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05.13 15:52최종 업데이트 17.06.07 10:26

공동묘지 우드비교회의 공동묘지, 교회 앞의 아기자기한 공동묘지가 삶과 죽음에 관한 많은 생각들을 하게 한다. 한국의 교회에서도 이런 형태가 가능할까? ⓒ 김민수


지난 1일, 제1기 '오마이뉴스 꿈틀 비행기'가 떴다. 행복 사회 덴마크를 돌아보며 행복 사회를 만들어갈 수 있는 동력이 우리 안에도 있음을 확인하는 시간이었다. <오마이뉴스> 오연호 대표와 스태프를 포함한 32명의 참가자들은 인생 학교와 교육 단체, 덴마크의 아버지로 불리는 그룬트비의 흔적들을 돌아 보았다. 첫 번째 '꿈틀 비행기'에 탑승한 것은 행운이다. 그 행운의 단편을 나누고자 한다.

그룬트비의 생가와 우드비교회

덴마크의 수도 코펜하겐에서 남쪽으로 약 50km 떨어진 시골 마을 우드비(Udby)에는 덴마크의 아버지로 불리는 니콜라이 그룬트비(1783~1872)의 생가와 그의 아버지가 오랫동안 목회하고 그룬트비 자신도 목회한 우드비교회가 있다.


이른 봄날 새벽 내린 비에 갓 피어오른 연록의 새싹과 꽃이 더욱 싱그럽고, 작고 예쁜 달팽이들이 그룬트비 생가의 꽃밭을 거닐고 있다. 생가는 생각보다 많이 낡아 있었다. 그러나 봄의 기운은 그 낡음에서조차도 새로운 꿈을 피어나게 하는 듯했다.  이런 봄날이면 어린 그룬트비도 들판을 뛰어다니며 피어나는 봄꽃들과 대화하고, 달팽이와도 놀지 않았을까?

한국에서 볼 수 없었던 노란 바람꽃이 나무 아래에서 흔들리고, 한국과는 조금 다른 수선화에는 아주 작은 달팽이가 앉아 쉬고 있다. 생가 뒤편에는 작은 연못도 있고, 자작나무를 가로수 삼은 길 양편으로 초록 들판 보리밭이 펼쳐져 있다. 이 모든 것이 목사이자, 시인이자, 작곡자이자, 철학자인 그룬트비를 만든 교사들일 것이다.

생가에 얽힌 이야기도 많지만, 나는 목사이기에 교회가 궁금했다. 행복한 나라 덴마크의 교회도 행복할까? 시골의 작은 마을에 있는 우드비교회. 교인도 많지 않은 우드비교회는 어떻게 운영될까?

교회 안에서도 다른 의견을 이야기 할 수 있는 자유

그룬트비 기념교회 코펜하겐 시내에 있는 그룬트비 기념교회, 자연의 빛이 교회 안으로 들어올 수 있도록 디자인 된 교회이다. ⓒ 김민수


덴마크는 1536년 이후 루터교를 국교로 삼았다. 종교의 자유는 1848년 자유헌법이 만들어진 후에 얻었다. 그룬트비는 국교에 대해 '종교 탄압'이라는 입장을 취했으며, 교회 안에서도 다른 의견을 이야기 할 수 있는 자유를 강조했다. 이것이 정치권이나 목회자가 개입하지 않는 덴마크 '시민 교회'(Folkekirken)의 시작이기도 하다.

1848년 이후, 의무적으로 납부하던 종교세가 폐지됐다. 현재 덴마크의 국민은 자발적으로 종교세를 내고 있는데 소득의 0.4%에 해당하는 종교세를 내는 비율은 80%에 이른다고 한다. 성직자들은 교회에서 사례비를 받는 것이 아니라, 국가로부터 사례비를 받는다.

물론, 국가는 국민이 자발적으로 낸 종교세에서 사례비를 지출하는 것이다. 종교세를 관할하는 기관에서 각 교구(지역)별로 필요한 것을 지원하고, 성직자를 파송하고 관리하는 일을 연계해 하는 것이다. 이런 시스템은 한국 교회와 전혀 다른 시스템이며, 이런 것을 비교해 보면 '텅 빈' 덴마크의 교회가 '꽉 찬' 한국의 교회보다 얼마나 행복한지 알 수 있다.

1980년대 일부 보수적인 한국 교회 일각에서는 유럽의 교회가 텅 비어가고 있다며 유럽 교회의 종말을 염려했다. 교회가 텅 비면 유럽 사회도 붕괴될 것이고, 기독교 정신이 사라진 유럽은 희망 없는 사회가 될 것이라고 전망하기도 했다. 반면 한국 교회는 세계에서 10위권에 드는 손에 꼽을 만한 대형 교회도 많으니 신의 축복에 의해 선진 사회를 이룰 것이라는 장밋빛 전망을 내놓기도 했다.

그 장밋빛 전망은 물론, 유럽 교회에 대한 전망도 잘못됐다. 유럽 사회는 행복지수 조사에서 늘 상위권을 유지하는 반면, 한국은 하위권을 맴돌고 있다. 그뿐 아니라, 좋지 않은 부문은 상위권을 석권 하고있다. 더군다나 한국 교회는 사회의 걱정거리가 되기도 한다. 교회가 사회를 걱정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가 교회를 걱정할 정도로 교회가 타락한 것이다. 그 이유는 다양하겠지만, 우드비교회를 포함해 덴마크의 교회들을 방문하며 느낀 것을 나누며 한국 교회도 행복한 교회가 되길 꿈꿔본다.

교인 수에 연연하지 않는다

그룬트비기념교회 그룬트비기념교회의 강대상, 한국교회처럼 높지 않다. 낮은 곳에 임하시는 하나님의 상징을 본다. ⓒ 김민수


국가에서 사례비가 나오니 덴마크 목사와 교회들은 교인 수에 연연하지 않는다. 과연, 이게 장점일까? 그렇다. 이는 대단한 장점이고, 목회의 근간이 달라지는 시작이다. 우리나라의 경우 교회의 규모, 교인 숫자에 따라 목사의 사례비가 달라진다. 죽자 사자 남의 교회 교인이라도 빼앗아 대형 교회를 만들려는 이유도 사실은 거기에 있다.

젊은이들이 떠난 시골 교회를 목회자들이 기피하는 현상이 일어나고, 도시의 교회들은 서로 경쟁한다. 이제는 교인들도 더는 봉사와 헌신을 많이 필요로 하는 교회를 원하지 않는다. 그저 위안을 받을 교회, 편안하게 신앙 생활할 교회를 찾는다. 한 지역의 대형 교회가 80%의 신자들을 갖고, 나머지 80%의 교회가 20%의 교인을 나눠 가진다. 소위 '80 vs. 20'의 사회다.

만일 시골 교회와 도시의 대형 교회의 사례비가 동일하다면 어떤 현상이 일어날까? 엄청난 변화를 상상할 수 있다. 굳이 도시 교회, 대형 교회가 아니더라도 생활하는 데 큰 문제가 없다면 특별한 이유가 없는 한 작은 교회를 원할 것이다.
교인 수에 연연하지 않는다는 것은, 그 외에 많은 변화를 가져오게 한다.

오로지 하나님의 말씀만...

한국 교회에서 목사를 청빙할 때 빼놓지 않고 하는 질문 중 하나가 "하나님의 말씀만 전하겠습니까?"다. 이 질문은 목사 안수를 받을 때도 받는 질문이다. 한국 사회에서 '하나님의 말씀만'이라는 의미는 사회적 현실에 대해 눈감으라는 이야기와 다르지 않다.

물론, 본래의 의미는 목에 칼이 들어와도 하나님의 말씀이기 때문에 전하겠다는 예언자적 의미를 담고 있다. 그러나 지금은 사회 비판적인 혹은 정치적인 내용의 설교나 행동을 하지 않겠다는 의미가 돼버렸다. 그런데, 과연 대한민국의 현실에서 교회의 목회자가 사회 현실에 대해 침묵한다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며, 가당키나 한 일일까? 예수도 정치범으로 처형됐다는 사실을 다시 상기할 필요가 있다.

코펜하겐 교회 코펜하겐 시내에 있는 교회, 새벽에 불이 환하게 밝혀져 인상적이었다. ⓒ 김민수


덴마크의 경우 전혀 다른 양상이 일어나고 있다. 그곳 목회자들은 굳이 사회적인 발언을 할 필요가 없다. 기독교 정신이 사회적으로 이미 충만하고, 정치적으로 그런 문제들이 실현되고 있으며, 설령 문제가 있어도 정치적으로 그런 문제들을 풀어가기 때문에 오로지 하나님의 말씀만 전하는 것이 가능하다.

그러니 성경에 충실하게 되고, 그 본질적인 질문에 깊이 들어가게 된다. 여기서 무조건 "아멘!"을 강요하는 한국 교회와의 본질적인 차이가 생기는 것이다. 더군다나 교회 안에서 다른 의견을 이야기할 수 있는 자유를 강조하는 시민교회의 모델을 통해 한국의 무조건적인 "아멘!" 교회와는 다른 모습이 존재하게 된다. 목사는 오로지 하나님의 말씀만 전하고, 교인들은 동시에 "왜?"라고 묻고, 또 거기에 대답하므로 소위 '심층적인 종교'로 자리매김하게 되는 것이다.

덴마크교회에는 새벽 기도가 있을까?

종탑 교회종탑의 종이 교회 한 켠에 기념물로 전시되어 있다. 오랜 세월의 흔적을 담고 있다. ⓒ 김민수


한국에는 기독교의 본 고장과 다른 형태의 예배가 많은 것으로 잘 알려져있다. 그 중 하나가 '새벽 기도회'다. 일부 보수적인 기독교인과 교회에서는 이 '새벽 기도'의 참여 여부로 믿음을 평가하기도 한다. 자발적인 측면도 있지만, 거의 강제적 측면이 강하고, 목회자 중에서도 새벽 기도로 힘들어하는 이들이 많다. 목회자 중에서 새벽 기도를 안 한다거나, 등한시한다면 목회자의 자질을 의심받는 것이 한국 교회의 모습이다.

새벽에 코펜하겐 시내를 걷다 환하게 불이 밝혀진 교회를 발견하고 자연스레 발걸음을 옮겼다. 교회는 환하게 붉을 켜놓았으며(그냥 환한 것이 아니라 기도하기 좋게), 몇 백 년 넘은 교회당 건물이 주는 분위기가 더해져 신앙을 가진 이들이 아니더라도 기도할 수밖에 없는 분위기를 물씬 풍겼다. 300여 명 정도가 들어갈 만한 규모의 교회에는 서너 명이 앉아 기도를 드리고 있었다. 목회자의 설교도 없었다. 매 시간마다 종소리가 '덩그렁'거리며 들려올 뿐이었다. 그것이 덴마크식 새벽 기도였다.

한국 교회는 평일엔 문을 잠글 뿐 아니라, CCTV까지 설치돼있다. 만일 덴마크에서처럼 서너 명이 나와 기도할 때도 한국 교회는 불을 환하게 밝혀줄 수 있을까? 교회문을 잠그지 않았을까? 홍등가의 광고판처럼 밤새 붉은 네온사인 십자가는 불 밝힐지언정, 기도하고자 나오는 이들을 위한 전깃불에는 인색한 것이 아닐까? 이제 일부 한국 교회를 지켜주시는 분은 전지전능하시고, 무소부재하신 하나님이 아니라 CCTV와 자본이 아닐까?

주일만의 교회와 매일의 교회

우드비교회 그룬트비 생가와 인접한 우드비교회 ⓒ 김민수


덴마크는 '휘게 문화'가 발달한 나라다. '휘게'는 덴마크 사람들이 지향하는 여유롭고 소박한 삶의 방식을 뜻하는 말이다. 북반구에 위치해 겨울철에는 오후 2시면 해가지는 곳인 데다 궂은 날씨가 많은 나라다 보니 '쉼'을 위한 공간이나 디자인, 조명 등이 발달했다. 그런 '휘게 문화' 속에서 촛불을 밝힌 조명 기구의 디자인과 기능이 교회에도 접목된 것 같았다.

낮에는 자연의 빛이 교회당에 들어오게 설계돼 있고, 밤에는 조명으로 종교적 경건성을 극대화할 수 있도록 돼있다. 그러니 언제든지, 누구든지 본인이 원할 때 교회에 나가 기도할 수 있는 것이다. 공식적인 예배는 주일 예배만 있지만, 교회는 늘 개방돼 있고, 소수지만 기도하는 이들이 언제나 있다.

한국 대부분의 교회는 새벽 예배, 수요 예배, 주일 예배,  오후 예배뿐 아니라 이런 저런 성경 공부 모임 등 잠시라도 교인들을 교회로 모이게 하지 않으면 큰일 날듯 닦달한다. 이런 방식은 '선데이크리스천(주일에 교회에서만 교인처럼 행동하는 신앙인)'을 양산했다. 신앙은 삶의 문제임에도 '신앙따로 삶 따로' 교인을 양산해 낸 것이다. 그러나 덴마크의 교회는 매일의 교회인 동시에 삶 전반에서 신앙인의 삶을 살아가는 이들과 함께 하고 있다. 자발적으로 소득의 0.4%의 종교세로 내는 이들이 80%나 된다는 것이 이를 증명해준다.

한국 교회도 행복할 수 있을까?

오마이뉴스 오연호 대표가 <우리도 행복할 수 있을까?>라는 책을 통해 "여기저기 꿈틀거리는 이들이 있어 우리도 행복할 수 있다"는 결론을 내렸듯이, 한국 교회도 행복할 수 있길 바란다. 하지만 너무도 요원하다. 그래도 이 희망을 버릴 순 없는 것이니 품을 수밖에. 한국 교회가행복해지려면 기존 한국 교회의 모습이 깨지는 수밖에 없을 것 같다. 그 깨짐 없이 한국 교회의 희망을 이야기한다는 것은 가식이다.

"왜?"라고 질문하는 건강한 교인들, 그런 교인들을 두려워하지 않는 목회자, 지역의 교회가 함께 연합해 지역 사회의 현안을 붙잡고 고민하는 교회, 하나님 앞에서 솔직한 목회. 너무 먼 나라 이야기일까? 그럼에도 행복해야 하니, 그것이 우리가 추구하는 바이니... 한국 교회도 여기저기서 이런 꿈틀거림이 이어진다면 행복하지 못할 이유도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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