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02.24 12:29최종 업데이트 21.02.24 1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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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성원 국토교통부 제1차관(오른쪽)이 지난 10일 오전 서울 동대문구 신설제1구역 재개발 추진위원회 사무실을 찾아 현장을 둘러보고 있다. ⓒ 연합뉴스


지난 4일 국토교통부는 2025년까지 서울 32만호, 전국 83만호 주택 부지를 추가로 공급하는 '공공주도 3080+, 대도시권 주택공급 획기적 확대방안'을 발표했다. 과연 이번 대책은 정부의 의도대로 공급 확대를 통해 부동산 투기를 잠재우고, 서민들의 주거안정에 기여할 수 있을까?

재개발 구역은 낡고 노후한 주택지다. 노후한 주거지역을 전면적으로 철거하여 새 아파트를 건설하는 것이 재개발 사업의 골자다. 자동차의 통행이 곤란한 골목길, 경사가 오르락내리락하고, 학교나 공공시설 등 기반시설이 열악한 곳에 거주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가난한 사람들이다. 이 노후하고 열악한 주거지역을 싹 밀어내고, 이곳 주민들에게 고스란히 쾌적한 새집으로 바꿔 돌려줄 수 있으면 얼마나 좋겠냐마는, 현실은 전혀 그렇지 않다. 새 아파트를 건설하는 데 막대한 돈이 들어가는데, 열악한 주거지에 살고 있는 사람들에게는 돈이 없기 때문이다. 

누가 봐도 곧 무너지기 직전의 낡고 위험한 주택이지만 재개발·재건축을 쉽사리 하지 못하는 이유는 바로 사업성이 없기 때문이다. 사업성이란 바로 낡은 집을 철거하고 새집을 지어놓았을 때 돈 있는 사람들이 유입되어 그 비용을 충분히 감당하고도 남을 여력이 있는지를 의미한다. 사업성이 담보되기 위해서는 건축비를 감당할 만큼 분양가가 충분히 높아야 하고, 높은 분양가를 감당할 여력이 있는 사람들이 유입되어 새 아파트를 사주거나, 기존에 살고 있는 사람들이 추가분담금을 지불해야 한다.

그런데 사업성이 없는 지역들은 돈 있는 사람들에게 매력적인 투자처가 아니고, 기존에 살고 있는 사람들도 추가분담금을 납부할 능력이 없다. 그러니 정작 심각한 위험에 노출되어 철거가 시급한데도 재건축을 할 수 없는 곳이 있는 반면, 아직 고쳐서 쓸만한 짱짱한 아파트인데도 몽땅 때려부수고 재개발·재건축을 하기도 하는 아이러니가 왕왕 일어나는 것이다. 재개발·재건축은 '사업성'과 결부지어 생각해야만 한다.  

재건축·재개발, 이렇게 부동산 가격 높인다

서울 변두리 노후한 연립주택의 현금청산을 위한 감정평가 과정에서 있었던 일이다. 2011년 무렵 재개발을 위한 사업시행인가를 받았으나, 줄곧 사업성이 없어서 사업 추진이 지지부진했다. 주로 10~20평 전후의 작은 규모의 노후한 다세대주택 밀집 지역이었다. 재개발 사업 이전에 주택들은 주로 1억원 미만으로 거래되었는데, 재개발·재건축 바람이 불고 2020년 주변 아파트 가격이 폭등하기 시작하면서 이 지역도 재개발이 다시 추진되기 시작했다.

종전 자산 1억원 다세대주택 소유자는 조합원 분양가 5억원, 즉 추가 분담금 4억원을 납부하여야 새 아파트에 입주할 수 있었다. 하지만 주택 소유자 A씨의 경우 4억원의 대출을 받으면 원금은커녕 이자도 납부할 능력이 없는 가난한 사람이었다. 그는 현금청산을 선택하였고, 1억원을 현금으로 보상받고 집을 넘겨야 했다. 재개발 사업의 경우 공공성을 전제로 하므로 개발사업으로 인한 개발이익이 배제되고 현금청산이 이루어진다.

그러나 이 지역에 들어서는 아파트의 일반분양가는 7억원이 되고, 프리미엄이 붙어 8억~9억원으로 뛰어올랐다. A씨는 당연히 홧병이 날 수밖에 없었다. 지불 능력이 없는 사람들 중 현금청산을 선택하지 않고 종전 주택가격 1억원에 프리미엄 2억~3억원을 붙여 입주권, 즉 '딱지'를 양도한 사람들은 그나마 최선의 선택을 한 셈이 됐다. 1억원 짜리 낡은 주택 소유자 중 누군가는 개발이익이 배제된 1억원을 보상받고 떠났다. 누군가는 장래의 가치 상승분, 소위 프리미엄을 붙여 매도하고 떠났다. 새 아파트는 분양가 7억원을 지불할 능력이 있는 중산층 투자자들로 채워지게 될 것이다.

이러한 방법으로 수많은 재건축과 재개발이 이루어지고, 가난한 사람들이 살고 있는 낡은 주택지는 새 아파트로 변신하면서 돈 많은 사람들의 자산을 더 크게 불려왔다. 분양가를 최대한 높여야 가장 큰 수익을 낼 수 있는 건설사들은 인근 아파트 시세를 만들어내고, 신고가를 경신한 높은 실거래가는 언론과 전문가들에 의해 대서특필된다. 진위가 불분명하고 출처를 알 수 없는 실거래가 데이터로 한국부동산원은 부동산 통계, 즉 공시가격 데이터를 생산한다. 여기에 온갖 장밋빛 전망과 분석이 더해지면서 손이 바뀔수록 프리미엄은 점점 더 커져간다.
 
현금청산의 위헌성
 

지난 5일 서울 용산구 KDB생명타워 LH주택공사에서 바라본 국토부 주관 서울역 쪽방촌 정비방안 계획부지모습. ⓒ 사진공동취재단


열악한 주거지를 선택할 수밖에 없었던 가난한 집주인과 세입자들은 사업성을 기준으로 보면 그저 사업의 속도를 늦추고 사업비를 높여 사업을 저해하는 불량인자로 취급된다. 이들의 생존권이나 생활권에 대한 고려는 주어지는 서푼의 보상금 외에는 없다. 최대한 빠른 시간 내에 최대한 적은 비용을 들여 내보낼 수 있느냐가 사업성을 결정하는 관건이 된다. 하루하루 먹고 살기 급급한 사람들일수록 가장 적은 돈을 쥐고 살던 곳을 떠나야 하는 최악의 선택을 하는 경우가 많다.

재개발·재건축 사업은 최고의 분양가를 만들어내기 위한 주변 아파트 가격 띄우기와 계속 가격이 오를 것이라는 투기 심리에 기반한 구매력 있는 투기 수요의 유입(투기 수요는 반드시 다주택자만을 말하는 것은 아니다, 1주택자·무주택자 또한 모두 장래 가격 상승을 예상하고 주택을 구입하기 때문에 투기적 성격을 갖는다), 조합원 중에서도 지불 능력이 있는 토지소유자와, 분양가를 높여 이윤 극대화를 해야 하는 건설사가 만들어내는 사업 구조에 기반해 있다.  

재개발·재건축을 통한 공급 확대는 가난한 사람들을 가장 적은 비용으로 내쫓고, 최대한 투기심리를 자극하여 높은 분양가를 책정하고, 가격상승 기대감이 더해져 많은 분양자들이 몰려와야 소위 '사업성' 있다. 그동안 수많은 재개발 사업지에서 추가분담금을 지불할 여력이 없는 사람들은 '공공사업'이라는 미명하에, 개발이익을 배제한 현금청산을 통하여 합법적으로 자신들의 터전을 잃어왔던 것이다. 현금 청산에 대한 위헌성 논란은 바로 이 지점에서 나온다. 
 
2.4 대책에 따르면 공공이 시행사가 되어 사업에 개입하게 되면, 대책 발표일인 4일 이후 부동산을 취득한 투자자들에게는 아파트·상가 입주권이 부여되지 않고 현금청산 대상이 된다. 2·4 대책은 용적률 상향 등의 방법으로 사업성을 높이고, 공공이 시행사가 되어 건축비를 낮추고, 입주권이 거래되면서 투기 수요가 유입되는 것을 막아 사업비를 낮추는 것을 골자로 하고 있다.

하지만 가난한 부동산 소유자·세입자들을 위한 구체적인 대책은 모호하다. 기존의 방식에서는, 투기수요자들로 인해 생기는 프리미엄이 역설적으로 재개발 구역 내 가난한 소유자들의 탈출구가 되기도 했다. 그런데 지금 이대로 2.4대책이 추진된다면 용적률 상향 등으로 인한 개발이익의 상당 부분이 목소리가 더 큰 기존의 돈 있는 토지소유자에게 배분될 가능성이 크다. 

공공이 참여한다고 주거 불평등 해소될까
 

서울의 한 부동산중개업소에 재개발 상담 관련 등의 내용이 적힌 모습. ⓒ 연합뉴스


건축비와 같은 비용을 낮추기 위해 한국토시주택공사(LH)나 서울주택도시공사(SH) 같은 공기업이 시행사로 참여하는 것 외엔 방법이 없을까? 공기업은 사업성을 높이기 위해 건축비만 낮추려고 할까? 새 아파트를 분양 받을 돈이 없는 기존 부동산 소유자·세입자들의 현금청산 비용도 낮추고 싶지 않을까?

현행 분양가상한제 하에서도 공공택지비는 조성원가가 아닌 시세를 반영한 감정평가액으로 점차 택지비원가를 높이는 방향으로 택지비산정지침을 개정해오고 있다. 또 분양가상한제 하에서 건축비를 포함하는 분양원가를 공개하고 검증하는 시스템 또한 매우 취약한 상태다. LH가 직접 시행하였던 공공주택 건설사업에서 LH는 분양원가 공개를 거부한 바 있다.

이 때문에 2.4 대책을 두고, 공공이 사업을 추진한다고 해도 가난한 사람들이 거주하는 열악한 주택지를 대기업 건설사의 아파트 사업지로 둔갑시키고, LH가 여기서 분양가 결정 권한을 틀어쥔 채 자신들의 사업권을 확대하려는 방안이 아니냐는 비판이 나오는 것이다. 

때문에 투기수요를 억제하면서 공공의 영역에서 지속적, 안정적으로 가난한  사람들도 감당할 만한 수준의 주택을 공급하는 것은 필연적으로 주거복지를 위한 재정 투입을 전제로 해야 한다.

그간 공기업들은 낮은 보상비, 높은 분양가를 위해 각종 지침과 규정을 개정하고, 서민들의 재산을 빼앗아 사업성을 높이는 방식을 기반으로 사업을 해왔다. 가난한 사람들의 주거 불평등 해소를 목표로 해야 하는 국가와 공기업이 추후 '공공사업'에 투입할 재정 확보를 명분으로 오히려 가난한 사람들의 터전을 빼앗고, 부동산 가격을 올리는 데 일조해 왔던 것이 현실이다. 

공공의 역할은 더 열악하고 낮은 곳으로, 더 사업성이 없는 곳으로 들어가는 사업을 하는 것에 한정되어야 하고, 불로소득 환수를 통하여 주거 불평등 해소에 국가 재정이 투입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좋은 정치의 역할이 아닐까 싶다. 그런데 서울·부산시장 선거를 위한 후보들의 공약을 보면 좋은 정치의 가능성이 보이지 않는다. 자산불평등을 해소하고 주거복지를 강화하기 위한 공약보다는 지역이기주의를 조장하고, 부동산가격 상승을 부추기는 선심성·토건 공약들만 난무하고 있어 안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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