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02.16 12:25최종 업데이트 21.02.16 1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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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얀마 군부가 사면한 2만 3000명 중에 '문제적 인물'인 아신 위라투(Ashin Wirathu)가 포함된 것으로 보인다는 보도가 나왔다. 현지 시각으로 11일자 <알자지라> 영문판 기사 '미얀마 쿠데타 반대 시위, 수십만으로 증가(Hundreds of thousands swell Myanmar protests against coup)'는 "사면을 받은 사람들 중에 논란이 되는 불교 승려 위라투가 포함돼 있다. 그는 로힝야족을 포함한 이 나라의 소수 이슬람인들에 대한 폭력을 선동한 전력이 있다"고 보도했다.

자신들에 대한 적대적 태도 때문에 위라투를 주목하는 중동 사람들은 그를 빈 라덴에 비유하기도 한다. 사우디 영문 일간지 <아랍뉴스>는 작년 7월 30일에 '아신 위라투: 불교의 빈 라덴(Ashin Wirathu: The Buddist Bin Laden)'이란 제목의 기사를 내보냈다. 테러를 유발하는 과격성과 연설 스타일을 근거로 한 보도다.

위라투는 전광훈 목사를 연상케 하는 면도 있다. 일반적인 성직자들과 달리 극우 운동을 벌이며 민선 정권을 비판해온 것이 그러하다. 쿠데타 반대 시위가 격렬한 상황에서 친군부 성향인 그가 거리로 뛰어나오게 되면, 미얀마 정국에 변화가 생길 가능성이 적지 않다. 그의 동향에 국제적 관심이 쏠리는 이유다.
  

2013년 <타임> 표지에 실린 아신 위라투. ⓒ 타임

 
극우 승려 위라투

위라투는 1968년 7월 10일 출생했다. 14세 때까지 세속 학교를 다녔고, 그 뒤로는 불교 사찰에서 수행했다. 극우 정치에서 두각을 나타낸 것은 만 33세 때인 2001년이다. 이로 인해 2003년에 테러 연루 혐의로 징역 25년형을 선고받았다가 2010년 석방됐다. 작년에도 폭력선동 혐의로 체포영장이 발부된 상태에서 11월 총선 직전에 자수했다.


전광훈을 비롯한 한국 극우는 미국에 대해 숭배 비슷한 감정을 갖고 있다. 작년 6월 발행된 <전광훈 목사의 옥중서신>에 "역사적으로 보면 우리가 얻은 자유가 우리가 희생하고 투쟁하고 얻은 것이 아니고 미국으로부터 대가 없이 쉽게 얻었으므로"라는 대목이 있다. 한국 극우는 3·1운동 같은 독립투쟁은 고려하지 않은 채, 미국이 대가도 없이 쉽게 건네준 것을 한국인들이 누리고 있다고 말한다.

그에 비해 미얀마 극우는 미국 등 서방세계와 거리를 둬왔다. 미국과 소련 어느 쪽에도 치우치지 않는 비동맹 노선을 견지해온 미얀마 역대 정권과 비슷했다. 반미 노선을 견지했던 네윈 대통령과 달리 서방에 대해 개방적이었던 버마사회주의계획당 출신의 산 유(San Yu) 대통령 재임 기간(1981~1987년)을 예외로 하면, 미얀마와 미국의 관계는 대체로 불편했다. 이것이 미얀마 극우의 태도에도 영향을 끼쳤다.

그런데 위라투한테서 뜻밖의 발언이 나왔다. 도널드 트럼프가 당선된 직후에 "트럼프는 나와 비슷하다"며 호감을 나타낸 것이다. 이런 사실이 2016년 11월 17일자 <미국의 소리> 인터넷판 기사 '미얀마 반(反)이슬람 불교 승려, 트럼프는 나와 비슷(Anti-Muslim Buddist Monk in Myanmar: Trump Similar to Me)'에 소개됐다.

위라투가 호감을 표한 것은 트럼프의 반이슬람 정서 때문이었다. <미국의 소리>는 "마바타(Ma Ba Tha)로 알려진 미얀마 불교단체의 주목 받는 지도자인 아신 위라투는 이슬람에 대한 자신의 관점과 이 공화당 대통령 당선자의 그것 사이에서 유사점을 뽑아냈다"며 "트럼프의 선거운동은 이슬람의 입국을 금지하고 회교당에 대한 감시를 높이는 것을 포함하는 반이슬람적 수사(rhetoric)와 제안으로 가득했다"고 보도했다.

그 이전의 일반적인 미얀마 극우와 달리, 위라투의 행보는 미국의 흐름과 맞아떨어졌다. 그가 반이슬람 운동을 주도하기 시작한 시점은 9·11 테러가 있었던 2001년이다. 이슬람과 미국의 대립이 격화됐던 시기에 그 역시 이슬람 배격 활동에 나섰던 것이다.

그가 주동하는 반이슬람 운동은 '969 운동'으로 불린다. 2015년 <동남아 연구> 제24권 제3호에 실린 장준영 한국외대 연구원의 논문 '미얀마의 무슬림과 종교분쟁: 국민통합을 중심으로'는 "이 운동의 주동자는 승려 위라투로, 미얀마인들의 의식에 뿌리박힌 수비학(數秘學, 숫자 의미 탐구)을 활용했다"며 "각각의 숫자는 부처의 가르침 9가지, 정법(正法)의 가르침 6가지, 상가의 가르침 9가지이며, 모든 수의 합인 24는 야더나똥바(Yadana-Thounba) 즉 삼보(三寶)를 의미한다"고 말한다.

이슬람에 대한 증오심

위라투의 이슬람에 대한 증오심이 어느 정도인지는 2003년 10월 21일자 홍콩매체 <아시아 타임스> 인터뷰에 잘 나타난다.

'미얀마의 이슬람 막간 쇼(Myanmar's Muslim Sideshow)'라는 제목 하에 '이슬람 박해'가 '미얀마 정치권력의 문제점'을 은폐하고 다른 데로 관심을 돌리는 기능을 하고 있다고 설명하는 이 기사에 위라투의 인터뷰가 소개된다. 여기서 그는 "우리는 미얀마의 문제점을 갖고 있다"며 "그 문제는 이슬람으로 불린다"고 한 뒤 이슬람인이 많은 만달레이(Mandalay) 지역을 언급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만달레이에는 파키스탄과 방글라데시에서 온 새로운 이슬람교도들이 많습니다. 이 사람들은 도둑이고 테러리스트예요. 그 사람들은 우리의 종교, 우리의 여성들을 존중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불교도이고 평화스럽지만, 우리 스스로를 보호해야 합니다."
 
이 대목에서 <아시아 타임스>는 인터뷰 분위기를 소개했다. "붉은 승복, 방금 깎은 머리, 얼굴에 흐르는 고요한 무심(無心)과 더불어, 좌정한 승려는 먼 벽면 앞의 금불상과 거의 완벽히 견줄 만했다"고 한 뒤 "그러나 그의 말은 고요함과는 거리가 멀었다"고 말한다. 고요하고 신비한 분위기를 풍기던 위라투의 입에서 전혀 상반되는 발언이 나왔기에 그 분위기를 소개했던 것이다.

위라투는 '가만히 있으면 이슬람이 미얀마를 삼킬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을 드러냈다. 인터뷰에서 그는 "그들은 미얀마가 이슬람이 되기를 원하지만, 미얀마는 불교도다"라며 "그들은 아시아의 나머지 지역도 이슬람이 되고 이슬람 율법에 따라 살기를 원한다"고 강조했다.

2003년 10월, 미얀마 중부 캬옥세(Kyaukse)의 불교 사원에 돌멩이가 던져졌다. 승려들은 이슬람 교도들의 소행으로 착각했고, 이는 불교와 이슬람의 충돌로 이어졌다. 

그해 11월 3일자 <알자지라> 기사 '미얀마에서 이슬람 소수민족 공격당해(Muslim minority attacked in Myanmar)'는 "이슬람인들을 상대로 불교도들이 선동한 폭력으로 12명이 사망한 뒤에 미얀마의 수도원과 회교당들이 감시를 받고 있다"고 한 뒤 "여러 이슬람교도들이 뒤이은 난동으로 부상을 입었고, 생명을 걱정하는 다른 사람들은 보호 차원에서 불교도 이웃의 집으로 옮겨졌다고 목격자들이 말했다"고 보도했다. 불교도 집에 숨지 않고는 이슬람인들이 목숨을 부지하기 힘들 정도의 폭력이 벌어졌던 것이다. 이 사건에 관해 위의 장준영 논문은 이렇게 말한다. 
 
당시 언론은 주동자를 밝히지 않았으나 정치 성향이 짙은 만달레이 출신 승려들이 이 지역을 방문한 뒤 폭동이 발생했다. 이 사건으로 인해 투옥된 위라투는 25년형을 선고받았으나 2010년 정부의 대사면으로 석방되었다.

실제로는 더 많을 수도 있지만, 미얀마의 이슬람 인구는 공식적으로는 4%다. 88%나 되는 불교도가 소수의 이슬람에게 억눌릴 가능성은 희박하다. 그런데도 위라투를 비롯한 극우세력은 이슬람에 대한 공포심을 조장하는 한편, 이슬람에 대해 다수파의 위세를 부리고 있다. 자신들의 이슬람 혐오 발언이 폭력적 테러와 인종 청소를 유도하고 있음을 뻔히 알면서도 그렇게 하고 있다. 이로 인해 피해를 입는 대표적 집단이 이슬람교도들인 로힝야족이다.

미얀마 군부가 위라투 같은 편파적이고 극단적인 인물을 사면해 국면 전환을 시도할지 모른다는 우려가 퍼져 있는 데서도 느낄 수 있듯이, 역대 정권들과 마찬가지로 지금의 미얀마 정권도 불교 내의 극우세력과 제휴하고 있음은 물론이고 그들이 터를 잡고 있는 불교 자체에 대해서도 의지하고 있다.

국민 다수가 믿고 있는 종교라서 어쩔 수 없는 측면도 있지만, 미얀마 정치권력의 친불교 정책이 이슬람 배격 운동의 토양이 되는 측면도 부정할 수 없다. 그런 기반 위에서 불교 내의 일부 세력이 정치적 극우를 형성하며 국내외적으로 공포심과 긴장감을 조성하고 있다. 

이런 극우 승려가 지금 상황에서 주목받는 것은 극우 불교와 군사정권의 제휴 가능성에 대한 대중의 우려가 어느 정도인지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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