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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법재판소의 낙태죄 헌법불합치 결정 이후 낙태죄 전면폐지를 요구해 온 여성계와 법조계는 낙태죄를 사실상 유지하는 정부 개정안에 강력히 반발하고 있다. 사진은 지난 10월8일 있었던 ‘모두를 위한 낙태죄 폐지 공동행동’의 청와대 앞 시위
 헌법재판소의 낙태죄 헌법불합치 결정 이후 낙태죄 전면폐지를 요구해 온 여성계와 법조계는 낙태죄를 사실상 유지하는 정부 개정안에 강력히 반발하고 있다. 사진은 지난 10월8일 있었던 ‘모두를 위한 낙태죄 폐지 공동행동’의 청와대 앞 시위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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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4월 11일 헌법재판소는 다수의견(재판관 7대 2)으로 '낙태죄 사망(헌법불합치 결정)'을 선고했다. 다만 재판관 4명은 이듬해 연말까지 입법 보완을 마쳐야 한다며 2020년 12월 31일을 '사망시점'으로 못 박았다. 이제 열흘도 채 남지 않았다.

그런데 국회가 2021년 1월 1일 0시 전에 대체입법을 마련할 가능성은 0에 가깝다. 현재 소관 상임위인 법제사법위원회에는 더불어민주당 권인숙 의원과 박주민 의원, 정의당 이은주 의원이 각각 대표발의한 낙태죄 완전폐지안과 임신 14주를 기준으로 낙태죄 여부를 판단하는 정부안, 임신 10주를 기준으로 하는 국민의힘 조해진 의원과 서정숙 의원 안 등 6개 법안이 있다. 법사위는 12월 8일 공청회 다음 일정을 전혀 잡지 못한 상태다.

이대로면 새해부터 낙태죄는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다. 권인숙 의원은 22일 <오마이뉴스>와 한 통화에서 "낙태죄가 사라지는 것 자체의 의미는 크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걸 우리가 훨씬 더 좋은 방향으로 나아가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며 "입법 공백이 생기기 때문에 여러 가지 혼란과 어려움이 있을 수 있다"고 우려했다. 당장 죄는 아니지만, 임신중지 자체가 온전히 제도 안으로 들어간 상황이 아니기 때문이다.

권 의원은 의료보험, 의사 대상 지침 등을 시급한 문제로 꼽았다. 또 빠른 논의를 위해 조만간 모자보건법 개정안을 낼 계획이라고 밝혔다. 그는 "잘 만들어야 한다, 정말 여성들에게 도움이 될 수 있도록 가야 한다"며 "여성의 건강권 문제, 여성들이 삶을 결정해나가는 과정 속에서 이 문제가 어떤 식으로 안착되느냐가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새해부터 낙태죄가 사라진다, 그런데...
 
권인숙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지난 10일 오후 국회 의원회관에서 <오마이뉴스>와 인터뷰하고 있는 모습.
 권인숙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지난 10일 오후 국회 의원회관에서 <오마이뉴스>와 인터뷰하고 있는 모습.
ⓒ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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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월 31일이 지나면 낙태죄가 효력을 잃는다. 법사위에서 공청회까지 열리긴 했지만, 그 다음 논의가 멈춘 상황인데.

"(여야 관계 악화로) 법사위 법안소위를 열기가 쉽지 않다. 12월 안에 본회의도 열리긴 어렵다. 국회에서 다루더라도 한 번에 정리할 수 없다. 저희 당이랑 국민의당 의견이 굉장히 많이 차이가 난다. 정반대죠. 저희는 전향적으로 문제를 바라보려는 반면에 국민의힘은 정부안과 한참 다른, 헌재 안에서도 훨씬 퇴행적인 안을 내놓은 상황이다."

- 이렇게 되면 낙태죄 자체는 사라지는 셈인데, 문제점이 전혀 없다고 할 수 있을까.

"입법 공백이 생긴다. 명확히 낙태죄가 없어지는 식으로 힘을 받으면서 모자보건법상 변화가 일어나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이 공백을 두고 여러 가지 혼란과 어려움이 있을 수 있다.

일단 미프진 등 (임신중지)약물 사용 관련된 부분은 빨리 처리돼야 한다. 여성들의 임신중지가 더 이상 불법이 아닌 상태에서 의료보험 부분은 어떻게 할 것이냐는 문제도 있다. 또 지금까지는 보건소에서 임신과 출산 관련 상담·지원만 했지 임신중지에 관한 건 하지 않았는데, 이런 상담체계는 문제가 있다. 의사들을 대상으로 하는 지침 역시 정리가 안 된 상태다."

- 안전한 임신중지를 논의 못 한 채로 낙태죄만 사라지는 것인가.

"네. 그런데 죄가 사라지는 것의 의미가 크긴 하다. 더이상 죄가 아니기 때문에, 우리 사회에 (임신중지를) 어떻게 의료행위로 안착시키냐 하는 문제가 된다. 형법으로 (낙태죄가) 다시 살아나는 식의 퇴행으로 가긴 쉽지 않을 거다. 이제 앞으로 여성의 건강권 등을 어떻게 보호할 것인가를 두고 적극적인 노력이 필요한데, 그걸 입법과 정부의 노력으로 어떻게 보여주는가 하는 문제가 남았다."

- 형법 개정안 낼 때 모자보건법 개정안도 같이 냈는데, 그러면 앞으로는 모자보건법 개정 논의만 이뤄질 텐데, 그걸로 충분한가.

"충분하죠. 사실 모자보건법만 잘 정리되면 굉장히 많이 해결된다."

- 그런데 이렇게 될 때까지 민주당 차원에선 낙태죄를 두고 뚜렷한 의견 표명이 없었다. 당 안에서 공감대가 형성됐는지 잘 모르겠다는 얘기들도 있었다.

"헌재 결정 뒤 정부에서 안을 낼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 정부안이 나오기 전에는 (당내 논의가) 쉽지 않았다. 또 정부안이 좀 늦게 나오면서 시기가 늦어졌다. 정부안이 나온 상태에서 민주당이 공식적으로 다른 얘기를 하기가 쉽지 않았다. 그럼에도 민주당 안에서 정부안에 반대하는 법안이 여러 개가 나왔다. 편차가 있긴 하지만, 공청회 때도 (임신중지를) 범죄 개념에서 바라보는 것에 반대하는 의원들이 여러 명이었다. 다만 그 자체를 충분히 논의할 상황이 안 됐다."

- 정부안이 늦어져 국회 논의도 늦어졌을 뿐, 당내에 후퇴 분위기가 있던 건 아니었다는 뜻인가.

"그랬으면 저나 박주민 의원 안이 나올 수가 없었죠."

"낙태죄 폐지의 의미 살려야... 모자보건법 개정 만만치 않다"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의 '낙태죄' 개정 관련 공청회가 8일 국회에서 열리고 있다.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의 "낙태죄" 개정 관련 공청회가 8일 국회에서 열리고 있다.
ⓒ 공동취재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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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쨌든 '자동폐기'식으로나마 낙태죄가 사라지는 것은 긍정적으로 봐야 할까.

"언론에서 의미 규정을 확실히 해줘야 한다. 낙태죄의 실효성이 완전히 없어지는, 낙태죄가 역사에서 완전히 사라지는 계기 자체는 만들어졌다. 오랫동안 굉장히 모순적이고, 여성의 현실과 맞지 않고, 여성의 재생산권이나 생명권 보호 차원에서도 제대로 만들어지지 않았던 법이 역사 뒤로 사라진다.

그걸 우리가 훨씬 더 좋은 방향으로 나아가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 이 의미를 잘 살려 나가는 건 우리 모두의 몫이다(웃음). 큰 기회가 온 거죠. 헌재 결정 자체도 큰 기회였고, 10만 명이 (낙태죄 폐지 국민동의를) 청원하면서 (논의를) 앞으로 자꾸 당겨 나가온 것 같다."

- 사실 정부안 그대로 가는 듯한 분위기라 우려하는 목소리도 많았다.

"민주당도 어쨌든 이 부분에선 (낙태죄 완전 폐지) 법안이 나오는 등 많이 노력했다. 그런 것들이 같이 결실을 맺은 거다."

- 앞으로 나아가지만, 과제들도 많이 남은 상황이다.

"모자보건법이 만만치 않다. 현실이니까, 디테일이니까 잘 만들어야 한다. 정말 여성들에게 도움이 될 수 있도록 가야 한다. 지금은 낙태 비용도 굉장히 비싸다. 광고를 보니까 (임신) 7주 이내가 48만 원이라는데, 더 들 수도 있다. 또 여성의 건강권 문제, 여성들이 삶을 결정해나가는 과정 속에서 이 문제(임신중지)가 어떤 식으로 안착되느냐가 중요하다.

일단 저희는 법안을 이 상황에 맞춰서 모자보건법 중심으로 다시 내려고 한다. 기존 발의안은 형법 27장 낙태의 죄 전부가 없어지는 것을 전제로 해서 냈기 때문에 형식상 다시 내야 한다고 보고 있다. 또 오는 30일 관련 토론회를 열려고 준비 중이다. 계속 낙태를 다시 범죄화하려는 행위를 차단하고, 한동안 입법공백 상태에서 정부가 현명하게 대처할 수 있도록 하는 노력도 같이 병행해나가려고 한다."

태그:#낙태죄, #권인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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