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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희숙 국민의힘 의원. 사진은 지난 7월 30일 임대차 3법에 반대하는 본회의 5분 연설을 하고 있는 모습.
 윤희숙 국민의힘 의원. 사진은 지난 7월 30일 임대차 3법에 반대하는 본회의 5분 연설을 하고 있는 모습.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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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희숙 국민의힘 의원(서울 서초갑)이 여론의 질타를 받고 있다. 전태일 열사 50주기를 맞은 13일, 그가 "52시간 근로 중소기업 전면적용을 코로나 극복 이후로 연기하는 게 전태일 정신을 진정으로 잇는 것"이라고 주장했기 때문이다. 그의 글은 소셜미디어에서 크게 화제가 되며 각계로부터 비판이 쏟아지고 있다.

"현실과 괴리된 법 만들어서... 전태일 답답했을 것"

윤희숙 의원은 13일 오전 자신의 페이스북에 "우리 근로기준법은 1953년 전쟁통에 만들어졌다"라며 "주변 선진국의 법을 갖다놓고 베껴 '1일 8시간 근로'를 채택했다"라고 이야기했다. 그는 "세계에서 손꼽히는 극빈국에서, 조금의 일거리라도 가족을 먹여 살리기 위해 절박했던 시절에 현실과 철저히 괴리된 법을 만듦으로써 아예 실효성이 배제된 것"이라고 평가했다.

윤 의원은 "선량하고 반듯한 젊은이 전태일로서는 근로기준법이 버젓이 존재하는데 법을 지키지 않는 비참한 근로조건이 얼마나 답답했을지 상상이 간다"라면서 "그 죽음의 책임이 대부분 당시 법을 만들고 정책을 시행한 사람들에게 있다"라고 주장했다. 당시 세태에 맞지 않는 과도한 규제 탓에 전태일 열사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는 논리였다.

이어 "불과 50일 앞으로 다가온 '52시간 근로' 때문에 안 그래도 코로나를 견디느라 죽을 둥 살 둥인 중소기업들이 절망하고 있다"라며 "정부가 죽겠다는 중소기업을 빨리 죽으라고 등 떠미는 행태는 이해하기 어렵다"라고 꼬집었다.

또한 "이념적 도그마만 고집하거나, 우리 토양의 특수성은 외면하고 선진국 제도 이식에만 집착하는 것이 약자를 위하는 게 아니라는 것은 전태일 이후 50년간, 특히 약자를 위한답시고 최저임금을 급등시켜 수많은 약자의 일자리를 뺏은 문재인 정부에서 곱씹어온 교훈"이라고도 덧붙였다.

그는 "그나마 있는 일자리를 적극적으로 없애 근로자들을 나락으로 떨어뜨리지 않도록 52시간 확대 스케줄은 코로나 극복 이후로 유예해야 한다"라는 말로 글을 맺었다.

쏟아지는 비판 "전태일 열사의 정신 훼손... 그 입으로 전태일 언급하지 마라" 
 
전태일 열사 50주기 추도식이 13일 오전 경기도 마석 모란공원에서 유족과 시민노동단체 회원들이 참석한 가운데 열렸다. 근로기준법을 가슴에 안은 고인의 흉상이 묘역에 세워져 있다.
 전태일 열사 50주기 추도식이 13일 오전 경기도 마석 모란공원에서 유족과 시민노동단체 회원들이 참석한 가운데 열렸다. 근로기준법을 가슴에 안은 고인의 흉상이 묘역에 세워져 있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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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태훈 아름다운청년전태일50주기범국민행사위원회 홍보위원장은 <오마이뉴스>와의 통화에서 "한동안 어이가 없어서 말이 안 나오더라"라며 "이분이 전태일의 삶에 대해서 단 한 번이라도 관심 갖고 지켜봤다면 도저히 할 수 없는 말"이라고 한탄했다.

권 홍보위원장은 "전태일 열사는 근로기준법을 보고 '아, 이 법이 잘 지켜진다면 우리 노동자들이 그래도 조금은 살만 하겠다'는 희망을 가졌다"라며 "그게 버젓이 안 지켜지는 현실, 진정을 해도 법을 집행한다고 믿었던 정부기관조차 법을 지키지 않는 현실을 보며 절망했던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윤 의원의 논리대로라면 노동자의 삶이 절망스러울 때 아예 희망을 갖지 말라는 것"이라며 "괜히 희망 가졌다가는 죽으니까 절망스러운 현실을 인정하고 계속 절망스럽게 살라는 것"이라고 평가했다. "그런 이야기를 만약 전태일 열사가 살아서 들었다면 억장이 무너졌을 것이다. 전태일 열사 가슴에 대못을 박는 이야기"라며 "최소한 국회의원으로서의 자질이 있는 분이라면 이런 식의 망발을 하시면 안 된다"라고 지적했다.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노동위원회의 서희원 변호사 역시 <오마이뉴스>와의 전화에서 "당시 근로기준법이 문제인 게 아니라 적용을 못 받는 열악한 현실이 문제였던 것"이라며 "논리를 비틀어서 말이 안 되는 주장을 말로 들리게끔 써놨다"라고 지적했다.

그는 윤 의원의 주장은 "말 그대로 전태일 열사의 정신을 훼손하는 주장"이라며 "당시 하루 14시간식 일하던 여공들을 보면서 분신을 하게 된 게 전태일 열사인데, 노동시간 52시간제 유예를 주장하면서 전태일 정신을 끌고 왔다는 것 자체가 말이 안 된다"라고 비판했다.

이어 서 변호사는 "2018년도에 주52시간 근무제를 도입한 이래, 중소기업들의 준비를 위해 이미 2년 정도의 계도기간을 줘 왔다"라며 "경영계 입장만을 앵무새처럼 되풀이하는 것"이라고 꼬집었다. "최근 택배노동자도 그렇고 장시간 근로 때문에 과로사하는 분이 많은데, 이런 상황에서 공당의 국회의원이 이런 발언을 했다는 것 자체가 문제"라고도 지적했다.

정치권에서도 비판의 목소리가 나왔다. 조혜민 정의당 대변인은 "전태일 열사 이름을 욕되게 하지 마시라"라는 제목의 논평을 내고 그의 글을 "황당무계한 주장"이라고 비판했다. "전태일 열사 50주기, 찬물을 끼얹는 무지몽매함의 극치를 보여줬다"라며 "세상과 담을 쌓고 살지 않는다면 할 수 없는 말"이라고도 날을 세웠다.

조혜민 대변인은 "아직도 노동자들의 고혈을 짜는 장시간 노동으로 기업 경영이 이뤄져야 한다는 식의 저열한 인식이 노동자들의 노동권과 대한민국 경제를 후진적으로 만든다는 점을 인식해야 한다"라며 "전태일 열사가 지옥처럼 벗어나고자 했던 그 세상을 바로 윤희숙 의원은 원하고 있다"라고 꼬집었다. 그는 "전태일의 이름을 욕되게 하지 마시라"라며 "다시는 그 입으로 전태일을 언급하지 말기 바란다"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총)은 페이스북을 통해 "(윤희숙) 의원님이 쓰신 글에 민주노총을 비롯 전태일 열사의 마음과 뜻을 이어가는 노동자들은 실은 별로 모욕감을 느끼지 않았다"라며 "의미 없는 글이 그저 조금 웃겼을 뿐"이라고 지적했다. 민주노총은 대신 윤희숙 의원의 글을 패러디해 "모든 노동자에게 노조할 권리가 주어지는 것이 이건희 회장의 정신을 진정으로 잇는 것"이라고 적었다. 전태일 열사의 자리에 고 이건희 전 삼성그룹 회장의 이름을 넣은 것이다.

태그:#윤희숙, #전태일, #정의당, #민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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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5월 공채 7기로 입사하여 편집부(2014.8), 오마이스타(2015.10), 기동팀(2018.1)을 거쳐 정치부 국회팀(2018.7)에 왔습니다. 정치적으로 공연을 읽고, 문화적으로 사회를 보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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