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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 반에 수현(가명)이라는 친구가 있다. 비슷한 번호라 주 1회 한 반에 9명씩 등교할 때부터 계속 만나게 되는 친구다. 처음엔 개구쟁이라고만 생각했다. 선생님이 말해도 마스크를 자꾸 내리고 글도 잘 못 읽는다는데 학기초라 그럴 수 있다고 생각했다.

7월이었나. 교실 벽에 붙어 있는 그림을 보고 앞에 가서 상황에 맞는 말하기 활동을 할 때 수현이가 그림이 붙은 벽을 치고 다녔다고 아이가 말해주는데 뭔가 이상했다.

'혹시 도움이 필요한 아이인가?'

수현이가 어떤 아이인가는 중요한 문제가 아니기에 잊고 있었는데 얼마 전 아이 하교 때 수현이를 만나게 됐다. 동글이는 급식을 먹지 않고 하교한다. 다른 아이들이 급식을 먹을 때 운동장을 가로질러 쪽문으로 오는 동글이를 마중 나갔는데 한 아이가 책가방 없이 같이 온다. 누구냐 물었더니 수현이란다.

"얘 지금 급식시간인데 나오면 안돼. 어서 교실로 가."

아이가 답이 없다. 계속 동글이를 쫓아오더니 쪽문 밖까지 나온다. 아이를 교실에 데려다 줘야는지 어쩐지 고민하는 데 아이가 돌아서 갔다. 담임 선생님에게 확인해 보니 수현이는 도움이 필요한 아이지만 교실에 잘 찾아오고 아이들이랑 잘 지낸다고 한다. 그래도 다음 번에 또 급식 시간에 나오면 교실에 데려다 줘야겠구나 생각했다.

동글이가 일기를 썼다. 내용을 요약하면 이렇다.

'수현이가 쉬는 시간에 종이접기를 해달라고 색종이 10장을 주고 갔다. 나도 친구들이랑 놀고 싶은데 종이접기를 해주느라 놀지 못한다. 수현이는 나한테 맡기고 친구들이랑 신나게 논다.'
 
아이가 종이접기를 대신하느라 놀지 못한 것에 대해 하소연을 쓴 일기의 일부분
▲ 일기 아이가 종이접기를 대신하느라 놀지 못한 것에 대해 하소연을 쓴 일기의 일부분
ⓒ 서지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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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기를 읽고나서 동글이에게 "나도 놀고 싶어. 종이접기 해 줄 수 없어"라고 수현이에게 거절의 말을 해 보았는지 물었다. 거절했는데도 해달라고 해서 종이접기를 하느라 5분 밖에 안 되는 쉬는 시간에 계속 종이접기를 했다고 한다.

선생님께 도움을 청해 보았는지 물었더니 처음엔 선생님이 수현이가 잘 못하니 도와주라고 하셨다 하고, 그 다음엔 동글이가 힘들어서 못 도와준다고 말해 보라고 하셨단다. 문제는 수현이에게 거절하고 미안한 마음이 들어서 동글이가 "미안해" 하고 다시 종이접기를 해줬단다.

어른이든 아이든 거절은 힘든 일이다. 특히 수현이처럼 도움이 필요한 아이가 요청한 걸 거절할 때는 부담이 배가 된다. 아마 동글이도 그래서 거절의 말을 했다가 미안하다며 종이접기를 해줬을 것이다.

수현이의 부탁을 거절하기 까지, 그리고 거절하고 나서 든 죄책감에 종이접기를 하면서 아이가 어떤 마음이었을지 그림책 <곰씨의 의자>를 보면서 짐작해 보았다.
 
곰씨 의자 표지
▲ 곰씨의 의자 표지 곰씨 의자 표지
ⓒ 서지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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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인경 작가가 2016년 쓰고 그린 <곰씨의 의자> 그림책에는 친절한 곰이 혼자 있고 싶다는 말 한마디를 하지 못해 겪는 어려움이 잘 나타나 있다. 다른 사람에게 하기 불편한 말 한 마디를 하기 힘든 그 답답하고 갈등되는 상황이 어떻게 펼쳐져 있는지 살펴보자.
 
곰씨가 의자에서 음악을 들으며 차를 마시는 장면
▲ 곰씨의 의자  곰씨가 의자에서 음악을 들으며 차를 마시는 장면
ⓒ 서지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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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면지에 초록 풀들이 피어난 곳에 벤치 의자가 하나 덩그러니 놓여 있습니다. 다음 장에 하얀 곰이 이어폰을 끼고 블랭킷을 들고 가방을 메고 들고 걸어갑니다.

첫 장을 넘기니 곰이 다리를 꼬고 벤치에 앉아 차를 마시며 시집을 읽고 있습니다. 차를 마시며 음악을 듣고 자신의 꽃 화분을 가꾸는 이 의자에서 곰씨는 마음의 평화를 찾습니다. 그런데 곰씨 앞을 낯선 토끼가 지나갑니다.

세계를 여행하는 탐험가인 토끼는 몹시 지쳐 보여요. 곰씨는 자신의 의자에 앉아 잠시 쉬라고 권합니다. 토끼가 들려주는 탐험 얘기를 즐겁게 듣고 있는데 이번엔 슬퍼보이는 토끼가 지나갑니다. 춤을 추다 마을에서 쫓겨난 토끼를 위로하는 탐험가 토끼. 둘은 결혼을 하고 숲 속에 보금자리를 마련했습니다. 곧 아이들도 태어났습니다. 또 태어났습니다. 자꾸 태어났습니다.

곰씨 의자에 꽉 찬 토끼 식구들 때문에 곰씨는 더 이상 음악을 들을 수도 차를 마실 수도 시집을 읽을 수도 없습니다. 토끼들은 곰씨를 매일 찾아왔고 곰씨는 토끼들에게 무언가 말을 해야 할 때라고 느꼈습니다.

"여러분과의 시간은 더할 나위 없이 재미있답니다. 그런데 제가 차를 마실 때 아이들은 음악을 먹고 아니아니 빵을..."

정작 하고 싶은 말을 꺼내지 못한 곰씨는 의자에 페인트칠도 해보고, 다른 의자도 마련해 보고 심지어 응아도 해 놓아봤습니다. 어떤 방법도 통하지 않았고 세상에 다시없는 친절한 곰인 내가 더 이상 어떻게 해야하냐고 소리쳤습니다. 비를 맞은 곰씨가 감기에 걸려 있을 때 토끼 가족이 보살펴 주었습니다. 곰씨는 기운을 차리고 그제야 용기를 내어 혼자만의 시간이 필요하다고 말을 합니다.

혼자 있는 시간이 필요하다고 말하면 토끼 가족이 상처 받을까 봐 곰씨는 말을 하지 못했다. 자신은 친절한 곰이기 때문에 말하기 더 어려웠다. 우회적인 방법을 써 보지만 말썽꾸러기 토끼 가족들에겐 통하지 않았다(우회적인 곰씨의 표현을 알아챌 토끼들이라면 매일 찾아오지도 않았겠지).

혼자만의 시간을 갖지 못하다 결국 병이 나버린 곰씨. 다른 사람을 배려하는 일도 자신을 지키면서 해야지 그렇지 않으면 이렇게 탈이 나는 법이다.

수현이를 도와주고 싶은 마음과 놀고 싶은 마음 사이에서 갈등했을 동글이가 곰씨에게 겹친다. 다른 사람을 도와줘야 한다고 배웠고 수현이는 도움이 필요한 아이니까 거절의 말이 나갔다가도 화살이 되어 나에게 되돌아온다. 수현이가 놓고 간 색종이 10장을 접으면서 동글이도 '나 보고 어쩌라고 난 세상에서 다시없는 친절한 친구라고' 외쳤을까?

내일은 아이와 <곰씨의 의자>를 봐야겠다. 자신이 하고 싶은 말을 하지 못해 답답했을 곰씨를 위로해 주면서 아이 마음도 토닥여 줘야겠다.

태그:#곰씨의 의자, #거절하기, #종이접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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