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온기우편함을 다룬 지식채널e 영상.
 온기우편함을 다룬 지식채널e 영상.
ⓒ ebs

관련사진보기

 
삼청동 돌담길에서 마주친 노란 우체통  

서울 삼청동 덕성여고로 이어지는 율곡로 돌담길을 걷다 보면 노란 우체통 하나를 마주치게 된다. 우체통 왼편에는 검은 안내판이, 오른편에는 종이와 펜 그리고 손 세정제가 든 반투명한 상자 하나가 놓여있다. 이 비밀스러운 노란우체통의 이름은 '온기우편함'이다.

고민과 함께 답장받을 주소를 적어 우편함에 넣으면 온기우체부들이 편지를 수거해 읽고 손글씨로 답장을 보내준다. 이름은 밝히지 않아도 된다. 온기우편함은 현재 삼청동을 비롯해 덕수궁 돌담길, 노량진 고시촌, 어린이대공원 등 총 12곳에 설치돼 있다. 4년 전 세워진 온기우편함은 지난 12월 2일 기준, 총 8543통의 답장을 보냈다. 

우정사업본부가 제공한 자료에 따르면 2019년 국내 일반통상우편물(서신) 접수 물량은 10년 전에 비해 35% 가량 줄었다. 우체통도 2004년 3만여 개에서 2018년 1만여 개로 줄었다고 한다. 이런 상황에서도 꿋꿋이 서울 곳곳에 우체통을 짓고 손편지를 보내고 있는, 비영리단체 온기우편함 운영자 조현식 대표를 지난 11월 17일 인터뷰했다.

마음 방역관, 조현식 대표를 만나다

- 온기우편함을 만들기 전까지 어떤 꿈을 꾸던 청년이었나요?
"따뜻한 세상을 만들고 싶다는 막연한 꿈이 있었어요. 제가 할머니께, 부모님께 그리고 수많은 인연들에게서 받았던 소중한 마음들을 나누고 싶었어요. 그 막연했던 꿈을 온기우편함으로 실현하고 있어요." 

- 온기우편함을 운영하는 것에 대해 주변 반응은 어때요?
"처음에는 상상 속에서나 가능한 일이라며 말리시거나 경제적인 부분을 걱정하셨어요. 저도 그런 고민으로 망설이기도 했고요. 그러나 4년간 수천 통의 고민 편지에 손으로 하나 하나 답장을 하며 이 일이 우리 사회에 따뜻한 위로를 전해줄 수있는 가치 있는 일임을 확신하게 됐어요. 이제는 주위에서 응원도 많이 받아요. 주변의 걱정 어린 말씀, 응원의 말씀은 이 일을 지속하는 힘이 되죠."

- 타인을 위해 고민하는 일을 하지만, 정작 본인의 고민은 어떻게 헤쳐나가나요?
"제 마음과 대화해요. 사실 고민의 원인이 외부가 아닌 내면에 있을 때가 많아요. 외부 상황이 저를 머뭇거리게 하기보다 스스로 제 길을 의심한달까요. 고민으로 마음이 힘들 때면 먼저 무엇 때문에 불안한지 스스로에게 물어요. 그 후 어떤 점을 수정하고 보완할지 생각하죠. 그렇게 고민을 헤쳐나가고 있어요."

- 받아 본 고민 중 사회적 구제안이 필요하다고 느낀 고민이 있었나요?
"우울감에 대한 사회적 안전망이 있으면 좋겠어요. 우울은 마음의 감기라는 말처럼 어느날 갑작스레 찾아오기도, 사라지기도 하죠. 실제로 많은 분들이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무기력에서 비롯된 우울감을 편지에 토로하세요. 코로나 시대에 사회 방역도 중요하지만 '마음 방역'도 함께 이뤄졌으면 좋겠어요."

- 타인의 고민을 듣는 것에서 오는 스트레스는 없나요?
"보통 고민편지 한 통에 1시간 정도를 들여 답장을 쓰는데요. 고민 하나 하나 깊은 생각 끝에 답장을 해드리기 때문에 감정 이입이 큰 편이에요. 그래서 온기우체부님들과 모여 서로 안부를 묻고 고민 나누는 시간을 가져요. 편지로 다른 이의 고민을 듣지만 저희의 고민도 서로 나누는 거죠. 그렇게 저희 마음에 먼저 온기를 채워 그 힘으로 답장을 쓴답니다."
 
온기우편함을 다룬 지식채널e 영상.
 온기우편함을 다룬 지식채널e 영상.
ⓒ ebs

관련사진보기


- 온기우편함을 운영하면서 행복한 순간은 언제인가요?
"첫 번째는 온기우편함으로 고민을 보내주신 온기님(발신자)이 답장을 잘 받으셨다며 재차 답장을 주실 때에요. 생각치도 못한 정성 어린 손편지에 감동해서 눈물을 쏟았다거나 위로를 받았다는 글을 볼 때마다 온기우편함 활동을 해서 참 다행이라고 느껴요. 

두 번째는 온기우체부님들과 이야기를 나눌 때예요. 손편지 답장을 해주시는 자원봉사자분들을 온기우체부님이라고 부르는데요. 온기우체부님들이 온기우편함 활동으로 본인도 위로를 받으시고 온기를 느낀다는이야기를 해주실 때마다 함께 활동할 수 있음에 행복을 느끼곤 한답니다."

- 힘든 순간도 있나요?
"아무래도 현실적인 부분이죠. 우표비, 편지지와 편지봉투 인쇄비, 공간 대여비 등 운영비를 감당하는 것이 어려웠어요. 처음에는 사비로 충당했지만 지금은 한국우편사업진흥원의 지원과 다양한 후원자분들의 도움을 받고 있어요." 

- 살면서 받은 편지나 쪽지 중 잊지 못하는 것이 있다면요?
"할머니께서 써주신 쪽지에요. 할머니께서 일을 나가시기 전에 늘 밥을 차려 주시고 '현식아 밥 맛있게 먹어라'라고 쪽지를 남겨주셨어요. 당시에는 몰랐지만 지금은 쪽지를 남기시던 할머니의 사랑을 알 것 같아요. 쪽지를 적어 주시는할머니 모습도 상상이 가고요. 그때로 돌아갈 수 있다면 할머니께 '늘 고마워. 할머니'라고 답장을 남기고 싶어요."

- 온기우편함 운영자로서 꿈은 무엇인가요?
"변함 없이 진심을 다하는 것. 온기우편함을 시작할 때 고민을 전해주시는 모든 분께 빠짐없이 손으로 진심을 담아 답장을 쓰겠다고 다짐했어요. 그 다짐을 잊지 않고 앞으로도 온기우편함으로 전달된 모든 고민에 귀 기울여 손으로 답장을 써드리는 것이 목표이자 꿈이에요."

늘 있던 그 자리에서 고민을 기다립니다   

종이 위 꾹꾹 새긴 글 자국은 종이에서나 받는 이의 마음에서나 잘 지워지지 않는다. 온기우편함에 고민을 접수한 후 잊고 지내다 문득 날아온 답장에 감동을 받았다는 글들이 인터넷에 가득했다. 한 이용자는 "솔직히 단순한 위로 정도의 답장이지 않을까 했는데 수정 테이프까지 써가며 정성스레 온 답장에 뭉클했다"는 후기를 남겼다. 

조현식 대표는 "귀 기울이는 것만으로 그 누군가에게는 잊을 수 없는 위로를 줄 수 있다"고 말한다. 아마도 온기우편함이 존재하는 이유도 여기 있을 것이다. 고민을 해결해주기 보다, 고민을 들어줄 누군가가 항상 그 자리에 서있다는 위로를 전하기 위해서 말이다. 온기우편함은 오늘도 늘 있던 그 자리에서 누군가의 고민을 기다리고 있다. 

*온기우편함 위치 
실내: 교보문고 광화문점, 강남점, 잠실점, 영등포점, 인천점 / 명동 우표박물관
실외: 삼청동 돌담길, 덕수궁 돌담길, 노량진 고시촌, 신림동 고시촌, 혜화동, 어린이 대공원

*온기우편함 블로그 
https://blog.naver.com/ongistudio

태그:#온기우편함, #인터뷰, #조현식 대표, #손편지, #고민
댓글1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