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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전 대통령과 최서원씨에게 뇌물을 준 혐의 등으로 기소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1월 18일 오후 서울 서초구 고등법원에서 열린 파기환송심 선고공판에 출석하고 있다.
 박근혜 전 대통령과 최서원씨에게 뇌물을 준 혐의 등으로 기소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1월 18일 오후 서울 서초구 고등법원에서 열린 파기환송심 선고공판에 출석하고 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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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1월 18일, 이재용 삼성부회장에 대한 최종 판결이 있었다. 그간 무수한 논란과 추측이 쏟아졌지만 결론은 징역 2년 6개월이었다. 무엇 때문인가?

이미 알려진 바, 이재용 부회장(1968~ ) 체제 삼성 그룹이 아래 박근혜-최순실 등 국정농단 세력들에게 약 430억 원대의 뇌물을 공여한 것이 핵심이다. 그래서 2017년 2월 17일 삼성 역사상 최초로 총수가 구속 수감되었다. 삼성은 그 직후(2017년 2월말)에 미래전략실을 해체하고 각 계열사들에게 자율 경영을 실시한다고 공표했다. 삼성이라는 기업 조직을 민주적으로 분권화함으로써 더 이상 재벌의 황제경영이나 부패경영을 하지 않는다는 '인상'을 온 사회(특히 언론)에 각인하려 한 것이다. 이런 식으로 삼성은 총수 구하기에 전력 질주했다.

아니나 다를까, 이재용 부회장이 구속 수감된 지 채 1년도 안 된 2018년 2월 5일 서울고법은 징역 2년 6월에 집행유예 4년을 선고하고 석방했다. 항간에 떠도는 '유전무죄, 무전유죄'라는 말이나 '앞문으로 들어가고 뒷문으로 나온다'는 말이 결코 무색하지 않을 정도였다. 그래도 삼성 측이 이를 수용하고 가만히 있을 리 없었다. 동일 건은 대법원까지 올라갔고, 2019년 8월의 대법원 전원 합의체 판결로 파기 환송됐다. 그 뒤 2019년 10월의 파기 환송심에서 담당 판사는 피고인 이재용에게 "실효성 있는 준법감시제도를 마련하라"고 주문하기까지 했다. 엉뚱한 주문이었다. 삼성은 2020년 2월 5일 '삼성준법감시위원회'를 공식 출범시키며, 준법 경영을 강조했다. 또 2020년 5월에는 이재용 부회장이 '대국민 사과'를 공개적으로 하기도 했다. 그러나 재벌 해체를 포함한 경제·노동 민주화 없이 이뤄진 말로만의 개인적 사과는 '빛 좋은 개살구'에 불과했다. 그리고 이제 그 모든 결론이 2021년 1월 18일에야 났다. 징역 2년 6개월.

그러나 실은 2년 6개월의 실형조차 너무나 가벼운 '솜방망이'다. 그나마 검찰이 2020년 12월 말의 마지막 공판에서 이재용 부회장에게 9년형을 구형한 것은 좀 나았던 편이다.

생각해 보라. 그 누가 횡령 및 뇌물 공여로 죄를 범한 뒤에도 3년 이상 자유의 몸으로 세상에 나다닐 수 있는가? 법원이 '인권'을 중시한 탓일까? 그 뇌물 액수도 최소 86억이 넘는다. 참고로, 대한민국 형법에 따르면 뇌물공여죄나 뇌물수수죄는 기본으로 5년 이하의 징역이 가능하고, 뇌물수수죄의 경우 특정범죄가중처벌이 적용되어 그 액수가 5억 원 이상이면 최고 11년 이상 내지 무기징역까지도 가능하다.

만일 우리가 민주주의나 인권의 잣대를 들이대면... 
 
고 노회찬 정의당 의원 (자료사진)
 고 노회찬 정의당 의원 (자료사진)
ⓒ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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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이미 고인이 된 노회찬 전 의원(1956~2018)을 보자. 그 역시 1989년부터 1992년까지 만 2년 6개월간 옥살이를 한 적이 있다. 그래서 이재용과 노회찬의 공통점이라면 같은 한국인 남성이란 점 외에 2년 6개월의 징역을 '선고'받은 점일 게다.

그러나 노회찬을 이재용과 비교하는 것이 죄스러울 정도로 노회찬은 민주주의와 노동운동을 위해 헌신했다. 노회찬의 죄목은 국가보안법 상 이적단체 가담죄였다. 남과 북이 정상회담을 하고 평화통일을 염원한다면 없어져야 할 국가보안법, 그 법에 따른 죄(?)였다. 그러나 이재용의 핵심 죄목은 형법 상 횡령죄와 뇌물공여죄다. 그 액수도 (최종 인정된 것만도) 86억 원을 넘는 거액이기에 특정경제가중처벌법까지 적용되면 실은 적어도 10년 내외의 징역형 내지 심하면 무기 징역까지 될지도 모르는 그런 중죄다.

만일 여기서 우리가 민주주의나 인권의 잣대를 들이대면, 노회찬에게는 무죄가, 이재용에게는 종신형이 선고돼야 할지 모른다. 그러나 이재용 법정 구속 직후의 여론조사에서도 나온 바, 절반 가까운(46%) 사람들은 삼성 총수에 대한 2년 6개월 징역형과 법정 구속이 "과하다"고 보았다. 스스로 보수층이라 생각하는 이들이 그렇게 보았다면 수긍이 되지만, 스스로 진보층이라 생각하는 이들조차 54% 정도가 "적당하다(31.6%)" 내지 "과하다(22.1%)"고 답했다. 놀라울 정도다. 그 정도로 우리는 삼성 재벌이 곧 한국 경제이며, 재벌의 성공이 우리의 성공이라 내심 동일시하고 있는지 모른다. 그래서 우리가 보통 생각하는 민주나 진보가 과연 어떤 내용을 담고 있는지, 보다 깊은 공부나 토론이 필요하다.

좀 더 깊이 생각해 보면, 바로 이런 식의 (우리의 의식이나 무의식 안에 끈질기게 깔려 있는) 물신주의적 생각이나 태도야말로, 인간 노회찬 같은 사람을 죄 아닌 죄로 잡아 가두고 나아가 결국에는 자살로 삶을 마감하게 사실상 강요한 주범이 아닐까 한다. 이런 면에서 판·검사들이 날이면 날마다 들먹이는 법 조항 그 자체보다 평소에 우리가 어떻게 느끼고 어떻게 생각하며 어떻게 행동하며 살아가는가 하는 측면이 결국엔 사람을 살리기도 하고 사람을 죽이기도 함을 알 수 있다.

무서운 일이다. 이는 또한, 앞으로 진정한 민주주의를 이루기 위해서라도 (검찰개혁, 언론개혁, 재벌개혁, 노동개혁, 교육개혁 등과 같은) 사회 시스템 전반의 혁신과 더불어 우리 자신의 일상 의식 역시 근본적 혁신이 필요함을 시사한다. 시간은 별로 없는데, 아직도 갈 길은 멀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대전충남인권연대 뉴스레터에도 실립니다.


태그:#이재용, #노회찬, #인권의 잣대, #민주주의의 잣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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