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19 08:42최종 업데이트 20.06.19 08: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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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보신당과 노회찬, '생활 진보, 혁신 진보' 전략

2007년 17대 대선 결과에 책임지고 문성현 민주노동당 대표체제는 일괄사퇴하고, 심상정 비대위체제가 등장한다. 당시 민주노동당에는 처리해야 할 중대한 현안 가운데 하나로 '일심회 사건'이 있었다.

심상정 비대위는 2008년 2월 3일 열린 임시당대회에 최기영·이정훈 등 '일심회 관계자 제명 안건' 등을 담은 당 혁신안을 상정한다. 그러나 당권파인 자주파 대의원들이 이 안건을 삭제하는 수정동의안을 발의해 출석 대의원 862명 중 553명의 찬성으로 가결시켜 제명안은 결국 무산되고 만다. 이를 계기로 탈당 사태가 속출하고 결국 노회찬과 심상정은 탈당해 진보신당을 창당한다.
 

2008년 2월 3일 민주노동당 임시당대회에서 표결하고 있는 대의원들. ⓒ 진보정치 정택용

 
당시 상황에 대해 노회찬은 이렇게 회고하면서 소회를 밝힌다.

"내가 초기에 세우고자 했던 진보정당의 상은 사실 무너졌다. 민주노동당 분당이 내게 의미하는 바는 그것이다." (노회찬·구영식, <대한민국 진보, 어디로 가는가?>, 비아북, 2014, 146쪽)


"종북주의보다는 저는 패권주의가 가장 큰 문제였다고 생각되고, 두 번째는 패권주의는 어제오늘의 일이 아닌데 왜 그리 분당했느냐, 쌓이고 쌓여가지고 더 이상 견딜 수 없게 된 것이다. 제가 분당하자는 사람들을 처음에는 말렸다. 선거를 앞두고 분당하면 되느냐, 선거를 치르고 곰곰이 생각해보자.

저는 일단 분당불가론이었고 그 다음에는 그 분당이 불가피하다면은 선거라도 치르고 하자. 그런데 분당을 주장하는 상당수의 동지들은 지금 분당 안하면 선거 치른 후에는 아예 남아있지도 않는다고 했다." (폴리뉴스 창간 9주년 특별기획 <한국정당실록 60년> 노회찬②', <폴리뉴스>, 2009년 5월 13일)


2008년 3월 2일 지역 167명, 각 부문 169명 등 336명의 창당 발기인들이 진보신당 창당준비위원회(공동대표단 김석준 부산대 교수, 노회찬 의원, 박김영희 전 장애여성공감 대표, 이덕우 변호사, 심상정 의원)를 결성한다.

3월 16일 진보신당은 12명의 비례대표 후보와 27명의 총선 지역구 후보를 인준하며 공식 출범한다. 진보신당은 "이명박 정부의 폭주와 신자유주의 야당에 맞서 진보진영의 폭넓은 연대전선으로 18대 총선에서 반드시 승리해 평등, 생태, 평화, 연대를 가치로 더 넓고, 더 크고, 더 강한 진보정당을 건설"하고 "당원이 진정으로 당의 주인이 되는 새로운 진보정당을 위해 소통하고 성찰하고 혁신하겠다"는 내용의 창당선언문을 채택한다. 
 

2009년 3월 16일 창당대회를 연 진보신당. 이덕우, 노회찬, 심상정, 박김영희, 김석준 공동대표가 손을 들어올리고 있다. 아래 사진은 창당대회 모습. ⓒ 진보신당

 
"성찰 없는 혁신은 맹목적이고 혁신 없는 성찰은 공허하다." 철저한 반성과 치열한 실천으로 다시 태어나 대안야당으로 우뚝 설 진보신당의 전략으로 노회찬은 '생활 진보, 혁신 진보'를 제기한다. "노회찬 진보신당 대표는 '관념적인 진보, 머릿속에서 필요한 진보가 아니라 생활에서 필요한 진보'를 당의 지향점으로 내놓는다. 일자리·복지 등 국민이 체감하는 정책을 생산해야 한다는 '생활진보', 낡은 진보 틀에 얽매이지 말자는 '혁신진보' 등은 그에 따른 키워드다(<경향신문>, 2010년 1월 29일).

이러한 노회찬의 고민과 문제의식은 진보신당 내내 계속 이어진다. '오늘에 기초하여 미래의 새 세상을 설계'하고자 하는 새로운 진보정당은, 상황 및 사태 전개에 대한 '권위' 있는 해석자가 돼야 하기 때문이다. '탈출구 없는 감옥살이'를 할 수밖에 없는 다수의 보통사람들에게 희망을 줄 수 있는, 진보정치의 블루오션을 신속하면서도 정확하게 만들어내는 것이 중요하다고 봤기 때문이다.

2009년 1월 20일 노회찬마들연구소 신년 심포지움의 기조발표('한국사회의 정치와 경제: 이제는 패러다임의 대전환이다')를 통해 노회찬은 지금·여기의 상황을 진단하면서, 생활진보‧혁신진보의 관점에서 진보정치의 역할에 대해 말한다(노회찬마들연구소, <(2009년 신년 심포지움) 이명박 정부 1년 평가: 2009년 대한민국, 위기 진단과 해법 찾기>, 2009.1.20.).

"오늘 우리가 경험하고 있는 위기의 핵심은 서민들의 사회경제적 고통의 누적과 그로 인한 총체적인 삶의 질의 악화, 그리고 그것을 해결할 수 있는 설득력 있는 대안의 부재로 모아진다. 경제 파탄과 빈곤의 일상화, 사회적 양극화와 빈부격차의 심화, 가정의 해체와 사회공동체의 파괴 속에서 대다수의 보통사람들은 고단한 삶이 지속되는 '탈출구 없는 고통의 감옥살이'를 강요받고 있다."

"사회경제적 삶의 위기가 가속화되고 생존에의 공포와 퇴락의 두려움이 일상을 지배하는 사회에서, 그리고 상식이 해체된 시대 상황에서 진보적 사회운동과 민주적 정치과정에 대중의 참여가 깊고 넓어지기를 기대하는 것은 결코 말처럼 쉽지 않다.

과거처럼 민주주의, 진보, 변혁, 사회정의와 연대, 양심 등의 언어를 통해 거짓과 불의에 대한 도전과 가라앉은 민중적 반란의 열정을 불러일으키고 그 힘을 새롭게 조직하는 것은 무척이나 어렵게 되었다. 이처럼 새로운 사태에 직면하여 민주주의 발전의 사회적 기반이자 주체라고 인정되어 온 노동을 비롯한 민중 부문의 발언권이나 영향력은 오히려 생산과 사회의 영역을 넘어 정치의 영역에서도 급격히 축소되고 있는 것이다."

"노원구 상계동 시골밥상집의 아지매, 강서구청 청소부 김씨 아저씨, 강남구 서초동 옷가게 점원으로 땀흘려 일하는 젊은 여성 등등등. 이들의 공통점은 오늘보다는 조금은 더 나은 내일을 기대하고, 또 최소한 일한 만큼만이라도 대접받고 싶어 하며, 자식들만큼은 차별과 소외가 줄어든 세상에서 살았으면 하는 소박한 바람을 갖고 있다.

이러한 바람에 대해 책임있는 답변을 하는 정치야말로 진보정치의 출발점이라고 본다. 그리고 전국 곳곳에서 하루하루를 힘겹게 살고 있는 분들이 자녀교육과 주거와 의료 문제로 앓고 있는 시름, 노후 걱정으로 밤잠을 설치고 있는 그 분들의 짐을 조금이라도 덜어주는 것이 바로 정치가 해야 할 일인 것이다."


홍세화와의 인터뷰에서 노회찬은 생활진보에 대해 이렇게 말을 나눈다(노회찬 외, <진보의 재탄생: 노회찬과의 대화>, 꾸리에, 2010, 402-403쪽).

홍세화 : "대표께서도 생활정치, 생활진보라는 것을 강조하시는데 실천방향이나 구체적으로 상이 있다면 설명해주십시오."
노회찬 : "생활정치를 강조하는 것은 한마디로 과거 활동에 대한 비판적 성찰에 기초하고 있습니다. 정치란 건 다름 아닌 설득의 과정인데, 설득하고 동의를 얻고 지지까지 이끌어내서 그 내용을 다시 현실화시켜내는 그런 과정인데, 그 과정에서 지금까지 굉장히 비현실적인 접근 또는 비효율적인 접근이 있지 않았냐는 거죠.

거대 담론과 생활정치를 대립시키고 그중에 취사선택을 하는 것에 대해 저는 근본적으로 반대합니다. 오히려 생활정치를 통해서 거대 담론으로 연결해 가고, 구체성을 확보한 거대 담론으로 더 풍부한 생활정치로 다시 돌아가는 순환이 이루어져야 된다고 보는 거죠.

... 비정규직과 관련해서 우리 옆에 가까이에 뭔가 기댈 데가 있다는 것을 실감케 해주고 함께 부딪혀 가는 과정을 만들 수 있다면 하고 생각해 보는 것이지요. 관념 속의 길이 아니라 생활 속의 길을 만들어가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 지식인들이 의식화에 이르는 과정과 일반인들이 이르는 과정이 같을 수는 없을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생활정치가 진보운동에 대한 오해, 즉 생활에는 도움이 안 되는 사람들, 생활 속에서 겪는 문제에는 별로 관심이 없는 사람들이란 터무니없는 오해를 씻기도 하면서, 또 우리가 중요하게 지향하고 있는 본질적인 문제 해결의 동력을 만들어내는 중요한 실천적 과정이 아닌가 생각하고 고민하고 있습니다."

'생활진보 365 캠페인'과 '복지혁명 생활진보 그래! 진보신당'
 

2009년 9월 14일, 노회찬 진보신당 대표와 당직자들이 서울 중구 을지로 SK본사 앞에서 '통신요금인하와 무상인터넷, 통신공개념을 위한 전면전 선포 기자회견'을 열어 이동통신시장의 독과점 체제 규탄과 부당이익 환원 등을 요구하며 퍼포먼스를 벌이고 있는 모습. ⓒ 유성호

  
2009년 9월 8일 노회찬은 서울 남대문시장에서 '진보신당 민생대장정 전국순회' 선포식을 열고 '생활진보 365' 캠페인을 시작해 같은해 11월 4일 전남지역을 마지막으로 두 달간의 일정을 마무리한다. 두 달 동안 펼친 캠페인 목록은 이러했다.

- 휴대폰 요금(통신비) 인하 등 정보기본권 확대운동
- 시중 은행의 불법, 부당 연체이자 반환 촉구
- 대입전형료 실태조사
- 신종플루 특진비 폐지. 신종플루 무상검사, 무상치료, 무상접종
- 건강보험 하나로 운동과 지역 무상의료 실현
- 비정규직 차별 철폐
- 대기업슈퍼마켓(SSM) 규제
- 무상급식 대중화


"모바일과 무선인터넷을 통한 소통을 위해 총 대신 아이폰!" 2009년 12월 1일 '나부터 생활 진보, 혁신 진보'의 일환으로 노회찬(진보신당 대표)희망하는 상근 당직자들에게 개인돈을 들여 아이폰을 선물하겠다고 하면서 강조한 말이다.

노회찬은 당직자들에게 "국민과 당원들에게 적극적으로 다가가려는 노력이 어느 때보다 절실한 시점"이라며 "새로운 소통의 도구와 방식을 과감하게 도입하기로 결정했다"고 말한다. 그는 "이미지 제고나 유행에 편승하는 것이 아니라 실질적인 혁신의 계기가 되어야 한다. 이를 위해 당에서 '무선인터넷 미디어 정당'을 위한 충실한 교육프로그램이 진행되어야 한다"고 요청했다. 이틀 전인 11월 29일 서울시장 출마선언에서는 무상 인터넷네트워크 구축을 통한 '서울시민 정보기본권 실현'을 공약으로 발표하기도 했다(구영식, '노회찬 대표, 당직자들에게 아이폰 선물한다', <오마이뉴스>, 2009.12.1.).
 

2010년 5월 4일 낮 트위터 점심번개에 참석한 노회찬 진보신당 대표가 트위터 친구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모습. ⓒ 오마이뉴스 김시연

 
노회찬의 '생활진보'와 '혁신진보'는 서울시장 선거를 앞둔 2010년 4월 13일 오전 4시 서울 구로구 거리공원 정류장에서 6411번 버스 새벽첫차를 타는 것으로 상징된다. 그것은 삶의 애환과 소소한 행복이 담긴 보통사람들의 목소리를 경청하고 스스럼없이 이야기를 나누는 '트위터 점심번개'로 이어진다 : 4월 21일(연세대 청소용역 노동자들), 4월 22일(IT 업종에 종사하는 구로디지털단지 노동자들), 4월 23일(명동 하동관 곰탕과 공원에서의 커피 한잔), 5월 3일(대림역 채식 뷔페), 5월 4일(광화문 이순신장군 동상 앞), 5월 6일(역삼역 대우식당), 5월 7일(여의도 공원 잔디밭 도시락 번개), 5월 11일(선릉공원 도시락 번개).

2009년 11월 29일 노회찬은 2010년 서울시장 선거 출마선언을 한다.

"지금까지 기성 보수정당의 정치인이나 학자·관료·기업인·법조인 출신의 다양한 서울시장이 있었지만 과연 서울에 얼마나 의미 있는 변화가 있었느냐. 서울 시민들의 생활 속에 뿌리내리는 생활 진보, 합리적 진보, 현대적인 진보를 앞으로도 꾸준히 만들어가겠다."
 

2009년 11월 29일, 노회찬 진보신당 대표가 국회 의원회관 소회의실에서 2010년 서울시장 선거 출마선언을 하고 있는 모습. ⓒ 남소연

 
2010년 6월 2일 지방선거에서 진보신당이 내세운 슬로건은 '복지혁명 생활진보 그래! 진보신당'과 '우리OO 번호이동은 럭키세븐 진보신당'이다. 대한민국을 북유럽형 복지국가로 대전환하자는 의미의 '복지혁명'은 선거 때만 내세우는 구호가 아니라 생활 속에서 실현하는 진보로 가능하다는 의미다. 빈칸 OO에는 회사, 가족, 아이, 학교, 동네 등 다양한 낱말이 들어갈 수 있으며, '이번에는 복지마을, 다음에는 복지국가 우리동네 번호이동은 럭키세븐 진보신당', '친환경 무상급식.준비물 없는 학교 우리아이 번호이동은 럭키세븐 진보신당' 등으로 활용될 수 있다.

진보정의당과 노회찬, '진보의 세속화' 전략

2004년 17대 총선에 진보정당은 10석을 차지하며 국회에 진입했다. 선거 결과 및 그 직후의 상황을 보면 진보정치 차원에서 설득력 있는 정치적 대안의 집합적 프로젝트가 서서히 만들어져 가고 있음을 의미했다. 민주노동당은 단순히 진보정당이 아니라 한국전쟁으로 분단이 고착된 이후 최초의 정당다운 정당의 출현이라는 의미를 지닌 것이기도 했다(김동춘, '17대 총선과 한국 사회운동의 진로', 참여사회연구소 토론회 발표문, 2004.5.7.).

근대적인 사회적 균열에 기초한 정당이자 역사적 비전과 대안을 제시하는 정책 정당이며, 진성 당원 중심의 당내 민주화를 진행해온 민주적 대중정당이라는 점에서 민주노동당은 기성 정당들과는 다른 색깔과 질감을 지녔기 때문이다(조현연, <한국진보정당운동사>, 후마니타스, 2009, 216쪽). 그러나 그 이후 민주노동당은 패권주의의 작동 속에서 분열과 반목을 거듭했고 국민들에게 신뢰를 잃어갔다.

2012년 19대 총선을 앞두고 이런 상황에서 벗어나기 위해 민주노동당계, 국민참여당계, 새진보통합연대계(진보신당 탈당파) 등 세 주체는 통합진보당을 창당(2011.12.5.)한다.

통합진보당은 총선에서 10.3%의 정당지지율, 지역구 7석을 포함한 13석의 의석을 확보한다. '원내 교섭단체 확보'라는 목표에 미치지 못하기는 하지만, 진보정당에게 우호적인 기회가 형성돼 있음을 보여주는 하나의 증거라 할 수 있다. 
 

2012년 8월 22일, 여의도 국회 헌정기념관에서 열린 중앙위원회에서 이정미 당시 최고위원과 노회찬, 심상정 의원이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모습. ⓒ 유성호

 
문제는 그 다음에 벌어졌다. 이른바 '통진당 사태'가 발생한 것이다. 이 사태는 세 가지 핵심 계기를 통해 최악의 상황으로 진행됐다. 경쟁부문 비례대표 후보 부정 경선, 중앙위원회 폭력사태, 당 지도체제의 무력화 및 이석기·김재연 의원 제명안 부결이 그것이었다.

통진당 사태를 보면서 "현실에서 진보는 죽었다. 진보가 완전히 재구성되지 않는 한, 한국 사회와 정치에서 기여할 것은 아무것도 없다"(최장집) "통합진보당 없는 세상에서 살고 싶다"(김민웅)는 등등 참으로 통렬한 비판이 곳곳에서 터져 나왔다.

최장집은 진보 실패의 원인을, ①민주주의를, 변혁적 방법으로 사회적 문제를 해결하는 체제로 이해하고, 이에 따라 정당 또한 혁명적 목적을 수행할 결사체로 이해한 것 ②민주화 이후 운동 조직과 기존 권위주의 하에서 성장한 정당들이 순기능적으로 결합되지 못해 정당 틀 밖에서 운동의 형태로 정치행위가 지속되는 정당조직적 요소 ③사회의 갈등축을 잘못 설정하고 사회경제적 대안 형성에 실패한 것 등 세 가지로 요약했다(<경향신문>, 2012.6.4.).

통진당 사태에 대해 노회찬은 이렇게 소회를 밝힌다(노회찬.구영식, <대한민국 진보, 어디로 가는가?>, 비아북, 2014, 150-151쪽).

"좋은 뜻에서 여러 가지 목적 아래 통합진보당으로 결집했다. 진보정당의 1차 위기를 낳았던 민주노동당 분당 사태와 분당 이후 분열 상황을 극복한다는 좋은 취지도 있었고, 다른 한편으로는 세를 키워내자는 욕심, 결과적으로는 팽창주의적인 측면이 있었다.

따질 것은 제대로 따져보고, 함께할 수 있는 세력인지를 점검하고, 함께하는 데 필요한 룰을 만들고, 그것을 지킬 수 있도록 약속하는 과정이 충분하게 다져지지 않은 채 졸속으로 통합했기 때문에 사고가 났다. ... 당이 깨진 데는 두 가지 원인이 있었다. 선거 부정 사건과 사건 수습 과정에서 합의에 실패한 것이다. 설사 따로 사는 한이 있더라도 우리 것은 지키겠다는 정파 이기주의가 존재했다. 그것은 함께하는 당의 가치가 해당 정파의 가치보다 높지 않았음을 의미한다."


2012년 9월 10일 강기갑의 당대표직 사퇴를 시작으로 9월 13일부터 노회찬·심상정·유시민·천호선·이정미·강동원 등의 탈당이 이어지게 되고, 10월 21일 '진보정의당'(공동대표 노회찬, 조준호)이 창당된다.
 

2012년 9월 27일, 통합진보당에서 탈당한 심상정, 노회찬, 서기호, 박원석, 김제남, 유시민, 조준호 등 새진보정당추진회의 회원들이 국회에서 새진보정당 창당을 선언한 뒤 기자들과 일문일답을 하며 밝게 웃고 있다. ⓒ 권우성

 
'진보의 세속화'는 '현실에서 죽어가는 진보'에 대해 노회찬이 작심하고 말한, 없는 길을 찾기 위해 시작된 생존전략이었다. 그것은 <대한민국 진보, 어디로 가는가?: 노회찬, 작심하고 말하다>에 집약돼 있다.

"다시 10년이 지난 2014년, 화려했던 그날의 당은 세 조각이 나 있다. 그중 하나는 존폐가 걸린 재판을 받고 있으며, 지지율은 모두 합해도 5%를 넘지 않은 상태로 떨어져 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묻는다. Quo Vadis, 진보? 대한민국 진보, 어디로 가는가? 이 책은 그 물음에 답하기 위해 시작되었다. 준비된 답을 자랑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없는 길을 찾기 위해서 시작된 것이다." (노회찬, 머리말: Quo Vadis, 진보?, 노회찬·구영식, <대한민국 진보, 어디로 가는가?: 노회찬, 작심하고 말하다>, 비아북, 2014)

노회찬의 작심은 이렇게 말을 이어간다.

"늘 그렇지만 문제는 세상이 아니라 진보 자신이다. 지금 진보정당에게 가장 부족한 것은, '진보'다. 부족한 진보를 훈장과 족보로 가릴 수는 없다. 세상을 진보시키기 위해 자신이 먼저 진보하지 않으면 안 되는 시점이다."

노회찬은 "정치는 엄연한 하나의 현실이고, 진보주의자의 기본 덕목은 실사구시다. 현실을 인정하고 현실을 이해하고 현실 위에서 현실을 바꾸는 게 진보주의자의 덕목이라면 진보적인 것과 정치적인 것은 양립해야 한다"고 하면서, '진보의 세속화' 전략을 통한 '진보정치의 재구성'을 주창한다.

"세속화는 대개 부정적으로 쓰이는데요. 제가 말하는 세속화는 '세상 속으로 들어가자'라는 뜻입니다. 진보가 세상 속이 아닌 주변에 있지 않았느냐는 성찰 속에서 '민생의 한복판에 뛰어들자' '국민의 상식 수준으로 달려가자'는 겁니다. '타락하자'는 얘기가 아닙니다. 지금 진보는 국민을 설득하지 못해요. 노동자, 서민에게 지지를 못 받아요. 더 노동자, 서민 속으로 들어가 그들의 아픔이 무엇인지를 알고, 잘 대변하도록 노력해야죠." (노회찬, "세상 주변에 머문 진보, 세속화가 필요하다", <오마이뉴스>, 2014.11.29.)

"물론 세속적 이해관계에 몰두하는 그런 지나친 세속화는 당연히 경계해야겠지만 이 세상을 무시하고 세상을 안중에 두지 않고 자기 세계에만 갇혀 있는 이게 사실 이제까지 좀 우리의 진보나 운동권 출신들의 어떤 약점 아니었는가라는 거죠. 나는 민주화를 위해서 고생했다, 헌신했다, 희생했다, 나는 진보진영에 속해 있으니까 나는 무조건 옳다, 아니면 우리 진영은 무결점, 무오류다. 이래서 진영이 다르면 '저건 독재진영이다. 저 대통령은 아버지가 독재였다. 또 저쪽은 다 나쁘고 우리는 다 좋다', 이건 설득력이 없다는 것이죠.

오히려 자기가 옳다고 생각한다면 왜, 무엇이 옳은지를 국민들이 납득하고 인정할 수 있어야 거기에서 드디어 옳다는 판정이 내려지는 거거든요. 그런 점에서 저는 세상 바깥에서는 세상의 인심을 얻을 수가 없다, 세상 속에 들어가서 세상에서 어떤 얘기가 오가고 있고 어떤 판단들을 하고 있고 무엇을 요구하는지를 그걸 전면으로 부딪히면서 그 속에서 우리가 버릴 것은 버리고 또 인정받을 것은 인정받는 그런 세상 속으로 돌진한다는 점에서는 세속화야말로 가장 요구되고 있는 것이 아닌가, 또 가장 우리가 부족한 게 아닌가 그렇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CBS 라디오 '시사자키 정관용입니다'>, 2014.11.18.)

 

2014년 2월 19일, 노회찬 의원이 국회도서관에서 열린 '진보정치의 전망과 과제' 토론회에 참석해 자료를 살펴보고 있는 모습. ⓒ 남소연

 
"한국의 진보정당은 이제 당장 실현가능하고 집권하면 추진할 최소강령을 중심으로 재편되고 '세속화'돼야 한다. 수십 년 내에 실현불가능한 먼 미래의 계획이나 궁극적 이상과 신념을 중심으로 정파를 나누고 관념적 논쟁으로 날을 새는 일을 지양해야 한다.

현실의 계획과 약속을 중심으로 모여야 하며 먼 미래의 이상과 꿈은 서로 인정하는 다원적 민주주의를 조직의 기본 운영원리로 채택함으로써 고질적인 분파 대립과 불필요한 분열요소를 제거해야 한다." (노회찬, '진보정치의 전망과 과제', 진보정의연구소·한국정당학회 공동 주최 토론회, 2014.2.19.)



노회찬과 함께 <대한민국 진보, 어디로 가는가?>를 펴낸 구영식은 '인터뷰어의 클로징 멘트'를 통해 '운동권적 진보'와 '진보의 세속화 전략'을 대비하면서 이렇게 마무리한다.

"1여 년 긴 시간을 인터뷰하면서 가장 인상 깊었던 대목은 '진보의 세속화 전략'을 주문한 것이다. 노 대표가 일반인들에게 부정적으로 들릴 수 있는 '세속화'라는 단어를 과감하게 쓴 것은 한국의 진보가 아직도 현실에 충분히 안착하지 못했다는 반증이다.

봉준호 감독의 영화 <설국열차>에는 '네 개의 세계'가 존재한다. 열차의 설계자인 윌포드의 세계와 열차 반란을 주도한 커티스의 세계, 윌포드와 공조해온 원로 지도자 길리엄의 세계, 문을 부수고 열차 밖으로 나가려고 했던 남궁민수의 세계가 그것이다.

노 대표는 스스로 '남궁민수의 세계와 가깝다'고 했다. '열차 안에 모순과 갈등이 있지만 궤도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는 특징이 있다. 궤도를 벗어나지 못하는 한 달라져도 크게 달라지는 게 아니다. 근본적인 변화는 남궁민수의 발상과 지향에서 시작된다. 즉 궤도를 벗어나 새로운 세계로 나아가는 것이다. 많은 사람들에게 신뢰받지 못하기 때문에 어렵긴 하지만 그 길이 맞지 않나 싶다.'

노 대표가 주문한 진보의 세속화 전략도 '운동권적 진보'라는 궤도를 벗어나려는 시도다. 그 역발상을 통해 순결한 이념을 지키는 데만 열중하기보다 현실을 1센티미터라도 더 변화시켜 사람들의 삶이 조금이라도 나아진다면 그것이 현실에서 옳은 길이고, 승리하는 길이다."


(* 더 자세한 내용은, 구영식, 노회찬이 본 설국열차, 6년 전 미공개 인터뷰: [노회찬 1주기] '남궁민수의 세계'를 품었던 사람, 그를 기억하며 (http://omn.kr/1k5o3, <오마이뉴스>, 2019년 7월 25일)을 참조하면 됩니다.)

기록연재 | 조현연 노회찬재단 특임이사

[기록으로 만나는 노회찬의 꿈과 길 ⑤] 사회민주주의를 만나다(6월 23일)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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