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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장 재보궐 선거에 출마한 국민의당 안철수 예비후보(왼쪽)가 18일 상암동 채널에이 사옥에서 무소속 금태섭 예비후보(가운데)와 단일화를 위한 토론을 하고 있다.
 서울시장 재보궐 선거에 출마한 국민의당 안철수 예비후보(왼쪽)가 18일 상암동 채널에이 사옥에서 무소속 금태섭 예비후보(가운데)와 단일화를 위한 토론을 하고 있다.
ⓒ 국회사진취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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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철수 서울시장 예비후보는 18일 퀴어퍼레이드에 대해 "거부할 수 있는 권리도 마땅히 존중받아야 한다, 퀴어 축제 장소는 도심 밖으로 옮기는 것이 적절하겠다"고 말했다. 이어 국민의힘 나경원, 조은희, 이언주 등 보궐선거 예비후보들과 김종인 비대위원장까지 비슷한 취지의 발언을 이어가며, 안철수가 열어젖힌 혐오 정국을 키우고 있다.

헌법상 집회의 자유는 '집회 장소를 선택할 권리'를 명확히 포함한다. 안철수 후보의 발언은 성소수자 혐오뿐 아니라 대한민국 헌법에 대한 무지를 보여준다. 안철수는 헌법 한 번 곱씹지 않고 새정치를 운운해왔다. 공직자로서 자격이 없다.

"그토록 오고 싶었고, 이곳에 오기까지 많은 수모를 당했다." 청와대 100m 앞에서 박근혜 퇴진 촛불집회를 하게 된 날, 세월호 유족들이 한 말이다. 당시 촛불 집회 주최 측은 매주 청와대 앞에 집회신고를 하고, 경찰은 금지통고를 하고, 법원은 조금씩 청와대와의 거리를 좁히던 일들이 반복되고 있었다. 촛불집회가 거세질수록 법원이 허용하는 청와대와의 거리는 900m, 400m, 200m로 점차 짧아졌고 마침내 100m 앞까지 다다랐다.

시민들이 손수 붙인 노란 리본으로 가득한 세월호 모형이 청와대 앞으로 행진할 때, 참 벅차고도 서러웠다. 당시 재판부는 "집회의 자유는 집회 시간과 장소, 방법과 목적을 스스로 결정할 수 있는 권리를 내용으로 한다"라며 "개인이나 단체가 계획한 집회·시위가 전면적으로 제한되는 것 자체로 회복하기 어려운 손해가 있다고 봐야 한다"라고 판결했다. (서울행정법원 행정6부(부장 김정숙), 2016년 12월 2일)

이 판례가 새로운 건 아니다. 우리 헌법재판소와 법원은 집회의 장소를 결정할 권리가 헌법이 보장한 집회의 자유에 포함된다고 수차례 명확히 밝히고 있다. 헌재는 '집회의 자유는 개인의 인격발현의 요소이자 민주주의를 구성하는 요소라는 이중적 헌법적 기능을 가지고 있다. (...) 집회의 목적·내용과 집회의 장소는 일반적으로 밀접한 내적인 연관관계에 있기 때문에, 집회의 장소에 대한 선택이 집회의 성과를 결정짓는 경우가 적지 않다. 누구나 어떤 장소에서 자신이 계획한 집회를 할 것인가를 원칙적으로 자유롭게 결정할 수 있어야만 집회의 자유가 비로소 효과적으로 보장되는 것이다. (...) 집회장소에 접근하는 것을 방해하는 등 집회의 자유행사에 영향을 미치는 모든 (국가의) 조치를 금지한다'고 집회장소의 선택권을 설명한다. (법제처 헌재결정례)

공화국이 용납 못 할

18일 토론회에서 토론 상대인 금태섭 후보가 던진 질문은 사실 "시청광장에 퀴어퍼레이드를 허가할 것인가?"도 아니고, 정확히는 "시장으로서 퀴어퍼레이드에 참가할 것인가?"였다. 안철수 후보가 퀴어퍼레이드를 안 갈 수도 있고, 이에 대해서는 유권자가 판단할 문제다. 그러나 안 후보는 뜬금없이 퀴어퍼레이드가 시내에서 열려선 안 된다고 얘기했다. 이런 대답은 안철수가 서울시장이 되면 국민의 집회의 자유를 침해하겠다는 선언이며, 흔한 호모포비아를 넘어 공화국이 용납할 수 없는 정치인이 된 것이다.

안철수 후보가 말한 "퀴어퍼레이드를 거부할 권리"에 공감하는 분들도 있을 것이다. 여기는 두 가지 관점이 섞여 있다. 우선 그냥 '성소수자'라는 존재 자체가 싫다, 숨 쉬는 것도 싫다는 입장이다. 이러한 입장에 대해서는 별로 길게 말하 게 없다. 스스로 남들과 다른 성적지향과 성별정체성을 가졌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그냥 있는 것이다. 당신 마음에 안 드는 사람 모두를 면전에서 욕하고 때리고 세상에서 몰아낼 수 있나? 다행히도 우리는 모두 히틀러가 아니고, 그래서도 안 된다.
 
제20회 서울퀴어문화축제가 개최된 2019년 6월 1일 오후 주요 행사가 열린 서울광장을 출발해 광화문광장을 돌아오는 구간에서 대규모 서울퀴어퍼레이드가 펼쳐진 가운데, 참가자들이 광화문광장에서 무지개 깃발을 흔들고 있다.
▲ 무지개 깃발 휘날리는 퀴어퍼레이드 제20회 서울퀴어문화축제가 개최된 2019년 6월 1일 오후 주요 행사가 열린 서울광장을 출발해 광화문광장을 돌아오는 구간에서 대규모 서울퀴어퍼레이드가 펼쳐진 가운데, 참가자들이 광화문광장에서 무지개 깃발을 흔들고 있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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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은 퀴어들이 퍼레이드에서 노출이나 음란한 행위를 하기 때문에 퍼레이드가 허용되어서는 안 된다는 입장이다. 이런 입장에서 '안 볼 권리'가 법적으로 성립할 수 있는지를 따지기에 앞서 몇 가지 사실관계를 짚고 넘어가자. 우선 편견과 달리 퀴어퍼레이드에서 심한 노출을 하거나 성관계를 묘사하는 행위는 거의 없다.

퀴어들이 사회와 괴리된 어떤 비밀스러운 집단이라고 생각하시는 분도 있겠지만, 불행히도 성소수자들도 우리 사회의 평범한 시민들이라 사회적 편견에 대해 크게 신경 쓰며 자기검열을 한다. 20년간 퀴어퍼레이드에 다녀간 수십만 명의 참여자 중 몇몇의 사진을 찍어 침소봉대하고 왜곡하는 수법은, 사실 우리 사회에서 너무 익숙한 방식이다. 속지 마시길 바란다.

사실 서울 퀴어퍼레이드는 참가 대오 밖에서는 잘 보이지도 않는다. 경찰이 퀴어퍼레이드 참가자와 혐오세력이 충돌할까 봐 경찰 장벽을 너무 높이 세우기 때문이다. 서울 시내에서 수만 명이 집회를 열고 있는데, 아무도 쉽게 보지 못하는 이 아이러니가 대한민국 퀴어의 현주소다.

집회라는 이름의 권리 

다시 '거부할 권리'로 넘어가 보자. 퀴어퍼레이드에서 일상적이지 않은 수준의 노출을 하거나, 낯 뜨거운 문구를 들고 있는 참가자도 있을 수 있다. 그런데 이것이 집회를 안 보이게 해야 할 이유가 될 수는 없다. 아무도 불편하지 않고, 사회적 다수가 당연히 동의하는 문제면 애초에 집회를 할 이유가 없다. 그런 문제는 정부와 국회, 시장에서 어련히 잘 해결될 것이다. 통상적인 절차로 뭔가 안 풀리니까, 집회를 열고 있는 것이다.

대의제 민주주의는 필연적으로 국민을 온전히 대변하는 데 실패한다. 대의민주주의 하에서 통상적인 대의체계, 즉 선거-정당-의회는 항상 어떤 개인 또는 집단의 요구를 대변하지 못하고 배제한다. 대의민주주의는 이렇게 배제된 요구들을 제도정치에 포함시키기 위한 다툼의 연속이기도 하다. 이러한 '정치의 범위'에 대한 다툼이 멈춰지고, 금지된다면 대의제 민주주의는 곧 중우정치, 전체주의로 추락한다.

따라서 '집회의 자유'는 민주주의를 유지하기 위해 필수적이다. 집회는 제도 정치 내에서 온전히 대변되지 못한 개인 또는 집단의 요구를 드러내는 행위이다. 그럼으로써 정치의 외연을 변화시키고 대의민주주의의 실패를 끊임없이 보정해 나가도록 하는 것이다. 집회의 자유는 국민이 민주주의의 틀 밖으로 완전히 배제되지 않도록 하는 권리이다.

그렇기 때문에 집회에 대한 권리는 통상적인 행동의 권리보다 더 강하게 보장되어야 한다. 집회 행위로 다소 타인의 권리가 침해되더라도, 집회를 위해 필요한 행위라면 보호되어야 한다. 가령 장사를 위해 차도를 막는다면 당장 도로교통방해죄가 적용되지만, 집회를 위해서라면 일정 정도의 도로점거는 허용된다. 집회에 의한 소음도 분명히 타인의 권익을 침해하는 것이지만, 집회의 자유를 보장하기 위해 통상적인 수준 이상으로 허용된다. 가령 '굳이 차 막히게 청와대 앞에서 시위를 하느냐'는 주장은 집회의 자유를 이해하지 못한 것이다.
 
제20회 서울퀴어문화축제가 2019년 6월 1일 오후 서울광장에서 열리고 있다. 경찰이 보수 개신교 단체의 맞불 집회에 대비해 서울광장 주변을 에워싸고 있다.
▲ 제20회 서울퀴어문화축제 제20회 서울퀴어문화축제가 2019년 6월 1일 오후 서울광장에서 열리고 있다. 경찰이 보수 개신교 단체의 맞불 집회에 대비해 서울광장 주변을 에워싸고 있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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퀴어퍼레이드에 참여하는 어떤 사람에게는, 노출 자체가 정치적 의사의 표시이다. 퀴어퍼레이드에서의 노출은 집회가 통행 방해, 소음, 대통령 경호 방해 등의 불편을 끼쳐도 되는가와 유사한 문제다. 집회의 자유는 단순히 집회를 개최할 자유가 아니라, 언제, 어디서, 어떻게 집회를 해서 자신의 의사를 표현할지를 포함한다. 노출을 통해 정치적 의사를 표현할 자유도, 집회의 자유의 일부이다.

섹슈얼리티에 대한 억압은 곧 '몸'에 대한 억압이다. 퍼레이드에서의 노출은 이성애자의/성전환하지 않은/젊은/잘 가꾸어진 몸만을 드러낼 수 있다고 억압하는 사회에 맞서, 퀴어함을 자꾸 가리라는 억압에 대해 거부하는 표현이다. 퍼레이드에서의 노출이 기본권인 집회의 자유에 포함되기 때문에 누군가에게 불쾌감을 주더라도 금지할 수는 없다.

원치 않는 상황에서 타인의 신체노출을 보게 된다면 불쾌할 수 있다. 여성 아동/청소년을 상대로 한 바바리맨 범죄처럼 방어가 어려운 대상을 골라서 하는 노출 행위는 범죄 행위까지 성립한다. 그렇기 때문에 행위의 음란성이 큰 경우 형법 상 공연음란죄가 되고, 성기 이외의 부분을 과다 노출하는 경우에도 경범죄 상 과다노출로 처벌하기도 한다.

집회에 참여하지 않는 사람이나, 혹은 집회에 참여하는 사람이라도 어떤 노출 행위가 불쾌할 수는 있다. 어떤 면에서 이 불쾌함 자체가 노출의 목적이기도 하고, 불쾌함에서부터 새로운 질문들이 시작할 수도 있다. 하지만 어쨌든 누군가 불쾌하다는 사실 자체를 부정할 수는 없다. 하지만 불쾌하다는 이유로 집회의 자유를 침해해서는 안 된다. 집회로 인한 교통체증이나, 소음을 감수해야 하는 것과 같은 이유다. 우리는 그냥 술에 취해 길거리에서 주사를 부리는 것이 아니라, 민주주의의 시민으로서 권리를 행사하고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퀴어퍼레이드가 뭐라고? 

물론 집회의 자유가 모든 행위를 정당화할 수는 없다. 집회의 자유가 다른 권리와 충돌하여 타인의 권익을 심각하게 침해할 경우, 가령 반대자에게 물리적으로 상해를 입힌다거나, 재산의 파괴한다거나 하는 행위는 타인의 기본권을 더 크게 침해하기 때문에 정당화될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이제까지의 경험으로 볼 때, 퀴어퍼레이드는 대한민국의 대형 집회 중 가장 평화롭고 안전한 집회이다. 퀴어퍼레이드만큼 경찰 지도에 아주 잘 협조하는 '착한' 집회는 드물다. 퀴어퍼레이드는 이미 20년 이상 서울에서 열렸다. 이렇다 할 사건사고도 없었다.
 
제20회 서울퀴어문화축제가 개최된 2019년 6월 1일 오후 주요 행사가 열린 서울광장을 출발해 광화문광장을 돌아오는 구간에서 대규모 서울퀴어퍼레이드가 펼쳐졌다. 퀴어퍼레이드가 광화문광장까지 이어진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 퀴어퍼레이드 첫 광화문광장 행진 제20회 서울퀴어문화축제가 개최된 2019년 6월 1일 오후 주요 행사가 열린 서울광장을 출발해 광화문광장을 돌아오는 구간에서 대규모 서울퀴어퍼레이드가 펼쳐졌다. 퀴어퍼레이드가 광화문광장까지 이어진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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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에는 코로나19로 온라인으로 개최되었지만, 2019년 퀴어퍼레이드에는 십만 명에 가까운 시민이 참여했다. 특별한 정국이 아니고서는, 정례적으로 열리는 집회로는 양대 노총이나 양대 정당도 이 정도 인파를 모으기 어렵다. 그런데도 퀴어퍼레이드는 시민들의 거대한 의견표출이 아닌, '변태'들의 역겨운 행위로 여겨진다.

퀴어가 뭐라고, 퀴어퍼레이드가 대체 뭐라고 이 난리인가? 퀴어퍼레이드는 천만 도시 서울, 글로벌 도시 서울, 민주주의 대한민국의 수도 서울의 일상적이고 당연한 풍경이다. 모든 민주주의 국가의 대도시에서는 퀴어퍼레이드가 열리고 있다. 보기가 싫다고? 박근혜 퇴진 촛불집회도 열렬히 증오한 많은 이들이 있다. 세월호 천막도 광화문에서 좀 치우라고 말한 사람들이 많았다.

매일 국회 앞에는 도저히 들어주기 어려운 역겨운 소리를 하는 집회가 가득하다. 하지만 어쩔 수 없다. 그게 민주주의다. 성소수자들의 집회에 대해서만 쉽게 왈가왈부할 수 있는 건 그 자체로 성소수자들이 받는 차별적 현실을 보여준다.

도심 내 퀴어퍼레이드를 반대하는 안철수와 국민의힘 정치인들은 대한민국 헌법을 이해하지 못할 정도로 멍청한가? 헌법도 제대로 모르고 정치를 할 만큼 오만한가? 아니면 헌법을 무시하는 독재자인가? 모두 아니라면, 정신 차리고 성소수자를 포함한 국민들에게 헌법을 무시하고 국민을 차별했다고, 다시 그렇게 하지 않겠다고 사과해야 한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을 쓴 황두영 시민기자는 책 '외롭지 않을 권리'의 저자입니다.


태그:#안철수, #헌법, #집회의자유, #퀴어퍼레이드, #퀴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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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당 서대문갑 국회의원 예비후보 <외롭지 않을 권리> <성공한 민주화, 실패한 민주주의>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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