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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取중眞담]은 <오마이뉴스> 상근기자들이 취재과정에서 겪은 후일담이나 비화, 에피소드 등을 자유로운 방식으로 돌아가면서 쓰는 코너입니다.[편집자말]
고 김용균 씨의 어머니 김미숙 씨가 16일 서울 여의도 국회 본청 앞에서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을 촉구하며 6일째 단식 농성을 하고 있다.
 고 김용균 씨의 어머니 김미숙 씨가 16일 서울 여의도 국회 본청 앞에서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을 촉구하며 6일째 단식 농성을 하고 있다.
ⓒ 공동취재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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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당 A의원 : "까놓고, 단식 시위한다고 해서 우리가 다 법을 만들어줄 순 없는 거잖아."
민주당 B의원 : "기업하지 말라는 거야 이건. 좌파여도 너무 좌파 법이야."
 

17일 더불어민주당의 중대재해기업처벌법 관련 '원포인트' 의총이 끝난 뒤, 이 법 제정에 반대하는 의원들이 기자에게 한 말이다. A의원은 "처벌 수위가 너무 강하고, (기존 산업안전보건법에 더해) 이중 규제 논란이 생길 수도 있다. 법을 만드는 것보다 제도 운영이 중요한 것 아닌가"라고 했다. B의원은 "이낙연 대표가 9월 교섭단체 대표연설에서 약속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가는 것 같다. 사실 김태년 원내대표만 해도 (법 제정을) 아주 부담스러워하고 있다"고 했다.
 
정말 그런가.
 
코로나19와 산업재해
  
더불어민주당 이낙연 대표가 17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온택트 정책의총에 참석하던 중 정의당 강은미 원내대표와 배진교 의원으로부터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 호소문을 받고 있다.
▲ "중대재해법" 제정 호소문 받은 이낙연 대표 더불어민주당 이낙연 대표가 17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온택트 정책의총에 참석하던 중 정의당 강은미 원내대표와 배진교 의원으로부터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 호소문을 받고 있다.
ⓒ 공동취재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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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여당 의원들에게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에 대한 입장을 물으면서 가장 인상 깊었던 이야기를 소개한다.
 
민주당 C의원 : "국회의원들이 당사자가 안 돼 봤으니 모르는 거야. 난 사실 우리 형님이 산재로 돌아가셨어. 내가 직접 입증 책임을 위해 뛰어다녔고 몇 년을 고생했는데도 결국 제대로 된 보상을 받지 못했어. 우리 스스로 선진국이라고 하는데, 아직도 사람 한 명 죽은 게 벌금 450만 원으로 끝난다는 게 말이 되나. 기업 입장에선 과태료 조금만 내면 사람 생명과 맞바꿀 수 있는 거 아냐. 원청이나 사업주에게 책임을 단일화해야 해. 그래야 진짜 일선 현장도 바뀐다고. 난 이번에 꼭 해야 한다고 봐."
 
지난 14일 국회 본관 앞에서 단식 농성 중인 고(故) 김용균씨 어머니 김미숙씨, 고(故) 이한빛씨 아버지 이용관씨, 강은미 정의당 원내대표, 이상진 민주노총 부위원장을 찾은 김훈 작가의 말도 들어보자. 특유의 웅얼거림 속에 뼈가 있었다.
 
김훈 : "반(反)기업 정서가 너무 팽배해서 기업 하기가 어렵다고들 얘기하시는데, 이런 산업 재해가 계속되는 한 반기업 정서를 청산할 수가 없어요. 그러니까 기업이, 자기 내부의 문제를 스스로 해결하지 못하니까 지금까지 온 것인데, 이런 법을 제정해 가지고 산업재해를 줄여나가면 우리가 반기업 정서를 해소하는 데 크게 도움이 될 거라고 생각해요. 그런 점들을 기업이 깊이 좀 성찰하시길 바랍니다.

반기업 정서는 기업이 스스로 자초한 것입니다. 공해 문제나 환경 문제, 노동 문제, 재해 문제, 탈세 문제 등 거기서 반기업 정서가 생긴 거죠. 그런 점을 여실히, 기업들이 깊이 성찰하길 바랍니다."
 

오랜만에 목소리를 낸 유시민 노무현재단 이사장의 말도 '174석' 민주당이 곱씹어봐야 할 대목이다. 지난 15일 유튜브로 진행된 '2020 후원회원의 날 특집방송'에서다. 다른 발언들과 달리 이 부분은 지금껏 단 한 번도 기사화되지 않았다.
 
유시민 : "노무현 정신인 '사람 사는 세상'과 관련해 우리가 더 마음을 써야 할 일이 있습니다. 최근 국회의 큰 쟁점 중 하나인 중대재해기업처벌법입니다. 지금도 우리의 산재 사망은 연간 2000명 수준을 계속 오르내립니다. 지금 코로나19 국내 사망자가 총 700명이 안 됩니다. 우리가 코로나19를 막기 위해 쏟았던 노력과 열정과 국민들 합의와 정부의 재정 지출을 생각해보면, 1년에 2000명 내외가 직업병으로 사망하는 이 사태를 왜 못 막겠습니까.

산업재해로 인해서 건강과 목숨을 잃는 시민들이 생겨나지 않도록 하는 일도, 코로나19 대응의 10분의 1만이라도 마음을 먹으면 저는 할 수 있다고 봅니다. 전 할 수 있다고 보고요. (노무현 전) 대통령님 생각하면 우리가, 진보 진영에서 그 일을 좀 더 힘있게 성의를 갖고 해야 되지 않나 생각합니다."

 
유 이사장 말대로 지난해 대한민국의 산재 사망자는 2020명이었다. 대한민국은 23년째 OECD 산재 사망 1위 국가다. 일명 '김용균법'(산업안전보건법 개정안)이 올해부터 시행됐음에도 상황은 전혀 나아지지 않고 있다. 한국산업안전보건공단이 최근 공개한 '2020년 9월 말 산업재해 발생현황' 통계에 따르면, 지난 1~9월 사망 재해로 목숨을 잃은 건설업 노동자 수는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오히려 31명 늘었다.
 
아직도 소극적인 당·청 라인… 민주당 내부 "김종인에 등 떠밀려서"
  
더불어민주당 김태년 원내대표와 한정애 정책위의장이 15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당 원내대책회의에 참석하고 있다.
 더불어민주당 김태년 원내대표와 한정애 정책위의장이 15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당 원내대책회의에 참석하고 있다.
ⓒ 공동취재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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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민주당은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 약속을 한 번 어겼다. 정기국회 내(12월 9일 전)에 이 법안을 처리하겠다고 여러 차례 공언했지만 결국 지키지 않은 것이다.
 
그런데도 김태년 민주당 원내대표는 17일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정책 의총에서 "혹시 부작용이나 미비한 점은 없는지에 대해서 꼼꼼하게 챙겨야 한다는 의견들을 많이 주고 계시다"라며 소극적인 모습을 보였다. 김상조 청와대 정책실장 역시 같은 날 "중대재해법을 배제할 이유는 없다만, 산업안전법 개정과 함께 종합적으로 검토해야 한다"고 발언했다. 한정애 민주당 정책위의장도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에 부정적이라는 이유로 노동계로부터 거센 비판을 받아왔다.
 
정책 결정을 담당하는 핵심 당·청 라인이 모두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을 탐탁치 않아 하고 있는 것이다. 이낙연 대표 정도만 17일 의총 공개발언에서 "입법적인 의지를 보일 때가 됐다"고 피력했다.
 
민주당 D의원은 "과연 우리 당이 애초에 중대재해기업처벌법과 공정경제 3법(상법·공정거래법·금융그룹감독법)을 할 의지가 있었는지조차 의문"이라고 혹평했다. D 의원은 "김종인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이 해당 법안들을 하겠다고 치고 나오니, 어쩔 수 없이 등 떠밀려 한 측면이 크다"면서 "검찰개혁은 그렇게 밀어붙이면서 민생경제 법안은 왜 그렇게 못하는지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고 꼬집었다. 그는 "중대재해법도 여론이 없었다면 절대 지금까지 오지 못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러니 일각에선 벌써 민주당이 핵심 내용은 빼버리고 허울뿐인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을 졸속 처리하려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온다. 중대재해를 일으킨 기업의 경영자를 처벌하기 위해 제시됐던 '인과관계 추정' 조항이나 '공무원 처벌' 규정은 없애 버리면서 '50인 이하 사업장 4년 유예' 등은 존치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 실제 17일 민주당 의총 직후 백혜련 더불어민주당 법제사법위원회 간사는 이같은 우려에 대해 "상임위(법사위) 논의에 맡기기로 했다"라며 구체적인 답을 피했다.

앞서 고(故) 김용균 노동자 어머니 김미숙씨는 <오마이뉴스> 인터뷰에서 "원청과 기업 경영자, 사업주의 책임을 물어야 한다. 이들이 빠져나갈 수 있게 하는 내용에 대해선 그 어떤 것도 받아들일 수 없다"고 일축한 바 있다.

어쨌든 민주당은 17일 약 2시간 30분간의 장시간 의총 끝에 "임시국회 회기 내에 중대재해법을 처리하겠다"라고 발표했다. 임시국회는 내년 1월 8일까지다.

오늘도 영하 10℃의 강추위 속에 김미숙씨와 고(故) 이한빛PD 아버지 이용관씨는 국회 본관 현관 앞에서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을 촉구하며 단식 농성을 이어가고 있다. "이런다고 우리 아이가 돌아오는 것도 아니지만, 꼭 해야 하는"(김미숙씨) 이 이상한 농성을. 벌써 8일째다.

[관련 기사]
"산재 벌금, 기업한테는 껌값... 단식이라도 해야 했다" http://omn.kr/1qzto

태그:#김태년, #중대재해기업처벌법, #한정애, #김상조, #이낙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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