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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속터미널에서 3호선을 타고 안국역은 금방이다. 그곳에서 내려 천천히 걸어 서울의 도심의 풍경을 음미하며 창덕궁 앞에 도착한다. 오랜만에 걷는 서울 도심 길도 좋다. 사람이 항상 살던 공간이 편하기는 하지만 때로는 지루하다. 새로운 환경에서 에너지를 충전하며 기운을 얻는다. 사람들이 여행을 떠나는 이유도 거기에 있지 않을까. 

11월이지만 날씨는 쾌청하고 늦가을 만끽하기 딱 좋은 날이다. 창덕궁은 가끔 와 보는 곳이지만 계절마다 느낌이 다르다. 궁궐 중에서 아기자기하고 경치가 아름다운 창덕궁은 언제 찾아와도 좋다. 많은 사연이 담겨 있는 곳, 우리 전통의 미를 가득 담고 있는 궁궐을 바라보는 것만으로 마음이 고요해지고 조상들의 지혜가 가득 숨어 있어 공부하기도 알맞다.  
 
왕과 신하가 토론할때 자유롭게 이야기 하라는 의미의 나무
▲ 회화나무 왕과 신하가 토론할때 자유롭게 이야기 하라는 의미의 나무
ⓒ 이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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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덕궁에 들어서자 마자 맨 먼저 마주하게 되는 커다란 회화나무 두 그루가 있다. 예전 왕과 신하가 토론하며, 신하들도 임금님 앞에서 자기 의사를 자유롭게 이야기할 수 있도록 했다는 의미를 가진 나무라고 한다. 그래서인지 나뭇가지들이 자유롭게 구불구불 뻗어 있어 재미있게 보였다.

예전에는 나무 한 그루에도 의미를 부여했다니 흥미로운 일이다. 문화해설사 부회장님의 설명을 들으며 모든 사물을 바라보니, 의미가 있어 좋다. 오랜 세월이 지나도 그대로 보전된 금천교, 창덕궁의 돌다리는 그 아래 비단 같이 물이 흐른다 하여 붙여진 다리 이름이다. 아름다운 난간석과 벽사의 의미를 지닌 해태와 거북상도 인상적이고 아름답다.
                                                                                                     
창덕궁을 옆으로 끼고 우리는 만추를 만나기 위해 창경궁 안으로 들어갔다. 말 그대로 늦가을의 정취를 마음껏 누릴 수 있게 곱게 물든 은행나무, 단풍나무 등이 너무 아름답다. 일찍이 궁궐에서 이토록 예쁜 가을을 만난 적이 있던가. 기억이 없다.

우리는 탄성을 지르며 천천히 걷는다. 이른 시간이어서 사람도 그리 많지 않아 단풍길을 걷는 운치를 한껏 누리며 사진 찍기에 여념이 없다. 우리는 천천히 걸으며 가을과 고궁의 아름다움을 마음껏 누린다. 멋진 만추를 가슴 가득 담고서.
            
단풍이 사이로 보이는 여러 궁궐과 단풍 진 나무들이 조화를 이루어 정말 예쁘다는 감탄사만 연발하며 걷는다. 우리 조상의 지혜가 모아진 해시계인 앙부일구의 사진도 찍고 아름다운 연못인 춘당지를 천천히 돌아 궁궐의 단풍을 감상한다. 여행을 멀리 외국에 나가지 않아도 우리 곁에 이처럼 아름다운 풍경과 역사의 현장을 만날 수 있어 참 복이 많은 국민이 아닐까 생각한다.
 
춘당지 연못의 가을
▲ 춘당지 연못 춘당지 연못의 가을
ⓒ 이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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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 년이 넘었다는 느티나무와 회화나무는 혜경궁 홍씨가 살얼음판 같던 시절 정조와 의지했다던 이야기가 전해지는 나무이다. 지아비를 뒤주에 가두어 굶어 죽이려는 시아버지를 보면서 얼마나 아프고 힘들었을까. 그 옆에 회화나무는 사도세자가 뒤주에 갇혀 울부짖는 소리에 마음이 아파 나무가 구부러졌다는 설이 있다고 한다. 두 나무를 보면서 그 시대의 비극의 아픔을 새기니 숙연한 마음이 든다.   
                                                          
빈양문은 명정전 뒤편에 있는 문인데 이 문은 국왕의 공적 공간인 명정전과 사적 공간인 내전을 연결하는 문이라고 한다. 이 문은 왕의 사적 생활 공간으로 통제가 엄격히 제한되었다. 그 함인정은 국왕이 신하를 만나고 경연을 하는 곳으로, 영조가 문 무과에 합격한 사람들을 이곳에서 접견하기도 했다고 한다. 함인정 처마는 그 곡선의 아름다움이 으뜸이어서 달력의 사진을 찍거나 한복 입은 모델들이 많이 사용하는 곳이라고 한다. 

정조부터 순조까지 창경궁에서 태어났고, 이곳에서 죽은 사도세자의 혈통이 조선 후기를 이어 나갔다 한다. 이곳에서 얼마나 많은 여인들의 이야기가 숨어 있을까 싶다. 나는 예전에 조선 왕비 실록을 읽은 적이 있어서 조선 왕과 왕비들의 많은 이야기들이 생각이 난다. 

곧 저물어 가는 이 늦가을 아름다운 풍경을 마음에 담고 추억을 남긴다. 좋은 사람들과 함께. 코로나19로 멀리 가지 못하지만, 고궁에서 만추를 만나고 즐긴다.
 
용마루가 없는 왕의 침전
▲ 왕의 침전 용마루가 없는 왕의 침전
ⓒ 이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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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기자의 브런치에도 실립니다.


태그:#만추, #창경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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