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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보, 말날(육십 간지를 나날에 배열한 것 중에 '오'로 된 날)이 언제야?"
"말날은 왜 찾는데?"
"말날에 장을 담가야 맛이 좋다고 그러잖아!"
"그렇지! 장은 상오일에 담근다는 말을 들었어."
"상오일이 뭔데?"
"음력 정월 첫 말날을 말하는 거야!"


나는 얼른 음력달력에서 말 그림이 그려진 날을 찾습니다. '상오일(上午日)'은 지난 15일(정월 초나흘)이었는데, 이미 지났습니다. 그러면 오는 27일이 말날이네요. 아내는 그날 장을 담갔어야 했다면서 아쉬워합니다. 다음 말날 27일은 긴한 약속이 미리 잡혔다면서 언제 장을 담가야 할지 고민합니다.

장 담그는 날이 따로 있다? 
 
직접 농사 지은 콩으로 메주를 쑤어두어 달 잘 띄웠습니다.
 직접 농사 지은 콩으로 메주를 쑤어두어 달 잘 띄웠습니다.
ⓒ 전갑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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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마른 메주를 종이상자에 볏짚과 함께 넣어 메주를 띄웠습니다.
 잘 마른 메주를 종이상자에 볏짚과 함께 넣어 메주를 띄웠습니다.
ⓒ 전갑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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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같은 세상에, 아무 때나 장을 담그면 되지, 꼭 날을 받아서까지 담가야 하나? 나는 별것을 다 따진다면서 아내에게 말했습니다.

"손 없는 날에도 장을 많이 담근다던데?"

아내는 내 말이 끝나기 무섭게 날짜를 따져봅니다. 예전 어른들이 하시던 말이 생각난 모양입니다.

우리나라 전통풍속 중 날짜에 따라 악귀가 방향을 달리해 옮겨 다니면서 사람의 일을 방해한다는데, 악귀가 없는 날이 곧 '손(損) 없는 날'이라 합니다. 이날을 택해 장을 담근다든가 이사를 하면 손해나는 일이 없다는 것입니다.

음력으로 1·2가 들어가는 날은 동쪽에, 3·4가 남쪽에, 5·6는 서쪽에, 7·8은 북쪽에 손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9·10이 들어가는 날은 손이 하늘로 올라가므로 이날이 '손 없는 날'이 됩니다.

"그럼 오늘(음력 1월 10일)이 손 없는 날, 딱 맞네! 콩 농사지어 애써 메주 쑤고, 또 몇 달을 띄워놨는데… 아무튼, 정성을 다해 한번 담가봅시다! '장이 단 집'에는 복이 많다고 했으니까 맛나게요!"    

굳이 말날에 장을 담근 이유는 '늙은 말, 콩 더 달란다'라는 옛말 때문입니다. 말이 콩을 좋아하고 콩이 장의 재료이기 때문에, 자연 말날에 장을 담가야 장맛이 좋아진다고 믿는 것입니다.

그런데, 진짜 이유는 따로 있습니다. 추위가 풀리기 전에 담가야 메주에 소금이 덜 들어 삼삼한 장맛을 내기 때문입니다. 또, 기왕이면 '손 없는 날'에 담가 어떤 부정 같은 게 타지 않았으면 하는 염원도 담겨 있습니다.

정성 가득한 전통장 담그기

아내는 아침을 먹고 난 뒤 바로 일을 서두릅니다. 띄워놓은 메주부터 눈으로 들여다보고, 코로 냄새를 맡아봅니다. 알맞게 곰팡이가 잘 슬었다며 흡족한 표정을 짓습니다. 메주를 저울로 달아보니 7kg 정도 나갑니다.

이제 가장 중요한 소금물을 준비할 차례입니다. 아내는 메주 쑬 때 코치를 받은 이웃집 아주머니를 전화로 호출합니다. 아주머니의 설명이 명쾌합니다.

"벌써 장 담그려고? 물과 소금 비율은 4:1이 적당해. 메주가 7kg이라고 했지? 그럼 물 20L에 소금 5kg 정도면 틀림없어! 그리고 소금물에 달걀 동동 띄워보라고? 100원짜리 동전만큼 남기고 뜨면 알맞다고 하지!"

아주머니의 오랜 경험에서 나온 계량(計量)의 지혜를 아내는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잘 띄워진 메주를 깨끗이 싹싹 씻어 준비하였습니다.
 잘 띄워진 메주를 깨끗이 싹싹 씻어 준비하였습니다.
ⓒ 전갑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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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는 준비물을 하나하나 챙겨갑니다. 먼저 질항아리 청소부터 시작. 마른 짚을 태워 불꽃으로 항아리를 소독합니다. 항아리 유리 뚜껑도 깨끗이 씻습니다. 메주는 수세미로 싹싹 닦아주고, 체에 밭쳐 물기가 마르도록 볕에 내어놓습니다.

이제 제일 중요한 것은 소금물을 만들 차례. 장맛을 좌우하는 요소는 소금물의 농도입니다. 아주머니 일러 준 대로 2L짜리 생수 10병을 큰 대야에 붓고, 소금 5kg을 풀어놓습니다.

"그럼, 염도를 확인해야 볼까? 달걀 하나 갖다주구려."

아내가 풀어놓은 소금물에 달걀 하나를 동동 띄웁니다.

"역시, 아주머니 말이 틀림없네. 100원짜리 동전 넓이만큼 뜨죠? 염도가 맞네, 맞아!"

이제부터 된장 담그는 일은 일사천리. 준비한 메주를 항아리 속에 켜켜이 쌓아 넣습니다. 다음은 소금물 불순물을 거르기 위해 베 보자기를 항아리 주둥이에 펼쳐 놓고 소금물을 거릅니다. 아내의 손길에 정성이 가득합니다.
  
질 항아리를 소독한 후 메주를 켜켜이 쌓아 넣습니다.
 질 항아리를 소독한 후 메주를 켜켜이 쌓아 넣습니다.
ⓒ 전갑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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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 보자기를 염도를 맞춘 소금물을 걸러 항아리에 붓습니다.
 베 보자기를 염도를 맞춘 소금물을 걸러 항아리에 붓습니다.
ⓒ 전갑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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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금물을 다 붓고 빨간 고추 몇 개와 숯을 넣으면 장 담그기는 끝입니다.
 소금물을 다 붓고 빨간 고추 몇 개와 숯을 넣으면 장 담그기는 끝입니다.
ⓒ 전갑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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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으로 붉은 고추 몇 개와 검은 숯 두 덩이를 고명처럼 올려놓습니다. 담가놓은 장독 속에 어떤 신비감이 들어 있는 듯싶습니다.

"여보, 이제 맛난 된장 먹는 일만 남았지?"
"뭔 소리예요?"
"그럼, 또 일이 남았어?"
"그럼요. 석 달 정도 지나 잘 익으면 간장과 된장을 갈라야 하죠? 맛난 장맛보기가 그리 쉬운 줄 아셔!"


그러고 보니 오래 두고 먹을 전통 장맛은 그냥 되는 게 아닙니다. 아내가 장을 담그면서 좋은 날을 잡아 그토록 정성을 들인 이유를 알 것 같습니다.
  
뚜껑을 덮은 우리집 장독대. 맛난 장맛으로 태어나기를 기대합니다.
 뚜껑을 덮은 우리집 장독대. 맛난 장맛으로 태어나기를 기대합니다.
ⓒ 전갑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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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가 장독 항아리를 정갈하게 닦습니다. 그리고 장 담근 날을 표시해 둡니다. 두세 달 지나 간장과 된장을 거를 날을 생각해둘 심사입니다. 잘 숙성된 우리 집 맛있는 장맛이 기대됩니다.

태그:#장 담그기, #말날, #전통장, #메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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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화 마니산 밑동네 작은 농부로 살고 있습니다. 소박한 우리네 삶의 이야기를 담아내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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