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19일 오전 서울 종로구 참여연대에서 SK캐미칼, 애경산업, 이마트의 가습기살균제 유통 판매 등에 대한 무죄 관련해 전문가 기자회견이 열리고 있다.
 19일 오전 서울 종로구 참여연대에서 SK캐미칼, 애경산업, 이마트의 가습기살균제 유통 판매 등에 대한 무죄 관련해 전문가 기자회견이 열리고 있다.
ⓒ 이희훈

관련사진보기


"현재까지 이루어진 모든 연구 결과를 들어 종합하더라도 CMIT/MIT가 이 사건 폐질환 혹은 천식을 유발하였다는 사실을 입증하기에는 그 증거가 부족하다."

지난 12일 가습기 살균제 제조 기업 관계자들에게 무죄를 선고한 1심 판결의 이유다. 재판부는 피해자 존재와 전문가들의 연구 결과를 왜 인정하지 않았을까.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형사재판에서 유죄의 인정은 법관으로 하여금 합리적인 의심을 할 여지가 없을 정도로 공소사실이 진정하다는 확신을 가지게 할 수 있는 증명력을 가진 증거에 의하여야 한다"는 대법원 판례를 인용했다. '의심스러울 때는 피고인의 이익으로'라는 형사소송의 대원칙을 강조한 것이다.

전문가들은 19일 기자회견을 열고, 재판부가 자연과학적으로 명백한 인과관계를 도출하기 어려운 환경보건학 연구 결과를 존중하지 않았다고 비판했다. 입증 정도를 둘러싼 형사소송 원칙과 환경보건학 연구 사이의 간극이 무죄판결로 이어진 셈이다.

재판부 "인과관계 입증되었다고 보기 힘들다"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 조순미씨(휠체어 탑승)가 지난 12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법에서  SK케미칼·애경 전 대표와 임직원들이 1심 무죄를 선고심 무죄 관련 기자 회견을 마치고 귀가하고 있다.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 조순미씨(휠체어 탑승)가 지난 12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법에서 SK케미칼·애경 전 대표와 임직원들이 1심 무죄를 선고심 무죄 관련 기자 회견을 마치고 귀가하고 있다.
ⓒ 이희훈

관련사진보기

 
서울중앙지방법원 형사합의23부(재판장 유영근)는 12일 CMIT/MIT 성분을 원료로 하는 가습기 살균제를 만든 SK케미칼·애경산업 관계자 13명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재판부는 전문가들의 각종 연구 결과를 두고 CMIT/MIT 성분이 폐질환이나 천식을 유발하거나 악화시킨다는 사실이 입증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다음은 판결문 내용이다.

"현재까지 여러 기관에서 수행한 동물 흡입독성시험에서 비강, 후두 등 상기도 염증이 관찰된 결과는 있었으나, CMIT/MIT가 이 사건 폐질환 혹은 천식을 유발하거나 악화시키는 것이 확인된 시험 혹은 CMIT/MIT 성분이 말단 세기관지 부근의 폐까지 도달한 사실을 입증한 시험은 없었다. 또한 역학조사, 임상사례, 세포독성시험, 빅데이터 연구 등을 흡입독성시험 결과와 함께 살펴보더라도 이들을 들어 인과관계가 입증되었다고 보기 힘들다."

재판부는 또한 법정에 증인으로 나온 전문가들을 두고 "어느 누구도 이 법정에서 자신들의 실험 결과를 가지고 CMIT/MIT 성분과 이 사건 폐질환에 따른 사망 내지 상해 혹은 천식과 사이에 인과관계가 있다는 취지의 진술을 하지 못했다"라고 밝혔다.

재판부는 CMIT/MIT 가습기 살균제를 단독으로 사용해 폐질환을 인정받은 11명에 대해서도 의문을 나타냈다. 재판부는 "(피해자 11명) 대부분 가습기 살균제를 사용한 때로부터 많은 시간이 지나 제품명을 제대로 기억하지 못하거나, 조사를 거듭하면서 사용한 제품명, 구입처, 구입 시기 혹은 사용 기간 관련 진술이 달라지기도 했다"라고 밝혔다.

또한 "환경노출조사의 경우, 영수증, 가습기 살균제 제품, 사진 등 객관적인 자료가 있으면 그 자체로 1등급으로 판정했을 뿐 물품이나 사진의 경우 입수경위나 실제 사용 여부까지 면밀히 확인한 것은 아니었다"라고 지적했다.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들을 대리한 송기호 변호사는 18일 자신의 유튜브채널에서 무죄 판결의 이유를 정부의 미흡한 조사에서 찾았다. 송 변호사는 "정부는 CMIT/MIT와 폐질환의 인과관계를 파악하기 위한 실험을 실제 피해보다 15년 늦게 하는 등 체계적으로 조사하지 않았다"라고 지적했다. 

그는 "CMIT/MIT로 인해 폐섬유화나 천식 등 하기도(폐 등 기도 아랫부분) 질환이 발생했다는 주장은 형사소송법이 요구하는 정도로 입증되지 않았다는 법원 판결 논리를 이해할 수 있다"라고 밝혔다. 다만, "검찰은 공소사실을 변경하고, (항소심) 법원은 국민이 납득할 만한 판결을 해야 한다"라고 덧붙였다.

전문가들이 반발하는 이유
  
19일 오전 서울 종로구 참여연대에서 SK캐미칼, 애경산업, 이마트의 가습기살균제 유통 판매 등에 대한 무죄 관련해 전문가 기자회견이 열리고 있다.
 19일 오전 서울 종로구 참여연대에서 SK캐미칼, 애경산업, 이마트의 가습기살균제 유통 판매 등에 대한 무죄 관련해 전문가 기자회견이 열리고 있다.
ⓒ 이희훈

관련사진보기


재판에서 증인으로 나온 전문가들은 재판부의 판단을 반박했다. 한국화학연구원 부설 안전성평가연구소 이규홍 박사는 "(법정에서) 'CMIT/MIT는 PHMG와 달리 폐섬유화와 관련이 없다고 보는 게 맞다'고 했다"라고 밝혔다. 다만, "판결문에 많은 부분에서 저의 증언을 인용했지만, 저의 증언 취지와는 다소 다르게 인용되었다는 것을 느꼈다"라고 덧붙였다.

그는 "특정 실험결과 하나로 한정하여 분명한 인과성을 주장할 수 있느냐라고 심문하고 이를 단정적으로 증언하지 못한다고 하여 판단에서 배제하는 것은 과학적 사실을 올바르게 이해하여 판단하는 것이 아닐 것"이라고 전했다.

그는 이어 "CMIT/MIT는 초기에는 인과관계를 설명하기 다소 어려운 물질이었다. 그러나 연구를 거듭하면서 또 다른 분야의 과학적 연구결과를 같이 검토하면서 점점 CMIT/MIT라는 물질과 사람에게서 나타난 피해 질환들 간의 인과관계의 증거들은 찾아낼 수 있었다. 현재도 지속적으로 연구결과를 쌓아가고 있다"라고 강조했다.

역시 법정에서 증언한 이종현 EH R&C 환경보건안전연구소장은 "CMIT/MIT가 현재까지 하기도까지 도달한다는 사실을 화학분석 등을 통해서 실험적으로 입증하고 있는 결과가 없는 것은 사실"이라면서도 "이는 특별히 입증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 했기 때문이기도 하다"라고 밝혔다.

"하기도에 도달 가능성을 입증할 수 있는 다른 종류의 증거들은 얼마든지 제시될 수 있다"면서 "단독 사용자의 경우 폐기능 손상이 보고되고 있다는 것은 하기도에 도달했다는 명백한 증거"라고 전했다.

가습기 살균제 사태 초기부터 피해자들을 조사한 박동욱 한국방송통신대 교수는 재판부가 사실을 왜곡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재판부는 피해자들이 어떤 제품을 사용했는지 기억을 못한다고 했는데, 사실 왜곡이다"라고 비판했다.
  
19일 오전 서울 종로구 참여연대에서 SK캐미칼, 애경산업, 이마트의 가습기살균제 유통 판매 등에 대한 무죄 관련해 전문가 기자회견이 열리고 있다.
 19일 오전 서울 종로구 참여연대에서 SK캐미칼, 애경산업, 이마트의 가습기살균제 유통 판매 등에 대한 무죄 관련해 전문가 기자회견이 열리고 있다.
ⓒ 이희훈

관련사진보기

 
"(재판부는) 가습기 살균제로 인한 폐질환 인정 피해자 11명의 개별 인과를 평가하지 않았다. 피해자 가운데 5~6살 아이들이 7명이다. 이 아이들은 직업노출, 화학노출이 없다. 폐질환은 유전적 요인도 아니다. 가습기 살균제 외에 다른 요인이 뭐가 있을까. 가습기 살균제 때문이다."

변호사인 박태현 강원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물질과 그 피해를 엄격하게 확정하기 어렵다는 이 사건의 특수성을 감안하면, 이 사건의 경우 일반적인 형사재판과 달리 그 증명의 정도를 낮게 설정하는 게 필요하다"라고 강조했다.

그는 항소심 재판부를 향해 "과학자로 구성되는 자문 패널을 구성할 것을 제안한다. 패널이 과학적 연구결과를 종합적으로 판단하고 자문 패널의 종합적 의견에 기초해서 판단할 것을 요구한다"라고 말했다.

태그:#가습기 살균제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오마이뉴스 법조팀 기자입니다. 제가 쓰는 한 문장 한 문장이 우리 사회를 행복하게 만드는 데에 필요한 소중한 밑거름이 되기를 바랍니다. 댓글이나 페이스북 등으로 소통하고자 합니다. 언제든지 연락주세요.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