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05.18 17:08최종 업데이트 17.06.07 10:32
5월 1일부터 9일까지 30여 명의 시민기자들이 꿈틀비행기를 타고 '행복지수 1위' 덴마크를 방문했습니다. 오연호 오마이뉴스 대표기자가 쓴 책 <우리도 행복할 수 있을까>의 현장을 8박 9일 동안 직접 목격하고 쓴 여행기입니다. [편집자말]

덴마크 인생학교 학생들 ⓒ 오마이뉴스


"엑스레이를 찍을 건지 말 건지 대뜸 물어보면 어쩌자는 거야? 차트를 갖고 오든지."
"말을 할 땐… 영어는 동사가 먼저 나오고…."
"도대체 내가 말을 안 하면 저 조명은…."

나는 입을 벌린 채로 누워 있었다. 치과에서. 의사(원장)가 치위생사로 보이는 여직원에게 신경질적으로 던진 말들이다. 민망했다. 순간 '덴마크 의사라면 과연 저렇게 말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덴마크에서 귀국한 지 일주일이 돼간다. 8박 9일간의 여정이 긴 꿈처럼 아득하기만 하다. 깨끗한 공기, 청명한 하늘(원래 덴마크 날씨는 비가 오거나 흐린 날이 많다), 질서정연한 자전거 떼, 도심 속 풍성한 녹지대와 강바람, 웅장하고 오래된 건축물, 미소 짓는 친절한 사람들, 부러운 복지제도, 심지어 연한 담배 냄새까지.

내 눈에는 모든 것이 눈요기 거리였다. 이 글에 전체를 담을 수는 없으나 일정의 몇 토막을 담아볼까 한다. <우리도 행복할 수 있을까>의 저자 오연호 오마이뉴스 대표기자의 글이 과연 사실인지, 현장 조사단원(?)인 양 나는 떠날 채비를 했다. 5월 1일 2015 덴마크 견학 여행 '꿈틀비행기'에 탑승!

일정 둘째 날 코펜하겐 어느 레스토랑에서 고등학교를 졸업한 앳돼 보이는 직원을 인터뷰했다. "지금 걱정이 있느냐?"라고 질문하자 그는 "기회가 너무 많은 것이 걱정이다"라고 답했다. 그렇다. 덴마크는 교육 시스템과 고용 정책이 세계적으로도 선진화돼 있어, 우리나라처럼 취업과 생계에 쫓기듯 인생의 중요한 마디마디를 허겁지겁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행복을 위해 자신이 좋아하는 것이 무엇인지 충분한 탐색의 시간과 선택의 기회를 가질 수 있다.

부모의 못 이룬 꿈을 대신하라는 압박도, 성적에 맞춰 진학하라는 선생님의 지도도 필요없이 말이다. 어려서는 자신이 아닌 학업 등수에 맞춰진 부모와 선생의 일방적인 개입 속에서 성장하고, 사회에서는 자신이 무엇을 하고자 하는지, 무엇을 잘하는지 전혀 알지 못한 채 준비 없는 준비로 무르익지 못한 우리나라의 수많은 청년들이 스쳐갔다.

"기회가 너무 많은 것이 걱정이다"

덴마크에서 흔하게 볼 수 있다는 한 농가의 협동조합을 가봤다. 그곳에서 만난 조합원 말에 의하면, 누구나 언제든지 필요하다면 작은 단위라도 조합을 구성할 수 있다고 한다. 다수의 의견을 모아 필요한 전문가의 도움을 받고, 보다 합리적으로 의견을 개진하고, 문제점을 해결해나가기 위해 조합원과 정부가 언제든지 대화의 준비가 돼 있는 효율적이고 민주적인 시스템을 갖추고 있다는 것을 잘 보여주고 있었다.

장애인복지제도 역시 부러웠다. 지역의 센터를 중심으로 병원과 시설을 연계하는 원스톱 서비스를 갖추고 있고, 궁극적인 목표는 장애를 극복할 수 있도록 조기에 모든 지원을 아끼지 않여며 장애인이 독립적인 생활을 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다. 결국 장애인이 비장애인들과 동등한 생활을 할 수 있게 하는 사회통합적인 교육 철학을 담고 있다.

또한 장애인에 대한 인식도 달랐다. 그들 역시 자랑스러운 누군가의 자녀·학생, 자유와 평등을 충분히 누리는 덴마크의 국민들이라는 것이다. 우리나라의 현실을 볼 때 깊이 뉘우치게 만드는 대목이다.

자전거의 천국이라는 덴마크에는, 하늘의 새떼처럼 땅에는 자전거 떼가 있다. 출근시간이 임박한 이른 아침에 자전거를 타고 큰 도로를 따라가 봤다. 자동차와 동일한 신호를 따르는 구간과 자전거의 별도 신호를 따르는 구간이 따로 있고, 방향 전환에 따라 뒷사람의 안전을 위해 자전거 운전자가 직접 왼손 오른손을 펴가며 자체 신호를 넣어야 했다.

자전거 운전도 자동차 운전만큼이나 주의를 요하는, 초보자에게는 결코 쉽지 않은 교통수단이었다. 그렇게 자전거가 떼로 다니는데도 추월 차선을 비워둔 채 한 줄로 정연하게 신호를 기다리며, 누구 하나 추월하여 우회전 차선을 막고 있는 이는 보지 못했다. 나 외에는.

상점들은 대형마트를 제외하고 입구에 도난방지용 시스템이 거의 설치돼 있지 않다. CCTV도 쉽게 눈에 띄지 않았다. 마주친 점원들은 하나같이 환하게 웃는 얼굴로 상냥하게 대했다. 또 다른 직원과 마주치면 그 역시 도움이 필요한지 친절하게 체크했다. 나는 마트 계산대에서 바로 옆에 있는 일회용 비닐 팩을 보지 못하고, 다른 사람 것을 가리키며 하나 얻을 수 있는지 물었다. 계산하는 점원은 '얍!' 하더니 내 옆에 있는 비닐봉투를 직접 뽑아서 활짝 웃으며 건네주었다.

보이지 않는 것들에 더 큰 가치 두는 것이 '행복'

덴마크는 선진국이다. 두터운 중산층을 이루고 있으며, 사회보장제도가 잘돼 있어 물가와 상관없이 소득 대비 소비도 상당하다. 북유럽 복지국가들의 대표적인 특징이다. 이런 나라에서 이번 견학 여행 중에 내가 본 것과 보지 못한 것들을 떠올렸다. 일정의 끝자락에서.

내가 본 것은 학생들의 자유분방한 행복한 웃음과 선생들이 학생을 향한 자율과 존중의 교육 철학, 언제든지 대화할 준비가 돼 있는 민주성과 합리성을 기본으로 한 국민들의 의식, 모두가 장애인인 것 같은 평등과 통합주의의 교육 방식, 자전거 떼들의 약속된 신호와 실행을 보았다. 그리고 무기 대신 계몽으로 무장한 덴마크의 평화적 혁명의 역사와 현재를 보았다.

그럼 내가 보지 못한 것은 무엇이던가? 학교에서는 널찍한 교장 선생의 방과 권위의식을 보지 못했고, 학생들에게서는 반장과 등수를 보지 못했으며, 상점에서는 도난방지시스템을 거의 보지 못했다. 그리고 불행한 표정의 학생들을 거의 보지 못했다.

물론 8일의 일정 동안 이들의 국민성과 의식을 충분히 느끼기에는 불가능하다. 하지만 8일 동안 덴마크를 본 것은 <우리도 행복할 수 있을까>를 다시 한 번 읽은 것과 같았다. 그리고 동시에, 슬프게도 '우리나라는 내가 본 것과 보지 못한 것들의 대부분이 반대가 아닐까'라는 씁쓸함이 밀려왔다.

우리 한국 사회에서 겉으로 보이는 것들 아니, 보여야만 하는 것들, 이른바 등수, 스펙, 재력, 비싼 집, 명성 있는 직장, 과잉친절, 첨단시스템이다. 하지만 그보다 각자의 개성과 다양성, 배려와 존중, 소외와 갈등, 약속과 신뢰, 어울림과 소통, 관심과 열정 같은 보이지 않는 것들에게 더 큰 가치를 두는 것이야말로 기나긴 행복으로 가는 비행이 아닐까 한다. 나의 등수에 맞춰진 사회가 아니라 나에게 맞춰진 사회가 하루 빨리 올 수 있도록 나 자신부터 견학하는 '꿈틀' 비행은 계속돼야 할 것 같다.

끝으로 덴마크처럼 시민들의 주치의는 아니지만 효율적인 나의 치아 관리를 위해 꾸준히 다니고 있는, 앞으로도 다녀야 할 치과의 원장이 지금과는 다르게 동료들에게 품위 있는 적절한 예의와 배려를 갖추면 좋겠다. 나 역시도 직장 후배들에게 어찌 대하고 있는지 다시 한번 점검해봐야겠다. 보이지 않는 것들이 아니라 보지 않았던 것들을 하나씩 챙겨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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