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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수 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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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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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0월 6일 대학원생 노조가 '안전한 대학 조성 및 대학 공공성 확대'를 주장하며 국회 앞에서 농성을 시작했다는 소식을 접하고 30여 년 전 석사대학원생 시절이 떠올랐다.

나는 당시 T.A.(Teaching Assistant)라 불리는 교육 조교였다. 업무가 비교적 힘든 일은 아니었지만 반복되는 일은 많고도 번잡했다. 출석 호명, 리포트 수거와 평가, 유인물 인쇄, 편철, 배포 등과 같은 수업 보조 업무가 주였고 문서 수발, 우편물 발송 같은 학과 업무 보조가 뒤따랐다. 학회가 개최될 때면 발표 자료 편집, 발표회장 정리, 접수, 뒷정리도 이어졌다.

이런 잡무가 시도 때도 없이 이어지는 바람에 저녁을 먹고 나서야 비로소 책을 볼 수 있는 시간이 주어졌다. 그것도 방범이나 화재 위험 때문에 10시 이전에 퇴실을 요구했던 당직 담당자와 건물 전원 스위치를 올렸다 내렸다 하면서 싸우고 학장에게 건의하면서까지 새벽까지 공부할 시간을 쟁취하기도 했다.

이런 하루하루를 보낼 때마다 '내가 이러려고 대학원에 왔나'라는 회의가 뒤따랐다. 교육 조교를 하지 않으면 될 일이지만 학과 일을 도와달라는 청을 거절하기가 어려웠고, 지도 제자를 가까이 두고 필요할 때마다 일을 시킬 수 있는 당시의 분위기에서 대학 바깥에서만 생활하기가 쉽지 않았다.

30년 전 나는 학생이라는 직분에서 단 한 걸음도 벗어나지 못했다. 민주화 운동을 한답시고 전공에는 별로 관심도 두지 않다가 어찌어찌해서 대학원에서 학문이라는 신세계를 본격적으로 맛보기 시작했으니 어찌 감히 대학이나 교수에게 자신들의 처우를 개선하고 노동의 대가를 인정해달라고 요구할 수 있었겠는가. 교수가 가르쳐 준 공부를 겸손한 자세로 받아들기에도 바빴던 것을.

30년 전과 다를 바 없다

그로부터 한 세대가 흘렀다. 그리고 3년 전에 대학원생 노동조합이 결성되었고 민의의 전당이라는 국회 앞 차디찬 인도 위에 비닐로 만든 지붕을 두르고 대학원생의 권익과 연구 노동을 존중하라고 외치고 있지만 30년 전과 거의 다를 바 없이 암담한 현실이다.

연구실에서 실험하다가 사고를 당해도, 교수가 사적 심부름을 자행해도, 근무시간을 넘겨 야밤까지 일해도 모르쇠로 일관한다. 대학원생의 연구 노동이 없으면 대학에서 이루어지는 모든 연구 활동이 성과를 거두기 어려운 엄연한 현실을 인정하면서도 그들의 노동 대가를 존중하는 데에는 너나 할 것 없이 인색하다.

얼마 전 인문학센터에서 일하는 석사과정 연구보조원의 수당을 인상하자고 했더니 다른 대학도 모두 이 정도라면서 손사래를 치던 책임연구원도 그러했다. 인문학이 어떻고 인간학이 어떻고 자유와 평등이 어떠해야 한다고 떠들어대던 그 수많은 연구교수자들이 이들의 노동 대가를 제대로 보장해야 한다고 교육부나 한국연구재단에 공식적으로 제안했다는 말을 들어본 적이 없다.

이제 그들이 앞장서서 이 문제를 풀어보고자 길거리에 나섰다. 부끄러운 마음으로 그들을 생각하자. 그들을 동료 연구자가 아니라 머슴 정도로 생각했던 과오를 다시는 되풀이하지 말자. 지금, 바로, 국회 앞으로 달려가 그들의 손을 맞잡고, 교육연구노동의 연대를 진지하게 실천하자.

태그:#대학원생, #연구노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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