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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재확산을 맞은 올 연말은 유독 더 몸과 마음이 시립니다. 사회적 거리두기 단계가 향상되고 경기가 꽁꽁 얼어붙으면서 자영업자, 프리랜서, 직장인, 취준생 등 모두 힘든 시기를 보내고 있는데요. 오마이뉴스 시민기자들은 끝이 보이지 않는 불황의 터널 속에서 어떻게 버티고 있을까요. 그 이야기를 들어봅니다.  [편집자말]
경제적인 어려움을 극복하기 위해 자구책으로 지난 1월부터 알바를 시작했다. '잠시 한두 달만 일을 하자'라고 생각했던 것이 어느덧 1년이 지나가고 있다.
 경제적인 어려움을 극복하기 위해 자구책으로 지난 1월부터 알바를 시작했다. "잠시 한두 달만 일을 하자"라고 생각했던 것이 어느덧 1년이 지나가고 있다.
ⓒ 신영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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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집을 운영하는 자영업자도 코로나19를 피해 가지 못했다. 모든 모임과 행사, 결혼식 등이 취소되다 보니 자연스레 꽃 소비가 줄어든 것.
 꽃집을 운영하는 자영업자도 코로나19를 피해 가지 못했다. 모든 모임과 행사, 결혼식 등이 취소되다 보니 자연스레 꽃 소비가 줄어든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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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한해, 코로나19가 블랙홀처럼 모든 경제 활동을 삼켜버렸다. 코로나로 시작한 한해인데 아직도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가뜩이나 사정이 어려운 자영업자들은 코로나19라는 폭탄을 맞고 휴업을 선택하거나, 심지어는 폐업을 결정하고 있다. 

꽃집을 운영하는 자영업자인 나도 코로나19를 피해 가지 못했다. 모든 모임과 행사, 결혼식 등이 취소되다 보니 자연스레 꽃 소비가 줄어들었다. 지난 상반기, 코로나19가 정점을 찍고 있을 때 많은 지자체에서는 '지역 경제를 살리자'며 꽃을 팔아주기도 했다. 감사한 일이었지만, 그것만으론 역부족이었다. 경제적으로 힘든 시기가 계속 이어졌다. 말 그대로 '먹고 살기 위해' 나는 다른 길을 택할 수밖에 없었다. 

경제적인 어려움을 극복하기 위한 자구책으로, 지난 1월부터 동생이 운영하는 작은 건설 업체에서 아르바이트를 시작했다. '잠시 한두 달만 하자'고 생각하며 발을 들인 일인데, 어느덧 1년이 지나가고 있다.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아무리 씀씀이를 줄여도 고정적으로 들어가는 비용을 감당할 수 없었다. 

이곳에서 내가 하는 일은 주로 운전으로, 현장에 자재를 실어나르는 역할이다. 때로는 이른바 '막노동'도 닥치는 대로 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동생의 사업체도 사정이 어려운 건 마찬가지였다. 가뜩이나 경제 상황이 좋지 않은데다, 코로나19로 일거리도 줄다보니 쉬는 날도 종종 생긴다. 

알바라도 할 수 있으니 그나마 다행입니다 
 
몸으로 때우는 일이다 보니 하루 일을 마치고 꽃집에 돌아오면, 씻지도 못하고 가게에 쓰러져 잠들기 바빴다. 겨울은 추워서 힘들고, 여름은 더워서 일하기 힘들었다. 그중 삽질이 가장 힘들다.
 몸으로 때우는 일이다 보니 하루 일을 마치고 꽃집에 돌아오면, 씻지도 못하고 가게에 쓰러져 잠들기 바빴다. 겨울은 추워서 힘들고, 여름은 더워서 일하기 힘들었다. 그중 삽질이 가장 힘들다.
ⓒ 신영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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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집을 운영하는 자영업자에게도 코로나 19를 피해 가지 못했다. 모든 모임과 행사, 결혼식  등이 취소되다 보니 자연스레 꽃 소비가 줄어든 것."아~~옛날이여"
 꽃집을 운영하는 자영업자에게도 코로나 19를 피해 가지 못했다. 모든 모임과 행사, 결혼식 등이 취소되다 보니 자연스레 꽃 소비가 줄어든 것."아~~옛날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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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전혀 수익이 없던 꽃집을 지키고 있는 것보다 알바라도 하는 게 경제적으로 도움이 되었다. 물론 몸으로 때우는 일이다 보니 하루 일을 마치고 꽃집에 돌아오면 씻지도 못하고 가게에 쓰러져 잠들기 바빴다.

겨울은 추워서 힘들고, 여름은 더워서 일하기 힘들었다. 그나마 봄·가을에는 한결 쉬웠지만, 여전히 일은 힘들었다. 삽질, 용접, 절단 등... 평소 경험해보지 못한 일을 해야만 했지만, 그나마 젊은 시절에 배운 기술이 있어 적응할 수 있었다. 예전에 익혀둔 기술을 이렇게 소중히 사용하게 될 줄 미처 몰랐다.

일을 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이곳저곳에서 찾는 일이 많아지기도 했다. 지하수 공사 현장, 보일러 배관 현장, 도로 포장, 농장 등 닥치는 대로 일했다. 일당(구체적인 금액을 밝히지 못하는 점 이해 바란다)을 받기 위해 죽을 힘을 다해 일하고 있다.

다시, '꽃집 주인'의 일상을 되찾을 수 있기를 

지금은 한 곳에서 일하고 있지만, 여전히 코로나19가 확산되고 있는 탓에 아직도 본업에 복귀하지 못하고 있다. 경기가 나아지지 않아 '꽃집 주인'의 일상으로 돌아갈 수가 없다. 어느덧 '알바 생활' 1년이 지나면서 꽃집 일은 부업이 되었고, 건설업 알바가 주업이 됐다. 

하루 빨리 코로나19가 끝나고, 다시 예전 같은 일상으로 돌아가고 싶다. 언젠가 올 그날을 꿈꾸며, 오늘도 나는 악몽 같은 코로나 위기를 악착 같은 마음으로 버티고 있다. 내일 아침에는 또 어떤 일들이 나를 기다리고 있을까. 
 

태그:#코로나불황, #나는이렇게버티는중, #코로나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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