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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의 정부 예산안 심의가 본격 시작됐다. 유례없는 코로나19 위기 속에 한정된 재원을 어디에, 어떻게, 얼마나 쓸 것인가가 정하는 일이 어느 해보다 중요한 때다. 그런데 전체 예산의 10%에 달하는 국방예산은 올해 처음 50조 원을 돌파한데 이어 내년 예산으로 52.9조 원이 편성됐다. 이에 국방예산 증액의 문제점과 대안을 네 차례 걸쳐 연재한다.[편집자말]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10월 28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시정연설을 하기 전 라임·옵티머스 사태 특검을 촉구하는 국민의힘 의원들을 바라보고 있는 모습.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10월 28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시정연설을 하기 전 라임·옵티머스 사태 특검을 촉구하는 국민의힘 의원들을 바라보고 있는 모습.
ⓒ 공동취재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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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한 안보가 평화의 기반이 된다는 것은 변함없는 정부의 철학입니다. 정부는 한반도 평화에 대한 강한 의지를 갖고, 국가안보의 최후 보루인 국방 투자를 더욱 늘려 국방예산을 52조9000억 원으로 확대했습니다. (중략) 강한 국방을 바탕으로, 한반도의 비핵화와 항구적 평화를 위해 끊임없이 대화를 모색하겠습니다." - 문재인 대통령, 2021 예산안 국회 시정연설 중(2020.10.28.)

"나는 우리의 군사력이 그 누구를 겨냥하게 되는 것을 절대로 원치 않습니다. 우리는 그 누구를 겨냥해서 우리의 전쟁억제력을 키우는 것이 아님을 분명히 합니다. 우리 스스로를 지키자고 키우는 것뿐입니다." - 김정은 국무위원장, 조선노동당 창건 75돌 열병식 연설 중(2020.10.10.)


"평화를 원하거든 전쟁을 준비하라"는 말이 있다. 1700여 년 전 로마의 전략가 플라비우스 베게티우스(Flavius Vegetius)의 말이다. 이 말은 현대에 이르기까지, 특히 냉전시대를 관통하는 패러다임이 돼왔다. 역설적인 이 말은 평화를 지키기 위한 전쟁억제력으로, 자위적 정당방위 수단이 돼 우리 곁에 늘 있어 왔고, 우리는 그것을 의심치 않았다. 문재인 정부의 안보철학도 사실 이 명제에 기초한다고 생각한다.

문재인 정부의 국방철학
 
6.15공동선언실천 남측위원회와 독립유공자유족회,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한국청년연대, 진보대학생넷, 주권자전국회의, 전국여성연대 대표 등 각계 인사들이 지난 10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무기 증강과 국방예산 증액 반대를 요구했다.
 6.15공동선언실천 남측위원회와 독립유공자유족회,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한국청년연대, 진보대학생넷, 주권자전국회의, 전국여성연대 대표 등 각계 인사들이 지난 10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무기 증강과 국방예산 증액 반대를 요구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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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국방예산 자체도 중요하지만 문제는 현 정부의 국방정책의 방향이다. 많은 이들이 '안보'를 중시했던 이명박·박근혜 정부와 문재인 정부는 다를 것으로 생각한다. 그러나 문재인 정부 첫해 40조 원으로 시작한 국방예산은 3년 만에 50조 원을 돌파했다. 정부가 제출한 2021년 국방예산은 지난해 대비 5.5% 인상돼 52조9000억 원에 이른다. 이는 이명박·박근혜 정부의 평균 국방비에 비해서도 1.5배에 달하는 액수다.

필자는 나라의 수준은 경제 지표만으로 평가하는데 반대하지만, 굳이 비교하자면 남한의 한해 국방비는 북의 GDP를 이미 상회하고 있다. 군사적 신뢰 구축과 단계적으로 군축을 실현해 나가기로 한 4.27 판문점선언의 합의에도 불구하고 대북 선제공격에 기초한 무기증강 예산은 증액을 멈춘 적이 없다. 이에 더해 정부는 2021~2025 국방중기계획을 통해 향후 5년간 국방비로 301조 원를 투입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선제공격과 보복응징을 위한 '킬 체인' 등 이전 정부의 '한국형 3축 체계 구축사업'은 '핵·WMD 위협 대응 사업'으로 이름만 바뀐 채 현 정부에서 계승돼 추진하고 있다. 관련 예산은 3년새 2조 원이나 늘었다. 3축 체제 사업 유지는 현 정부의 국방정책이 이전 정부와 다르지 않음을 보여주는 가장 중요한 지점이다.

대들보 뽑아서 땔감으로 쓸 거냐고요?
 
지난 10월 21일 오전 서울 서초구 CJ대한통운 택배물류현장에서 택배노동자들이 택배 분류 작업을 하고 있는 모습. .
 지난 10월 21일 오전 서울 서초구 CJ대한통운 택배물류현장에서 택배노동자들이 택배 분류 작업을 하고 있는 모습. .
ⓒ 국회사진취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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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동안 6.15공동선언실천 남측위원회는 연속기고 '폭증하는 국방비 이대로 좋은가'를 통해 코로나19 위기에 한정된 재원의 효율적인 배분을 위해, 불요불급한 국방비를 줄여 민생복지예산에 투여하자고 주장했다. 부족하나마 지금의 국방예산의 문제점과 해법도 제시했다. 

최소한 올해 협상도 끝나지 않은 주한미군 주둔비(방위비분담금), 군사 전문가들도 그 필요성에 의문을 제기하고 미국의 인도태평양전략에 편입될 것을 우려하는 경항공모함, 핵추진잠수함, F-35B 도입 예산, 방어가 아닌 대북선제공격에 기초한 특수전지원함 및 침투정 사업예산 같은 공격형 무기도입 예산만 잘 조정해도 당장 절실한 코로나19 위기 대응과 사회 안전망 확충에 쓸 수 있다.

그러나 국방예산을 줄여서 민생예산에 쓰자고 하면 '대들보를 뽑아서 땔감으로 쓸거냐'는 질문이 돌아온다. 공격형 무기중강을 중단하라 하면, '점점 커지는 중국의 위협에 대비해야 하는데 무슨 한가한 소리냐'는 힐책도 들린다. '일본은 압도해야 된다'는 이야기도 나온다.

동구 사회주의가 무너지고 미소냉전이 막을 내렸어도 분단 질서는 여전히 총을 내려놓지 못하게 했다. 한국전쟁 세대의 '너희가 전쟁을 알아?'라는 절규는 끝나지 않은 전쟁이 돼 우리 곁에 상존한다. 일상은 평화로운 듯하지만 인식은 아직 정전체제 속에 갇혀 전쟁과 분단을 종식하지 못하고 있다.

자주국방에 대한 왜곡된 신화는 이렇게 계속 재생산됐다. 이런 국방 인식은 예산을 성역화해 문제제기 자체를 금기시해왔다.

조건의 덫에 걸려버린 전작권 환수

진정한 자주국방이란 무엇인가. 국방예산의 증가가 주로 미국산 무기도입과 대북적대 무기체계 구축과 맞물려 진행되고 있다는 사실에 주목해야 한다. 최근 한미안보협의회의(SCM)에서 드러난 바와 같이 문재인 정부 임기 내 전시작전통제권 환수는 사실상 어려워진 반면, 오히려 끝없는 무기도입을 해야 할 판국이다. '조건에 기초한 전작권 전환'은 조건의 덫에 걸렸다.

자주국방에 대한 자부심은 어디서 나오는가. 동맹에만 기대는 안보에서 자신감은 나올 수 없고, 전작권이 없는 군대에서 자부심이란 있을 수 없다. 타국의 군사전략에 동원되는 나라에 자주국가의 국방정책이 나올 수 있는지 성찰해야 하며, 전작권도 없는 동맹이 과연 동맹인지 종속인지 이제는 물어야 한다.

"냉전동맹이 아니라 평화동맹"으로 가야 한다는 한 장관의 발언이, "이제는 선택을 강요받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선택할 수 있어야 된다는 자부심"을 말한 한 대사의 발언이, '어디 감히!'라는 비난을 듣는 비정상은 이젠 끝내야 하지 않을까.

굳건한 한미동맹을 이야기하지만 세상은 변하고 있다. 한미동맹이 미일동맹의 우위에 있었던 적이 있었는가 냉정하게 묻고 싶다. 미국 중심의 패권질서의 시대는 막을 내리고 있는데 우리는 무엇을 선택할 것인지 진지하게 생각해야 한다.

패권의 우산 아래 비를 피해온 것을 동맹이라 칭한 시대를 마감하고, '동맹'은 신주단지가 아니라 언제든 스스로 변화 가능하고 선택 가능한 '관계'의 틀로 변화해야 한다.

자주국방에 대한 철학적 인식의 전환
 
2018년 4월 27일 2018 남북정상회담 당시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회담장인 판문점 남측 평화의 집 부근 '도보다리'까지 산책한 뒤 돌아오고 있는 모습.
 2018년 4월 27일 2018 남북정상회담 당시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회담장인 판문점 남측 평화의 집 부근 "도보다리"까지 산책한 뒤 돌아오고 있는 모습.
ⓒ 한국공동사진기자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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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불어 '힘에 의한 평화'라 하더라도 그 힘이 어디에 기초 하는지 살펴야 한다. 그 힘이 어디에 종속돼 있는 것이라면, 그 힘이 누군가의 힘에 의지 하는 것이라면, 그 힘을 자신의 의지대로 온전히 쓸 수 없는 것이라면, 문제가 아닌가.

그 힘의 대상이 누구인가도 문제다. 냉전체제의 틀 안에 갇혀 같은 민족, 같은 겨레가 여전히 그 힘의 대상이란 사실을 이제는 아프게 성찰해야 한다.

미중갈등의 한복판에 오히려 패러다임을 전환하여 남과 북이 힘을 합쳐 새로운 에너지를 높일 수 있음을 상상해야 한다. 지금은 비록 얼어붙어 있는 남북관계지만 4.27판문점선언을 통해 힘에 의한 평화가 아닌 평화에 의한 평화, 평화적 방법으로의 평화도 가능함을 우리는 이미 경험한 바 있다.

이제 자주국방에 대한 철학적 인식을 전환해야 한다. 위협에 맞서는 힘을 키우는 일보다 위협을 근본적으로 없애는 일이 국방의 출발이 돼야 한다. 겨레를 적대시하는 무기 체제를 구축하는 비용이 아닌 평화체제를 구축하는 투자를 늘리는 것이 더 큰 자주국방이 돼야 한다.

남북관계 발전을 통해 남북 간의 상호위협을 줄여나가고,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을 통해 대미 의존도를 줄여나가는 것이 가장 효율적이고 미래지향적인 자주국방이 아닐까.

패권에 줄서기가 아닌 스스로 결정하는 운명

어떤 안보 어떤 국방을 원하는가. 같은 겨레에게 총부리를 겨누는 국방이 아닌, 싸우기 위한 동맹이 아닌 평화를 지키고 유지하는 수평적 관계로, 패권 질서에 줄서기가 아닌 호혜평등한 다자주의로, 누구의 선택에 따르는 것이 아닌 스스로 선택할 수 있는 자부심으로, 누군가의 힘에 기대는 것이 아닌 우리의 운명을 우리 스스로 결정할 수 있을 때 진정한 자주국방을 이야기 할 수 있지 않을까.

강한 힘으로 만들어지는 평화의 시대를 이제는 마감하자. 강한 힘으로 만들어지는 안보가 아닌 평화적 수단으로 만들어지는 평화를 상상하자.

"최고의 무기는 앉아서 대화하는 것이다(The best weapon is to sit down and talk)." - 넬슨 만델라

다시 대화가, 그리고 그렇게 만들어진 평화가 최고의 무기가 되는 날을 꿈꾼다.
 
뉴욕 유엔본부에 한반도평화선언 전달을 마치고 '최고의 무기' 벤치에 앉아 잠시 휴식하는 2019 유엔시민평화대표단.
▲ 최고의 무기(The Best Weapon) 뉴욕 유엔본부에 한반도평화선언 전달을 마치고 "최고의 무기" 벤치에 앉아 잠시 휴식하는 2019 유엔시민평화대표단.
ⓒ 6.15공동선언실천 남측위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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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이 글을 쓴 박정윤씨는 6.15공동선언실천 남측위원회 정책실장을 맡고 있습니다.


태그:#국방예산, #무기증강, #평화군축, #한반도평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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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15남측위원회는 6.15공동선언을 비롯한 남북공동선언들을 실천하여 민족의 화해와 단합, 통일을 이룩하려는 정당, 종교, 단체, 인사들을 광범위하게 망라한 상설적인 통일운동연대기구로서 북측, 해외측위원회와 함께 6.15민족공동위원회를 구성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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