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25 08:29최종 업데이트 21.02.02 1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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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센병 환자들의 고통과 시련이 묻어있는 소록도 ⓒ 김이삭

 
일본제국주의가 식민지 조선에 건설했다고 선전한 낙원이 있었다. 전남 여수시 남서쪽 고흥반도의 서쪽 섬이 바로 그곳이다. 한센병(나병) 환자들의 집단시설로 유명했던 소록도가 일제가 말한 지상낙원이었다.

일본이 대륙 침략에 광분할 때인 1939년 오늘 소록도에서 대규모 행사가 있었다. 대한제국 멸망 6년 뒤인 1916년 조선총독부령 제7호에 의해 소록도자혜의원으로 설립했다가 1934년에 소록도갱생원으로 개칭된 이 시설이 대규모 증축 공사를 거쳐 1939년 11월 25일 완공식을 치렀다.

소록도갱생원은 일제강점기 때 낙원 같은 곳으로 선전됐다. 당시의 신문 보도에도 이런 분위기가 반영됐다. 11월 25일 완공식에 대해 26일 자 <조선일보> 기사 '나환자의 낙원, 갱생원 낙성식'은 "천형(天刑) 병자의 낙원 소록도갱생원 증축공사 낙성식은 이십오일 오전 열시부터 동원(同院)에서 성대히 거행되었다"라며 일본 정부 및 총독부 관계자들의 완공식 참석을 소개한 뒤 이렇게 보도했다. 괄호 속 내용은 이해의 편의를 위해 첨가한 것이다.
 
증축공사는 이십칠만을 들여 작년 봄부터 시작하였는데, 일천 명을 더 수용할 수 있으므로 수용능력은 육천 명, 명실이 가즌(명실이 같은, 명실상부한) 세계 일(一)의 수요양소(수용소·요양소)가 된 셈이다. 현재 수용하지 못한 환자는 육천 명인데, 약 (절)반은 입원 치료 중이고 나머지 삼천 명도 계속 증축하여 전부 소록도에 수용할 계획이므로, 거리로 다니는 환자가 일소될 날도 멀지 안타.
 
기사 제목에 등장한 '낙원'은 신문사 기자들이 총독부에 잘 보이려고 사용한 표현이 아니다. 조선총독부에서 주도적으로 사용한 표현이다. 1년 전인 1938년 9월 15일 이 섬을 방문한 제7대 조선 총독 미나미 지로(南次郞)도 비슷한 표현을 썼다.

그해 9월 16일 발행된 <조선일보> 기사 '남 총독, 소록도 나병환자 위문'에 따르면, 갱생원 중앙운동장에서 행한 연설에서 미나미 총독은 보행이 곤란한 중환자를 제외한 3700명의 환자들을 상대로 "총독이든지 원장이든지 천황 폐하의 적자다"라며 "제군도 역시 가튼 폐하의 적자다. 총독이나 원장이나 제군이 일본 국민인 점에는 차별이 없다"라고 한 뒤 이렇게 발언했다.
 
인류 최고의 행복은 부락과 부락이 사이조케 평화한 생활을 하는 데 있다. 갱생원을 제군의 영원한 낙토(樂土)라고 생각하는 것이 최대의 행복이다. 왜 그러냐 하면 주방(周防, 스오) 원장 이하 직원 급(及, 및) 환자 일동이 고락을 가티하려고 일생을 바치고 있는 때문이다.
 
격리

한센병 환자에 대한 거리감은 어느 시대나 존재했다. 대중이 환자들을 기피해서 이들이 격리 생활을 하는 풍경은 일제강점기 이전에도 있었다. 조선 시대에도 이들은 각 지역 외곽에서 격리 생활을 했다. 음력으로 세종 27년 11월 6일 자(양력 1445년 12월 4일 자) <세종실록>에 따르면 제주도의 경우 한적한 바닷가에 이들의 주거지가 형성돼 있었다.


그런데 일제강점기가 되면서 한센병과 관련해 중대한 변화가 일어났다. 전국에 산재한 수용시설이 소록도 한 곳으로 통합된 것보다 훨씬 더 큰 변화가 있었다. 그것은 미나미 총독의 연설과 달리 한센병 환자들이 국가적인 차별과 탄압의 대상이 됐다는 사실이다.

2018년 제7회 한국사회복지역사학회 추계학술대회 때 나온 전종숙 한국사회복지역사학회 국제교류위원장의 발표문 '한국 한센인에 대한 사회복지 과제 - 일제강점기 시대의 한국의 한센병 실태'는 "한국에서의 한센병 환자에 대한 강제격리정책은 식민지 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라며 일본제국주의의 한센병 정책을 이렇게 요약한다.
 
식민지 통치 종료 시까지 한센병 환자를 강제적으로 소록도에 수용해 격리하는 정책을 실시했다. 강제수용된 환자들은 외부와 격리되어 섬 바깥으로의 이동이 엄격히 통제되었으며, 폭행·협박·징벌·감금·강제노동·강제단종 및 중절 등을 받게 되었다.
 
미나미 총독은 소록도갱생원을 낙토라고 불렀다. "총독이나 원장이나 제군이 일본 국민인 점에는 차별이 없다"라고도 말했다. 하지만 갱생원에서 일어나는 일들은 미나미가 말한 것과 정반대였다. '낙토'의 삶은 폭행·협박·징벌·감금·강제노동·강제단종·임신중절 등이 아무렇지도 않게 벌어지는 삶이었다.
 

자식과 부모 눈물의 상봉 한센병 환자와 자녀가 면회하는 모습. 병사지대 환자에게서 자녀가 태어나면 전염을 우려해 직원지대에 있는 미감아보육소에 격리시키고 부모와 자녀들의 면회는 한 달에 한 번씩만 허락하였다. ⓒ 소록도병원

 
일본 지배를 거치면서 한센병 환자는 단순한 환자가 아니라 죄수의 이미지까지 갖게 됐다. 이들은 가혹한 대우를 당연히 받아들여야 하는 존재로 격하됐다. 이들을 사실상 죄인 취급하는 현상이 일제강점기 때 등장했던 것이다.

한센병에 대한 일제의 대응은 대중의 공포심을 한층 더 자극하는 요인이 됐다. 그 이전에도 한센병은 기피의 대상이었지만, 일제강점기를 거치면서 훨씬 더한 공포의 대상으로 바뀌었다. 이는 20세기 한국인들이 한센병에 대해 과도한 공포심을 품게 되는 결과로 이어졌다.

2010년에 <지방사와 지방문화> 제13권 제1호에 실린 한순미 전남대 연구교수의 논문 '나환과 소문, 소록도의 기억'은 "나환은 근대 이후 갑자기 생긴 질병이 아닌데도, 일제 식민지배를 거치면서 공포감을 주는 사람들로 이미지화되고, 그들은 우선적으로 척결해야 할 관리 대상으로 자리 잡게 된다"고 설명한다.

미나미는 '스오 원장 이하 직원 및 환자 일동이 고락을 같이하려고 일생을 바치고 있다'라고 말했다. 스오 마사스에 원장은 3년 뒤인 1942년에 세상을 떠났다. 당시 57세였던 그의 죽음은 자연사가 아니었다. 환자 이춘상이 갱생원의 학대에 불만을 품고 벌인 일이었다. 원장 이하 직원과 환자 일동이 고락을 같이하는 모습은 소록도갱생원에서는 없었다. 그곳에서 원장 이하 직원은 교도관이고 환자들은 죄수일 뿐이었다.

조선과 다른 일제

위의 <세종실록>에 따르면 조선 정부는 한센병 환자들을 죄인이 아닌 환자로 대우했다. 조선 정부는 이들의 병을 치료하는 문제뿐 아니라 주거·의복·식량·목욕에 대해서도 관심을 기울였다. 또 이들을 돕는 승려나 의생들에게 혜택을 주는 방안도 검토했다. 또 고통을 참지 못하고 극단적 선택을 하는 환자들에 대해서도 안타까움을 표시했다.

또 숙종 11년 8월 4일 자(1685년 9월 2일 자) <숙종실록>에는 나병을 앓다가 세상을 떠난 아버지를 화장한 정득춘에 대한 조선 정부의 반응이 소개돼 있다. 정득춘은 세상을 떠난 아버지의 시신을 불에 태웠다. 병의 전염을 막겠다는 생각에서였다.

정득춘의 의도 여하에 관계없이 조선 정부는 그를 흉악무도한 불효자로 규정했다. 이는 한센병 환자도 자녀의 효도를 받아야 하는 똑같은 인간으로 인식했음을 보여준다. 한센병 환자에 대해 강제단종이나 임신중절을 서슴지 않았던 일본제국주의와 대비되는 모습이다.

한국인 통제하려는 의도

그런데 한센병 환자들에 대한 식민당국의 대책에는 또 다른 의도가 담겨 있었다. 환자들뿐 아니라 여타 한국인들까지 차제에 함께 억누르겠다는 의도가 그것이었다. 식민지 한국인들의 일상을 감시하고 통제하기 위한 명분을 한센병 대책에서 찾았던 것이다.

위의 한순미 논문은 "일제 위생경찰은 과학과 집단의 생명을 내세우며 식민지 권력이 모든 조선인의 몸과 생활을 통제할 수 있는 근거를 확보"했다고 설명한다. 한국인들의 일상에 합법적으로 개입하고자 한센병 예방 및 관리를 명분으로 내세웠던 것이다.

일제는 그런 의도로 한센병 정책을 추진하고 소록도를 관리하면서도 자신들의 행위를 지상낙원 건설로 자찬했다. 이웃과 이웃이 평화롭게 지내는 인류 최고의 행복이 소록도에서 구현되고 있다고 선전했다.

20세기 한국인들에게는 소록도가 한센병이라는 말과 함께 연상되지만, 실제로 이곳은 '일본제국주의 식민정책'이라는 말과 함께 연상돼야 한다고 말할 수 있다. 소록도는 일본제국주의의 거짓 식민정책을 폭로해주는 곳이라고 말할 수 있다.
 

일제가 한센병 환자들을 대상으로 비인간적인 행위들을 자행했던 소록도의 검시실 ⓒ 김이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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