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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이 돈 버는 데 보태준 게 뭐 있어? 돈 좀 벌었다 하니까 서로 뜯어 먹으려고 난리여. 국민들 구걸 근성 자극하는 게 사회주의지 뭐야. 이러니 정권이 빨갱이 소리를 듣는 거라고..."

퇴근길, 옆자리에 앉은 초로의 남자 둘의 대화는 참 불편했다. 언론에서 한참 논란이 되고 있는 이익공유제에 대한 성토였던 셈인데, 정권과 정책에 사회주의라는 잣대부터 들어대는 편협함과 '구걸의 국민성'까지 내세워 기업을 두둔하는 반사회적 인식에 대화에 끼어들어 한번 따져보고 싶은 충동까지 들었다. 당신들이 무료로 타는 지하철도 자본의 이익을 공유하는 세금과 복지 정책이 아니면 불가능한 일이었을 거라고 말해주고도 싶었다.

이익공유제가 사회주의 제도라고? 모르는 소리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세가 계속되는 27일 서울 강남역 인근 식당가가 한산하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세가 계속되는 27일 서울 강남역 인근 식당가가 한산하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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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당에서 운을 띄운 '이익공유제'는 코로나로 더 많은 수익을 기록한 기업들의 이익을 사회적으로 공유하자는 취지의 제도다. 이는 사회주의 제도라기보다, 자본주의 제도에 가깝다.

국가의 테두리에서 발생하는 이익의 일정 범위가 세금으로 환수되어져 국가와 국민의 안정과 삶을 위해 투자되는 게 자본주의의 운영 원리다. 이익의 일부분을 공유하겠다는 묵시적 합의가 존재하지 않는다면 자본주의 국가는 성립할 수 없다. 그래서 세금과 복지 논쟁에서 이념의 잣대로 판단하는 것은 진부하다. 민주주의가 정착되고 복지제도가 잘된 나라일수록 이익 공유에 대한 사회적 합의는 원만한 편이다.

이익공유제라는 개념이 이번에 새로 나온 것도 아니다. 2011년, 대기업과 하청업체간 임금격차와 불평등이 심화되자 당시 정운찬 동반성장위원장은 대기업의 이익 중 일정 부분을 떼어서 협력업체와 나누자는 내용을 중심으로 한 협력이익공유제를 방안으로 제시했다.

2015년에는 한·중 FTA 발효로 창출되는 무역 이득을 농어업 등 상대적으로 피해가 예상되는 업종에 지원하자는 무역이득공유제가 야당인 새정치민주연합에서 주장되기도 했다. 2011년 협력이익공유제나 2015년 무역이득공유제, 이번에 민주당 이낙연 대표가 주장하는 이익공유제까지, 이익의 일부를 나누자는 취지는 모두 같다.
 
41조 원. 지난해 국내 8개 금융 지주사들이 벌어들인 이자 수익 추정치입니다. 이들의 지난해 전체 매출은 51조 원, 돈을 빌려주고 받은 이자로만 전체 이익의 80%를 넘게 번 겁니다. 역대 최저 금리에도 이자 수익이 커진 건 코로나19 위기로 대출이 급증했기 때문입니다. 실직자와 자영업자, 중소기업의 생계형 대출에 '영끌'과 '빚투'까지 더해지면서 지난해 은행 대출 규모는 1년 전에 비해 180조 원이 늘었습니다. - MBC 뉴스테스크 2021.1.25
 
2020년 은행들은 그야말로 '떼돈'을 벌었다. 매출 51조 중 41조가 이자 수익이다. 정부의 방역 지침에, 반강제로 문을 닫은 가게를 지키며 임대료와 공공요금 등을 은행 빚내서 갚아야 했던 자영업자들. 본인들의 생계비보다 은행 이자부터 먼저 챙겨야 했던 코로나19의 참극이 은행의 막대한 수익으로 쌓인 것이다.

정부가 나서서 보증을 자처하고 은행 문턱을 낮춘 덕에, 은행들은 번호표로 줄을 세워가며 고객을 맞았다. 자영업자와 비정규직 등 대부분의 국민들에게 코로나19는 생계의 위협이었지만, 은행에게는 예상치 못한 대박을 안긴 셈이 됐다.

"아랫돌 빼서 윗돌을 괴더라도 문 열고 버텨야" 하는 상인들

이런 곳은 또 있다. 가정에서 지내는 시간이 많아지고 비대면 문화가 오랜기간 지속되다보니 골목 상권의 소비가 온라인 유통으로 옮겨갔다. 산업통상부 발표 자료만 보더라도 온라인 매출은 전년 대비 18.4%가 늘었다.

백화점이나 대형마트는 물론 동네 상권의 매출 하락은 지마켓 등 온라인 시장의 흑자로 연결되었다. 소비 진작을 위해 마련된 코리아세일페스타 기간에는 '11번가'가 하루 거래액 2018억 원을 기록하는 등 온라인 쇼핑몰마다 역대급 흥행을 기록했다.

온라인 유통의 흥행은 택배사로 이어졌다. 한진택배만 하더라도 상반기 매출이 전년 대비 24% 영업이익이 92% 늘어났다. 정부조차 명절에 고향 방문보다는 선물 보내기를 독려한 코로나 시국. 택배사는 폭주하는 물량에 즐거운 비명을 질렀고, 이를 받아서 처리하는 택배 종사원들은 하루 200~300개의 물량을 처리하며 과노동을 해야만 했다.

재벌 택배사들이 늘어난 영업 이익의 일부분이라도 인력 충원과 기사들의 처우 개선을 위해 투자했더라면 그 많은 택배기사의 안타까운 죽음은 이어지지 않았을 것이다.
 
음식점, 호프집을 운영하는 자영업자들이 15일 오후 서울 영등포구 더불어민주당 당사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코로나19 방역 조치에 따른 정부의 영업시간 제한에 항의하며 형평성 있고 합리적인 방역기준 수립해 달라고 요구했다.
 음식점, 호프집을 운영하는 자영업자들이 15일 오후 서울 영등포구 더불어민주당 당사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코로나19 방역 조치에 따른 정부의 영업시간 제한에 항의하며 형평성 있고 합리적인 방역기준 수립해 달라고 요구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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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다섯 팀도 못 받았어요. 댁네들이 마지막 손님이여. 폐업하고 싶어도 못 해. 폐업하면 은행 이자도 못 내고 길거리에 나 앉을 판인데... 아랫돌 빼서 윗돌을 괴더라도 문 열고 버텨야지."

일이 늦게 끝난 날, 단골 식당 주인은 저녁 8시도 되지 않았는데 문 닫을 준비를 한다. 장사가 힘들다는 내 하소연에 식당은 더 죽을 맛이라고 응수한다. 자영업자들의 처지는 절박하다. 기업들이나 공무원들이야 코로나 상황에 따라 재택 근무라도 한다지만 식당, 노래방, PC방, 헬스클럽은 손님이 없어도 문은 열어야 하고, 정부가 문을 닫으라고 하면 단속이 무서워 있는 손님도 내보내야 한다.

매출은 반 토막, 1/10이 되는 경우도 부지기수인데 임대료를 깎아준다는 것은 먼나라 이야기다. 코로나 바이러스는 부자와 가난한 자를 가리지 않지만, 코로나19가 만들어낸 경제의 불평등은 자영업자 비정규직 노동자, 취업준비생들에게 한결 더 엄혹하다.

기업들 배당 잔치가 아니라 이익공유 잔치를 바란다

국민들의 대출금 이자를 받아 얻은 수익금 41조. 은행들은 돈 잔치에 나섰다. 2%에 육박하는 임금 인상과 최대 200%의 성과급, 역대급 규모의 명예 퇴직금을 직원들에게 지급하기로 했다는 소식도 들린다. 사상 최대 매출과 영업 이익을 낸 대기업 쇼핑몰과 대형 택배사들도 전년도 결산이 끝나면 배당 잔치는 다르지 않을 것이다.

해마다 결산이 끝나는 2, 3월이면 이어지는 배당 잔치지만 올해만큼은 그러지 않았으면 한다. 2020년 사상 최대의 매출과 영업 이익은 코로나 취약계층의 눈물과 희생 위에 세워진 기록이다. 골목마다 생존의 비명의 끊이지 않는데, 은행과 기업들이 문 닫고 배당 잔치를 벌인다는 것, 생각할 수 없이 잔인한 일이다.

이익공유제가 기업 팔 비틀기라는 비판도 있다. 하지만 사회 안전망을 지켜야 하는 건 기업이나 국민 모두의 일이다. 코로나 정국이 경제의 명암을 더 짙게 만들었다면, 치유해야 하는 숙제도 더 이상 미룰 일도 아니다. 코로나 정국에서 우리 경제가 선방했다는 통계가 선뜻 와닿지 않는 건 코로나19가 가져온 불평등의 그늘이 더 짙기 때문이다.

2월 임시국회를 앞두고 손실보상법·협력이익공유법·사회연대기금법 등 상생협력3법을 여당인 민주당이 추진한다고 한다. 환영할 일이다. 코로나를 빨리 끝내려는 방역 노력과 더불어 코로나 취약 계층이 삶의 희망을 잃지 않게 하려는 노력이 절실할 때다.

金樽美酒千人血(금준미주천인혈). 금잔에 좋은 술은 백성의 피. 그건 춘향전에 나오는 이야기다. 코로나19로 사상 최대의 매출과 영업 이익을 거둔 기업들이 그런 소리를 들어서야 되겠는가? 기업과 정치권에 이익공유제의 전향적 자세를 촉구한다.

태그:#이익공유제, #코로나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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