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26 18:18최종 업데이트 20.11.26 18: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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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골프 선수 배상문의 입영 연기가 스포츠계의 화두였다. 그는 한국 국적 선수로서는 세 번째로 두 번이나 PGA 투어에서 우승(2013, 2014)했고, 네 번째로 프레지던츠컵 인터내셔널 팀에 합류(2015)하는 등 한국 남자 골프의 위상을 높이는 데에 크게 기여한 선수로 평가받았다.

그런 그도 병역 의무를 피해갈 수는 없었다. 2014년이 되자 그는 더 이상 입대를 미룰 수 없는 처지가 된다. 병역법상 대학원 재학으로 입대를 미룰 수 있는 만 28세를 넘겼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미국 영주권을 갖고 있었던 그는 영주권자의 해외 체류를 사유로 병무청에 재차 입영 연기를 요청했다. PGA 투어 우승자는 미국으로부터 영주권을 받는다. 영주권자는 조건을 갖추면 37세까지 입영 연기를 신청할 수 있다.

그러나 병무청은 불허 처분을 내렸다. 한국 대학원 재학을 이유로 입영을 연기해온 선수가 갑자기 미국 체류로 연기 사유를 바꾼다는 것이 사리에 맞지 않는다는 점, 법령 규정에 따라 연간 6개월 이상을 국내에 체류한 사람은 국외 거주자로 보지 않는다는 점이 처분의 이유였다.
 

골프 선수 배상문 ⓒ 연합뉴스

 
2015년, 그는 처분에 불복하며 2016년 올림픽에 출전할 수 있도록 입영을 연기해달라고 행정소송을 제기했으나 패소했다. 병무청의 손을 들어준 재판부는 판결문에 "입영을 앞둔 젊은이들의 꿈은 누구나 소중한데 이 경우만 입영을 미뤄서 내년 브라질 올림픽에 출전시킨다면 형평성의 원칙이 더 훼손될 것", "출중한 선수로서 금전적인 손실을 피하기 위해서 자의적으로 병역 이행 시기를 조정하는 것은 형평성에 어긋나는 것"이라 판시했다.

결국 그는 2015년 입대했고, 2017년 병역 의무를 마친 뒤 다시 필드를 뛰고 있다. 최근 한 언론 인터뷰에선 "군 복무로 인해 생긴 2년의 공백을 성적으로 보여줘야 한다는 생각에 항상 끌려다녔다"라며 "성적이 나오지 않을 때 조급함을 버리고 마음의 여유를 가졌어야 했는데 성적에 집착했던 게 부진의 이유였다는 걸 알게 됐다"라고 심경을 밝히기도 했다.

입영연기 만 28세까지

병역법상 입영 연기를 신청할 경우의 수는 많다. 고등학생은 만 28세, 대학생은 때에 따라 만 22~27세, 대학원생은 만 26~28세까지 입영을 연기할 수 있고, 사법연수원에서 연수 중인 사람은 만 26세까지, 고졸 이하로 취업한 사람은 때에 따라 만 24세까지 입영을 연기할 수 있다. 이 외에도 각급 학교 입학시험 응시자 및 졸업예정자, 공무원 시험 응시, 자녀 출산 및 양육, 창업 등의 다양한 이유로 입영을 연기할 수 있다. 다만 국외 체류를 제외한 대부분의 기준은 연기 가능 시점을 만 28세까지로 제한하고 있다.


여기에 더하여 병역법은 국위 선양을 위한 체육 분야 우수자에게 입영 연기를 신청할 기회를 주고 있다. 대한체육회장이 추천한 국가대표 선수 또는 국내 전국대회에서 한국 신기록을 수립한 선수 또는 국위 선양에 현저한 공이 있는 선수 중에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 추천한 사람은 만 27세까지 입영을 연기할 수 있다.

체육 선수의 입영 연기는 단골 이슈다. 올해 5월에도 메이저리그에서 활동 중인 최지만(템파베이 레이츠·29)이 미국의 코로나19 확산을 피해 귀국, 국내에서 체류하다 연간 6개월 이상 국내에서 체류하면 병역 의무가 발생한다는 이유로 병무청으로부터 출국 통보를 받은 바 있다.

그리고 올여름 올해로 만 28세가 되는 '방탄소년단' 멤버 진의 입대 문제가 뜨거운 감자로 떠올랐다. 2017년에 대학원에 입학한 진은 현행법상 만 28세까지만 입영을 연기할 수 있다. 이에 한국 가수 최초로 빌보드 핫100 차트 1위를 기록하고, 25일에는 그래미 어워드 후보에 오르는 등 전성기를 구가하고 있는 방탄소년단 멤버들의 입영을 연기해줘야 한다는 여론이 일었다.
 

방탄소년단이 25일 오후 서울 고척스카이돔에서 열린 2019 SBS 가요대전 포토월에서 포토타임을 갖고 있다. 멤버들이 진을 가리키고 있다. 2019.12.25 ⓒ 이정민

 
한편에서는 인기가 많은 아이돌이란 이유로 입영을 연기해주는 것은 특혜라는 지적도 나왔다. 이 가운데 더불어민주당 전용기 의원이 대중문화예술 분야의 우수자도 입영을 연기할 수 있게끔 하는 병역법 일부 개정 법률안을 국회 국방위원회에 제출했다. 해당 법안은 지난 11월 20일에 국방위를 통과해 법제사법위원회로 넘겨졌다.

체육 선수 못지않게 입영 연기에 관심이 많은 이들이 바로 대중문화예술인, 그중에서도 남자 아이돌이다. 대부분의 연예기획사가 그룹을 만들 때부터 멤버들의 병역 이행을 위한 로드맵을 짜놓는다. 적절한 시기에 대학과 대학원에 진학시키거나, 장기간에 걸친 해외 콘서트 일정을 계획하는 것은 이미 익히 알려진 합법적인 연기 방식이다. 아이돌 가수의 특성상 10~20대가 주된 활동 시기임을 고려하면 그럴 법도 하다.

전용기 의원이 발의한 개정안 역시 병역 이행 시기인 20대에 대중문화예술이 가장 높은 성과를 보인다고 밝히고 있다. 전 의원은 개정안 제안 이유에서 'K-POP의 영향력이 커지고, 아이돌 그룹이 단독으로 생산해내는 경제 효과가 연 5.6조 원에 달한다는 분석 등을 통해 문화 분야의 해외 진출에 말미암은 대한민국의 대내외적 위상 제고가 증명'되는 가운데 '(병역 이행) 시기 조정이 되지 않을 경우 젊은 청년들의 기회 박탈뿐 아니라 국가 이미지 제고의 관점에서 불합리한 면'이 있다고 했다.

또 현행법상 대학생, 대학원생이란 이유로 입영 연기를 해주고 체육 분야도 연기 혜택을 주는데, 대중문화예술 등에서 활약하며 성과를 내는 청년들에게는 타 집단과 동등한 수준의 권익을 보장해주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에 따라 개정안은 '대중문화예술 분야 우수자로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 대한민국의 대내외적 국가 위상과 품격을 높이는 데 크게 기여했다고 인정하여 추천한 사람'을 입영 연기 신청 가능 대상자로 추가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국방위는 세부 요건은 체육 분야 우수자와 마찬가지로 대통령령에 위임하는 것으로 하고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최근의 언론 보도에 따르면 정부는 대중문화예술 분야 우수자에 대한 입영 연기 연령 상한을 만 30세로 정할 계획이라 한다. 박재민 국방부 차관이 11월 19일 국방위 법률안심사 소위에 출석해 발언한 내용에 따르면 대중문화예술  분야 우수자의 지정 요건은 아직 정부 내에서 논의 중이나 훈장·포장 수훈자 중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 추천한 사람 정도로 정리된 것으로 보인다. 현재까지 훈·포장을 수훈한 아이돌 가수는 2018년에 문화훈장을 받은 방탄소년단이 유일하다.

병무청에 따르면 입영 연기를 신청한 사람은 2020년 7월 말 기준 25만 1천여 명이며 이 중 대부분인 25만여 명이 대학생이거나 대학원생이다. 그 밖의 사유로 입영을 연기한 사람은 1천 명 안팎으로 소수다. 이 중 체육 분야 우수자로 입영을 연기한 사람은 2020년 1명, 2019년 5명, 2018년 4명, 2017년 7명, 2016년 2명 등으로 연평균 5명 정도고, 최근 5년간의 입영 연기자는 모두 대한체육회장이 추천한 사람들이었다. 통계상으로나, 준비되고 있는 제도의 내용상으로나 대중문화예술 우수자로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의 추천을 받아 입영 연기를 신청할 사람은 극소수일 것으로 예상된다.

2015년, 법원은 입영을 앞둔 젊은이들의 꿈은 누구나 소중한데, 누구는 입영을 연기해 주고 누구는 해주지 않으면 형평성에 어긋난다고 판결했다. 그리고 2020년, 국회는 누군가의 입영을 연기하기 위해 법률을 제정하려 한다.

섬세하게 만들어진 법인가

나는 입대를 앞둔 방탄소년단 멤버가 헤아려보았을 고충에 공감하고, 나아가 인생에서 다시 오기 어려울 전성기를 만들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모든 남자 아이돌들의 곤란함에 공감한다. 또한 도처에서 각자의 긴요한 사정으로 입영을 연기할 방도를 찾으며 발을 동동 구르고 있을 20대 남성들의 곤란함에 공감한다.

하여 나는 또한 법을 만드는 이의 섬세함을 생각한다. 법률이 개정돼도 요건에 맞는 대중문화예술인이 입영을 연기할 수 있는 시기는 고작 2년 정도다. 병역을 면해주는 것도 아니고 10년, 20년씩 입대를 미뤄주는 것도 아니다. 대한민국의 모든 현역과 보충역 대상자는 법률상 누구나 30살까지만 병역 의무를 연기할 수 있으니 딱히 대단한 혜택이라 볼 수도 없다.

그러나 누구는 대통령으로부터 훈장을 받아 30살까지 병역을 연기할 수 있고, 누구는 같은 일을 하면서도 '성과'를 내지 못해 28세까지만 병역을 연기할 수 있고, 누구는 법률이 말하는 '대한민국 미래먹거리'의 분야에서 일하지 않아 사정이 있어도 병역을 더 연기할 수 없다면 이 법은 과연 섬세하게 만들어진 법인가.
 

충남 논산 육군훈련소 입영심사대 앞에서 입영장병과 가족 및 친구들이 인사하고 있다. 훈련소 측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확산 방지 차원에서 이날 예정된 입영행사를 취소했다. 2020.2.3 ⓒ 연합뉴스

 
체육 우수자들이 입영 연기 신청을 할 수 있는 제도를 보며 수많은 이들이 되물어왔다. "왜 나는 안 되는데?" 그 물음에 대한 답이 지금 준비되고 있는 법률과 같다면 장차 국가는 또 다른 이들의 같은 물음에 어떻게 대답할 셈인가. 그때마다 법률을 개정해 입영 연기 신청 가능 대상자를 추가해 줄 것인가. 입법자의 상상력이 아쉬운 일이다.

이미 현행 법규상 기타 부득이한 사유로 입영 일자 연기신청서를 제출한 사람은 그 사유가 합당하다면 심사를 거쳐 3개월의 기간 내에서 입영을 연기할 수 있다. 연기 사유가 계속되면 1회에 한하여 3개월을 추가할 수 있다. 이를 제한 된 기간 내에 연기신청의 횟수를 제한하지 않는 방향으로 개정하면 대부분의 문제가 해결된다. 제도가 누군가의 기회를 과도히 제한하고 있다고 생각한다면 기회의 문은 보편적인 방향으로 열어주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전반적인 병무 행정의 방향 전환을 고민해야 한다. 지금의 제도는 병역 의무 이행 시기와 관련한 개인의 사정을 배려하지 않는다. 병역 의무를 이행하려는 사람에게 더 많은 배려가 이뤄져야 한다. 사회 풍토상 대부분의 직업군에서 커리어를 시작하기 전에 병역 의무를 이행하는 것이 통념이기 때문에 학업 외의 사유로 늦은 나이까지 입영을 연기하는 이들은 애초에 많지 않다. 이는 앞서 살펴본 통계로도 입증되는 사실이다.

방탄소년단도, 다른 아이돌도, 체육선수도, 다른 이들도 병역 의무를 이행할 생각이 있고 그럴 만한 사유가 있다면 법률이 정한 만 30세의 기한 내에 원하는 시기에 병역을 이행할 수 있게끔 제도를 정비해야 한다. 입영 연기 기준을 완화해준다고 많은 이들이 입대를 최대한 미뤄 병력 수급 체계가 무너진다든가, 결국 해외로 도주해 병역을 면탈할 것이란 우려는 현실성이 없다.

2015년 법원은 골프 선수의 입영 연기와 관련한 사건을 판시하며 "입영을 앞둔 젊은이들의 꿈은 누구나 소중하다"라고 했다. 우리 제도가 장차 더 많은 젊은이들의 소중한 꿈을 제도적으로 보호해주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정치는 더 많은 이의 삶을 제도의 영역으로 불러내는 일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방탄소년단의 입대 문제는 청년들이 살아가는 다양한 모습을 병무 행정 전반에 반영할 좋은 기회다. 그러나 지금의 논의 구조는 좋은 기회를 이상한 방식으로 소모한다. 국회는 당사자가 요구한 적도 없는 엉성한 법률로 젊은 스타들의 어깨에 부담감만 얹어주는 것은 아닌지 다시 생각해 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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