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 월화드라마 <암행어사 : 조선비밀수사단>의 한 장면

KBS 월화드라마 <암행어사 : 조선비밀수사단>의 한 장면 ⓒ KBS2

 
지난 21일 첫 방송을 탄 KBS2 드라마 <암행어사: 조선비밀수사단>은 1회 초반에 끔찍한 장면을 보여줬다. 어사출도(出道) 뒤 지방 사또(최종원 분)의 비위 사실을 질책하던 암행어사(김승수 분)가 현장에서 괴한들의 집단 공격을 받고 칼을 맞는 장면이었다.
 
암행어사가 당한 이 참혹한 장면은 뒷부분에 나온 또 다른 장면과 대비됐다. 종6품 홍문관 부수찬 성이겸(김명수 분)이 암행어사 후보가 된 뒤 들뜬 모습을 보이는 장면이었다. 그는 암행어사로 파견될 생각에 마음이 벅차 어사출도를 흉내 내기도 했다.
 
우리 시대에는 일부 사극이 사실관계를 왜곡하지만, 조선시대에는 소설이 그렇게 했다. <춘향전>도 그런 소설 중 하나였다. <춘향전>은 이몽룡이 성춘향을 구출하는 대목에서 비현실적인 암행어사 출도 장면을 시끌벅적하게 묘사했다.
 
<춘향전> 속의 암행어사 부대는 악질 사또 변학도의 남원부 관청을 쑥대밭으로 만들었다. 통쾌하기 그지없는 이런 식의 어사 출도가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이런 일은 현실에서는 거의 발생하지 않았다. 민중을 통쾌하게 만드는 일이 비일비재하게 발생한다면, 그 나라는 아주 좋은 나라다. 조선왕조는 그 정도 나라는 아니었다.
 
어사출도란 말은 어사의 군대가 등장하는 일을 가리키는 게 아니라, 한자 출(出)에서 느껴지듯이 어사가 자기 신분을 드러내는 일을 가리켰다. 어사가 '암행' 상태에서 '공개' 모드로 전환되는 것을 어사출도라 했다.
 
 KBS 월화드라마 <암행어사 : 조선비밀수사단>의 한 장면

KBS 월화드라마 <암행어사 : 조선비밀수사단>의 한 장면 ⓒ KBS2

 
어사출도의 전형적인 방식은 문제가 된 관청으로 가서 서류 열람을 요구하는 정도였다. 어사가 호위병 몇을 데리고 관청 정문에 가서 신분증명서를 제시한 뒤 서류나 창고를 보여 달라고 요청하는 것이 전형적인 어사출도였다. 대부분의 어사출도가 이랬기 때문에 <춘향전> 스타일의 시끌벅적한 어사출도는 매우 드물었다. 그것은 울분에 찬 민중의 가슴 속에서만 비일비재했을 뿐이다.
 
그러다 보니 <암행어사: 조선비밀수사단> 초기 장면에서처럼 괴한들이 어사 부대를 공격하는 일도 찾아보기 힘들었다. 그렇다고 어사의 신변에 대한 위협이 거의 없었던 것은 아니다. 시끌벅적한 어사출도는 극히 드물었어도, 어사에 대한 위협은 상당히 비일비재했다.
 
수령 비위 적발보다 위험했던 아전 비리 적발

조선 후기 영조 때인 1763년이었다. <영조실록>에 따르면, 그해 4월 15일(음력 3월 3일) 44세의 홍양한(洪亮漢)이 호남 암행어사로 선발됐다. 3월 17일(음력 2월 3일)에 지금의 검사와 비슷한 종5품 사헌부 지평에 임명됐으니, 홍양한은 드라마 속의 성이겸보다 품계가 2단계 정도 높았다. 참고로, 암행어사 홍양한을 이 해에 대사간(감사원장 비슷)이 된 홍양(良)한과 혼동해서는 안 된다.
 
가장 우수한 과거 급제자들이 거치는 코스가 사헌부·사간원·홍문관이었다. 그랬기 때문에 사헌부 지평 홍양한은 똑똑하게 보였을 수도 있다. 그런 그가 암행어사의 전형적 차림새인 폐포파립(敝袍破笠, 낡은 도포, 찢어진 갓) 상태로 지방 실정을 물어보며 여행했다면, 현지 주민들의 관심을 적지 않게 끌었을 수도 있다.
 
그가 지금의 전북 정읍시 태인면인 전라도 태인현에 갔을 때였다. 이곳에서 정탐 활동을 벌인 그는 현지 관청의 비위 사실을 파악하게 됐다. 그가 적발한 것은 사또가 아닌 아전(서리)들의 횡령이었다. 음력으로 영조 39년 4월 23일자(양력 1763년 6월 4일자) <영조실록>에 따르면, 서리들이 횡령한 관용 곡물은 무려 수천 석에 달했다.
 
드라마나 소설에서는 지방 사또들의 부정부패가 주로 묘사되지만, 실제로는 아전들의 비리가 훨씬 많았다. 중하급 아전들은 주로 관노비(공노비)였기 때문에 원칙상 무보수로 근무했다. 그래서 뇌물을 받거나 공금에 손대는 일이 많았다. 거기다가 사또와 달리 임기제가 아닌 종신제였기 때문에 동료 아전들과 유착해 비리를 저지르기도 쉬웠다.
 
그런 아전들의 비위를 적발하는 일은 지방 수령의 비위를 적발하는 일보다 위험했다. 사또는 지역적 연고가 없는 경우가 많았지만, 아전들은 지위는 낮지만 지역적 연고가 두터웠다. 그래서 암행어사가 현지로 들어가 그들의 비리를 들춰내면 신변의 위협을 받기가 쉬웠다. 홍양한은 그런 상황 속에서 활동해야 했다.
 
어사출도 전에 변을 당한 홍양한
 
 KBS 월화드라마 <암행어사 : 조선비밀수사단>의 한 장면

KBS 월화드라마 <암행어사 : 조선비밀수사단>의 한 장면 ⓒ KBS2

 
태인현 아전들의 범법 사실을 포착한 그는 어사출도를 준비했다. 그런데 끼니를 때운 뒤 어사출도 할 목적으로, 그 직전에 점심을 먹었다. 메뉴는 국밥이었다. 객지였으니, 주막 같은 데서 먹은 듯하다. 이 식사는 그의 생애 마지막 식사가 됐다. 위 날짜 <영조실록>은 "점심밥을 먹은 일로 인해 갑자기 죽었다"고 알려준다.
 
당시 여론은 태인현 직원들을 겨냥했다. 태인현감과 서리들을 의심하는 목소리가 높았다. 그래서 형조가 수사에 착수했지만, 증거가 나오지 않아 흐지부지됐다. 어사를 수행한 사람들이 "어사께서 드시고 남은 국밥을 저희들이 먹었습니다"라고 진술한 데다가 형조 역시 독살 증거를 찾아내지 못했기 때문이다.
 
임금 혼자만 어사 파견을 주관한 게 아니었다. 삼정승 혹은 동급의 기구가 후보를 추천하고, 승정원(비서실)이 실무 처리를 진행했다. 그래서 임명 단계에서부터 비밀이 새는 경우가 많았다.
 
또 한양에는 말을 타고 지방으로 가서 어사 파견을 귀띔해주는 사람들도 있었다. 그래서 어사가 도착하기 전에 현지 관청에서 만반의 준비를 갖추는 경우가 비일비재했다. 당시 사람들이 홍양한의 죽음을 독살로 의심했던 것은 그래서였다. 사전에 신분이 노출됐기 때문에 어사출도 전에 변을 당했으리라는 추론이 나왔던 것이다.
 
신분을 밝힌 뒤에도 봉변을 당했던 어사들

홍양한의 사례는 어사 신분이 공개되기 전에 위협이 가해진 케이스인 데 비해, 지금 소개할 또 다른 사례는 신분이 드러난 뒤에 위협이 가해진 케이스다. 순조 때 암행어사인 권준의 사례가 그것이다.
 
정조가 죽고 10세 된 순조가 왕이 된 지 2년이 흐른 1802년 상반기에 권준은 경상도 암행어사로 임명됐다. 그는 이전에 강원도 암행어사를 역임했었다. 1801년 10월 22일(음력 9월 15일) 당시에는 사간원 정언(정6품)으로 근무했다. 홍양한보다 1단계 정도 낮은 관료였다.
 
경상도에 간 암행어사 권준은 안동에서 봉변을 당할 뻔했다. 하마터면 포승줄에 묶일 뻔했던 것이다. 그곳 군대 사령관인 안동영장 김치준이 그를 가짜어사로 간주하고 포박 절차를 준비했기 때문이다. 그 직후의 상황은 실록에 기록돼 있지 않다.
 
순조 2년 4월 20일자(1802년 5월 21일자) <순조실록>에 따르면, 그 뒤 김치준은 한양으로 압송돼 문초를 받았다. 만약 거꾸로 권준이 김치준에게 포박돼 압송됐다면, 그는 폐포파립 차림으로 갔던 노선을 포승줄에 묶인 채 다시 밟아야 했을 것이다.
 
암행어사로 부임하기도 전에 어사 흉내를 내는 드라마 속 성이겸처럼, 조선시대 사람들 사이에는 어사 행세에 대한 일종의 환상이 있었다. 그래서 폐포파립 차림으로 어사 행세를 하고 다니며 이런저런 대접을 받는 사람들도 있었다.
 
그래서 지방 관원들은 낯선 사람이 암행어사처럼 보이면 진짜인지 가짜인지부터 판단해야 했다. 이런 분위기를 악용해 일부 관원들은 진짜 어사인 줄 알면서도 일부러 가짜어사로 몰아 포박하고 때리기도 했다.
 
권준은 다행히 포박을 면한 것으로 보이지만, 상당수 어사들은 신분을 밝힌 뒤에도 봉변을 당했다. 그래서 경험이 좀 있는 어사들은 어사 신분을 밝히기 전에 '저 사람들이 허리를 숙일 것인가 아니면 가짜어사로 오인하고 혹은 가짜어사로 몰아 나를 공격할 것인가'도 계산해둬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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