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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두산 정상에서 "조국통일 만세!"를 부르시는 남정현 선생
 백두산 정상에서 "조국통일 만세!"를 부르시는 남정현 선생
ⓒ 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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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정현 선생 부음

오늘은 동짓날로 예로부터 '작은 설'이라고 하여, 팥죽 새알을 나이만큼 먹는 날이기도 하다. 하지만 이즈음에는 그런 세시풍속이 사라져가고, 더욱이 코로나19가 기승을 부리고 있는 2020년 올해는 모두가 우울하게 한 해를 보내고 있는 송구영신의 세모다.

오늘 아침 문우로부터 남정현 선생이 운명하셨다는 부음을 듣고 먼저 북녘을 향해 묵념을 드린 뒤 고인의 흔적을 찾아보았다. 편지 1점과 저자 사인의 <남정현 대표소설 선집> 그리고 2005년 방북 때 찍은 사진 5점이 나왔다.

남정현 선생의 작품집 날개에 기록된 약력이다.
 
남정현(南廷賢). 1933년 충남 당진에서 태어났다. 1958년 '경고구역'과 1959년 '굴뚝 밑의 유산'이 <자유문학>에 추천되어 문단에 나왔으며, 1961년 '너는 뭐냐'로 제6회 동인문학상을 수상하였다. 1965년 <현대문학> 3월 호에 발표한 '분지'가 반공법(현, 국가보안법)에 저촉 되었다 하여 구속 기소되어 징역 7년을 구형 받았고, 1967년 서울고등법원에서 선고유예 판결을 받았다. 1971년 민주수호국민협의회 결성에 참여하였으며, 1974년 긴급조치 위반(세칭 '민청학련사건')으로 구속되었다가 9월 긴급조치로 석방되었다.

창작집으로 <너는 뭐냐> <굴뚝 밑의 유산> <준이와 3개월> <허허 선생> 등이 있고, 대표소설선 <분지>, 연작소설집 <허허 선생 옷 벗을라> <남정현문학전집> 등을 출간하였다. 2002년 제12회 민족예술상을 수상했다.
  
평양 개선문 앞에서(2005. 7. 21. 왼쪽 남정현 선생, 오른쪽 기자.)
 평양 개선문 앞에서(2005. 7. 21. 왼쪽 남정현 선생, 오른쪽 기자.)
ⓒ 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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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청시절 나는 남정현 선생의 작품을 탐독하였고, 선생은 장차 닮고 싶은 작가상이었다. 이런저런 모임에서 대여섯 차례 만난 뵌 적이 있었지만 두 차례 깊은 만남만 들려드린다.

1997년인가 1998년 설을 앞두고 민족문학작가회(현, 한국작가회의 전신)에서 당시 공주 교도소에 복역 중인 황석영 작가 면회 가는 행사에 동참했다. 30여 분이 전세 버스를 타고 가는데, 마침 남정현 선생 옆자리에 앉게 되어 오가면서 많은 대화를 나눴다.

사실 나는 그 이전까지 남정현 선생을 대단히 날카롭고, 강직한 투사로 봤다. 그런데 막상 대화를 나누자 아주 부드러운 분이었다. 그분의 작품 <분지>를 읽을 때는 강대국 앞에서 조금도 기죽지 않는 그 투지에 소름이 끼쳤다. 그런 선입관과는 달리 체구도 자그만 하시고, 인상도 여느 동네에서나 흔히 볼 수 있는 마음씨 좋은 초로의 예사 할아버지였다.

그 즈음에는 도봉구 쌍문동에서 따님과 둘이서 지낸다는데, 따님이 직장을 나가기에 진지는 손수 차려먹을 때가 많다고 했다.
  
장군봉 길목에서 김원일(왼쪽), 남정현 선생(2005. 7. 23.)
 장군봉 길목에서 김원일(왼쪽), 남정현 선생(2005. 7. 23.)
ⓒ 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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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서로 정이 깊게 든 나머지 서울로 돌아온 뒤 대한극장 앞 한 한식집에 들러 따끈한 정종으로 건배하면서 미리 새해 인사를 나누면서 만둣국을 맛있게 먹고 헤어졌다.

2005년 7월 20부터 25일까지 평양, 묘향산, 백두산에서 민족문학작가대회가 있었다. 그때 현지 이동할 때 같은 버스를 타고 동행했다. 평양 개선문 앞에서는 나란히 기념촬영도 했다.

7월 23일 새벽, 백두산 장군봉을 오를 때는 찬 날씨와 가파른 등반길로 당신은 건강상 백두산 정상에서 열린 행사는 참석치 못했다. 나는 정상에서 열린 대회에 참석한 다음 곧장 차로 내려와 불편한 선생님을 부축하여 장군봉으로 오르는 길목에 앉혀드린 뒤 선생이 백두산 천지를 배경으로 "조국 통일 만세!"를 부르던 모습을 연출하여 내 카메라에 담아드렸다.
   
평양 만경대 뜰에서 왼쪽 남정현 선생(2005. 7. 21.)
 평양 만경대 뜰에서 왼쪽 남정현 선생(2005. 7. 21.)
ⓒ 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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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뒤 선생님은 내가 찍은 사진을 건네받으시면서 염치없다고 당신 작품집에 서명하여 나에게 주신 바 있었다.

이런저런 추억과 함께 문청시절 감명 깊게 읽었던 남정현 선생의 작품들이 떠오른다. 그 가운데 한 대목만 뽑아본다.
 
"그는 끝내 다다르고야 만 세상의 그 끝에서, 그 암흑에서, 그 암흑을 수수만 갈래로 흩날리며 찬연히 솟아오를 새 세상을, 아그('아이'의 방언) 새 태양을 마음속에 그리며 깊은 잠에 젖어들고 있었다."

- '세상의 그 끝에서' (실천문학사 발간 남정현 대표소설선집 28쪽)
 
남정현 선생님! 새 세상에 가셔서 깊은 잠만 주무시지 마시고, 그 세상에서 조국통일의 수호신이 되옵소서.

2020년 12월 21일 선생님이 새 세상으로 가신 날
원주 치악산 밑에서 불초 박도 호곡 재배합니다.

덧붙이는 글 | 남정현 선생 빈소 : 서울대 장례식장
발인 : 12월 23일
오후 4시부터 조문 받음.


태그:#남정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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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사 은퇴 후 강원 산골에서 지내고 있다. 저서; 소설<허형식 장군><전쟁과 사랑> <용서>. 산문 <항일유적답사기><영웅 안중근>, <대한민국 대통령> 사진집<지울 수 없는 이미지><한국전쟁 Ⅱ><일제강점기><개화기와 대한제국><미군정3년사>, 어린이도서 <대한민국의 시작은 임시정부입니다><김구, 독립운동의 끝은 통일><청년 안중근>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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