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09.18 08:02최종 업데이트 18.09.18 10:02
어두운 밤길, 아버지의 손에는 정종이 들려있었다. 형들과 나는 아버지를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며 따랐다. 아직 형들도 됫병들이 정종 병을 안전하게 들 만큼 크지 않았다. 아버지와 함께 큰집으로 할아버지 제사를 지내러 가는 길이었다.

12시 통행금지 시간이 지나 돌아올 때면 호루라기 소리에 쫓겨 골목으로 숨어들거나 담장에 숨죽이며 붙어서야 했다. 제사상에 얹힌 곶감을 먹겠다고 졸음을 버티다가 잠이 들 때면 아버지 등에 업혀 물 위에 둥둥 뜬 기분으로 돌아왔다. 갈색병에 들어있던 그 술을 왜 정종이라고 부르는지 알지 못했던 시절이었다.

차례상에 어김없이 올랐던 정종
 

정종 이름을 쓰고 있는 고베 나다의 기꾸마사무네 회사 ⓒ 허시명


1960~1970년대에 젊은 날을 보냈던 내 아버지 세대는 지금과 견주면 술의 암흑기에 살았다. 일제 강점기에 태어나, 전쟁을 겪었고, 경제 재건의 일꾼으로 숨가쁘게 뛰어야 했던 시대였다.

술은 다양한 맛과 향기를 가진 기호 식품으로서가 아니라, 피로를 망각하기 위한 마취 음료로, 허기를 면키 위한 반식량으로, 제사를 지내기 위한 제주 등으로 단조롭게 작동했던 시절이었다.


게다가 1966년부터 1990년까지 양곡시행령으로 쌀로 술을 빚는 게 통제되었다. 막걸리는 밀가루막걸리 시대로 대체되고, 소주는 주정에 물을 희석하고 사카린으로 맛을 낸 소주가 주도했지만, 맑은 술 약주는 길을 잃어버렸다.

다만 일본식 청주는 주정이 들어가긴 했지만, 쌀로 술을 빚을 수 있는 혜택 속에 맑은 술을 만들 수 있었다. 1968년의 통계를 보면 삼학, 백화, 조해, 조화, 금관 등의 청주 회사가 18개가 있었고, 그곳에서 만든 1.8리터 됫병에 든 정종이 어김없이 차례상에 올랐다. 나이 들고 술을 알게 되면서, 그 정종이 궁금했다.

정종은 한자로 正宗(정종)이라고 쓴다. 중국어 사전에는 정종을 '정통, 정통의, 전통적인'이라고 풀고 있다. 그래서 정종천채(正宗川菜)는 정통의 쓰촨요리를 뜻한다. 한국어 사전에는 정종을 '일본식으로 빚어 만든 맑은 술'이라고 푼다. 일본어 사전에는 정종을 '잘 벼려진 칼' 또는 '일본술의 상표명'으로 풀고 있다. 소쉬르의 개념어를 빌리면, 정종(正宗)이라는 단어를 두고 동아시아 3국이 기표(記標)는 같지만, 기의(記意)가 다른 기호(記號)로 쓰고 있다.

나의 아버지에게 정종은 차례 술이었고 제주였고, 친구들끼리 따끈하게 데워 마셨던 고급스런 사교의 술이었다. 쌀로 술을 빚을 수 없던 시절, 제주로 탁주는 탁해서 못 쓰고 소주는 독해서 못썼던 차에 맑은 술 정종만이 제례상을 독차지했다. 생각할수록 자존심이 상하는 시절이었다.
 

1930년대 신문광고에 실린 사꾸라마사무네의 청주 제품 ⓒ 허시명


정종은 일본에서 청주 상표의 한 가지일 뿐이다. 정종이라는 술 상표를 처음 쓴 회사는 일본 효고현 고베시의 나다(灘)에 있는 사꾸라마사무네(櫻正宗)다. 1840년 어느 날, 이 회사의 대표가 교토의 원정암(元政庵) 서광사(瑞光寺) 주지를 만나러 갔다가, 책상 위에 놓인 경전에서 임제정종(臨濟正宗) 문구를 보게 되었다. 정종(正宗)의 음독이 세이슈우(セイシュウ)여서 청주(세이슈 セイシュ)와 서로 통하여 정종(正宗)을 술 이름으로 사용하게 되었다.

그런데 그 뒤로 사람들이 정종(正宗)을 세이슈우(セイシュウ)가 아니라 마사무네(マサムネ)로 훈독하면서 마사무네가 일반 이름이 되었다. 1884년에 상표법이 생겨서 이 회사에서 정종(正宗)을 상표 등록하려고 했으나, 같은 이름을 사용하는 제품이 많아서 등록되지 못했다. 마사무네가 보통 명사로 여겨질 만큼 일본 청주의 상표명으로 정착되었던 것이다.

일제강점기에 한반도 진출한 일본 청주 회사들
 

마사무네 이름으로 가장 크게 명성을 얻고 있는 기꾸마사무네 회사의 제품 ⓒ 허시명

 
일제강점기 때 일본 청주회사들이 한반도에 진출하면서 정종 상표의 제품이 생겨났다. 사구라마사무네(櫻正宗)를 만들던 야마무로주조(山邑酒造)회사도 1929년에 마산에 소화주류(昭和酒類)주식회사를 세워 사꾸라마사요시(櫻正吉)라는 제품을 만들었다.

지역마다 정종 상표가 등장했는데, 서울 만리동에 미토모주조(三巴酒造)의 미모토정종(三巴正宗), 마산의 대전정종(大典正宗)과 정통평정종(井筒平正宗), 부산에 쯔지주조(辻酒造)의 히시정종(菱正宗)과 환금주조(丸金酒造)의 벤쿄정종(勉强正宗), 대구에 와카마즈 정종(ワヵマツ正宗), 인천에 풍전주조(豊田酒造)의 표정종(瓢正宗), 경남 하동에 단포본가의 마루와정종(丸和正宗) 등이 생산되었다.

1934년에 일본 청주 제조장이 한반도에 121개 있었는데, 적지 않은 양조장들이 정종 브랜드를 사용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해방 후에도 청주 제조장이 불하재산으로 이어지면서 일본 청주가 제조되었고, 정종이라는 술이 맑은 술의 대명사로 쓰였다. 하지만 시절이 변하여 일본식 청주 회사들이 차츰 문을 닫았고 지금은 롯데에서 인수하여 제조하고 있는 군산의 백화수복만이 남아 있다.

이제 정종이라는 명칭도 흐릿해졌고, 일식집이나 이자카야에서는 수입된 일본 청주가 사케라는 이름으로 통용되고 있다. 일본 청주의 수입량이 늘어나면서, 일본 청주를 대체하는 술을 빚어야 하는 고민이 필요한 정도로 세상은 변했다.
 

일본 양조장에 전시된 술병들 ⓒ 허시명

 
현재 일본에서는 정종(正宗) 상표를 쓰는 제품이 100여종이 되고, 회사 이름도 고베시의 기꾸마사무네(菊正宗)와 사꾸라마사무네(櫻正宗)가 유명하고, 니이가타에 스키장 마을에 스키(Sky) 마사무네, 후쿠시마에 악기(樂器) 마사무네 등 재미나게 진 것도 있다.

지난 시절 정종을 제주로 사용해왔던 것은 맑은 술이 달리 없었기 때문이고, 일본식 청주가 상대적으로 더 고급술로 여겨졌기 때문으로 여겨진다. 1990년부터 쌀로 술을 빚을 수 있게 되면서, 맑은 술 약주가 등장하게 되었고, 이제 여러 양조장에서 명절 제주로 정종 스타일을 대체한 차례 술을 만들어내고 있다.

정종의 근원을 알았다면, 그리고 무심코 정종을 차례 술로 제주로 사용해왔다면, 이제는 누룩향이 도는 맑은 술로 차례를 지내는 것이 옛날과 오늘을 잇는 일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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