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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잠잠해졌지만 올해 여름, SNS나 뉴스를 보며 낸 눈길을 끈 소식이 하나 있었다. 그 소식은 '나다움 어린이 책'과 관련 것이었다. '나다움 어린이 책'이란 어린이들이 성별 고정관념을 깨고, 편견을 갖지 않도록 하는 좋은 책을 학교에 보급하는 여성가족부의 사업 중 하나였다.

이 책이 내 눈길을 끈 가장 큰 이유는 성교육이 이렇게 언론이나 SNS에서 논란이 된 적이 흔치 않은 일이었기에 그랬던 것 같다. 처음 이 책들에 대해 논란을 제기한 이는 현 국민의힘 김병욱 의원이었다. 김병욱 의원은 이 책들에 여러 가지 문제가 있다며 지적을 했고 결국 책이 회수되는 일까지 벌어졌다. 일부에서 '조기 성애화'를 부추길 수 있다며 비난했고, 책을 회수하라는 국민 청원까지 올라왔다.

'나다움 어린이 책' 중 하나인 '아기는 어떻게 태어날까'는 여자와 남자의 생식기를 길, 곤봉에 표현하며 성교를 '재밌어서', '신나고 멋진 일'이라고 적어놔 성관계를 단순 재미로 표현했다는 지적을 받았다. 그 외에 문제 제기된 것으로는 동성애 미화, 이종 간의 결합이 있다.

여론이나 사람들은 어린아이들에게는 성에 대한 지식보단 책임 의식을 길러줘야 한다며 이번 회수조치를 옹호하는 사람도 있었고 우리나라는 성에 대해 보수적이기 때문에 이제는 성교육을 진보적으로 해야 한다는 의견을 내는 사람들도 있었다. 

이제 내 얘기를 해보려고 한다. 나는 어렸을 적부터 몇 안 되는 성교육을 받았다. 여기서 몇 안 되는 성교육이라고 표현한 건 나에게 인상 깊었던 성교육이 많지 않았기 때문이다(어쩌면 아예 없었을 수도 있다).

가정에서도 성교육을 받아본 적 없고 유치원에서 성교육을 받을 때는 항상 내 몸을 만지려고 하는 나쁜 사람의 이미지는 성인 남성이었으며 험상궂게 생긴 사람이었다. 내 몸을 만지려고 하면 내가 해야 하는 소리는 '싫어요', '안 돼요', '하지 마세요'였다.

물론 위험한 상황에서 소리 내야 하는 건 알겠지만 '유치원 아이가 저렇게 말한다고 무서워서 도망가는 어른이 있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성교육을 받으며 가르쳐 주시는 유치원 선생님들께서 부끄러워 하셨던 장면은 아직도 기억에 남는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서 학교에서 받는 성교육은 어땠을까? 유치원 때의 성교육이 나에게 와닿는 게 없다면 초, 중학교 때의 성교육도 별반 다르지 않다. 조금 더 추가 된 게 있다면 임신 주기를 안다던가 조금 더 정자를 세밀하게 본 거라고 해야겠다. 한 번도 콘돔이나 여자의 몸을 세부적으로 본 적이 없다.

여자의 몸은 자궁이나 나팔관 등 임신을 할 수 있는 기관들만 보여줬고 대부분의 성교육은 동영상으로 때웠다. 제대로 된 성교육 시간 또한 일 년에 한두 번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이런 이론 중심의 성교육이 학생들에게 부족하고 조금 더 실용적인 성교육이 필요하다는 걸 알면서도 나는 저 책들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내가 한 번도 개방적이고 구체적인 성교육을 받아본 적이 없고, 배우면서 그 어떠한 호기심도 배우고 싶은 욕구도 생겨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문득 어느 순간 나는 저 책을 어떤 시야에서 바라보고 있었는지 깨달았다.

나는 내가 받지 못했기에 이해하지 못했고, 나 자신도 성을 부끄러워했기에 '건전한'이라는 단어를 쓰며 나의 다음 세대가 내가 받았던 성교육을 강요하고 있는 것이었다. 그렇게 내가 받은 성교육이 도움이 안 된다, 불만족스럽다고 얘기하면서 정작 나 자신은 그걸 대물림하려 했던 것 같아 스스로 반성했다. 그러면서 내 시선을 어떤 것에 초점을 맞춰야 하는지 알게 됐다. 

마무리를 지으며 처음 나는 성 교육적인 문제가 논란이 되었을 때 기쁜 마음이 들었다. '드디어 대한민국의 성교육이 변화의 길을 걷고 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우리가 기성세대의 영향을 전혀 안 받고 자유로운 성교육을 받았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우리 대다수의 부모님이 기성세대 사람이며 우리 주위의 선생님과 같은 어른들 또한 기성세대일 가능성이 크다. 그들의 영향을 가장 많이 받는 건 우리일 테고.  

성교육은 매우 예민하면서도 세심한 교육이다. 그만큼 다루기도 어렵고 상당히 조심스러울 수도 있다. 아이들의 성향이나 성격에 따라 개인적인 성교육도 꼭 필요하다고 말하니 말이다. 하지만 난 학교에서의 역할도 크다고 생각했다. 우리들이 하루 시간 중 가장 많이 영향을 받고 시간을 보내는 공간은 '학교'이니 말이다.

나는 내가 받던 성교육들을 아이들이 받길 원하지 않는다. 문득문득 '내가 듣고 있는 이 성교육이 누굴 위한 것인가?'라는 의문을 품게하는 교육을 받게 하는 것 또한 원치 않는다.

그래서 나는 성교육이 그저 퍼포먼스적으로 즉, 그저 교육 과정에 있기 때문에 일 년 몇 번 해야 하는 게 아니었으면 좋겠다. 성교육을 받는 학생들을 위해서 그들의 성장을 위해서 하는 교육이 돼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기에 당장에 우리가 조금은 어색하고 당황스러울지 몰라도 조금 더 나은 성교육의 방향성을 찾아가야 한다. 

태그:#칼럼, #청소년, #성교육, #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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