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19 08:42최종 업데이트 20.06.19 08: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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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회찬과 함께 <대한민국 진보, 어디로 가는가?>(비아북, 2014)를 펴낸 <오마이뉴스> 구영식 기자는 그에 대해 이렇게 평한다.

"노회찬은 한국 진보운동이 쌓아온 역사의 지층을 생각하게 한다. 그는 학생운동과 노동운동을 거쳐 진보정당운동으로까지 나아간 첫 세대다. 그의 삶은 대한민국 진보정당운동사의 축약이다. 지금 '진보의 재구성'을 논할 자격이 있는 사람을 찾는다면 바로 그, 노회찬이다." 
 

'대한민국 진보, 어디로 가는가?'를 쓴 구영식 오마이뉴스 기자(왼쪽)와 노회찬 의원(오른쪽). ⓒ 비아북

 
노회찬은 '진보정당의 설계자이자 개척자'로서 진보정당의 성장과 발전을 위해 여러 정치전략을 구사한다. 대표적인 것으로 민주노동당 시절의 '거대한 소수‧진보야당', 진보신당 시절의 '생활 진보‧혁신 진보', 진보정의당 시절의 '진보의 세속화' 전략 등을 꼽을 수 있다.

전략이란 '싸움할 전(戰)'자와 '꾀 략(略)'자가 합쳐진 용어로 '싸움하는 꾀'를 말한다. 영어의 단어 strategy(전략)의 어원은 고대 그리스어인 'strategos'로 두 개의 단어가 합해져서 형성됐다. 'stratos'는 '군대나 민중 집단'을 뜻하고, 'agein'은 '이끌다, 몰아가다 혹은 움직이게 하다'라는 뜻이다. 역사적으로 전략은 전쟁에서 비롯됐다고 한다. 즉 전략이란 전쟁에서 이기기 위한 방법이었다.


'승리'라는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 '상대편'과 '전쟁터' 등 여러 외부적 환경(어떤 상대와 싸우느냐, 언제 어디서 싸우느냐, 무엇으로 어떻게 싸우느냐,  어떤 룰로 싸우느냐) 속에서 '나와 우리'는 무엇을 어떻게 하는 것이 효과적인지 판단하는 것이 전략을 구성한다. 전략은 정해진 목표를 관철시키고, 가지고 있는 수단(자원)을 목적에 맞게 투입하고, 참여자들의 의사결정권이 정해진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사용되도록 조정하는 과정을 통해 구체적으로 실현된다(랄프 쇼이스, <전략사전>, 옥당, 2010, 23쪽).

한마디로 전략이란 달성하고자 하는 바를 가장 효과적으로 성취할 수 있는 체계적 행동계획을 뜻한다. 이에 비춰볼 때 한 정당의 정치전략이란 정당이 달성하고자 하는 목표를 가장 효과적으로 성취할 수 있는 체계적 행동계획이라고 말할 수 있다.

민주노동당과 노회찬: '거대한 소수' 전략과 '야당교체‧진보야당'론
 

'진보정치'(2004년 4월 20일~4월 25일, 174호) 커버. 일러스트는 이창우씨가 만들었다. ⓒ 진보정치, 이창우


2000년 1월 30일 민주노동당은 '창당선언문'을 통해 "민주노동당은 노동자·농민·빈민·중소상공인의 정당이며, 여성·청년·학생·진보적 지식인의 정당"이라고 규정하고 "한국사회의 다양한 진보세력과 민주주의를 열망하는 개인의 총화를 이루어내는 데 혼신의 노력을 기울일 것"이라고 선언함으로써 그 역사적 탄생을 알린다.

4년 뒤인 2004년 4월 15일 17대 총선에서 민주노동당은 44년 만에 원내진출에 성공한다. 한 주간지는 "진보 깃발을 치켜든 '거대한 소수'의 탄생은 현대 정치사에 굵은 획을 긋는 역사적 사건이라고 할 수 있다"라고 말한다(조계완, '거대한 소수'의 치밀한 승리!, <한겨레21>, 제506호, 2004.4.21.).

2004년 1월 30일 민주노동당 창당 4주년 기념식에서 노회찬은 기념사를 한다.

"우리는 그 누구도 가지 못한 길을 걸어가는 개척자들입니다. 애초에 길이 있었던 것이 아니라 우리가 가면서 길이 만들어지고 있습니다. 우리가 낸 이 길을 따라서 이 땅의 4천만 민중이 걸어올 것이고, 나아가 7천만 민족이 함께할 것입니다. 그리고, 그 길의 끝에는 사람이 사람답게 사는 사회가 있을 것입니다."

<진보정치> 164호(2004.2.2.-2.8)에 기고한 글('민주노동당 4년 의미와 전망-실험은 끝났다')에서 노회찬은 '수치로 본 민주노동당 4년'을 표로 정리한다.
 

'진보정치' 164호(2004.2.2.-2.8)에 실린 '민주노동당 4년 의미와 전망-실험은 끝났다', 수치로 본 민주노동당 4년. ⓒ 진보정치

 
17대 총선 민주노동당의 원내 진출 경과 및 선대본부장 노회찬의 활동과 역할은 '선대본일기'를 모아 펴낸 <힘내라 진달래>(사회평론, 2004)에 잘 정리돼 있다. 노회찬이 "힘내라"고 말한 '진달래'는 민주노동당을 상징한다.

"2003년 말 제17대 국회의원 선거 선대본부장으로 임명되자 제일 먼저 생각한 것은 '일기를 쓰자'는 것이었다. 하루하루 일어난 일을 간결하게 담담하게 기록하기로 했다. 우리가 가는 길이 바로 역사이고 이를 기록하는 것은 나의 임무라 생각했다.

… '선대본일기'가 중앙당 게시판에 연재되는 동안 각 지구당에서 선거운동의 일선을 맡고 있는 동지들의 호응이 컸다. 하루하루 중앙당의 소식과 고민을 알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이다. 일선 당원들의 이같은 호응은 부족한 일기를 매일 써나가는 데 가장 큰 원동력이 되었다. … 3월 6일부터 3월 14일까지 일기가 작성되지 않은 것은 당시 진행된 비례대표후보 선거운동에 영향을 미치지 않기 위해서였다. '선대본일기'는 3월 31일까지 쓰여졌다."(6~7쪽)

"여의도 나들목 부근은 어느새 밀려온 봄꽃 천지다. 개나리가 듬뿍 피어 있고 벌써 곳곳에서 진달래가 고개를 내밀고 있다. 3월 28일 아침 여의도. 노란 개나리와 연분홍 진달래꽃이 지금의 열우당과 민주노동당 지지율만큼씩 상륙해 있다. 힘내라, 진달래. 가슴도 눈시울도 연분홍이다."('선대본 간부들에게 4월 15일까지는 아프지 말라고 지시하였다', <선대본일기>, 3.28.)

 

'진보정치' 164호(2004.2.2.-2.8.)에 실린 '노회찬 본부장의 선대본일기' 기사. ⓒ 진보정치


권영길과 노회찬 등 진보정당 소속 국회의원 10명이 처음으로 국회에 진출한 민주노동당은 이른바 '거대한 소수전략'을 채택한다. 국회의원 10명뿐이지만, 사회적 약자 보호 차원에서 '공익적 이슈'를 끊임없이 생산해내 지지기반을 넓히고 '10대 289'라는 의석수의 열세를 극복함으로써, 대중에 기초해 강력한 정치력을 발휘하겠다는 전략이었다.

2004년 17대 총선을 마치고 개원준비에 여념이 없던 민주노동당은 당선자를 비롯해 여러 당직자들과 함께 남원 중앙연수원에서 의정활동 전략구상 등을 위한 집단합숙에 들어간다. 5월 9일부터 11일까지 2박3일 동안 당선자들은 '산적한 개혁과제들을 해결하는 데 있어 소수정당의 한계를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를 두고 장시간 토론을 벌인다.

토론결과 민주노동당이 추진할 개혁과제들의 경중을 따지고 우선순위를 공유하고, 원외에 존재하는 다수 지지세력을 등에 업고 가는 '거대한 소수'정당 전략을 선택한다. 그리고 노동자·농민·시민사회단체·자발적 국민들과 함께 구성되는 개혁과제 네트워크를 통해 정치, 경제, 민생현안의 개혁과제들을 실천해 갈 것을 선언한다. 개혁과제 네트워크는 소수정당의 네거티브 전략을 벗어나 적극적으로 국민여론을 수렴, 원내에 반영하겠다는 시도의 일환이다(박형숙·권박효원, 민주노동당 "우리는 '거대한 소수정당'으로 간다", <오마이뉴스>, 2004.5.12.).

"존경하는 국민여러분, 민주노동당은 비록 10석의 의원을 가진 소수정당이지만 우리와 뜻을 같이 하는 많은 노동자·농민 대중조직, 시민사회단체, 그리고 자발적 국민과 함께 '개혁과제 네트워크'를 구성해 진보적 개혁과제를 실현하는 '거대한 소수정당'의 길을 걸어갈 것입니다.

... 존경하는 국민여러분, 민주노동당은 지금 한국사회에서 어느 누구도 걸어가보지 못한 개척자의 길을 걸어가고 있습니다. 10명의 의원으로 한국사회의 민주·평등·통일을 앞당겨야 할 민주노동당의 어깨는 너무나도 무겁습니다. 그러나 국민여러분이 함께 해 주신다면 우리 사회는 보다 인간적인 사회가 될 것이고, 우리 아이들은 보다 빨리, 보다 좋은 세상에서 살 수 있을 것입니다." (민주노동당 국회의원 당선자 일동, '민주노동당 의정연수 대국민 실천선언', 2004.5.11.)

 

2004년 5월 남원중앙연수원. 민주노동당 국회의원 당선자 2박3일 연수. ⓒ 민주노동당

 

2004년 5월 남원중앙연수원. 민주노동당 국회의원 당선자 2박3일 연수. ⓒ 민주노동당

  
'거대한 소수전략'의 의미와 필요성: "성공가능성은 확인했지만 성공하지 못했다"

김윤철(민주노동당 상임정책위원)에 따르면, 거대한 소수정당론은 그 무엇보다도 민주노동당이 전체 의석수 중 3%에 불과한 10석의 의석을 갖고 있는 소수정당이라는 자기한계에 대한 인식에서 출발하는 것이었다. 즉 열린우리당과 한나라당이라는 거대 보수 양당이 주도하는 국회운영 전반에서 '왕따'가 될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정확한 판단을 내린 것이었다.

하지만 민주노동당은 민주노총, 전농 등 기층계급조직에 기반하여 성장해왔고 원외 정당 시절 민중.시민사회운동 진영과 이러저러한 네트워크를 형성시켜왔다는 점에 착안, 이를 개혁(의제)네트워크로 적극 활용하면 소수정당으로서의 한계를 극복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를 갖기도 하였다.

즉 민주노동당은 원내에서는 소수정당이지만 원외에서는 민중.시민사회운동 진영과의 광범위한 네트워크를 확보하고 있는 거대 정당이라는 것이고, 이를 원내 의정활동의 자원으로 활용하겠다는 것이 거대한 소수정당론의 핵심 요지인 것이다. 진보야당론이 원내로 진출한 민주노동당의 위상과 역할에 대한 규정이라면, 거대한 소수정당론은 진보야당으로서 제대로 된 역할을 수행하기 위한 방안인 동시에 1기 의정활동의 주요 목표가 되는 것이었다(김윤철, '진보야당, 거대한 소수정당 노선 평가', <진보정치>, 185호, 2004.7.12.~7.18.).

2004년 5월 24일 민주노동당 기관지 <진보정치> 178호에 게재된 <'거대한 소수'에서 '희망의 다수'로>는 '민주노동당 지지도 추이 변화'의 놀라운 결과를 알려준다.

"지난 (5월) 10일 여론조사기관인 TNS 결과는 더 놀랍다. 민주노동당은 창당 이래 최초로 지지율 20%대로 진입하여, 21.9%라는 '신기록'을 세웠다. 이는 22.3%를 기록한 한나라당과 불과 0.4%포인트밖에 차이가 나지 않는 수치다. 열린우리당 지지율은 43.5%였다. 이같은 지지율 고공 행진은 민주노동당에게도 놀라운 수치다. 국민들이 민주노동당에 거는 기대치가 점점 높아가고 있다는 것은 분명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지지율 급상승을 고정 지지층의 확대로 보기 어렵다는 것이 여론분석 전문가들의 공통된 견해다. 당에 대한 '충성도' 높은 핵심 지지층이라기보다는 민주노동당에 대한 상당한 기대심리가 반영된 결과라는 것이다. 기존 정당들에게 실망한 무당층들이 총선 이후 급격히 줄어들면서 이들 가운데 상당수가 민주노동당 지지층으로 유입된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민주노동당 지지도 추이변화를 정리한 기사. ⓒ 진보정치

 
이에 대해 한 여론조사 분석 전문가는 이렇게 말한다.

"그동안 정치적 의사표시를 미뤄왔던 유보층이 민주노동당의 원내진출을 목격함으로써 이제야 비로소 민주노동당을 현실적인 정치세력으로 인정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총선 전만 하더라도 막연한 '추상명사'로 인식해온 민주노동당을 비록 소수이기는 하나 실체를 확인해 '보통명사'로 수용하게 됐다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보수정당에 환멸을 보였던 계층이 민주노동당이라는 '대체재'를 비로소 발견함으로써 일단 잠재적인 지지 정당으로 민주노동당을 택했다고 보면 된다."

민주노동당 대표를 지낸 권영길은 '거대한 소수' 전략에 대해 이렇게 회상한다.

"'민주노동당 의원들 활동상을 보면서 이 땅에 진보정당이 왜 필요한지를 깨달았습니다.' 2004년 10명의 민주노동당 의원이 국회에 진출한 지 1년여가 된 무렵, 어느 국회 출입 기자가 제게 들려준 이야기입니다. 그 민주노동당의 원내 활동은 한국 정당사는 말할 것도 없고 진보정치사에도 잘 알려지지 않았습니다.

헌신적인 당원들과 국회의원들, 정당 외곽에서 협력하고 지원했던 많은 대중 단체의 연대로 만들어낸 큰 힘으로 당당하게 걸었던 진보정치사가 파묻혀 있습니다. '거대한 소수' 전략으로 대중들과 함께하려 했던 민주노동당의 원내 활동은 새로운 시대의 정치가 어떠해야 하는지 미리 보여주었습니다." (권영길, 추천사, 정경윤, <다시, 진보정당: '거대한 소수' 민주노동당 사례로 본 진보의 길>, 오월의봄, 2018).


'거대한 소수' 전략에 대해 노회찬은 "성공가능성은 확인했지만 성공하지 못했다"고 회고하면서 이렇게 덧붙인다.
 

"4번 노회찬 기억해주세요" 2014년 7월 28일, 당시 재보궐선거를 앞두고 노회찬 동작을 야권단일 후보가 서울 이수역 인근에서 유세를 하고 있는 모습. ⓒ 이희훈

 
"그렇다고 이 실험이 완전히 끝났다고 보지는 않는다. 그래서 전략이나 노선 자체를 폐기할 필요는 없다고 본다. 이것은 진보블록이 한국사회의 정치지형을 어떻게 바라보고 변화시키려 하는지에 대한 전략적인 노선과 맥을 같이하는 문제다. 그래서 굉장히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노회찬·구영식, <대한민국 진보, 어디로 가는가?>, 비아북, 2014, 129쪽)

"선진복지국가에 가장 걸맞는 정치체제는 보수-진보가 경쟁하는 체제다. (…) 그런데 새정치민주연합이 스스로 진보가 되지는 않을 것이기 때문에 보수-진보 양대 체제를 만들기 위한 복잡한 과정이 과도기적으로 있을 수밖에 없다.

그 과정 중 하나로 3자정립 구도를 생각하는 것이다. 3자정립 구도에서 세 번째 정당이 의미있는 정당으로 서려면 한국정치 현실에서는 최소한 20석은 가져야 한다. 원내교섭단체를 꾸릴 수 있도록 15~20%의 지지율로 20석은 확보할 수 있어야 3자정립 구도가 가능하다고 본다.

그리고 이것이 충분히 실현가능한 목표라고 생각한다. 거대한 소수전략에서 소수가 거대한 힘을 발휘하기 위한 최소조건이 바로 원내교섭단체라고 봤던 것이다. 민주노동당은 원내교섭단체를 이루어내지 못했지만 그 가능성을 확인하게 된 아주 중요한 실험이었다." (위의 책, 130~131쪽)

"우리는 앞으로 미국식 길을 갈까, 유럽식 길을 갈까? 나는 유럽식 길을 가야 한다고 보는 사람이다. (…) 한국 정치가 향후 몇 년 안에 유럽식 양당체제로 갈 가능성이 있을까? 그럴 가능성이 없기 때문에 보수-진보의 양대 체제로 가기 위한 몸부림은 20석짜리 진보정당을 만들어내는 일에서 시작될 수밖에 없다. 그런 점에서 여전히 '거대한 소수 전략'은 유지되어야 한다." (위의 책, 130~132쪽)


사실 생각해보면 노회찬의 정치적 삶 자체가 '거대한 소수'와 같았다. "50년 된 낡은 불판을 갈아야 한다"고 외치며 국회의원이 된 노회찬. 그는 사회약자를 대변하고자 했던 '거대한 소수' 정치의 대표였다.

노회찬은 정치인으로 활동한 전 기간에 걸쳐 비록 소수 진보정당 의원이었지만, 항상 뒤에 있는 노동자, 소상공인, 여성, 장애인 등 '투명인간'들의 목소리가 되고자 했다. 시대 흐름을 거스르는 퇴행적 기득권 세력, 권력의 검은 카르텔에 맞서 새로운 길을 만들고자 했다. 경제권력(삼성)-언론권력(중앙일보)-정치권력(대선후보)-검찰권력(검찰)의 유착·공모·거래라는 부정과 불법의 거대 카르텔과 싸웠던 삼성 X파일 사건이 그 전형적인 사례다.

"진보정치인 노회찬의 삶이 풍찬노숙이 아니었던 적이 없지만, 특히 삼성 엑스파일 사건은 정치인 노회찬의 운명에 큰 영향을 미친 중대 사건이었다. … 노회찬은 삼성 엑스파일 사건 과정에서 거대 카르텔과의 싸움을 '골리앗과 다윗의 싸움'이라고 표현했다. 하지만 그는 그 싸움 과정을 통해 스스로가 정의의 골리앗, 정치적 거인이었음을 증명했다." (박갑주, 고 노회찬 의원의 의원직 상실일을 맞아: 권력의 검은 카르텔과 맞서 싸운 그, <오마이뉴스>, 2019.2.14.)

'거대한 소수' 전략과 짝꿍, '야당교체‧진보야당'론
 

'진보정치' 172호(2004.3.29.-4.4.) 표지. ⓒ 일러스트레이션 이창우

 
2004년 17대 총선에서 민주노동당의 '거대한 소수' 전략과 함께 쌍을 이뤘던 것이 '야당교체‧진보야당'론이었다. 보수정당인 한나라당이 '야당'의 명맥을 유지하고 있지만, 보수야당이 아닌 '진보야당으로 야당이 교체될 때' 한국정치가 발전하고 정치개혁이 이뤄질 것이라는 주장이다.

노회찬은 "수구보수세력을 대신해 민주노동당이 야당 역할에 나서겠다는 야당교체론은 민주노동당이 강조해온 '판갈이'의 구체적인 모습을 제시하는 것"이라고 풀이한다(<진보정치>, 172호). 이어 그는 "권력을 많이 갖고 있는 여당을 견제하고 비판하고 견인하기 위해서는 야당이 더 깨끗하고 더 개혁적이고 더 진보적이어야 한다"며 민주노동당의 '야당론'을 개진하면서 이렇게 역설한다(<e윈컴 정치뉴스> 인터뷰, 2004.4.8.).

"이번 선거는 보수정치권의 주도권이 수구적이고 영남권을 근간으로 했던 보수정치세력에서 탈영남, 온건개혁적 보수세력으로 넘어가고 완성되는 데 의미가 있다. 이러한 새로운 정치 속에서 대의명분이나 시대를 앞서가지 못한 보수야당 한나라당보다는 진보야당 민주노동당이 더 필요하다."

<한겨레21> 506호(2004.4.21.)는 민주노동당 당직자 인터뷰를 통해 '진보야당'론에 대해 이렇게 스케치한다.

"탄핵 정국으로 빠져들면서 우리는 진보정당을 넘어 여당을 견제할 세력으로서 '진보야당'론을 폈다."(김종철 당 대변인). 민주노동당은 한·민·자가 공조한 탄핵 국면에서 열린우리당이 거대여당으로 등장할 공산이 커지자 진보정당론을 '야당 교체론'으로 급히 바꿨다.

진보야당론이 등장하자 당 내부에서 "진보정당이면 진보정당이지 진보야당은 또 뭐냐"는 논란이 제기됐다. 김윤철 정책위원은 "우리가 야당을 말하려면 더 조직화하고 더 성장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주장이 있었다"며 "그러나 국민들은 진보정당보다는 여당·야당 구분에 익숙해져 있다, 게다가 정책 경쟁을 하는 합리적 정치세력이란 측면을 부각시키는 데 진보야당론이 상당한 위력을 발휘했다"고 말했다.

사실 민주노동당은 몇 차례 선거에서 텔레비전 토론에 나와 보수정당에 대한 쓴소리를 쏟아내면서 국민들에게 일종의 카타르시스를 안겨줬다. 그러나 문제만 늘어놓는 '불만 집단'이란 인식을 넘어서야 했다. 그런 점에서 진보야당론은 좌파정당 이미지를 벗어나 하나의 야당세력으로 봐달라는 전술적 선택이었다. 이재영 정책실장은 "거여견제론, 거야부활론 속에서 자기네들끼리 싸우는 큰 판이 벌어져 있는데 거기에 대고 우리가 부유세 41조 원을 걷어서 뭘 하겠다고 주장했다면 별다른 반응을 이끌어내지 못했을 것"이라며 "당시 우리가 최대한 나갈 수 있는 건 진보야당론이었다"고 말했다.
 

2014년 7.30재보선을 앞두고 오마이뉴스와 인터뷰 중인 노회찬 후보. ⓒ 권우성

 
2004년 총선을 마친 뒤 노회찬은 정운영과의 인터뷰에서 '진보야당'에 대해 이렇게 답한다(정운영, <우리 시대 진보의 파수꾼 노회찬>, 랜덤하우스중앙, 2004, 186쪽).

정운영 : "노 의원이 강조하는 '진보야당'은 무엇을 가리킵니까?"
노회찬 : "'진보야당론'은 제17대 총선 과정에서 민주노동당의 존재 의의를 공세적으로 표현한 구호였습니다. 즉 야당이 제 역할을 해야 여당도 바로 설 수 있다는 보편적 관념 위에서 펼친 것입니다. 여당보다 덜 개혁적이고 더 부패한 한국의 야당은 다 죽었다, 이제 새로운 야당이 필요하다, 개혁을 자처하는 열린우리당을 비판하고 개혁을 촉구할 자격과 능력이 있는 야당은 진보정당으로서 민주노동당밖에 없다는 것이 요지였습니다.

'야당'이란 용어가 신세대들에게는 구시대 정치를 연상하는 용어이자 김영삼, 김대중의 냄새가 난다 하여 이 용어의 사용을 반대하는 의견들도 있었으나 유권자 다수에게는 어필할 수 있다고 보았습니다."

기록연재 | 조현연 노회찬재단 특임이사

[기록으로 만나는 노회찬의 꿈과 길 ④-2] 노회찬이 '설국열차' 남궁민수를 소환한 이유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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