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04.22 11:08최종 업데이트 16.04.23 11:02
<오마이뉴스>는 지난 3월 21일 '최경환 인턴 월급이 궁금하십니까?'라는 프롤로그 기사를 시작으로 '1045억 원'에 이르는 19대 국회의원들의 정치자금 사용내역을 공개했습니다. '19금 봉인해제'(19대 정치자금 봉인해제)라는 이름으로 한 달 동안 내보낸 기사는 57개(프롤로그 포함)에 이릅니다. 이후 4.13 총선이 끝난 직후인 지난 14일 정치자금 자료를 분석한 이종호 기자와 분석결과를 검토하고 취재했던 탐사보도팀 기자들(구영식·김도균·유성애)이 차담회를 열고 정치자금 정보공개 청구에서부터 중앙선관위의 자료삭제 요청까지 다양한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그 차담회를 '에필로그' 기사로 정리했습니다. 한 달 동안 '19금 봉인해제' 기사들을 응원해주신 독자들과 기사에 관심을 보여준 국회의원실·중앙선관위 관계자들에게 감사의 인사를 올립니다. [편집자말]

오마이뉴스 탐사보도팀은 '19대 국회의원 정치자금 봉인해제'기획으로 국회의원 총 322명의 12~14년간 지출내역 36만8149건을 취재했다. 지출내역을 정리해 프린트를 했더니, 500페이지 책으로 17권에 달했다. 유성애 오마이뉴스 기자가 자료를 확인하고 있다. ⓒ 이종호






19대 국회의원들의 정치자금 사용내역을 분석하는 '19금 봉인해제' 기획은 지난해 6월에 시작되었습니다. 당시 <오마이뉴스>는 중앙선관위에 '정치자금 수입·지출 보고서'를 정보공개 청구해 약 38만 건(3만5000여 장)에 이르는 방대한 자료를 받았습니다. 이 자료에는 19대 국회의원들이 지난 2012년 6월부터 2014년 12월까지 지출한 정치자금 내역이 상세하게 담겨 있었습니다. 이 자료와 후원회 장부, 중앙당 정책연구소 수입.지출내역까지 복사하는 데 든 비용만 250만 원에 이릅니다(총 8만6000여 장).


과거에는 각 지역선관위에 정보공개를 청구해서 받아야 했는데 이번에는 중앙선관위가 자료를 취합해준 덕분에 좀 손쉽게 자료를 받을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중앙선관위가 공개한 자료는 PDF 파일이어서 자료를 데이터 처리하는 데 어려움이 많았습니다. 이 PDF 파일을 OCR 프로그램(이미지를 텍스트로 변환해주는 프로그램)으로 돌려야 했는데 꼼꼼하게 신고한 의원실 자료는 수정할 곳이 거의 없었지만 그렇지 않은 의원들도 적지 않았습니다. 의원 30명 정도는 페이지가 누락된 경우도 있었습니다.

정치자금 자료를 OCR 프로그램으로 돌린 뒤 7개월간 엑셀 파일로 만드는 작업을 진행했고, 올 2~3월에서야 이것을 10개 항목(대분류)과 59개 항목(중분류)으로 나누었습니다. 정치자금 자료에는 별도의 항목이 없어서 정치자금 사용내역을 일일이 검토하면서 이렇게 새로운 분류기준을 만들었습니다. 애초에는 취재와 보도를 위한 아이템 분류였지만, 결과적으로는 정치자금 사용내역을 상세하게 보여주는 효과를 거두었습니다.

정치자금으로 동창회비 내고 장학금 줘도 될까요?

정치자금 사용내역을 분석하면서 우리는 '정치자금이 이렇게 다양한 용도로 쓰이는구나' 하는 점을 느꼈습니다. 의정 보고서 발간과 렌터카, 교통비 등은 물론이고 스피치 컨설팅, 메이크업, 부동산 중개료, 동창회비, 장학금까지도 정치자금으로 지출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문제는 어디까지가 정치자금법에 따른 합법적인 지출이고, 불법적인 지출인지 그 경계가 모호하다는 것입니다. 이는 그만큼 중앙선관위의 정치자금 지출내역 관리가 엄격하지 않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정치자금으로 동창회비나 장학금을 주는 의원도 있었습니다. 정수성 새누리당 의원은 자신이 졸업한 경북고 동창회(30만 원), 경북중·고 45회 재경동기회(20만 원), 갑종장교들 모임인 갑종장교 전우회(20만 원) 등에 회비를 내는 데 70만 원을 썼습니다. 같은 당 이군현 새누리당 의원과 백재현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은 각각 '전국그라운드골프연합회 회장 연회비'와 '전북도민회비' 명목으로 200만 원과 20만 원을 정치자금에서 지출했습니다. 경북 안동 출신인 류성걸 새누리당 의원은 경북중·고 동문장학회에 장학금 300만 원을 기부했는데, 이것도 정치자금에서 나간 것이었습니다.

정치자금법 제2조 3항을 보면 "정치자금은 정치활동을 위하여 소요되는 경비로만 지출하여야 하며, 사적 경비로 지출하거나 부정한 용도로 지출하여서는 아니 된다"라고 규정돼 있습니다. '사적 경비'에는 ▲ 가계의 지원·보조 ▲ 개인적인 채무의 변제 또는 대여 ▲ 향우회·동창회·종친회·산악회 등 동호인회, 계모임 등 개인 간의 사적 모임의 회비 ▲ 개인적인 여가 또는 취미활동에 소요되는 비용 등이 포함돼 있습니다. 그런 점에서 보면 정수성·이군현·백재현·류성걸 의원 등은 정치자금법을 정면으로 위반한 것입니다.

노래방에서 정치자금 카드로 결제했다가 취소한 의원들도 있었습니다. 박대출(23만 원)·민현주(20만 원)·이만우(5만여 원) 새누리당 의원과 박완주(68만 원)·설훈(약 48만 원) 새정치민주연합 의원들은 '착오 지출'이나 '카드 오사용'이라고 해명했는데 뭔가 석연치 않습니다. 특히 이만우 의원은 '에스심포니'에서 경제정책과 관련한 전문가 간담회를 열었는데, 에스심포니는 강남 청담동에 있는 노래방이었습니다. 이 의원은 이곳에서 20만 원을 정치자금으로 지출했는데, 이것을 반환한 내용도 전혀 없습니다. 중앙선관위조차 '에스심포니'가 노래방이라는 사실을 제대로 확인하지 못한 것입니다.

보도과정에서 지출내역을 꼼꼼하게 기록했다가 손해 본 의원도 있었습니다. 심상정 정의당 의원이 그랬습니다. 심 의원은 정치자금 사용내역에 '대표연설 공동기획', '대표연설 공동작업' 등으로 기재했는데 이것은 누가 봐도 대표 연설문 작성을 외부업체에 맡기고 그 비용을 정치자금에서 지출한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지난 2006년엔가 서울의 관심지역구 의원들의 정치자금을 분석한 적이 있는데, 당시 박영선 의원이 기자 세 명에게 상품권을 선물했다는 사실이 확인돼 이를 보도했습니다. 그러자 박 의원이 "이런 식으로 보도하면 정치자금 사용처를 정직하게 안 쓰겠다"라고 항의하기도 했습니다.

해외에서는 적은 액수라도 사적으로 유용하면 크게 문제가 됩니다. 지난 1995년 스웨덴 사민당 정부의 부총리였던 모나 살린은 슈퍼마켓에서 토블론 초콜릿 등을 사는 데 공공카드로 2000크로나(한화 약 34만 원)을 사용한 사실이 드러나 부총리직에서 물러나야 했습니다. 우리도 동창회비, 노래방비, 장학금 등 사적인 용도에 정치자금을 쓰는 경우가 적지 않지만 이를 크게 문제 삼지 않는 현실은 분명히 문제가 있습니다.

중앙선관위가 국회의원이 정치자금 회계관리 프로그램에 정치자금 사용내역을 입력하도록 하고, 정치자금을 사용하지 말아야 할 사업장 번호를 입력단계에서부터 막아버리면 정치자금의 불법사용을 막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하지만 중앙선관위는 국회의원들에게 어떤 제한도 가하지 않으려 한다는 느낌을 강하게 받았습니다.

또한 중앙선관위에서 낸 회계실무 기준에는 지출내역을 꼼꼼하게 기재하라고 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도서 구입에 정치자금을 지출했는데도 '무슨 책'을 샀는지, 의정 보고서를 '몇 부' 제작하고, 발송했는지를 기재하지 않는 는 등 사용내역이 불분명한 경우가 상당히 많습니다. 아무리 적은 액수라도 사용내역을 정확하게 신고하지 않으면 엄중한 조치를 취해야 합니다.

중앙선관위 직원들은 "의정활동은 폭넓게 인정된다"라며 앞서 지적한 사적 용도 지출 등을 용인해주려고 합니다. 그런데 중앙선관위가 그렇게 인식하고 있으면 누가 정치자금 지출을 제대로 감시할 수 있을까요? 앞으로 정치자금 모금 한도를 높여주고 그 대신 사용내역을 꼼꼼하게 감시하는 쪽으로 관련법이 개정되어야 합니다. 1년에 국회의원 1인당 1억5000만 원만 모금할 수 있도록 하고 있는데, 이것은 그 이상 지출되는 정치비용은 불법자금으로 충당하라고 권장하는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선관위, 우리가 공개한 사본 자료 삭제 요청했지만...

우리는 4.13 총선을 1주일 앞두고 의원 이름과 지역구를 검색하면 19대 국회의원들의 정치자금 사용내역을 상세하게 들여다볼 수 있는 '특별면'을 만들었습니다. 이 특별면을 통해 중앙선관위의 '정치자금 수입·지출 보고서'('국회의원 회계보고서') 사본도 공개했습니다. 그러자 중앙선관위가 '정치자금 수입·지출 보고서' 사본은 공개해서는 안 된다며 자료 삭제를 요청해왔습니다. 다음은 지난 8일 중앙선관위 조사국 자금조사2과에서 <오마이뉴스>에 보낸 공문 내용 중 일부입니다.

"귀사가 국민의 알 권리 충족과 정치자금의 투명성 확보를 위하여 우리 위원회로부터 정보공개를 받은 국회의원 회계보고서 사본 등을 분석·가공하여 보도하는 것은 언론 고유의 취재.보도의 일환으로 무방할 것이나, 정치자금법 제42조 제2항에 따라 국회의원 회계보고서 사본을 인터넷에 공개하는 방식으로 불특정다수인에게 제공하여서는 아니되며, 회계보고서에 기재된 개인정보 주체로부터 별도의 동의를 받지 아니하고 제3자에게 공개하는 것은 개인정보보호법 제19조에도 위반될 수 있으므로, 해당 정보를 인터넷홈페이지에서 지체없이 삭제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중앙선관위의 관계자들은 "<오마이뉴스>가 선관위가 못한 것을 했고, 보도내용은 앞으로 선관위가 나가야 할 방향이고, 정치자금 지출 투명성 차원에서도 바람직하다고 본다"라고 호평하면서도 "하지만 불특정 다수가 사본을 다운로드받아서 활용하게 되면 문제가 아주 심각해질 수 있다"라고 지적했습니다.

하지만 중앙선관위의 법률 해석과 그에 따른 삭제 요청은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미국은 이런 자료를 공개할 때 누구나 자료를 활용할 수 있도록 어떤 파일로든 호환이 가능한 CVS(Comma-Separated Values : 데이터베이스나 스프레드시트의 데이터를 응용프로그램 간에 교환하는 데 사용할 수 있는 텍스트 파일 형식) 파일로 공개합니다. CVS 파일은 현재까지 제일 높은 수준의 정보공개 형태입니다. 텍스트 파일이기 때문에 엑셀, 한글, 메모장 등과 호환이 가능합니다.

그런데 한국은 아직도 종이로만 정보를 공개하는 낮은 단계에 머물러 있습니다. 이번에 우리에게 공개한 자료가 PDF 파일이지만 말이 전자문서이지 기계가 읽기 어려운 수준이었습니다. OCR 변환 프로그램으로 돌려도 잘 읽지를 못했습니다. 박근혜 정부가 '공공정보를 적극 개방·공유'하기 위해 '정부3.0'을 운영해오고 있고, 여기에 '공공정보 공개 확대로 국민의 알 권리 충족'이 중요한 과제로 포함돼 있는데도 현실은 이렇습니다.

중앙선관위는 지난 2013년 정치자금 사용내역을 상시 공개하자는 내용으로 정치자금법 개정안을 냈다고 합니다. 중앙선관위 관계자들도 이러한 '경력'이 자신들의 '업적'인 것처럼 여러 차례 강조했습니다. 중앙선관위가 정말 이런 방향으로 정치자금 사용내역을 공개하고자 한다면 현행법을 무기 삼아 우리가 공개한 사본의 삭제를 요청할 필요는 전혀 없었다고 생각합니다. 오히려 20대 국회에서 정치자금법이 그렇게 개정될 수 있도록 <오마이뉴스>와 지금부터 협력하는 것이 훨씬 바람직하지 않을까요?

지난 2002년부터 '알 권리 운동'을 벌여온 전진한 알권리연구소장은 "정치자금법에서 공개할 수 없다고 규정한 자료는 지금 <오마이뉴스>가 공개한 자료가 아니라 영수증 등 지출과 관련된 부속서류다"라며 "정보공개 청구를 통해 받은 자료는 누구에게나 공개할 수 있는 자료다"라고 말했습니다. 전 소장은 "<오마이뉴스>가 공개한 자료를 1만 장 복사해 명동에서 뿌려도 문제가 전혀 되지 않는다"라며 "그것이 정보공개 청구의 취지이기도 하다"라고 강조했습니다. 결국 <오마이뉴스>는 중앙선관위에 "삭제 요청을 받아들이기 어렵다"라고 최종 통보했습니다.

특히 국회, 자기 목에 방울을 다는 혁신이 필요합니다

선관위 직원들은 '외부 유출 방지'를 이유로 정치자금 사용내역을 종이로만 제공하고 있습니다. 선관위 직원도 엑셀 파일 자체가 없다고 했습니다. 정치자금 사용내역을 데이터 처리하는 데 7개월이나 걸릴 필요가 있었을까요? 선관위가 그것을 안 해주니까 언론사가 대신할 수밖에 없는 현실이 안타까울 뿐입니다.

이것보다 더 심각한 문제는 '의원들이 성실하게 신고하고 선관위가 이것(신고내역)을 시민들에게 알릴 목적 자체가 없는 것처럼 보였다'는 사실입니다. 오히려 정치자금 사용내역을 감추기 쉽게 만들어 놓은 구조였습니다. 의원들이 국정조사 때 피감기관들로부터 이렇게 활용하기 어려운 자료를 받았으면 가만히 있었을까요? 분명히 피감기관을 엄청 쪼았을 것입니다. 하지만 자신과 관련된 정보(정치자금 사용내역)는 '가장 불편하고 번거로운 방식'으로 제공되도록 방치하고 있습니다.

선관위(중앙-지역)가 1년 단위로 정치자금 사용내역의 원자료를 공개하고, 자체 개발한 분류항목에 따라 사용내역을 분석해 '연간보고서' 형태로 매년 공개하면 좋을 듯합니다. 원자료와 분석자료를 시민들에게 모두 제공하고 문제점이 있다면 시민들로부터 신고받아서 선관위가 검증과 조사에 나선다면 '정부3.0'은 현실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이것을 선관위가 알아서 하면 가장 좋겠지만 그럴 가능성이 없어 보인다면 시민단체나 언론사가 먼저 움직여서 선관위를 압박하는 방안도 있을 것입니다. 다양한 데이터로 쓸 수 있도록 자료를 공개해준다면(예를 들어 CVS 파일 형태로 정보를 제공한다면) 이것을 감시할 단체들은 의외로 많습니다.

이번에 선관위 직원들과 통화할 때마다 받은 느낌이 있었습니다. '이 직원들은 이 일을 참 낯설어하는구나' 하는 것입니다. 그런 점에서 선관위도 무거운 책임을 느껴야 하겠지만, 특히 국회가 정치자금 사용내역을 시민들에게 상시 공개하겠다고 선언하고 정치개혁의 목적으로 자신을 잘 감시할 수 있도록 관련법을 개정해줘야 합니다. 국회가 자신들의 목에 방울을 다는 '혁신'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어쩌면 이번 4.13 총선 결과는 20대 국회에 그러한 혁신을 요구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한편 <오마이뉴스>는 조만간 정치자금 사용내역 36만8149건을 데이터로 가공할 수 있는 오픈 포맷인 CSV로 모두 공개할 예정입니다. 여기에는 2012년~2014년 약 3년간 국회의원 322명이 사용한 정치자금 사용내역 전체가 담겨 있으며, 정제작업이 마무리되는 대로 4월 말 깃허브(www.github.com) 등을 통해 공개할 계획입니다. <오마이뉴스>는 시민들이 이 데이터를 바탕으로 국회의원들의 정치자금을 직접 검증해볼 수 있기를 기대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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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기사는 연재 국회의원 정치자금 공개(2012-2022) 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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