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04 18:29최종 업데이트 20.02.04 18: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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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으로 사람들을 만나기가 조심스러워졌다. 친구가 찾아와 집 앞에서 만나자고 하여도, 식구들은 왜 나가냐고, 악수하지 말고 잠깐만 만나고 오라고 성화다. 

술을 흔쾌히 마실 수도, 술을 마시자고 사람을 모으기도 조심스럽다. 막막하다. 오로지 이 바람이 지나가기를 기다릴 뿐이다. 찾아오는 이들에게는 술에 대추와 계피, 감초 따위를 넣고 오래 달인 모주를 내놓는 정도다. 이 순간을 견디려면 기다림을 즐기고 혼자 할 수 있는 일을 찾아야 한다.

혼자 할 수 있고, 또 오래 기다려야 하는 일 중의 하나가 술 빚기다. 음력 정월 첫 해일(亥日)이 올해는 양력 2월 2일이었다. 삼해주를 빚는 첫날이다. 첫 해일에 빚는 술이 또 있다. 그것은 한양이 낳은 술, 약산춘이다. 삼해주가 서울에서 유명한 술이라면, 약산춘은 서울에서 태어난 술이다.  
 

약현성당에서 바라본 남대문 ⓒ 막걸리학교


<임원십육지>의 '정조지'에서 서유구(1764~1845)는 "서충숙 공소가 빚은 술로서 서공의 집이 약현(藥峴)에 있었으므로 약산춘(藥山春)이라 불렀다"고 했다. 서충숙공은 서성(1558~1631)이고, 약현에 살아서 그의 호가 약봉(藥峯)이다. 약현은 약고개인데 약현성당이 있는 자리다.

약현성당은 서울시 중구 중림동에 있는데, 1892년에 지어진 우리나라 최초의 서양식 성당 건물이기도 하다. 이 동네에 <대동여지도>를 그린 고산자 김정호도 살았다. 약현성당이 올려다 보이는 중림동 삼거리에 김정호를 기리는 비석이 있다.


약현 서성 집안에서 유래된 술이 약산춘말고 약주도 있다. 명문가에서 태어났지만 서성은 3살 때 아버지를 여의었고, 안동 임청각의 딸인 고성 이씨 어머니는 15살에 눈병을 앓아 앞을 못봤다. 그의 어머니는 자식을 위해 안동에서 한양으로 올라와 남대문 밖, 지금의 약현에 살면서 찰밥과 유밀과와 술을 내다 팔아 서성을 키웠다. 서성이 과거에 급제하고 크게 되자, 서성의 어머니가 빚은 찰밥과 유밀과와 술이 맛있다 하여, 찰밥은 약밥, 유밀과는 약과, 술은 약주라는 이름을 얻었다고 한다.

약주의 유래는 몇 가지가 있다. 첫째는 술의 존칭어로서 약주가 있다. 부모님이 드시는 술을 약주라고 높여 부른다. 둘째는 약재가 들어가 있어 약효를 보강한 술이 약주다. 셋째는 조선시대 금주령이 내렸을 때는 술을 약이라 하여, 약주라고 부르며 금령을 피했다고 한다. 넷째는 약현에서 살았던 서성의 어머니가 빚었던 맛있는 술이 약주라고 한다.

약산춘의 유래

이중에서 가장 구체적인 이야기를 가지고 있는 흥미로운 술이 약현의 약주다. 그런데 약주의 제조법을 추정해 볼 수 있는 서성 집안의 술이 전해온다. 그 술이 약현의 약산춘이다.

서성은 자식들을 잘 키워서, 첫째아들은 우의정에 올랐고, 넷째아들 서경주는 선조의 딸 정신옹주와 혼인하여 부마가 됐다. 서경주의 6대손이 서유구인데, 그는 <임원십육지>에 집안의 술인 약산춘방을 기록해 두었다.
 
"정월 상해일에 멥쌀 5말을 깨끗이 씻어 물에 담가두고, 좋은 누룩 5되를 거칠게 빻아 물 5병에 담근다. 다음날 담갔던 쌀을 건져 가루로 하여 떡을 찐다. 물에 담가 둔 누룩도 체에 밭쳐 찌꺼기는 버리고, 앞서 누룩을 담갔던 물에 새로 길어 온 물을 타서 20병이 되도록 하다. 찐 떡이 식기 전에 섞어 항아리에 담는다. 동쪽으로 뻗은 복숭아 나뭇가지로 휘저은 뒤 항아리 주둥이를 기름종이로 2~3겹으로 싸고 고운 베보자기를 덮고 밀봉하여 둔다.

며칠 후 항아리를 열어 보아 혹 거품이 괴면 걷어낸다. 2월 그믐께가 되면 멥쌀 5말을 깨끗이 씻은 다음 물에 담가 불려 고두밥을 쪄서 헤쳐 식힌 다음 밑술에 넣는다. 늦봄이나 초여름에 밥알이 뜨고 색깔이 짙어지면 쓰는데 맛이 매우 독하다. 떠내어 쓸 때에 날물이 들어가게 해서는 안 된다."

약산춘 분석표 ⓒ 허시명


일반적인 술빚기는 고두밥을 찌고 누룩과 물을 섞어 잘 치대면 겨울이면 2주 정도 지나서 걸러 마실 수 있다. 이 일반적인 경우와 약산춘은 사뭇 다른데, 그 차이점을 적어본다.

① 밑술을 백설기로 한다.
② 밑술을 하는 날짜가 정월 상해일로 정해져 있다.
③ 덧술을 하는 날짜가 밑술하는 날로부터 40일쯤이 지난 2월 그믐으로 아주 늦다.
④ 물누룩을 만들어 쓴다.
⑤ 누룩량이 적어서 일반적인 경우의 30%밖에 안 된다.
⑥ 여과할 때 날물을 섞지 않는다.  


나는 <임원십육지>에 나온 제법의 양을 10분의 1로 줄여 술을 빚어보았다. 물누룩은 누룩을 물에 우린 뒤에 찌꺼기는 걸러서 맑은 물만 쓰는 방법인데, 맑고 고운 술을 얻을 수 있지만, 누룩의 당화력이 부족할 수 있다.
 

막걸리학교에서 백설기에 누룩물을 부어 약산춘 밑술을 빚고 있다. ⓒ 최효진


백설기에 누룩물을 섞어 치대는데, 물의 양이 백설기보다 2.68배나 많아서 백설기를 풀기엔 좋았다. 고두밥보다는 백설기가 훨씬 잘 삭혀질 것이라 기대됐다. 누룩이 적게 들어가 30분 정도 열심히 손으로 치대주었는데 밑술의 맛을 보니, 쌀미음처럼 되직하고 달콤한 맛이 돌았다. 그래도 "누룩이 적은데… 당화는 잘 될까?" 걱정이 앞섰다.

그런 걱정은 <임원십육지> 제조법 속에서도 엿보였다. 항아리 주둥이를 기름종이로 2~3겹 싸라고 했다. 공기를 더 확실하게 차단하라는 뜻이다. 그리고 거품이 괴면 그만 거둬내라고 했다. 밑술에 들어간 물의 양이 많아서, 술덧 위에 흰 막이 낄 우려가 있다. 그래서 며칠 후 항아리를 열어보아 거품이 괴면 걷어내라고 했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덧술을 40일쯤이 지나서 해야 하는데, 그때쯤이면 밑술이 발효가 다 끝나 있을 텐데, 이 또한 걱정스럽다.  
 

서울 중구 중림동에 있는 약현성당. 1892년에 지어진 우리나라 최초의 서양식 성당이다. ⓒ 막걸리학교


약현성당을 둘러보고, 약산춘 밑술 빚기를 마치고 나는 이 글을 쓴다. 이제 술이 잘 되기를 기다려야 한다. 기다림 속에는 불안감도 있지만, 깨달음도 있을 것이다. 덧술을 40일 뒤에 할 것인가, 4일 뒤에 할 것인가를 판단해야 하는데, 처음이니 되도록 제조법의 지시를 따라가려고 한다.

서유구는 <임원십육지> 서문에서 인간이 세상을 사는 데 두 가지 도가 있다고 했다. 하나는 세상에 나아가 제세안민(濟世安民)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집에 들어와 좋은 음식을 먹고 기운을 차려 높은 뜻을 함양하는 것이다. 내게 의술도 정치력도 없으니 제세안민하기 쉽지 않다.

서유구는 임원(林園)에 살면서 좋은 음식을 먹고 기운을 차리라는 뜻에서, 그리고 "향촌에서 수심양지(修心養志)하는 데 참고가 될 만한 책이 없으므로 이를 안타까이 여겨" 16가지 항목을 정리해 <임원십육지>를 편찬했다고 한다.

그러면서 그는 제세안민과 수심양지는 경중을 따질 것 없이 모두 중요하다고 했다. 코로나바이러스의 소식을 들을수록 세상과 벽이 두텁게 쌓인다. 시간을 헛되이 할 수 없어, 그리고 다시 소통할 시간들을 위해 400년 전쯤에 구성된 서울의 술, 서울 중구 약현의 술, 약산춘을 재구성해 보았다. 봄 춘(春)도 들어 있는 술이니, 그 술이 익을 때쯤이면 봄도 와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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