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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차별이 문제라고 말하면 'PC(Political Correctness, 정치적 올바름)'가 더 문제라고 되받아치는 시대를 살고 있다. 일상의 차별을 지적하고 개선을 요구하면 어김없이 '프로불편러', '진지충', 'PC충'이라는 비난이 돌아온다. 일부러 그런 것도 아닌데 좋게좋게 넘어가면 될 것을 남들 앞에서 콕 집어 민망하게 만든다고, 유난스럽고 민감하고 까탈스러운 사람이라는 평판을 얻는다.

누군가의 부적절한 언행에 대한 지적을 통해 그의 변화와 개선을 이끌어내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자신의 도덕적 우월함(?)을 일방적으로 과시하고 타인을 망신 주는 즐거움이 목적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비판은 새겨들을 가치가 있다. 조너선 하이트와 그레그 루키아노프가 <나쁜교육>에서 정확히 짚었듯 면역이 아닌 무균실을 지향하는 안전주의에 대한 경각심은 중요한 화두다.

다만 지금 우리가 마주하는 상황은 사회 곳곳에 정치적 올바름이 과도하게 흘러넘쳐 문제를 일으키는 상황이라기보다, 정확히 그 반대다. 누구보다 공적인 언어를 구사해야 하는 정치인들은 밥 먹듯이 장애를 비하하고 여성을 비하하고 비수도권을 비하하고 노인을 비하한다. 방송이나 언론도 예외가 아니다.
 
'내가 이제 쓰지 않는 말들' 이미지
 "내가 이제 쓰지 않는 말들" 이미지
ⓒ 장혜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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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 언어뿐인가. 실제 고용에 있어서, 교육에 있어서, 생활에 있어서 여성이라는 이유, 이주민이라는 이유, 비수도권 지역의 학교를 다녔다는 이유, 가난하다는 이유, 그 밖의 무수한 소수자라는 이유로 온갖 차별행위들이 우리 사회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다. 내가 21대 국회에서 포괄적 차별금지법을 대표 발의하고 이 법의 제정을 위해 #내가이제쓰지않는말들 캠페인을 시작하는 이유다.

포괄적 차별금지법 제정으로 인한 변화

포괄적 차별금지법의 골자는 고용과 교육, 재화와 용역의 제공과 이용, 그리고 행정 서비스라는 일상의 필수적인 네 가지 영역에 있어서 성별이나 연령, 장애, 학력, 출신 국가나 민족, 성적 지향 등을 이유로 부당하게 차별이 발생할 경우 국가인권위원회가 시정을 권고하거나 명령할 수 있게 하고, 나아가 정부와 지자체가 차별을 예방하기 위한 정책과 계획을 주기적으로 수립하고 시행하도록 하는 것이다.

일부 보수 기독교계에서 원색적으로 강변하는 것과 달리 이 법은 국가인권위원회법의 평등권 침해에 대한 차별행위규제 조항을 보다 시의적절하게 확장하고 다듬어 깔끔하게 기본법으로 정리한 평범하고 상식적이며 어떤 의미에서는 매우 얌전하기까지 한 법이다. (심지어 일부 보수 기독교계에서 듣기만 해도 거부반응을 일으키는 '성적 지향'이라는 차별금지 사유는 이미 국가인권위법 안에 포함되어 있다.)

우리가 관습과 도덕만으로 충분히 서로가 서로를 차별하지 않고 평등하게 존중하는 사회를 자발적으로 만드는 데 성공했다면 포괄적 차별금지법을 입법할 필요성은 그리 크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2020년 현재 우리는 아직 그런 사회를 만들지 못했다. 인식이 제도의 자리를 충분히 채우지 못하는 동안 너무 많은 사람들이 부당한 차별로 고통을 받았다. 제도가 인식을 견인해낼 수 있도록 지금 당장 포괄적 차별금지법이 반드시 제정되어야 한다.

동성애를 조장한다는 둥, 역차별을 조장한다는 둥, 이 법의 통과를 반대하는 세력들이 적극 퍼뜨리는 거짓말과 달리 이 법이 조장하는 것은 '차별에 대한 일상적인 성찰과 토론'이다. 지금까지는 관성적으로 반복해왔던 우리의 말과 행동이 혹시 다른 시민의 존엄을 해치는 차별이지는 않은지 일상적으로 함께 성찰하고, 구체적으로 토론하고, 토론의 결과 어떤 행위가 부당한 차별이라고 결론 내려진다면 그 차별을 중단하는 시스템을 갖자는 것이다.

더 나은 언어, 더 나은 태도 

차별금지법이 가진 이런 가치를 시민들에게 어떻게 더욱 생생하게 전달할 수 있을지를 고민하다 떠오른 한 가지 아이디어는 더 나은 언어에 대한 끊임없는 성찰과 탐구를 일상적으로 수행하는 작가들의 태도야말로 차별금지법이 시민들에게 요청하는 태도와 닮아있다는 것이었다. 시대와 호흡하며 동시대 사람들의 마음을 울리는 작가들에게 마음을 담아 조심스레 요청했다.

여러분께서 한때는 썼고, 지금도 쓸 수 있지만 윤리적인 이유로 더 이상 쓰지 않는 말들에 대한 글을 써주실 수 있겠느냐고, 차별금지법 제정을 촉구하는 마음을 담아 그렇게 해주실 수 있겠느냐고 정중한 요청의 메일을 보냈다. 그렇게 김나율, 김민철, 김세희, 김윤리, 김하나, 김혼비, 미깡, 박연준, 봉현, 수신지, 이진송, 이슬아, 장류진, 황선우 열네 분의 작가분께 참여하겠다는 답장을 받았다. 이 가운데 봉현 작가님은 이 프로젝트의 시각적인 아이덴티티 작업을 자발적으로 도맡아 해주시기도 했다.
 
'내가 이제 쓰지 않는 말들' 이미지
 "내가 이제 쓰지 않는 말들" 이미지
ⓒ 장혜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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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소중하게 모은 글들을 '내가이제쓰지않는말들'이라는 페이스북 페이지를 개설하여 '#내가이제쓰지않는말들' 태그를 붙여 지난 11월 2일부터 게재하였다. 작가님들의 글을 공유하며 누구라도 참여할 수 있다는 점을 알렸고, 최지은 작가, 안희제 작가 등 다른 작가분들을 비롯해 여러 시민들께서 자신이 더 이상 쓰지 않는 말들에 대한 이야기를 투고하며 '내가이제쓰지않는말들'의 사전을 채워주고 계시다.

'절름발이', '앉은뱅이', '순혈', '단일민족', '암 걸리겠다', '여자답다', '남자답다', '외가와 친가', '성적 수치심', '병신', '아줌마', '선택장애', 'ㅇ밍아웃', 'ㅇ린이', '여교사', '여배우' 등 그 단어의 목록은 다양하다.

이 글을 읽고 계신 여러분께 '내가이제쓰지않는말들' 페이지를 방문해 여러 글을 읽어보시고 또한 직접 캠페인에 참여해보실 것을 권하며, 마지막으로 드리고 싶은 말씀은 이러하다. #내가이제쓰지않는말들 캠페인을 진행하는 이유는 여기 나열되어있는 단어를 이 세상에서 영영 없애버리자는 것이 아니다. 누군가가 이 단어들을 더 이상 쓰지 않게 된 이야기에 한번 가만히 귀를 기울여보자는 것이다. 그리고 생각해보자는 것이다. 우리는 과연 다른 단어들로 이 단어를 대체할 수는 없는지.

그렇게 이 세상을 살아가는 다양한 동료 시민들에게 조금 더 곁을 내어주는 것은 어떤지. 이렇게 일상적으로 스스로를 성찰하게 만드는 사회를 권하는 포괄적 차별금지법의 제정을 위해 함께 목소리를 내어보는 것은 어떤지.
 
정의당 장혜영 의원이 3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의원총회에서 차별금지법 프로젝트 '#내가이제쓰지않는말들' 손팻말을 보이며 발언하고 있다.
 정의당 장혜영 의원이 3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의원총회에서 차별금지법 프로젝트 "#내가이제쓰지않는말들" 손팻말을 보이며 발언하고 있다.
ⓒ 공동취재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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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차별금지법, #내가이제쓰지않는말들, #차별, #포괄적 차별금지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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