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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정하다는 착각'을 비판하는 하나의 비유

두 나라 A와 B가 있다. A나라는 귀족사회다. 소득과 재산은 출생 신분에 달려 있다. 그리고 그것들이 대물림된다. B나라는 일명 능력주의 사회다. 개인의 능력을 따라 계층 이동이 가능하다. 성공은 재능(능력) 있는 개인이 노력해서 얻은 보상으로 간주된다.

이 비유를 제시하며 마이클 샌델 교수는 묻는다(187~190쪽). 어느 나라가 평등할까? 우리는 당연하다는 듯 B나라를 더 평등하다고 대답할 것이다. 이제, 각도를 달리하여 생각해 보기로 하자. 각도를 달리하여 생각해 보기, 그것이 <공정하다는 착각>이라는 책을 통해 전달하고자 하는 샌델 교수의 문제 의식이다.
 
공정하다는 착각
▲ 책 표지 공정하다는 착각
ⓒ 와이즈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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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나라에 사는 사람들은 현재 귀족이 누리는 특권이 '태어나 보니 누구 집 딸·아들이더라'에서 비롯되었음을 안다. 이 사실을 국민 모두가 알고 있다. 반면 B나라에서는 어떤 특권자를 바라볼 때 그 특권이 그 사람의 실력과 노력의 결과물이라는 인식이 퍼져 있다.

따라서, 귀족사회인 A나라에서 빈자로 태어난 국민은 힘들게 살긴 하겠지만 그게 전적으로 자기 책임은 아니라고 생각할 여지가 있다. 반면, B나라에서 빈자는 자기 삶이 '이 지경(?)'인 것이 모조리 다 자기 탓으로 느껴진다. B나라가 능력주의 하나만을 원리원칙으로 고수할 땐, 못남과 부족함을 자책하는 국민들이 대규모로 양산된다.

사회적 상승을 위한 실력(과 노력)을 추앙하는 B나라에 살면서, 계층 상승에 실패한 국민은 '노오오오력 부족'이라는 가혹한 판결을 감내해야 한다. 더 심각한 문제가 있다. 누구도 상층부가 누리는 특권과 보상의 내용 자체를 의심하지 않게 된다. 노력해서 상층부에 올랐으니 그걸 누릴 만한 자격이 있다고 자타공인 인정하기 때문이다.

나아가, 상층부가 누리는 것들을 중층 및 하층부와 공유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게 된다. 상층부가 누리는 것들이 희귀하고 아름다워 보여야 사람들이 상층부에 오르려 열심히 '노오오오력'을 할 테니까.

결국 "억울하면 출세하라!"가 B나라의 슬로건으로 작동할 수밖에 없다. 실패자의 억울함은 어디 가서 호소할 수도 없다. 실패자 주제에 호소하고 자시고 할 게 없어진다. 마침내 상층부와 중하층부의 불평등이 그대로 고착되고, 누군가에게 억울함은 계속 쌓여가지만, 누구도 그것에 어떻게 반대해야 좋을지 모르게 된다.

미국 사회에서 능력주의를 절대화했을 때 나온 비극(?)

샌델 교수는 '노력을 했든, 안 했든, 못 했든, 덜 했든' 성공 못 한 사람들에게 응축되어 있던 억울함이 드러난 극명한 사례를 하나 찾아낸다. 5년 전 미국 사회에서, 저학력·빈곤층에서 터져나온 억울함이 고학력 능력자 대선 후보였던 힐러리 클린턴에 대한 반감으로 작용했다. 그 결과 (우리가 다 알다시피) 트럼프에게 꽃길이 열렸다.

그 대선이 끝났을 때 힐러리는, 트럼프가 사실상 '루저'들의 지지를 얻었다고 평가했다(55쪽). 이 말을, 샌델 교수는 능력주의를 절대화한 사람들이 무심결에 드러내는 오만의 표현으로 해석한다.
 
민주당은 한때 특권층에 맞서 농민과 노동자의 편에 선 바 있다. 그러나 바야흐로 능력주의의 시대에, 민주당 대선 후보로 나섰다가 패배한 사람은 "그래도 나는 미국의 부자와 고학력자들의 지지를 얻었다"라며 자랑하고 있는 것이다. - 55쪽

샌델 교수는, 모든 성공한 사람들이 인정하기 싫어하겠지만, 인간의 성공이 반드시 실력과 노력으로 성취되는 게 아님을 책 안에서 반복적으로 강조한다. 능력자 혹은 성공자 자신이 좌우할 수 없었고 좌우한 적도 없었던 불가항력적 '우연/행운'의 요인이 모든 인간의 성공에 '상당 부분' 들어 있다. 비근한 예로, 세상 어느 누가 자기 실력으로 내 부모를 선택했다고 말할 수 있겠는가? 내 유전자를 내 실력으로 내가 조합했다고 말할 수 있는 자, 누구인가?

샌델 교수는 실력 있는 의사, 유능한 사업가 및 과학자, 재능 있는 스포츠맨이 노력을 통해 재능을 키워 정당하게 이룩한 성공을 비판하는 게 아니다. 앞의 비유에 나왔던, 귀족사회로서 A나라가 더 좋으니 그리로 회귀하자고 말하는 것도 아니다. 

샌델 교수가 비판하는 지점은, 성공한 사람들이 '오직 나의 실력(과 노력)으로 성공했다'고 확신할 때 자기도 모르게, 혹은 명확히 의식하면서 오만을 떨게 된다는 점이다. 그러한 오만은 한 사회 전체를 불행하게 할 수 있다. 앞서 미국의 경우 '트럼프 대통령 당선'이라는 비극(?)을 맞이한 바 있다.

실력과 노력으로 성공했다는 사람들이 간과하기 쉬운 것

샌델 교수는, 성공자들이 실제로 자기가 조절할 수 없었고 또 조절한 적조차 없었으며, 조절할 의도마저 품을 수 없었던 '미지의 요인'의 영향 또한 적절히 받았기 때문에 성공할 수 있었음을 정직하게 인정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 사실을 인정할 때 성공한 사람들은 실패자들이 왜 실패하는지에 대해서도 적합하게 살필 수 있게 된다는 설명이다. 

우리는 세상만사가 '재능→실력(과 노력)→성공'이라는 일직선 관계로 진전하지만은 않는다는 진실을 이미 알고 있다. 물론 '재능→실력(과 노력)→성공'은 여러 사례를 통해 입증되어 왔으며, 실제로 인간의 노력을 독려하는 데에 쓸모 있는 인과관계 공식이기도 하다. 무능력자가 부당한 특권을 누리지 않도록 예방하려면 개인의 실력(과 노력)은 충분히 격려받아야 하며, 충분히 고려되어야 한다.

단, 거기까지다. 샌델 교수는, 인간의 모든 성공을 실력(과 노력)의 결과로 단순하게 칭송하고 홍보해서는 안 된다고 지적한다. 성공은 칭찬받아 마땅하다. 하지만 그건 그 사람이 어쩌다 좋은 재능을 갖고 태어났기 때문일 수 있다. 어쩌다 화목한 가정에서 태어나 학업에 집중할 수 있었기 때문일 수 있다. 실력과 노력의 작동 시점은 그다음이다.

예컨대, 예술적 재능이 그저 '딴따라' 취급을 받던 시대에 그 실력 있는 소년들이 살았더라면 방탄소년단(BTS)의 세계적 성공은 아마 없었으리라. 인간의 성공에는, 반드시 하나 이상의 요인들이 복합적으로 다채롭게 기여한다. 재능→실력(과 노력)이 성공을 보장하지는 않는다.

그러므로, 성공자는 '내 성공은 오직 나만의 것'이라는 생각을 거둘 필요가 있다. 주위를 둘러보자. 모든 실패자가 실력(과 노력)의 부족으로 실패한 게 아니다. 그리고 모든 성공자 또한 실력(과 노력)으로 성공한 것도 아니다.

"덕분에 지금 여기 서 있다" 민주주의와 겸손 

비유적으로 말하면, 온 세상 사람 누구의 인생이든 두 개의 바퀴로 굴러간다고 말할 수 있다. 한쪽 바퀴는 실력(과 노력)이고, 다른 한쪽 바퀴는 우연(과 행운)이다. 이러한 진실을 사회 구성원들이 다같이 인정하고 동의해야 한다.

그래야만, 성공자들의 부풀려진 오만이 줄어들 수 있다. 실패자들의 주눅든 자학도 줄어들 수 있다. 모든 사람들이 공동체 안의 1/n으로 자기 자신을, 말 그대로 '공정하다는 착각' 없이 '있는 그대로' 검토할 수 있게 된다.

샌델 교수는 이 책의 끝에서 '민주주의와 겸손'의 밀접한 관계를 제기하면서 대단원의 막을 내린다. 이 주목할 만한 대저작은, 인간의 업적을 오만하게 내세우지 말고 인간사에 늘 개입되는 우연적 요소(행운, 종교적으로 말하면 '신의 은총')를 겸손히 묵상하자는 말로 마무리된다. 인간 존재의 유한성을 묵상하게 하는, 꽤 의미심장한 결론이다.
 
사회 속의 우리 자신을, 그리고 사회가 우리 재능에 준 보상은 우리의 행운 덕이지 우리 업적 덕이 아님을 찾아내는 것이 필요하다. 우리 운명의 우연성을 제대로 인지하면 일정한 겸손이 비롯된다. "신의 은총인지, 어쩌다 이렇게 태어난 때문인지, 운명의 장난인지 몰라도 덕분에 나는 지금 여기 서있다." 그런 겸손함은 우리를 갈라놓고 있는 가혹한 성공윤리에서 돌아설 수 있게 해준다. 그것은 능력주의의 폭정을 넘어, 보다 덜 악의적이고 보다 더 관대한 공적 삶으로 우리를 이끌어간다. -353쪽

공정하다는 착각

마이클 샌델 (지은이), 함규진 (옮긴이), 와이즈베리(2020)


태그:#마이클 샌델, #공정하다는 착각, #정의란 무엇인가, #능력주의, #오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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