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19 13:00최종 업데이트 20.03.19 19:16
  • 본문듣기

코로나19 확산에 무기한 폐쇄된 프랑스 파리 에펠탑. ⓒ 연합뉴스/EPA


[기사 수정: 19일 오후 7시 15분]

2월 중순, 12명의 코로나19 확진자가 완치되고, 확진자 제로를 선언한 지 불과 열흘이 지나지 않아, 프랑스는 이탈리아에서부터 밀어닥치기 시작한 거대한 파도를 마주했다. 그 실체가 또렷히 잡히지 않던 코로나19 시즌1이 끝나고, 한번도 경험하지 못한 시즌2의 서막이 3월부터 열렸다. 2월 29일 확진자 100명을 기록한 후 3월 18일(현지시각) 현재, 7730명의 확진자와 175명의 사망자가 나온 프랑스는 대대적인 코로나와의 전쟁에 돌입했다.


3월 12일 탁아소부터 대학까지 모든 보육, 교육기관의 휴교를 선언한 데 이어 3월 14일엔 다음날부터 레스토랑, 까페(테이크아웃, 배달 영업은 가능)를 비롯한 대부분의 상업시설을 폐쇄하고 100인 이상의 회합 금지가 결정되었다. 이틀 뒤인 3월 17일엔 마침내 프랑스 전역에 통행제한 조치가 취해지기에 이르렀다.

불과 닷새 동안, 세 번에 걸쳐 대통령과 총리가 번갈아 등장하며 긴급 조치를 한단계씩 상향시킨 셈이다. 3월 16일 텔레비전에 등장하여 이탈리아, 스페인에 이은 통행제한 조치를 발표한 마크롱 대통령은 "이것은 전쟁입니다"를 다섯 번 반복하며, 모든 시민들이 각별한 긴장감으로 이 전쟁에서 최소한의 피해만 남기고 최대한 빨리 끝날 수 있도록 협력을 당부했다.

강행된 지자체 선거, 최악의 투표율

이 비장한 선언 전날엔 아이러니하게도 지자체 선거가 치러졌다. 프랑스인들의 영혼이랄 수 있는 까페를 전격 폐쇄시키면서도 유권자 모두의 참여를 요구하는 투표는 연기하지 않는 정부의 선택은 일관성을 상실하고 있었다. 시민들은 기록적으로 낮은 투표율(46.5%)로 화답했고, 정부는 유난히 좋았던 햇볕을 즐기러 공원에 나선 인파들을 나무랐다.

예정대로라면, 3월 22일 2차 결선투표를 통해 최종 승자가 가려지지만, 주말 사이 급변한 코로나19에 대한 정부의 판단과 끔찍하게 낮은 투표율은 결선투표를 무기한 연기시켰다. 1차 투표만의 결과를 놓고 보면, 집권당 LREM(레퓌블리크 앙마르슈, 전진하는 공화국)은 최악의 성적을 거두었다. 현 집권세력에 대한 불신과, 지역에 뿌리내리지 못한 신생 집권당의 현실을 적나라하게 드러낸 결과였다.

대도시 가운데 집권당이 1위를 차지한 곳은 르아브르 한 곳뿐. 대부분의 지역에서 LREM의 후보는 3위나 4위에 그쳤다. 전국적으로 고루 선전한 당은 사회당과 녹색당이었다. 파리의 경우, 사회당의 안 이달고 현 시장이 압도적 1위를 점하며 안정적인 2선을 기대하게 했다.

이달고 시장은 임기중 자전거 전용도로와 녹지를 확대하고, 과감한 차량 통행 제한으로 환경시장의 이미지를 구축했다. 또 이번 선거 공약에서는 주차공간 6만 개를 없애고, 임대주택, 차없는 거리를 확대함으로써 '녹색 파리'를 완성하겠다는 의지를 드러냈다. 물론 파리 시민들은 그녀의 지난 임기 내내 자전거 전용도로를 확대하느라 공사 중인 도로를 달리며 불평했다. 그러나 그녀는 여론조사에서 늘 지지율 1위를 기록해 사랑받진 못해도, 신임받는 시장으로 불리곤 했다.

릴, 낭트 등의 도시에서도 사회당은 1위를 점했고, 마르세이유에선 좌파연합이 승리했다. 리옹, 스트라스부르그, 렌느, 그르노블, 브장송에선 녹색당이 1위에 올라섰다.

통행 제한 첫날 
 

텅빈 거리, 그러나 ⓒ 목수정

 
마크롱은 3월 16일 TV 발표에서 국가는 연금개혁을 비롯한 모든 개혁 논의를 잠정 중단하고, 국정의 힘을 코로나19 극복에 집중시킬 것이라고 말했다. 모든 노력을 바이러스 확산 속도를 늦추는 데 맞추어 의료진이 확진자를 치료할 시간을 확보하는 것이 목적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그는 사람들 사이의 접촉을 최소화하는 것이 바이러스 확산을 줄이는 최선의 방법이기에 최소 15일간 프랑스 전역에서 통행제한을 단행한다고 공표했다.

18일 정오부터 시작된 통행제한 조치는 몇가지 예외적 상황을 제외하곤 집 안에 머물 것을 요구한다. 아래 1~5에 해당하는 경우, 정부가 마련한 일종의 통행증 양식에 체크, 서명하여 소지하고 외출할 수 있으며, 어길시엔 최대 135유로(약 18만6천 원)까지 벌금을 물릴 수 있다. 양식은 인터넷에서 출력해서 사용하지만, 여의치 않을 경우 손으로 직접 작성하고, 서명해도 된다.
 
1. 재택 근무가 여의치 않은 경우의 출퇴근
2. 식료품이나 필수품 장보러 가기
3. 건강상 이유 (약국, 병원 등)
4. 아픈 가족이나 자녀 돌보기 등 가족 관련 이유
5. 그 밖의 간단한 집 근처 외출 : 개인적 신체활동(산책, 조깅), 반려동물 산책 등

'조깅'과 '개 산책시키기'가 특수 사유에 해당하는 걸 보고, 사람들은 긴장감을 조금 내려놓을 수 있었다. 통행 제한 첫날, 재택 근무를 할 수 없는 사람들의 출근 행렬로 외곽에서 파리로 진입하는 도로는 여전히 차량으로 채워졌다. 가벼운 산책도 허용되는 상황이기에, 폐쇄된 중국 우한과 같은 텅빈 도시의 광경은 연출되지 않았으나 도시에는 차분한 적막이 감돌았다. 
 

뱅센 숲에서 여전히 햇볕을 즐기는 파리시민들. 거리를 두려고 조심은 하지만, 산책과 조깅이 허락되는 통행제한이기에. ⓒ 목수정

 
거리에서 마주친 이웃들은 서로를 위로하듯 격려의 미소를 주고받으며, 식료품을 집에 쌓아두고 두문불출하기 위해 슈퍼마켓으로 향했다. 파스타와 쌀은 재고가 거의 없었지만, 식료품들은 여전히 가득했다. 대도시에 사는 많은 사람들은 앞다투어 시골로 떠나기도 했다. 도시의 좁은 아파트보다는 좀더 여유있는 공간인 시골집이 갇혀지내기엔 더 수월할 거라는 판단에서다.

학교는 일제히 문을 닫았지만, 코로나19 진화 전선에 배치된 의료인력의 자녀들은 탁아소와 학교가 돌본다. 교육부는 각 학교에 최대한 SNS를 통한 수업을 마련할 것을 지시했고, 스카이프 등을 통한 수업이 이번 주부터 시작되었다. 집에 있는 중학생 딸은 어제 수학 수업과 영어 수업을 들었다. 스카이프 수업이라는 초유의 경험을 아이들은 재미있는 경험으로 받아들였다. 원거리 수업이 성공적으로 진행되는 모습에 학부모들도 안도하는 메시지를 서로 주고 받기도 했다.

"어떤 프랑스인도 수입 없이 두지 않겠다"

정부의 강력한 통행제한 조치와 휴교, 상업시설의 영업정지 조치는 이로 인해 생계에 지장을 초래하게 될 시민들에 대한 보호조치와 동시에 발표되었다. 정부가 약속한 재정적 부담의 내용을 합산해 보면 최소 3450억유로(약 466조원)이 소요된다.
 
1) 임금 노동자 : 제조업이나 호텔, 식당 등 서비스 업체에서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해 일시적으로 직원수를 줄여야 할 경우, 그들에 대한 일시적 실업수당을 급여의 84% 선에서 국가가 지급한다. 이를 위해 정부는 2개월 간 85억 유로(약 11조6천억 원)을 투입할 예정이다.

2) 자영업자, 프리랜서: 코로나19로 인해 경제적 피해를 입은 자영업자들을 위한 특별 재정지원이 투입된다. 지급 금액은 월 1500유로(약 205만 원)로, 당장 3월부터 지급된다. 이를 위해 정부는 연대기금 20억 유로(약 2조7천억 원)을 우선 투입한다. 정부는 몇 달간 이 지원금이 지급될 수 있을지 현재로선 예측하지 못하고 있다. 또한 이들은 세금과 각종 공과금, 사회분담금과 집세 납부를 유예받거나 경우에 따라선 감면받을 수 있다.

3) 육아 휴직 : 코로나로 인해 휴교가 결정된 상황에서 육아를 위해 휴직을 해야 하는 노동자의 경우, 공기업 직원은 급여의 100%를, 민간기업 직원은 90%를 받는다.
4) 가사도우미 : 다수의 시민들이 재택근무를 하게 됨에 따라 일시적 실업상태에 놓이게 될 가사도우미들 역시, 각자의 통상임금에서 80%를 국가로부터 지원받게 된다.

5) 기업 지원 : 기업 활동이 위축되지 않도록 최대 3천억 유로(약 409조 원) 규모의 은행 대출을 국가가 보증할 것이며, 그 어떤 은행도 기업 대출을 거부하지 않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르메르 재경부 장관은 "기업들 보호하기 위해 모든 수단을 쓰는 데 주저하지 않을 것"이라면서 "재정 투입이나 국가의 지분인수라는 수단을 동원하거나 필요하다면 국유화"를 검토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진짜 전쟁터는 여기다
 

병원 로비에 모여, 가운을 집어던지는 의료진들 2020년 1월15일, 공공병원에 필요한 재정지원 요구를 외면하는 정부를 향해 가운을 벗어던지는 집단행동에 나선 파리 생루이 병원의 의료진들 ⓒ 동영상 캡쳐

 
마크롱이 텔레비전에 나와 "우린 지금 전쟁중"이라고 강조하는 말을 들은 프랑스인들은 그 전쟁을 누가 일으켰는지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방송 직후, SNS에는 "우린 지금 무기없이 전쟁터에 보내졌습니다"는 프랑스 의료인들의 현장발 호소가 전해졌다.

급격히 늘어나는 환자들을 프랑스 공공의료가 수용할 수 있도록 바이러스 전파 속도를 늦춰야 한다는 말은 맞지만, 프랑스 국민들은 지난 수년간 긴축재정이란 이름으로 공공병원의 병상과 의료인력이 얼마나 많이 축소(20년간 10만개의 병상 축소)되었으며, 이미 수 년 전부터 전쟁상태에 있었다는 사실을 의료인은 잘 알고 있었다. 그 총성 없는 전쟁을 일으킨 것은 바로 정부였다. 마크롱 정부는 2018년 한 해에만 4700개의 병상을 축소했다.

마크롱 대통령에게 공공병원 긴급 지원을 호소하는 의사 지난 2월 27일, 프랑스의 첫 코로나19 사망자가 발생한 이후, 파리의 공공병원 Hopital la pitie-salpetrie를 방문한 마크롱 대통령을 향해 이 병원의 신경외과 의사 프랑수아 살라샤가 프랑스의 공공병원을 긴급히 구해야 한다며, 시급한 재정지원을 호소하고 있다. ⓒ 동영상 캡처

 
2월 27일 저녁, 코로나19로 인한 프랑스인 첫 사망자가 발생한 후, 파리의 라피티에-살페트리에 병원을 방문한 마크롱에게 한 의사는 이렇게 말했다.

"우리 의료인력들은 최선을 노력을 다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당신이 하겠다는 노력은 입증되지 않았습니다. 공공병원은 재정투입이 절실하게 필요한 상황입니다. 1년 동안 우린 같은 호소를 했고 정부는 우리의 요구를 외면해 왔습니다. 지금, 당장 재정지원이 필요합니다."

지난 1월에는 1300명의 전국 공공병원의 센터장들이 사직서를 써놓고, 마크롱 향해 공개 편지를 써서, 당장 공공 병원에 수혈을 하지 않으면 공공의료체계가 무진다고 경고했다. 이 집단행동 소식은 모든 언론의 1면을 장식했다. 마크롱은 코로나19로 인한 전쟁에 국민들의 동참을 호소하고, 그로 인해 어려움에 기업과 자영업자들의 어려움을 헤아리지만, 정작 전선에 나가 싸우고 있는 병사들이 호소해온 무기 충원에 대해선 말하지 않았다.

마크롱이 의료진에게 약속한 것은 환자 집중 지역으로 이동하는 의료인력의 숙박/교통비 지원과 마스크, 환자가 밀집된 알자스 지역에 군 전용 의료시설을 코로나환자 수용시설로 전환하기로 한 것 정도다.

코로나19는 마크롱 정권이 기업 국유화를 말하게 하고, 연금개혁 논의를 중단시킬 만큼 강력한 힘을 발휘했지만, 정권이 공공의료에서 저지른 잔인한 행위를 반성하게 하진 못했다. 전염병이 야기할지 모르는 기업 도산을 막기 위해 400조가 넘는 예산투입을 단박에 결정하지만, 마침내 공공병원이 제대로 가동되게 하기 위해 재정을 투입한다는 결정은 하지 않았다. 맹목적인 신자유주의 신봉자의 사고가 완치되기 위해선 겪어야 할 뼈아픈 과정들이 아직 남아있는 듯하다.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이 기사는 연재 코로나19 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진실과 정의를 추구하는 오마이뉴스를 후원해주세요! 후원문의 : 010-3270-3828 / 02-733-5505 (내선 0) 오마이뉴스 취재후원

독자의견


다시 보지 않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