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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일 0시 9분쯤, 서울 경원중 주민들이 교장 이름이 적힌 펼침막을 떼어내고 있다.
 8일 0시 9분쯤, 서울 경원중 주민들이 교장 이름이 적힌 펼침막을 떼어내고 있다.
ⓒ 윤근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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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 나는 너를 죽어서도 잊지 않겠다."

8일 0시 9분, 서울 서초구에 있는 경원중 후문 건너편. 3명의 지역주민이 교장을 저주하는 펼침막을 떼어냈다. 서울시교육청과 경원중이 마을결합형 혁신학교 지정 포기절차를 밟겠다고 발표한 직후다.

"교장 집으로, X택배·오물택배 보내야겠다"... 7일, 서초구 경원중에 무슨 일 있었나

하루 전인 7일 오후 4시 53분, 경원중 혁신학교 지정에 반대하는 온라인 카페엔 스스로를 지역주민이라고 밝힌 한 인사가 교장이 사는 아파트의 동과 호수 등 주소 전체를 올렸다. 곧이어 스스로를 '예비 학부모'라 밝힌 한 인사는 다음과 같은 글을 올렸다.

"저 집으로, X택배 오물택배 보내야겠다." 
 
서울 경원중 혁신학교 지정에 반대하는 한 온라인 카페에 지난 7일 이 학교 교장의 주소와 이에 대한 거친 글이 올라와 있다.
 서울 경원중 혁신학교 지정에 반대하는 한 온라인 카페에 지난 7일 이 학교 교장의 주소와 이에 대한 거친 글이 올라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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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경원중 후문 양켠에 붙어 있는 투쟁 띠.
 서울 경원중 후문 양켠에 붙어 있는 투쟁 띠.
ⓒ 윤근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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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7일 오후 5시쯤부터 8일 0시 10분까지 경원중 후문에서는 지역주민과 학부모 300여 명이 모여 마라톤 집회를 벌였다. "코로나19 방역지침 위반"이라는 경찰의 제지 속에 구호를 외치지는 않았지만, 몇 차례 연설은 있었다.

이들이 모인 경원중 후문 양쪽엔 투쟁하는 노동자들이 머리띠로 쓰는 '결사반대 투쟁'이란 글귀가 적힌 붉은 띠 50여 개가 붙어 있었다. 

이날 신반포자이아파트, 한신아파트, 잠원동아아파트 길섶과 마주한 경원중 울타리 앞길엔 다음과 같은 글귀가 적힌 펼침막 30여 개가 걸려 있었다.

"조용하던 잠원동에 혁신폭력 웬말이냐. 일방적인 혁신전환 불법이고 폭력이다"
"학부모들 농락하는 정◯◯은 물러나라, 혁신학교 필요 없다 아무것도 하지마라"
"서초명문 경원중 혁신전환 결사반대, 혁신학교 철회하고 정◯◯은 사퇴하라"
"졸속행정 밀실회의 혁신학교 철회하라, 학부모 동의 없는 혁신학교 반대한다"

 
서울 경원중 혁신학교에 반대하는 주민들이 학교 주변에 펼침막을 걸어놓았다.
 서울 경원중 혁신학교에 반대하는 주민들이 학교 주변에 펼침막을 걸어놓았다.
ⓒ 윤근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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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펼침막 큰 글귀 아래엔 '경원중 재학생 학부모모임'이란 명의 말고도 "신반자, 아리뷰 2차 4차, 동아 22차, 반센자, 르엘, 청구, 한신 7차 26차, 로얄 입주자대표협의회"란 글귀도 적혀 있었다. 학부모뿐만 아니라 주변 아파트 거주자 대표들까지 혁신학교 반대운동에 일제히 들고 일어난 것이다.

이런 섬뜩한 내용의 펼침막에 경원중은 지난 7일 '경원중 교직원 일동' 명의의 호소문을 통해 "학생들의 배움터인 학교 앞에 걸려 있는 과도한 표현의 현수막을 보면서 저희 교직원은 참담한 심정"이라면서 "교장선생님과 일부 교원 및 학부모님들에게 가해지는 지나친 압박과 폭력적 표현으로 인해 신변의 위협을 느끼고 있다"고 호소했다.

그러면서 "학교 구성원 모두가 위축되지 않고 교육활동을 진행할 수 있도록 적극 보호해 달라, 서울시교육청과 서초구청에도 간곡히 부탁드린다"고 적었다.

교원들 신변 위협... 방관한 서초구, 굴복한 교육청

하지만 서초구청은 지역 주민들의 학교 에워싸기 펼침막들을 떼지 않았다. 서울시교육청은 7일 오후 10시 30분쯤 경원중에 도착한 뒤 90분 만에 "학부모의 의사 결정이 있는 경우 이를 추진하지 않기로 한다"는 합의문을 발표했다. 주민들을 대리한 변호사와 함께 후문에 모여 있는 지역 주민들 앞에서다.

이 합의문엔 경원중 교장, 학교운영위원장, 서울시교육청 교육혁신과장의 사인이 적혀 있었다. 
 
8일 0시쯤 서울시교육청 관계자와 혁신학교 반대 주민 선임 변호사 등이 서울 경원중 후문 앞에서 합의문을 발표하고 있다.
 8일 0시쯤 서울시교육청 관계자와 혁신학교 반대 주민 선임 변호사 등이 서울 경원중 후문 앞에서 합의문을 발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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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자리에서 서울시교육청 관계자는 "기존 학부모회 반대서명으로도 학부모 의사 결정을 갈음할 수도 있다"고 발표했다. 사실상 혁신학교 지정 포기 선언을 한 것이다. 교장은 발표 현장에 모습을 나타내지 않았다. "교장은 주민들 항의에 이날 오후 학교 안에서 거의 실신 상태였다"는 게 학교 관계자의 설명이다.

경원중과 서울시교육청 자료를 확인한 결과 혁신학교에 대한 경원중 학부모와 교원의 찬성률은 각각 69%와 80%로 높았다. 코로나19 속에서 학교에서 지난 9월 정식 조사를 벌인 결과 전체 학부모의 65%인 636명이 응답해 439명이 동의한 것이다. 교원들도 62명 가운데 50명이 동의했다. (관련기사 : '학부모 69% 찬성'한 강남 경원중 혁신학교, 누가 반대하나? http://omn.kr/1qtqi)

하지만 이 같은 정식 동의절차는 없던 일이 돼버렸다. 서울시교육청은 내부 조사에서도 "경원중의 혁신학교 신청 절차에 하자가 없었다"고 결론을 내려놓고도 무릎을 꿇은 셈이다. 서울시교육청 한 관계자는 <오마이뉴스>에 "강남 아파트 값 하락을 우려한 주민들의 코로나 속 무법천지 협박 행동에 속수무책으로 당했다"고 말하기도 했다.

이윤경 참교육을위한전국학부모회 서울지부장은 "교육이야말로 특정 부동산 세력 등 외부에 휘둘리지 않도록 교육청이 학교를 보호해야 하는데, 오히려 정반대로 간 이번 서울시교육청의 갑작스런 혁신학교 포기 선언 소식을 듣고 잠이 오지 않았다"면서 "못 가진 노동자들의 하소연엔 너무나 뻣뻣하던 공공기관이 돈 있는 자들의 협박 현수막과 코로나 속 집회 한 번에 너무나 쉽게 혁신학교 사업을 포기했다. 이 같은 처사를 서울 학부모들이 좌시하지만은 않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태그:#혁신학교 저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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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에서 교육기사를 쓰고 있습니다. '살아움직이며실천하는진짜기자'가 꿈입니다. 제보는 bulgom@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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