은 선택사항이었다. 아침 온도가 5~6도 정도로 예보되어서 상당히 쌀쌀한 상황이 예상되었기 때문에 미리 겨울옷을 준비할 것을 일러놓은 상태였다. 애초 텐트 취침을 선택한 학생은 15명 정도였는데 밤이 깊어 갈수록 아이들이 하나 둘씩 내 앞으로 찾아와서 이렇게 말했다.

"쌤. 저도 운동장에서 잘래요."

담임교사, 기숙사부장, 사감교사에게 차례로 통지를 하고 추운 곳에서 자는 요령에 대해 설명했다. 행사 동안 이틀 밤을 합하여 5시간 밖에 자지 못했다. 새벽까지 노닥거리는 아이들을 지켜보느라 잠을 청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이들에게 대화의 장을 열어주었다는 뿌듯함 덕에 피곤하지 않았다. 

이 기사를 작성하는 지금은 통합기행을 성공적으로 마치고 난 뒤인데, 이때의 운동장 야영 경험이 매우 큰 도움이 되었다. 이날 추운 곳에서 자본 덕에 아이들은 교사의 설명대로 한겨울 옷을 배낭에 넣어서 왔고, 단 한 명도 감기에 걸리지 않았으며, 요리를 미리 해 본 덕에 일사불란하고 안전하게 움직였고, 매번 시간과 안전 지침을 잘 지켜주었다.

10월 29일부터 11월 6일까지 8박9일의 백패킹 노작기행에서 담아온 10롤의 필름을 계속해서 스캔하고 있다. 사진작업을 마치는 대로 계속해서 후속기사를 작성할 예정이다. 미리 결과를 말하자면, 한창 질풍노도의 시기를 겪는 18세의 아이들이 4일 연속으로 텐트에서 잠을 청하고 마지막 날은 영하 5도의 새벽을 견디면서도 하루 하루를 행복해 했다는 것이다. 예고편 사진 한 장으로 기사를 마친다.
 
(645N/Ektar100)통합기행 5일차 아침, 이틀 밤을 묵었던 곳을 떠나는 모습
▲ 배낭을 메고 (645N/Ektar100)통합기행 5일차 아침, 이틀 밤을 묵었던 곳을 떠나는 모습
ⓒ 안사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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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학교, #야영, #필름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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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립 대안교육 특성화 고등학교인 '고산고등학교'에서 교사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필름카메라를 주력기로 사용하며 학생들과의 소통 이야기 및 소소한 여행기를 주로 작성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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