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28 07:33최종 업데이트 20.12.28 23: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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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행자. 인상이와 인효 ⓒ 송성영

 
"에이그 그지 새끼덜!... 아니지, 그람 내가 그지네."
"크크큭 그러네. 그지 새끼의 아버지니께..."
"아빠 꼬라지도 거지지 뭐."


황소바람 들이치는 낡고 허름한 부엌의 싱크대 앞에서 작은 아들 송인상은 저녁 준비를 하고 큰아들 송인효는 아궁이 앞에 쪼그려 앉아 불을 지피고 있습니다. 인효의 산발한 긴 머리채처럼 매캐한 연기가 정신 사납게 흩날리고 있습니다. 두 아들의 모습이 영락없이 집도 절도 없이 떠도는 거지꼴이었지만 서로 거지같다며 낄낄거리는 모습이 불행해 보이지는 않습니다.


지 애비가 암 판정을 받고 병원에서 퇴원할 무렵 5년 넘게 피웠던 담배를 가차 없이 던져 버렸던 두 아들, 산막을 에워싸고 있는 소나무 숲에 텐트를 쳐 놓고 녹슨 가마솥까지 걸어놓았습니다. 초등학교에 다닐 무렵 집 뒤 산기슭에 나뭇가지로 얼기설기 아지트를 지어놓고 놀았던 것처럼 말입니다. 두세 살 무렵부터 시작한 산골 생활에 잔뼈가 굳은 녀석들입니다.

이십대 중반에 접어든 두 녀석의 아지트는 어린 시절에 비하면 한층 업그레이드되었습니다. 한 겨울에는 두터운 침낭에 의지해 겨울잠 자는 곰처럼 텐트에 박혀 심란한 마음을 바로잡기 위해 명상을 하거나 지 애비 건강을 위해 마음을 한데 모아 기도를 올리기도 했습니다.

두 녀석 모두 노래를 만들고 부르는 싱어송라이터로 활동하고 있는데 때론 가마솥에 불을 지펴 언 손 비벼가며 기타는 물론이고 주변에 나뒹구는 온갖 잡동사니를 악기 삼아 두들겨 대며 나름 맺힌 마음을 풀어내기도 했습니다.

특히 그 해 한겨울은 혹독했습니다. 마루에 떨어진 물 몇 방울이 금세 얼어버렸고 산막 근처 약수터에서 받아온 생수통은 꽝꽝 얼었습니다. 허드렛물은 산막 저 멀리에서 물 호스를 연결해 쓰고 있는데, 강추위가 몰아닥치면 비상용으로 미리 함지박에 받아놓는 그 물마저 꽝꽝 얼어버립니다.
 

두 아들은 매일 이른 새벽에 일어나 언 손을 비벼가며 어지간한 강추위에도 얼지 않는 우물물을 퍼 올려 힘겹게 아침 식사를 준비했습니다. ⓒ 송성영

 
그럼에도 두 아들은 매일 이른 새벽에 일어나 언 손을 비벼가며 어지간한 강추위에도 얼지 않는 우물물을 퍼 올려 힘겹게 아침 식사를 준비했습니다.

"짜식들, 힘들지?"
"아니. 괜찮아, 할 만해..."


병든 지 애비 봉양하기 위해 고된 겨울을 보내면서도 힘든 내색 않는 녀석들에게서 나의 젊은 시절, 어느 노스님의 허름한 암자에 머물면서 행자 아닌 행자 생활을 했던 기억이 떠올랐습니다.

절집 행자라 마음먹고 아빠의 죽음 극복을 지켜봐라

"니들 이제부터 절집 행자라 여기면서 아빠의 죽음을 지켜봐라. 니들 한티 큰 인생 공부가 될 거다."
"에이 참, 왜 자꾸 죽는다고 그려."
"죽겠다는 게 아니라 배수진을 치는 거지. 그럼 좋다. 죽음 대신, 아빠의 구사일생 죽음을 극복하는 과정을 지켜봐라."
"그 말이 훨 낫구먼."

"니들 따로 생활하면 아빠 때문에 맘이 편치 못할 것이니께, 6개월 정도만 같이 살아보자."
"좋지."
"아빠도 절집 행자처럼 생활할게."
"좋아, 그렇게 혀."

"그렇다고 니들이 무조건 아빠 한티 헌신하면 안 된다. 그건 아빠가 원치 않는 것이고 그렇게 하면 아빠가 부담 되니까 오히려 건강에도 좋지 않을 거다. 힘들겠지만 평소처럼 노래를 만들고, 니들이 하고 싶은 거 하면서 생활해야 한다. 몸과 마음을 모아 좋지 않은 습을 버리고 절집 행자처럼 생활을 하다보면 아빠뿐만 아니라 앞으로 너희들 인생살이에도 큰 도움이 거라 본다. 노래도 훨씬 깊어질 거고."


행자 아닌 행자 생활에 접어든 두 아들은 절집 행자 생활이나 다름없이 혹독한 겨울을 보냈습니다. 피를 쏟고 쓰러진 이후 축축 쳐지는 지 애비 몸을 일으켜 세워 조석으로 산책을 시키고 꽁꽁 언 함지박 얼음을 깨서 언 손 비벼가며 삼시 세끼 마련하고 저녁마다 아궁이 불을 지펴 가마솥 물을 대령해 족욕을 시켜 주고 어쩌다 행자 스님 탁발 나가듯 노래 공연이 있는 날이면 그 차가운 물로 푸덕푸덕 세수며 머리를 감기도 했습니다.
 

두 녀석 모두 노래를 만들고 부르는 싱어송라이터로 활동하고 있는데 때론 가마솥에 불을 지펴 언 손 비벼가며 기타는 물론이고 주변에 나뒹구는 온갖 잡동사니를 악기 삼아 두들겨 대며 나름 맺힌 마음을 풀어내기도 했습니다. ⓒ 송성영

 
행자 생활을 빈틈없이 실행하기 위해 삼부자가 머리를 맞대고 일일 계획표까지 짰습니다. (아침에 일어나 참기름으로 입안을 헹궈 내는 오일 풀링을 시작으로 한약복용, 두유에 마 넣고 갈아 마시기, 아침 식사, 산책, 명상, 점심식사, 맨발 산책 겸 기혈운동, 명상 혹은 글쓰기, 저녁식사, 산책, 족욕, 국선도, 취침)

거기다 절제해야 할 음식들, 맵고 짠 음식과 밀가루 등의 탄수화물 많은 음식, 튀긴 음식, 화학조미료나 설탕이 첨가된 음식 등 술 담배를 비롯해 발암물질이 있다고 판단되는 온갖 유해한 음식들을 절대 먹지 않기로 두 아들과 약속했습니다.

"우리 삼부자 행자생활 하자 했으니 이 약속은 철저하게 지켜야 돼. 절집에서의 계율처럼."

이 계율은 내가 암세포에게 잡아먹히느냐 아니면 암을 극복해 가며 새롭게 거듭 태어나느냐를 좌지우지할 것이었습니다. 깨달음을 얻기 위해 팔정도를 비롯한 온갖 계율을 지켜나가는 수행자처럼 자연치유에 유용한 온갖 계율들을 철저하게 지켜 나가기로 마음먹었습니다.

하지만 그게 어디 말처럼 쉬운 일이겠습니까. 평생 동안 몸에 배어있는 달콤, 짭짤, 고소한 식습관들이 시시때때로 유혹의 손길을 내밀었습니다. 깊은 명상에 잠겨있는 싯다르타에게 끊임없이 유혹을 했던 악귀, 마라처럼 내 귀에 대고 속삭였습니다.

'저거 찹쌀 도넛 맛있게 생겼다. 하나만 먹어봐라, 니가 좋아했던 거잖아. 한 개 정도는 괜찮아. 저거 먹는다고 당장 죽기라도 하겠어?'

일일 생활계획표 짜놓고 수행자의 계율처럼

그럴 때 마다 두 아들의 눈초리가 매섭게 변합니다. 평소에 내가 노스님처럼 잔소리를 해댔지만 나의 몸과 마음이 계율을 어기고 늘어질 때면 두 아들(이후 행자로 표기)이 여지없이 제동을 걸어왔습니다. 죽비를 든 큰 스님처럼 내 머리통을 후려쳤습니다.

내가 평소 즐겨 먹던 빵이며 염장식품. 생선회, 튀긴 음식 등등은 두 행자의 요주의 금지 식품들이었습니다. '이건 소금이 많이 들어가 있어서, 저건 설탕이 너무 많이 든 음식이라서, 밀가루라서, 기름에 튀긴 음식이라서, 탄수화물이 많고 탄 음식이라서, 또 저 과일은 농약 범벅이라 안 되고..." 먹어야 하는 음식보다는 먹으면 안 되는 음식이 더 많습니다.

눈치껏 두 행자가 금지시킨 음식을 먹다가 들키면 죄지은 악동처럼 멋쩍게 씨익 웃곤 하는 버릇까지 생겼습니다. 큰 행자 어렸을 때 뭔가 사고를 치다가 들키면 그랬듯이 말입니다. 큰 행자의 잔소리는 그런대로 봐줄만 합니다. 말투가 군더더기 없이 단순 명료한 작은 행자는 나를 거의 곰순이(우리 삼부자와 16년을 함께 살다간 개) 대하듯 했습니다.

"어, 그거 먹으면 안 되지! 뱉어 얼릉 뱉어!"
밥 먹고 잠깐 비딱한 자세로 벽에 기대 있기라도 하면 곧장 직설이 날아옵니다.
"눕지마, 일어서! 얼른 일어서!"
"이 자식이 시방 곰순이 훈련시키냐?"
"아빠는 마음이 약해서 훈련 좀 받아야 해."
"뭔 훈련을 받아 인마."
"특히 음식 조절하는 것을. 저번에도 아저씨들 하고 밥 먹으러 갔다가 밤새 고생 했잖어."


자연치유를 하려면 식이요법이 그 무엇 보다 중요합니다. 그럼에도 주변 사람들이 식사를 대접 하겠노라 찾아오면 그 성의가 고마워 거부하지 못했습니다. 지금은 매정할 정도로 거절하지만 자연요법을 시작하고 서너 달이 지날 때 까지 그 고마운 손길에 못 이겨 쫄래쫄래 식당에 따라 나섰다가 조미료 범벅 음식 때문에 자다가 일어나 입안을 물로 헹궈 내야할 정도로 고생하곤 했습니다.

그렇게 두 행자의 까다로운 눈초리 덕분에 암 판정과 함께 그 혹독한 첫 겨울, 식이요법 3개월 만에 유해한 화학조미료나 튀긴 음식 등이 몸에서 거부반응을 보이기 시작했던 것입니다. 내 몸에 좋지 않은 온갖 첨가물들이 들어있는 식당 음식에 예민하게 반응한 것은 그만큼 몸이 좋아지고 있다는 반증이기도 했습니다.

나를 죽이는 것은 나 자신

2020년 12월 하순 현재. 암 판정 받고 자연치유를 시작한지 세 번째 겨울, 첫 겨울 만큼 추위가 몰아치고 있습니다. 암환자에게는 무엇보다도 체온 유지가 중요합니다. 저 멀리서 흘러오는 물 호스는 이미 꽁꽁 얼어버렸습니다. 손발이 차가워지기 시작합니다. 몸의 체온이 떨어지면 위암 증세 중에 하나인 속 쓰림이 몰려옵니다. 밖으로 나섰다가 다시 아랫목으로 기어들어와 주섬주섬 양말을 꿰다 살과 뼈가 만져집니다.

바위처럼 단단한 뼈다귀에 찰진 살점이 산처럼 붙어 있고 핏줄기가 강물처럼 흐른다 하여 살아 있다 말할 수 있는 것인가. 매일매일 반복되는 일상. 거기다가 코로나19로 꼼짝없이 산막에 갇혀 지내야 하니 어제의 나와 다를 바 없는 복제품을 생산해 내는 시간의 공장에 갇혀 있다는 생각이 들곤 합니다. 그럼에도 언 손 비벼가며 그 무언가로 고장 난 위장을 채워야 하루를 보낼 수 있습니다.

체감 온도 영하 15도. 방안 온도 영상 7도. 두더지처럼 자꾸만 자꾸만 아랫목으로 파고들고 있는 몸을 일으켜 세웁니다. 그해 첫 겨울과 봄여름을 함께 보내고 서울에서 1년 정도 생활하다가 다시 산막으로 돌아온 두 행자. 작은 행자는 얼마 전 강원도 철원 훈련소로 입대했고 큰 행자 송인효는 요즘 엠넷에서 방송중인 포크송 경연대회에 참가 하고 있어 서울 발걸음이 잦습니다. 두 행자가 곁에 없을 때는 그 누구도 날 일으켜 세워 줄 사람이 없습니다.
 

지게 작대기로 머리통을 후려 패서라도 처진 몸을 스스로 일으켜 세워야 합니다. 몸은 움직여 줘야 살아납니다. ⓒ 송성영

 
하지만 지게 작대기로 머리통을 후려 패서라도 처진 몸을 스스로 일으켜 세워야 합니다. 몸은 움직여 줘야 살아납니다. 그 계율을 지켜야 합니다. 나를 죽이는 것은 외부 조건이 아닙니다. 나 자신입니다. 그 누구도 그 어떤 환경조건도 아닌 바로 내가 나를 죽이는 것입니다. 나를 살리는 것 또한 그 누구도 아닌 나 자신입니다.

몸을 일으켜 세워 밖으로 나섭니다. 온몸으로 달라붙는 한기를 떼어내며 평소처럼 지게를 집니다. 지게 작대기를 앞세워 땔감을 구하려 숲으로 들어서는데 눈보라에 잔뜩 웅크린 새 한 마리가 가느다란 나뭇가지에 숨은 그림처럼 앉아 있습니다. 깃털 하나로 한 겨울을 보내고 있습니다.

겨울새

친구여
사는 게 힘들다
웅크리지 말게나
눈보라 차갑게 엉겨 붙는
나무 가지에
숨은 그림처럼
앉아 있는 새 한 마리
오롯이 깃털 하나로
한겨울을 노래하고 있다네

 

나를 죽이는 것은 외부 조건이 아닙니다. 나 자신입니다. 그 누구도 그 어떤 환경조건도 아닌 바로 내가 나를 죽이는 것입니다. 나를 살리는 것 또한 그 누구도 아닌 나 자신입니다. ⓒ 송성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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