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24 18:49최종 업데이트 20.12.24 19: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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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비스 프레슬리가 소아마비 접종을 맞을 당시 사진을 실은 미국의 정치전문지 <폴리티코> ⓒ politico

 
지난주부터 TV를 켜면 하루에도 몇 번씩 보게 되는 이벤트. 

"닥터 나탈리에, 준비되셨나요? 
"네, 준비됐습니다. 그럼 시작하겠습니다."


"방금 접종을 마치셨는데 기분이 어떠신가요?"
"흠. 독감 백신 맞을 때처럼 좀 따끔했어요. 기분은 좋아요. 이젠 더 안심하고 환자를 만날 수 있겠습니다."


12월 14일 오전 9시 23분 뉴욕 병원에 근무하는 간호사 샌드라 린지가 미국 최초로 코로나 백신을 접종했다. 그리고 아흐레째가 된 지난 23일까지 약 100만여 명 이상의 미국인이 백신을 맞았다. 코로나 환자를 치료하는 의료인과 요양 시설 수용자가 1순위다. 

하지만 백신에 대한 의심은 여전하다. 이들을 설득하려고 언론이 나서고 있는 모양새다. 

일선 간호사부터 대통령 당선인까지

지난 한 주 동안 정치 전문지 <폴리티코>발 엘비스 프레슬리의 1956년 흑백 사진이 미국 언론을 장식했다. 매끈하게 머리를 넘긴 21살의 잘생긴 청년 엘비스가 전설적인 설리번 쇼에 출연하기 전 무대 뒤에서 소아마비 주사를 맞는 장면이었다.  

"인기 가수와 스타들은 분명 그 팬들에게 어필할 거라고 생각했어요. 우리는 엘비스가 적임자라고 믿었죠."

​엘비스 프레슬리의 소아마비 접종을 도왔던 당시 보건부 직원 루스 대버, 올해 91세인 그녀는 64년 전 그 날을 회상했다. '엘비스가 소아마비 정복을 도왔을 때'란 기사의 제목처럼 전설적인 로큰롤 가수의 공개 접종 이후 미국 청소년의 소아마비 백신 접종 비율은 0.6%에서 80%로 증가했고 지금 지구에서 거의 사라진 질병이 되어 있다. 

​60여 년 전 경험은 지금 코로나 백신에도 적용 중이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당선인이 21일(현지시간) 델라웨어주 뉴어크의 지역병원 크리스티아나 케어에서 화이자-바이오앤테크가 공동 개발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백신을 공개적으로 접종받고 있다. ⓒ 연합뉴스

 
"이것은 굉장한 희망입니다. 모두 접종해야 한다는 것을 알리기 위해 내가 여기에 선 것이지요. 걱정하지 마세요, 나와 아내는 나머지 두 번째 주사도 기다리고 있으니까요." 

12월 21일 바이든 대통령 당선인이 TV 생방송에 나와 팔을 걷어붙였다. 지금 미국에서 가장 '중요한' 인물인 차기 대통령 당선인이 직접 백신을 맞는 장면을 미국민들에게 보여주기 위해서다. 아내인 질 바이든 여사와 함께 백신을 맞은 78세 당선인은 빠른 접종이 가능하게 해 준 이들에게 감사를 표했다.  

​"우리는 이들에게 엄청난 빚을 지고 있습니다. 과학자들과 이 모든 걸 종합한 사람들, 최전방 노동자들, 실제로 임상 작업을 한 사람들. 정말 놀랍고 감사한 일이지요."

대통령 당선인의 접종 다음 날인 22일엔 국립 알레르기·전염병 연구소 파우치 소장도 공개 접종을 자처했다. 지난 10월 부통령 후보 토론에서 파우치 박사가 권한다면 기꺼이 백신을 맞겠다고 카멀라 해리스가 말했던 그 사람이다. 올해 79세인 베테랑 감염병 전문가는 팬데믹 시기 미국인의 신망을 한 몸에 받고 있는 '미국의 정은경'과 같은 존재다.  

"나는 이 백신의 안전성과 효능에 큰 자신감을 갖고 있습니다. 이 백신을 접종할 기회를 가진 모든 사람들에게 이 대유행을 종식할 수 있게 협조 부탁드립니다."

백악관을 대표해서는 트럼프 대통령을 건너뛰고 펜스 부통령이 공개적으로 백신을 맞았다. 12월 18일 깜짝 백신 접종을 한 펜스 부통령은 현 정부 코로나19 바이러스 태스크포스 의장이다. 역시 아내와 함께 접종을 마친 그는 지켜본 이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역사적인 한 주가 끝나는 지금 우린 희망의 길을 가고 있다고 미국인들에게 확언합니다. 이번 주부터 시작된 접종으로 미국 국민들이 안전하게 나아갈 수 있게 돼 무척 기쁩니다."

다음 날 시사 코미디 프로그램 <새터데이 나잇 라이브>(SNL)에선 펜스 부통령의 백신 접종을 조롱했다. 이미 곳곳에 코로나바이러스를 퍼트린 사람이 뒤늦게 백신을 맞은 거라면서. 하지만 더 많은 언론은 부통령의 공개 접종이 지닌 긍정적인 의미에 주목했다.  

<시엔엔>(​CNN)은 과학자가 안전하다고 하고 정부가 무료라고 선전하더라도 공화당원의 42%가 코로나19 백신을 접종하지 않을 것이라는 카이저 헬스의 조사 결과를 보도했다. 공화당원 85%의 지지를 받고 있는 펜스 부통령의 접종이 백신을 의심하는 이들에게 일정 부분 확신을 줄 수 있다는 것이다. 

정쟁보다도 어쨌든 지금은 하루라도 빨리 한 명이라도 더 접종해야 하기 때문이라는 공감대가 극우 편향의 <폭스뉴스>를 포함한 대다수 언론에 형성되어 있다.  

'알고리즘'에 밀린 최전선 의료진

미국에 본사를 두고 있는 제약회사 화이자의 백신이 영국에서 제일 먼저 접종된다는 뉴스가 12월 초에 나오자 미국이 발끈했다. 세계에서 가장 많은 확진자와 사망자를 두고 왜 다른 나라가 먼저냐는 것이다. 

영국은 이미 서방 국가로는 처음으로 화이자와 독일의 바이오앤테크가 공동 개발한 백신에 긴급 허가를 내준 상태였다. 2000만 명에게 접종할 수 있는 백신을 주문했고 지난 8일부터 요양원 노인들과 그들을 돌보는 사람들, 의료 종사자들 순으로 접종하고 있다. 그러나 영국에서 코로나19 변종 바이러스가 발견된 지금 뉴욕을 비롯한 전 세계 공항에서 영국발 항공기는 입국 금지나 요주의 대상이 된 상태다.  

"우리를 제일 먼저 접종을 해주겠다고 했어요, 그것도 여러 번이나. 그 약속을 믿고 우리가 여기서 일했던 거고요."

12월 18일 금요일 스탠퍼드 메디컬 센터 의사와 간호사들 100여 명이 병원 관리자들을 향해 병원 내 시위를 벌였다. 가장 많이 눈에 띈 구호는 '7/1349'. 이 병원에 도착한 백신을 접종할 대상자 중에 현장에서 일하는 의료진은 단 7명만 접종자로 뽑힌 데 반해 재택 근무자를 포함한 병원 고위 임원들 1349명이 1차 백신 대상자가 된 것에 대한 항의였다. 

병원 측은 이런 결과가 컴퓨터의 알고리즘 때문이라고 변명했다. 스탠퍼드 대학 측은 질병통제예방센터(CDC) 방침에 따라 의료진과 노년층 우선 접종 알고리즘으로 추첨했는데 결과가 이렇게 나온 것일 뿐이라고 했다. 비난이 폭주하자 병원은 배당된 백신 1차분을 프런트라인 간호사와 의사들에게 먼저 접종하도록 했다. 

​백신의 효과에 대해 아직 반신반의하지만 암시장에서 백신이 거래된다는 뉴스도 나오고 있다. CBS 인사이드 에디션(Inside Edition)은 부유층이 자신들의 패밀리 닥터를 통해 백신을 구하려 한다는 소식을 전했다. ABC 시카고 로컬 뉴스는 북 일리노이와 시카고 등지에서 벌써 백신 사기 관련한 보고가 접수되고 있다고 보도했다. 
 

백신을 맞고 기자회견을 하던 테네시주의 간호사가 잠시 기절했다. 간호사가 직접 자신의 지병을 밝히며 설명했지만 백신 효과를 의심하는 영상으로 쓰이기에 충분했다. ⓒ 유튜브 영상 캡처

 
반면 백신에 대한 불신도 여전하다. 백신을 맞고 기자회견을 하던 테네시주의 간호사가 잠시 기절했다. 간호사가 직접 자신의 지병을 밝히며 설명했지만 백신 효과를 의심하는 영상으로 쓰이기에 충분했다. 여기에 인종 간 편차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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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인이 많이 사는 우리 지역은 백신을 안 맞겠다고 해서 걱정이에요."

​뉴욕 ​브롱크스의 한 병원에서 간호사로 일하는 지인의 우려처럼 인종 별로 백신에 대한 신뢰가 차이 난다. 퓨 리서치 조사에 따르면 흑인의 42%만이 백신 접종 의사가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히스패닉 63%, 백인 61%, 아시아계 83%에 비해 현저히 떨어지는 숫자다. 뉴욕 병원에 근무하는 흑인 간호사 샌드라 린지가 미국인 첫 접종자가 된 것도 이와 관련이 있다. 

그러나 이들의 불신엔 충분한 근거가 있는데 터스키기 실험이 대표적이다. 1932~1972년 사이 앨라배마주 터스키기에서 미국 공중보건국(USPHS)이 600여 명의 흑인 남성을 대상으로 매독 치료와 관련한 생체실험을 했다. 이 과정에서 당국은 병을 치료해 준다고 속여 실험 동의서를 얻어 냈다. 

​"그것은 우리 과거의 정말 끔찍한 부분이었고 우리 역사의 끔찍한 부분이었어요."

​이 지역에서 활동하는 목사의 말처럼 클린턴 대통령이 사과까지 했지만 지금까지도 불신이 남아 있다. 미국의 백신 접종률 저하에는 흑인 차별의 역사도 일조하고 있다.

미국의 유일한 선택

"여름이 끝날 때까지 이 나라 국민 압도적인 다수가 백신 접종을 받을 수 있다면 우리 모두가 정상으로 돌아가게 될 것입니다."

​파우치 박사의 바람처럼 집단 면역을 위해선 75% 이상의 미국인이 백신을 접종해 코로나19에 면역이 되어야 한다.

바이든 당선인은 취임 100일 안에 미국인 5천만 명 접종을 목표로 백신 접종에 매진하고 있다.

"약 3억 2천만 명의 미국인에게 백신을 접종하는 데는 수개월이 더 걸릴 것입니다. 그동안 전염병은 계속 맹위를 떨칠 것이고 전문가들은 더 나빠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12월 23일 미국 정부는 두 번째 화이자 백신을 주문했다. 앞서 주문한 모더나까지 미국인 2억 명이 접종할 양이다. 내년 7월까지 두 회사에 4억 개를 주문한 상태다. 백신은 확진자 1800만 명, 사망자 32만 명인 미국의 지금 유일한 희망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당선자는 백신이 앞으로 몇 달 동안 수만 명의 미국인들의 죽음을 막을 수는 없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크리스마스가 그 분기점이 되길 간절히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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