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28 11:48최종 업데이트 20.11.28 11: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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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겨울을 맞이하는 새끼 고양이 ⓒ 송성영

 
날이 추워지고 있습니다. 내가 사는 산막은 남향집입니다. 날이 추워지면 여름 내내 물러나 있던 햇볕이 마루 위로 성큼 올라옵니다. 산막은 아궁이 불 때는 부엌과 두 평도 채 안 돼는 방 두 칸, 지금은 양철지붕이 씌워져 있지만 옛 말로 하자면 초가삼간입니다. 벽이 얇아 아무래도 한 겨울에는 바람벽을 뚫고 찬바람이 방안으로 스며들어 위풍이 셉니다. 몸이 차가워지면 암세포가 살판난다고 하니 낮에는 햇볕 따사로운 마루에 앉아 있곤 합니다.

고양이 가족 또한 볕 좋은 담장 위에서 무거운 눈꺼풀로 앉아 있습니다. 지난여름까지만 해도 어미 고양이는 산에서 들쥐나 새, 개구리를 잡아먹고 살았습니다. 어쩌다 산막 근처로 내려와 산짐승처럼 살고 있는 나와 눈이 마주치면 부리나케 숲으로 내빼던 녀석입니다.


그러던 녀석이 지난 가을 새로운 식구를 데리고 나타나 산막 주변에 자리를 잡았던 것입니다. 녀석의 새로운 식구는 아직 세상 물정을 모르는 새끼 고양이입니다. 새끼 고양이는 한 눈에 영양실조라 판단을 내릴 수 있을 만큼 비쩍 말라 있었습니다. 어미 야옹이는 비실거리는 새끼 고양이를 위해 큰 결심을 했을 것입니다. 동물들 중에서 가장 위험한 인간이 사는 곳에 새로운 보금자리를 마련했으니 말입니다.

암세포가 내 몸에 들어와 있다는 판정을 받고 부터 채식 위주로 생활 하고 있기에 육식이라고는 한 달에 한두 차례, 어쩌다 생선과 오리백숙이 전부이기에 고양이 가족에게 딱히 내줄만한 것이 없어 큰 맘 먹고 부러 사료를 사다놓았습니다. 하여 새끼 고양이는 꼬박꼬박 사료를 챙겨 집사노릇하는 내 주변을 오락가락 했습니다. 하지만 나와 눈이 마주치기라도 하면 화들짝 놀라 쏜살 같이 달아납니다.

"저 눔 자식이, 도망갈 것 같으면 왜 내 앞에서 어리바리 얼쩡거리는 겨."

'첫 겨울', 야옹이 새끼와 나

세상에 태어나 처음으로 맞이하는 새끼 고양이의 추운 겨울에 대한 두려움과 설렘이 나와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었습니다.

2년 전 딱 이맘때입니다. 피를 쏟고 쓰려져 암 판정을 받고 수술을 거부하면서 나에게 더 이상 겨울이 오지 않을 것이다, 마지막 겨울이라는 배수진을 쳤습니다. 마지막 겨울로 여겼던 2018년 그 해 겨울을 무사히 보내고 2019년 두 번째 겨울을 맞이하면서 새롭게 태어나는 첫 겨울이라 여겼습니다. 그리고 또 2020년 현재 세 번째 겨울을 맞이하고 있습니다. 이번 겨울 역시 내 생애 다시 오지 않을 첫 겨울이자 마지막 겨울이라 여기고 있습니다.

2018년, 암 판정을 받은 그 해, 첫 겨울은 새끼 고양이가 그럴 것이듯 두려움과 설렘으로 다가왔습니다. 하루하루 다가오는 죽음의 그림자와 하루하루 새로운 삶이 미지의 여행길처럼 두렵고 달콤한 설렘으로 다가왔던 것입니다.

하지만 낡고 허름한 산막에서 추운 겨울을 어떻게 보낼 것인지 고민이 많았습니다. 아궁이 불을 지피는 두 평도 채 안 되는 작은 방이지만 바람벽이 얇아 한 겨울, 방안 온도가 영상 10도 이하로 뚝 떨어지곤 합니다. 암 환자의 방안 기온은 20도 정도가 적절하다고 합니다. 자칫 몸의 체온이 1도 이상 떨어지면 면역력이 뚝 떨어져 치명적인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고 하니 두 아들의 걱정이 이만저만 아니었습니다.

두 아들은 빚을 내서라도 따로 원룸을 잡아 생활 하자고 제안했습니다.

"니들도 알다시피 아빠는 원룸 같은 데서는 답답해서 못 살어."
"겨울에만 생활하시면 되잖어."
"생활비도 못 벌고 있는데 원룸 구하려면..."
"아빠, 시골 원룸은 그리 비싸지 않어. 여기 산막도 한 달에 10만원씩이나 내고 있잖어."
"집세야 주변 분들이 도와주신 것으로 충분하지만... 차라리 남인도로 가면 어떨까? 여기서 생활하는 비용보다 적게 들고..."


남인도로 오라는 인도 친구의 메시지

그 무렵 인도에서 SNS를 통해 문자가 날아왔습니다. 남인도 사내, 쿠마르 쌍케였습니다. 2014년 십자인대를 다친 무릎을 질질 끌고 북인도 라다크에 갔다가 만났습니다. 그와 함께 모터사이클을 타고 5600고지를 넘어 파키스탄 국경까지 달렸던 게 인연이 되어 2018년 남인도에서 다시 만나기도 했습니다. 한국 영화를 좋아하는 그는 두 차례의 만남으로 가족처럼 가깝게 지내는 30대 중반의 젊은 친구입니다.
 

2014년 세계에서 가장 높은 도로 카르둥라. 남인도 청년 쌍케와 모터사이클을 타고 넘었다. ⓒ 송성영

 
쌍케에게 암 판정과 함께 그간의 사정을 얘기했더니 당장 남인도로 오라는 것이었습니다. 남인도의 겨울은 아침저녁으로 덥지도 춥지도 않은 한국의 신선한 봄가을 날씨와 흡사합니다. 그는 인터넷을 통해 알아본 결과 소금 끼 많은 염장식품을 선호하는 한국과 일본 중국 사람들이 특히 위암에 잘 걸린다며 인도의 음식이 위암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했습니다.
 
Come down to India. The weather and food will help you. I read online that Korea China and Japan, many suffer from stomach cancer. So some food problem I think.I am also going to work on food body and mind. In fact I wanted to work on it this year.

그가 문자를 통해 말하고 있는 인도 음식은 인도 사람들이 즐겨 먹는 강황, 즉 커리와 같은 음식이었습니다. 그에게 자연치유를 하고 있기 때문에 유기농 채소 위주로 먹어야 한다고 했더니 때마침 자신의 고향인 벵갈루루 근처에서 농장 일을 하고 있는데 거기서 머물며 도움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lf you are going to stay in India, then you can also stay in a farm I am working on. It is near Bengaluru. I can also help you with natural remedies.

전자공학도인 그는 엔지니어로 해외를 오가는 직장 일을 하다가 그만두고 빈민가 사람들을 돕는 NGO 활동을 하면서 유기농 먹을거리에 관심을 쏟고 있었습니다. 그는 내게 어떤 자연치유를 하고 있냐며 꼬치꼬치 캐묻더니 위에 좋은 음식과 고대 인도의 전통의학인 아유베다 의사를 소개해 주고 내가 원하는 채소를 재배해 주겠다고 했습니다.
 
Come to India, song The swamiji in Kausani knows some good Ayurveda doctors. I know one good food therapist. and what are those vegetables? i will try to grow them here for you.
 

라다크에서 파키스탄 국경 가는 길. 무릎 인대를 다친 상태에서 히말라야 4~5천m 고지의 혹독한 여정을 이겨내기도 했다. ⓒ 송성영

 
틱낫한 스님의 오일풀링과 아유베다

대자연과 인간을 상호 연관 지어 고찰하는 아유베다는 명상을 포함한 요가와 호흡요법, 식이요법을 비롯해 오일마사지, 약물요법 등을 시행하는 총체적인 고대 인도의 전통의학 체계로 알려져 있습니다. 이미 5천 년 전부터 힌두교의 브라만 경전 <베다>(Veda)에 의해 전승되어 온 아유베다는 현재 인도의 100개가 넘는 대학에서 교육과 연구가 이루어지고 있다고 합니다.

아유(Ayu)는 '삶, 일상생활'을 의미하며, 베다(Veda)는 '앎, 지식'이라는 뜻으로 삶의 지식'이란 의미를 지닌 아유베다는 이미 오래전부터 파키스탄, 네팔, 티베트를 비롯해 스리랑카, 말레이시아 등지에 영향을 주었고 유럽과 미국 등 서양문화권에서는 대체의학으로 주목받고 있습니다.

내가 아유베다를 처음 접하게 된 것은 수술을 거부하고 자연요법을 시작할 무렵이었습니다. 마지막 겨울이라는 마음으로 옷가지며 책들을 정리하다가 우연히 발견한 전단지에서 평소 존경하던 베트남의 틱낫한 스님이 소개한 '오일 풀링'(oil-pulling)을 통해서였습니다.

아유베다의 치유법 중 하나인 오일 풀링은 불포화 지방산이 많은 참기름, 해바라기씨 오일, 올리브유 등을 한 숟가락 입안에 넣고 5분에서 20분 정도 구석구석 헹궈 내는 것입니다. 밤새 입으로 올라오는 몸속의 독소를 오일에 녹여 배출해 내는, 입을 통해 몸으로 들어온 독소를 입으로 내보내는 것입니다.

또한 이 전단지에는 인도의 어느 신문사에서 2년 동안 매일같이 오일 풀링을 실시한 1천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80% 이상이 어느 한 가지 병을 치유했다는 내용도 있었습니다. 출처나 근거가 불분명한 이 자료에 대한 신빙성 여부를 떠나 국제적으로 덕망이 높은 명상 지도자이자 평화 운동가인 틱낫한 스님이 시행하고 있다는 것에 큰 믿음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2018년 1월 무렵. 쌍케 그리고 큰 아들 인효와 함께 남인도 고아에서. 남인도의 겨울은 한국의 봄가을 날씨와 흡사하다. ⓒ 송성영

 
내 몸에 어떤 치유효과를 발휘하고 있는지는 구체적으로 알 수 없지만 오일풀링을 하고 나면 입안이 개운하고 몸이 가뿐해지는 느낌이 듭니다. 어쩌다 산막을 벗어나 오일풀링을 하지 않는 날은 아침 내내 견딜 수 없을 정도로 입안이 찝찝합니다. 입안이 개운하면 그만큼 하루를 개운하게 시작할 수 있으니 탁한 것을 선호하는 암세포에 분명 어떤 영향을 줄 것이라 믿고 있습니다.

부산에서 박상도 선생이 무료로 보내주었던 한약 처방 역시 독소를 제거하는 것이기에 오일풀링과 병행하면 분명 좀 더 큰 효과를 볼 것이라는 믿고 거의 매일 아침마다 오일로 입안을 헹궈냈습니다.

'외부 온도보다 몸의 온도가 중요하다'

한국의 전통 한의학을 떠올리게 하는 아유베다는 식이요법, 명상, 기혈운동을 기본으로 하고 있는 나의 자연요법과 그 깊이와 방법은 다르지만 자연을 통해 건강을 회복시킨다는 기본철학은 크게 다르지 않았습니다. 하여 남인도 친구 쌍케가 자신과 친분이 있는 인도에서 나름 유명하다는 아유베다 전문 의사를 소개해 준다는 말에 남인도 행을 고민하고 있는데 또 다른 복병을 만났습니다. 미세먼지였습니다. 명상이나 기혈운동을 할 때 중요한 요소인 깊은 호흡을 미세먼지가 탁하게 가로막았던 것입니다.

하여 몇날 며칠 고민 끝에 인도 행을 결심하고 큰아들 인효에게 남인도행 비행기 표를 예약하라 해놓고 숲 산책을 나섰습니다. 꽁꽁 언 겨울 숲길을 맨발로 걸었습니다. 그런데 문득 한약을 보내주시는 박 선생의 '외부 온도보다 몸의 온도가 중요하다'는 말이 떠올랐습니다. 음식 또한 직접 해먹으려면 타국에서 쉽지 않은 일이었고 쌍케가 한 가족처럼 반긴다하지만 마냥 내 수발을 들어줄 수 없는 것이었습니다.

"그려, 비행기 표를 끊었다면 이런저런 생각을 접고 인도로 가는 것이고 아직 끊지 않았다면 가지 말라는 신호다."

혼자말로 중얼거리며 산막에 돌아와 온도계로 몸 상태를 점검했습니다. 36.3도, 맨발로 언 땅을 걸었음에도 몸의 온도가 크게 내려가지 않았습니다. 큰 아들 인효에게 물었습니다.

"비행기표 끊었냐?"
"아니, 아직 안 끊었어. 싼 표를 구하려 하니께 쉽지 않네."
"잘 됐다. 가지 말자."
"잉 왜?"
"몸 안의 온도가 문제지 외부 온도가 문제가 아닌 겨. 오늘처럼 언 땅을 걸어도 내 몸은 멀쩡하잖어. 힘들면 힘든 대로 여기서 그냥 겨울을 나야겠다. 인도에서 마냥 살수도 없는 일이고."


무엇이든 이것이 있으면 저것이 있기 마련입니다. 인도행을 포기할 무렵 가깝게 지내는 산 아랫집 임상완 아우를 비롯해 최평곤 형님과 인테리어 시공업자인 임동원 선생이 추운 겨울을 고민 하고 있다는 얘기를 듣고 찾아왔습니다.
 

그해, 주변 사람들의 도움으로 허름한 산막을 옷 입히듯 폐자재로 꽁꽁 싸매고 겨울을 맞이했다. ⓒ 송성영

 
그 이웃사촌들이 끌고 온 트럭에는 천이나 폐자재가 한 짐 실려 있었습니다. 그것으로 내 몸에 두툼한 옷을 입히듯 허름한 오두막집의 바람벽이며 부엌은 물론이고 지붕과 벽 사이의 바람구멍을 둘둘 싸매 주었습니다. 그 결과 방안 온도가 평소보다 3~4도 올라갔습니다. 그렇게 큰 탈 없이 세 번째 겨울을 맞이하고 있는 것입니다.

얼마 전 고양이 가족이 요란한 엔진 톱 소리에 화들짝 놀라 집을 나갔습니다. 땔나무를 자르기 위해 엔진 톱을 들고 나섰는데 하필이면 그 주변에서 볕을 쪼이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나마 처음 산막에 찾아 왔을 때 보다 눈에 띄게 살집이 붙어 집 나간 고양이 새끼의 첫 겨울은 혹독할 것입니다. 하지만 그 혹독한 겨울을 이겨 내면 따듯한 봄날이 찾아 올 것입니다. 수염발 허연 내가 트래킹 도중 삐끗해 부어 오른 무릎을 끌고 모터사이클로 한 여름에도 진눈깨비 날리는 히말라야 5600고지를 큰 탈 없이 넘었듯이. 암세포라는 죽음의 전령사와 함께 세 번째 겨울을 맞이하고 있듯이.
 

첫 겨울을 맞이하는 새끼 고양이 ⓒ 송성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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