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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인, 지식인 혹은 스타들의 목소리만 넘쳐나는 속에서 진짜 이 사회의 주인인 노동자들의 목소리를 살려내고자 합니다. 노동자 개인의 삶을 인터뷰하면서, 어릴 적 꿈과 직장을 구하는 과정, 일터에서의 보람, 힘든 점, 그리고 노동자의 권리에 대한 의식의 변화 등을 중심으로 진솔한 삶을 기록합니다.[기자말]
"수업시간에 '고마운 분에게 편지쓰기'를 했다며, 아이들이 가끔 고맙다는 편지를 써서 전해 줄 때가 있어요. 참 예쁘죠. 일하는 곳이 학교이다 보니 아이들 커가는 모습 보는 게 즐거워요. 하루에 열 번을 마주쳐도 열 번 다 깍듯이 인사하시는 선생님들도 있는데, 그분들 보면 힘이 나죠. 가끔은 '이 큰 학교를 어떻게 이렇게 깨끗이 청소해 주시는지, 정말 깨끗해요'라는 말도 듣는데, 그럴 때면 보람을 느낍니다."

미화 노동자 양순자(60)씨가 근무하는 강릉중앙초등학교는 강원도에서는 가장 큰 초등학교이다.
 
학교 청소 노동자 양순자씨.
 학교 청소 노동자 양순자씨.
ⓒ 정현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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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들죠. 학교가 크다고 해서 미화노동자를 더 많이 뽑지 않으니까요. 학생 수가 감소하고, 학급 수도 줄고 있다면서 오히려 줄이는 학교도 있고요. 그렇지만 사람 수가 줄어든다고 건물이 작아지는 건 아니잖아요? 청소해야 할 면적은 그대로인데요."

학교비정규직 노조 강릉 청소원 대표 양순자씨는 14년째 학교에서 청소노동을 해오고 있다. 지금의 학교에서 일한 지도 10년 째 되었다. 그를 지난 10월 전화로 인터뷰했다.

그는 처음에는 용역업체 소속으로 일을 시작했다. 당시에는 학교에 소속되어 청소일을 했지만, 급여는 학교 밖에서 일을 알선해준 업체에서 받았다. 교육청에서 업체로 지급된 뒤, 업체에서 다시 노동자에게 지급되었다. 양순자씨가 처음 학교에서 일하기 시작한 2007년부터 효율적 학교 위생관리를 위해 전문 용역 업체로 청소노동을 이관했다. 하지만 노동의 질적 변화는 거의 없는 채로 업체에서 상당 부분을 수수료 명목으로 가져갔기 때문에 저임금 노동자만 양산되는 결과를 낳았다.

2011년 설립된 전국학교비정규직 노동조합(아래 학비노조)은 이 문제를 개선하기 위해 노력했고, 마침내 2018년 청소 노동자를 비롯한 학교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교육청에서 직고용하는 제도적 변화를 이뤄냈다. 이때 양순자씨는 '노동조합'의 힘을 알게 되었다. 노동조합은 이제껏 아무도 들어주지 않았던 그들의 목소리를 대변해준 것이다. 그해에 양씨는 학비노조에 가입했다.

어떤 노동은 10년씩 일해도 한 가정을 부양할 수 없다?
 

24세에 결혼생활을 시작해서 두 아이의 엄마로 8년 동안 가사와 육아를 전담했던 양순자씨는 32세부터는 집안의 생계도 책임져야 했다. 남편이 젊은 나이에 뇌혈관질환이 발병해서 일하기 힘들었기 때문이다. 학교 청소노동을 시작했던 2007년에는 그도 장년의 나이에 접어들어 있었지만, 한 가정을 경제적으로 책임져야 하는 상황은 마찬가지였다. 2010년부터는 지금의 강릉중앙초등학교에서 일했다. 10년이나 같은 직장에서 일했어도 그의 임금은 최저시급으로 계산되었다. 그나마 방학 중에는 주 3일 정도 일하게 하거나 아예 출근을 하지 않도록 했기 때문에 한 달에 40만~50만 원 정도의 급여를 받는다.

2018년 교육청 직고용으로 바뀌면서 사정이 좀 나아질 것으로 기대했으나 바뀐 것은 없었다. 오히려 상황은 더 나빠졌다. 직고용 이전에는 9시 출근해서 5시에 퇴근했으나, 퇴근시간이 한 시간 빨라졌다. 점심시간을 제외하고 근무시간이 7시간에서 6시간으로 줄었다. 하루에 필요한 노동의 총량은 그대로 있는데 노동시간이 줄었으니 노동 강도가 세졌다. 노동강도는 세지고 임금은 또 줄어든 것이다.

청소노동자 고용이 학교장 재량으로 바뀌면서, 학교 재정 부족을 이유로 각급 학교 교장들이 근무 시간을 줄인 것이다. 용역 인원도 줄여서 두 명이 하던 일을 한 사람이 하는 경우도 많다고 한다.

"청소 노동자들은 아무것도 모른다고 생각하는 것 같아요. 직위가 높거나 부유한 사람들이 '저러니 청소 일이나 한다'는 시선이 있는 것을 알고 있어요. 하지만 학교에서 일하니 똑같은 직원 아닌가요? "

때 묻지 않은 어린 학생들은 귀엽고 사랑스럽다. 줄어든 근무시간 때문에 노동 강도가 세지고 더 나빠졌지만, 학생들이 쓰는 공간이라는 생각에 학교의 모든 공간을 깨끗하게 유지하려고 애쓴다.

학생들 중에도 유독 인사를 잘하고 친절한 아이들은 이름도 기억한다. 가끔은 실습시간에 만든 음식을 가져와서 "이것 드셔보세요" 하기도 한다.

"학교에서 일하면서 아이들 미워하면 일 못하죠." 학년마다 다르지만, 어떤 해에는 아이들이 짓궂은 경우도 있다.

"아이들인지라 장난도 치고... 저는 못 들었는데, 저에게 욕을 한 아이가 있다며 아이들이 선생님께 말씀드려서 다 같이 와서 사과하는 일도 있었어요."

학생들에겐 지식을 배우는 것도 중요하지만, 깨끗한 공간도 꼭 필요하고, 주변의 이웃과 어우러져 살아가며 일하는 사람들을 존중하는 시민의 덕성을 갖추는 것은 더욱 중요하다. 노동자의 인권을 위해서도 또한 시민 교육을 위해서도 교육청과 학교는 청소 노동자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그들에게 정당한 대우를 해야 한다. 특히 방학 중 임금 지급 문제는 시급히 해결해야 한다. 방학 중이라 해서 노동자와 노동자 가족의 삶이 멈추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태그:#학교 청소 노동자, #청소 노동자, #비정규직, #여성 노동, #학교 비정규직 노동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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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 여 년의 교직 생활 경험을 바탕으로 구체적 절망과 섬세한 고민, 대안을 담은<경쟁의 늪에서 학교를 인양하라(지식과감성)>를 썼으며, 노동 인권, 공교육, 미혼부모, 입양 등의 관심사에 대한 기사를 주로 쓰고자 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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