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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그리움이 진하면 슬픔이 되고, 슬픔은 세월이라는 시간을 거쳐 아름다움이라는 추억으로 변합니다. 구불구불 흐르는 강을 닮은 어머니와, 거친 풍파를 헤쳐나가는 아버지, 이제는 세월 앞에서 주름살이 나날이 짙어 갑니다.

<오마이뉴스>에서 통해 박상규 기자의 '강을 닮은 어머니, 생신 축하합니다'라는 기사를 보았습니다. 구불구불 흐르는 동강을 보고 어머니를 그리는 이 글은 <오마이뉴스>의 모든 독자들이 가슴 깊숙한 곳에 묻어놓았던 아득한 그리움을 찾아내, 눈가에 이슬이 맺히게 했으리라 생각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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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강을 닮은 어머니, 생신 축하합니다

그리고 40대를 훌쩍 뛰어넘은 저를 그 어린 시절의 진한 그리움의 강물에 빠뜨렸습니다. 또한 조금씩 잊혀져 가던 할매(할머니), 할배(할아버지)의 아스라한 다정한 모습을 떠오르게 했습니다.

이 밤, 저의 마음은 굽이굽이 흐르는 어머니의 강을 거슬러 올라가 그 아득한 어린 시절로 다가갑니다.

▲ 하동하회마을 전경
ⓒ 인터넷발취
초등학교 2학년까지 외가이자 저의 고향인 사천군의 용현면(지금의 사천시) 시골 마을에서 코 흘리며 자랐습니다.

그때 마을 위에는 큰 저수지가 있었고, 그 저수지는 옆 산들이 투명한 거울처럼 투영될 정도로 맑았습니다. 그 맑은 호수를 제 또래 아이들은 못이라고 불렀고, 못 귀퉁이에서 시작되는 시냇물에서 여름이면 목(멱) 감고, 물장구 치며, 송사리를 잡았던 놀이터였습니다.

또 지금처럼 추운 겨울이면 할매는 볏집으로 만든 조그마한 곡식창고에서 고구마를 꺼내 할배의 담뱃불을 붙이는 화로에다 넣어 노릇노릇 하게 구워 저의 입에 넣어주곤 했습니다.

또 마을에서 조금 떨어진 큰 정자나무 아래에서 어른들이 장기, 바둑을 둘라치면 할배에게 매미, 낄낄이(여치)를 잡아달라고 떼쓰던 곳이기도 했습니다.

지금은 없어졌지만 조금 멀리 아랫마을에는 기차가 다녔으며, 그 철길 아래에는 굴, 조개, 소라 잡는 바닷가 마을이 있었습니다. 거기에는 아버지가 태어나신 저의 큰집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고향 마을에는 아버지는 언제나 안계셨고 장사하시던 어머니는 저를 할매, 할배에게 맡겨 놓고 며칠이 지난 뒤 돌아오시곤 했습니다.

제가 말을 시작할 무렵 할매는 늘 저와 함께 있었습니다. 할매는 다리 하나가 없어 항상 목발을 짚었는데, 저는 괜히 심통이 나면 할매를 놀리면서 “나 잡아봐라”고 놀리다가 큰 외삼촌에게 크게 혼난 기억이 납니다.

그러나 할매는 혹시 착한 외숙모가 못된 내 버릇을 고쳐주려고 꾸중이라도 하시면 고함을 질러 착한 숙모님을 나무랐습니다. 그 때문에 지금도 외숙모님에게 항상 미안한 마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 책제목 "초가" 출판사 열화당
ⓒ 황헌만
또 할매는 내가 밖에 나가 놀다, 집으로 돌아오면 반닫이에서 홍시, 곶감 등을 내어 놓곤 했습니다. 다리가 하나뿐인 데도 할매는 안방에 베틀을 가져다 놓고 한발로 베를 짜시던 기억이 지금도 눈에 선 합니다.

할매가 베틀로 짠 삼베옷은 어쩌다가 맨살을 조금 찢어 놓을 때도 있었지만 까실까실하여, 여름에는 정말 시원하고 가벼운 옷이었습니다. 또 할배가 술 한잔 하시러 마을 점방(상회)으로 가실 때에는 손잡고 따라가 얻은 왕눈깔 사탕은 정말로 맛있었습니다. 그때는 돈 대신 쌀로 계산하기도 한 것으로 기억이 납니다.

▲ 책제목 "초가"출판사 열화당
ⓒ 황헌만
여름 밤에 할배는 마당에 모깃불을 피워 모기나 파리를 하늘로 내쫓았고, 할매는 모기장을 쳐서 모기에 물리지 않게 했습니다. 행여라도 제가 잠을 잘 때 모기가 들어올까 싶어 호롱불로 구석구석을 살폈던 기억도 생생합니다.

그때 어머니가 하던 장사를 동네 사람들은 '우녁장사'라고 불렀습니다. 우녁장사는 바닷가 삼천포에서 젓갈을 받아 머리에 이고 산마을인 함양, 거창, 산청의 고을장터마다 찾아 다니시며 젓갈을 파는 일이었습니다.

어머니는 제가 말을 하기 전에는 저를 업고 장사를 다녔다고 합니다. 등에는 나를 업고, 머리에는 젓갈을 이고 장사를 하셨습니다. 그래서인지 아직도 어머니는 허리가 아프다고 합니다.

어머니의 어린 시절, 천자문을 외시던 할배의 소리를 귀 기울여 들었나 봅니다. 저를 업고 장사를 하시다가, 손님이 뜸해지면 “하늘천, 따지, 검을현, 누루황, 집우, 집주…”라고 천자문을 가르쳐주었습니다.

그러나 정작 저에게 천자문을 가르쳐주신 어머니는 한문 뿐만 아니라 한글도 알지 못하는 까막눈이었습니다. 그러나 15년 전쯤 하나 뿐인 막내 여동생에게 한글을 배워 지금은 글을 읽을 줄 압니다.

어머니가 장사를 끝내시고 집으로 돌아올 때면 예쁜 옷과 고무신 그리고 삶은 땅콩, 깨엿 등 맛나는 것을 듬뿍 사가지고 오셨습니다. 그때의 저는 또래 친구들 사이에서 어머니가 사온 과자 덕에 정말 '왕'이었습니다.

그리고 저는 사실 그보다는 어머니의 냄새를 맡으며 잘 수 있다는 기쁨이 더 컸던 것 같습니다. 그때 어머니에게서 느껴진 진한 사랑의 향기는 제 아내가 자식들에게 베푸는 사랑과 똑같은 것이라 느껴집니다.

그러나 어머니는 며칠이 지나면 다시 장사를 하러 떠나셨고, 저는 다리 없는 할매에게 맡겨졌습니다. 어린 저는 그때부터 외로움을 탔나봅니다. 저녁때 쯤, 땅거미가 질 때면 배고픔보다는 어머니가 보고싶었습니다.

동네 밖 멀리서 차 소리만 들려도 마냥 밖으로 뛰어나가곤 했습니다.
그때의 저는 밖에서 놀 때는 또래아이들이 조금만 놀려도 우는 울보 였습니다. 어머니가 늘 제 곁에 없었기 때문입니다.

▲ 책제목"초가"출판사 열화당
ⓒ 황헌만
제가 여섯 살쯤이라고 기억됩니다. 그때도 어머니는 저와 며칠 밤을 지내고 장사를 하러 떠나야 했습니다. 어린 저는 오로지 어머니를 따라갈 궁리만 하고 있었습니다. 밤에 잘 때, 어머니가 사라질까봐 자지 않으려고 애쓰던 기억이 납니다. 그러나, 나의 바람은 어머니가 타고 가는 버스를 보는 순간 무너지고 말았습니다.

어머니는 모질게도 어지간히 떼를 쓰는 저를 뿌리치고 버스를 타고 가버렸습니다. 저는 애써 말리시던 할매의 손에서 벗어나 떠나가는 버스 따라 한참을 다람질(뛰어감)치던 일이 지금도 생각납니다.

그때를 생각하면 필자의 눈에 눈물이 돕니다. 그날 저는 아주 많이 울었습니다.

"할매!"
할매는 길가에 앉아 목발을 손에 든 채 어머니를 따라가려는 제 모습을 울면서 보고 있었습니다. 그때 옆집 할머니가 매로 겁을 주어 저를 달랬다고 합니다. 그 후 어머니가 장사하러 떠나실 때 그처럼 떼 쓰는 일은 없었던 것 같습니다.

▲ 책제목"초가" 출판사 열화당
ⓒ 황헌만
그 시절 어느 시골마을처럼 제 고향에도 정겨운 돌담들이 초가집을 감싸고 있었습니다. 제가 초등학교 1학년 때로 기억합니다. 돌담과 돌담사이의 길을 걸어가다 보면 모서리에 유난히 튀어나온 펑퍼짐한 큰 돌이 있었습니다.

장사 하러 떠난 어머니가 그리울 때에는 이 돌에 턱을 바치고 하늘을 물끄러미 쳐다보곤 했습니다. 햇빛이 쨍쨍 내리쬐는 여름날이라 기억됩니다. 그날도 어머니가 보고파 마냥 눈물이 나왔습니다.

그런데 어디서 할매의 메아리가 들렸습니다.
“남자는 울면 바보.”
그래서 저는 눈물이 나는 것을 참으려고 태양을 아주 오랜 시간 동안 쳐다보았습니다. 지금 안경잡이가 된 것도 그 때문인지 모르겠습니다.

그때 할매는 어머니를 향한 저의 그리움을 아는지 친손자, 손녀를 돌볼 겨를도 없이 항상 못된 외손자인 저를 정말 끔찍이 챙겼습니다. 할매는 엄마의 고생을 아부지(아버지)의 도자기 귀신병 때문이라 여기시며 아부지를 무척 싫어했나 봅니다. 그러나 할배는 달랐습니다. 할매가 할배에게 엄마의 신세를 한탄 할때는 언제나 “어험” 하시면서 할매를 꾸짖었습니다.

▲ 책제목"초가" 출판사 열화당
ⓒ 황헌만
저에게도 아련하지만 아버지의 기억이 약간은 남아 있습니다. 언젠가 시커먼 얼굴을 한 아저씨가 저를 덥썩 안고는 남몰래 눈에 눈물을 흘렸습니다. 저는 본능적으로 아버지임을 느꼈습니다. 그때 아버지는 두 입술을 꼭 깨물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며칠 후 다시 떠나셨다가 한참 후에야 돌아오셨습니다. 그래서 지금도 그 시절, 아버지 모습은 아련하기만 합니다.

▲ 필자의 어머니와 가마식구들
ⓒ 신한균
제가 초등학교 2학년 쯤 어머니는 그 동안 우녁 장사로 돈을 모아 부산의 어느 시장터에 무허가 판자집을 구했습니다. 부산으로 떠나는 이유는 오로지 저의 공부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나 저는 공부보다는 매일 밤 어머니와 같이 잘 수 있다는 소식에 이사가는 날만을 손꼽아 기다렸습니다.

그러나 막상 부산으로 이사가는 날, 그토록 그리던 어머니와 함께 살 수 있는데도, 그날 저는 많이 울었습니다. 왜냐하면 어머니만큼이나 그리운 할매와 같이 갈 수 없다는 사실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말없이 눈물로 키우던 외손자를 내주시던 그때의 할매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합니다.

“할매야, 보고 싶데이.”

부산으로 이사온 뒤에도 나의 어머니는 박상규님의 글처럼 세상의 모든 것을 다 받아안고, 소리 없이 조용히 그러나 한시도 멈추지 않고 끊임없이 흘러가는 강과 같은 존재였습니다.

그 뒤 몇 년이 흘러 아버님은 도자기로 성공하셨고, 어머니는 장사를 그만두고 아버지와 함께 살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몇 년이 흘러 제가 중학교 갈 때 쯤, 제가 외가에 살게 된 이유를 알게 되었습니다. 그것은 할매의 말처럼 도자기 귀신 든 아버지 때문이었습니다.

우리 나라의 옛사발 재현에 몸바치신 아버지는 저와 어머니 그리고 동생을 돌볼 겨를이 없어 어머니가 젓갈장사를 해 생활을 유지해야했기 때문에 외가에 맡겨진 것입니다.

▲ 필자의 아버지 "신정희"
ⓒ 신한균
아버지는 자신의 첫째 성공요인이 우리 외가의 소 때문이라고 하셨습니다. 할매가 잃어버렸다고 생각한 소를 할배가 몰래 팔아 아버지에게 준 돈이 많은 힘이 된 탓입니다. 지금도 아버지는 꿈속에서 할배를 만날 때면 가마에서 꼭 명작이 탄생된다고 하십니다.

어머니의 사랑과 교육열은 시골 촌놈이었던 저를 서울에서 대학과 대학원을 마치고 선생님(?) 소리를 듣는 그릇쟁이가 되게 했습니다. 지금 저는 아내와 경남 양산 통도사 아랫마을에 30년 전에 아버지가 지은 가마에서 부모님과 세 딸, 아들 그리고 10명의 제자와 도자기를 빚으며 같이 살고 있습니다.

▲ 아버님 작품에 평화의 메세지를 남기는 교황님
ⓒ 신한균
저의 어머니는 할매가 그랬던 것처럼, 아니 할매가 저에게 준 사랑을 보답하는지 내 자식뿐 아니라 내 동생의 아들인 조카 챙기느라 부산과 통도사를 왔다갔다합니다.

아버지, 어머니는 저에게 사랑과 그 사랑에 대한 성실성을 몸으로 가르쳐 주셨습니다. 특히 아버지는 거센 풍파를 이기는 굳센 기상과 도자기에 대한 끼를 소리없이 가르쳐 주었습니다.

▲ 아버님과 필자의 작업전경
ⓒ 신한균
하늘로 가신 지 오래 되었지만 할매, 할배의 깊은 정은 이 한 몸의 작은 가슴에 그대로 남아 있습니다. 굽이굽이 강이 흘러 가는 것처럼 할매, 할배의 사랑은 강을 따라 엄마, 아빠에게로 흘러왔고, 또한 그 강물은 끝없이 흘러 저에게 왔고, 내 사랑 또한 흐르는 강처럼 내 자식에게 흘려보낼 것입니다.

저도 언제간 어린 시절 할매, 할배의 그 정을 저의 손자, 손녀에게 마치 흐르는 강물처럼 흘려보낼 것입니다. 이 밤 박상규 기자의 글을 읽다가 상념에 빠져 어느덧 새벽 1시가 되었습니다.

다시 박상규 기자의 ‘못난 생을 살다 간 아버지’을 읽었습니다. 그때 박 기자의 아버님이 자식을 배신(?)하고 노름을 하러 가셨다고 하셨죠? 이해가 갑니다만, 제 생각은 조금 다릅니다. 아버님은 분명 노름판에서 돈을 따서 자식들에게 잘 해주고 싶은 욕망이 너무나 커 '노름'이라는 환상에 빠졌던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박상규 기자님, '서른 즈음에 떠난 여행' 도중 양산 통도사 아랫마을 아버님과 저의 가마에 들러 주세요. 여행에 지친 기자님에게 따뜻한 차 한잔과 저 가슴으로 빚은 다기 한 벌을 올려 오늘 밤 상념에 대한 보답을 하고 싶습니다.

덧붙이는 글 | 저는 도자기에 묻어 있는 일본 잔재를 청산하기 위해 '우리 옛그릇 이름 되찾기 운동'을 하고 있습니다. 일본학자기 왜곡한 우리 도자사를 바로잡을 뿐 아니라, 미학자들이 왜곡한 도자기의 본질을 사기장인 제가 바로잡기 위해 노력하며 책을 쓰고 있습니다. 여러분의 성원을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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