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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산하 국책연구소가 계약업체에 계약해지를 통보하고 9억 5000여만 원의 손해배상을 청구했다. 해당 계약 업체는 사업 공정률이 약 90% 정도인 상태에서 계약을 해지한 것은 갑질이자 횡포라며 반발하고 있다.

A업체는 지난 2019년 10월, 경쟁입찰에 의해 한국국가보안기술연구소(대전시 유성구)와 신규 정보시스템 구축사업에 대한 용역계약을 체결했다. 이 사업은 업무 자동화 등 연구소의 업무환경 개선을 목표로 추진됐다. 당초 사업 종료 시점은 지난해 10월이었지만 양측이 합의에 따라 종료 시한이 다소 늦춰졌다.

그런데 연구소가 최근 업체에 용역계약 해지는 물론 손해배상(요구액 9억 5000만 원, 총사업비 11억 원), 이후 입찰 참가 자격 제한을 알리는 공문을 보내왔다. 연구소가 현재까지 업체에 지급한 돈은 8억 4400만 원이다.

연구소 측이 밝힌 계약해지 이유는 ▲ 계약 이후 지금까지 구축한 서버의 품질이 낮아 완성되더라도 활용이 어렵고 ▲ 용역계약 이행 지체와 문제 시정 노력을 기울이지 않아 손실을 끼쳤다는 게 골자다. 반면 A업체는 말도 되지 않는 억지이자 "갑질 중 최고의 갑질"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2000년 창단한 국가보안기술연구소는 한국전자통신연구원의 부설기관이자 지식경제부 산하 정부 출연 연구기관이다(한국전자통신연구원 부호팀과 국방과학연구소의 암호관련 부서 통합). 주요 업무는 정보통신 기반시설 등의 보호를 위한 기술 개발 및 지원, 국가 및 공공기관의 정보통신 시스템과 정보통신망에 대한 사이버 침해에 대응하는 기술과 정책의 개발·지원 등이다.

<오마이뉴스>가 양측의 의견을 주요 쟁점별로 들어봤다.
 
국가과학기술연구회 홈페이지에 소개된 국가보안기술연구소 이미지
 국가과학기술연구회 홈페이지에 소개된 국가보안기술연구소 이미지
ⓒ 국가과학기술연구회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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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쟁점 1] "납품기한 계속 넘겼다" vs. "발주내용과 다른 요구 쏟아져"

연구소 측은 A업체 측이 약속한 납품기일을 훌쩍 넘긴 데다 시정을 요청했는데도 지체만 할 뿐 개선조치를 게을리해서 계약을 해지했다는 주장이다. 연구소 측 관계자는 "업체 측이 인력의 잦은 교체와 근무 태만으로 사업이 계속 지체됐다"라고 강조했다.

이에 대해 업체 측은 "사업 발주 내용이 충분한 내부(현업, 시스템 환경 등) 검토 없이 이뤄져 막상 발주 내용대로 개발을 시작하자 연구소의 각 부서에서 시정요구가 빗발쳤다"고 말했다. 연구소 측이 제대로 검토하지 않고 발주부터 한 게 지체된 이유라는 주장이다.

인력교체가 심하다는 부분과 관련해서는 "회의할 때마다 (연구소의) 요구사항이 바뀌었고 추가 요구사항이 늘어났다. 개발자들이 끝도 없는 요구를 견디지 못하고 지쳐 포기하고 퇴사하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라며 "잦은 인력교체 이유는 연구소 측에 있다"고 반박했다.

이어 "추가 요구사항이 터무니없이 많아 관리부서에 업무조정을 요구했지만 '모두 개발해야 한다'는 답변이 돌아왔고, 그렇다 보니 개발 범위가 눈덩이처럼 불어나 사업 지연과 인력교체가 반복됐다"며 "그런데도 특급 개발자 3명을 추가 투입해 용역 이행을 위해 최선을 다했다"고 밝혔다.

[쟁점 2] "차질 없도록 지원했다" vs. "지원 아닌 방해"

연구소 측은 용역 수행에 차질이 없도록 업체를 지원했다고 밝혔다. 전담반을 운영했고, 5차례에 걸쳐 개선요청도 했다고 부연했지만 "그런데도 문제가 시정되지 않았다"고 강조했다.

반면 업체 측은 "무슨 전담반을 운영했느냐"며 "업무 협의를 요청하면 '바쁘다', '출장을 가야 한다'는 이유로 회의에 불참했고, 관리·감독 부서는 이를 전혀 통제하지 않았다"고 반박했다. 이어 "오히려 연구소 측의 잦은 추가요구와 사업 수행 기간 중 현장 업무담당자의 교체로 사업 수행에 어려움을 초래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예를 들면 인사평가 개발의 경우 최초 화면설계 요구는 5개(지난해 3월)였는데 다시 22개로 늘어났고(지난해 6월) 지난해 말 다시 66개로 많이 증가했다. 그런데도 요구내용을 최대한 반영해 왔다"고 연구소 측 의견에 반박했다.

[쟁점 3] "품질 낮아 완성되도 활용 어렵다" vs. "요구대로 반영, 공정율 90% 이상"

연구소 측은 계약해지의 사유 중 하나로 "구축률이 낮은 데다 구축한 시스템의 경우에도 품질이 낮아 완성되더라도 활용이 어렵다"다는 점을 들고 있다.

해당 사업 감리업체 측이 지난해 12월 초 진행한 감리 결과보고서를 보면, 점검대상 742건 중 적합 524건(70.6%), 부적합 192건(25.9%), 점검제외 26건(3.5%)으로 돼 있다. 업체 측은 당시 기준으로 적합률이 70%였고 이후 개발자를 집중적으로 투입해 지난 2월 초 기준 90% 이상의 공정률을 보였다는 설명이다.

이에 대해 연구소 측은 "적합률이 70%라 하더라도 오류가 많고 서로 연계가 되지 않는 데다 구동되는 모듈이 없어 적합률이 0%라고 생각한다"고 지적했다. 이어 "일 례로 지난해 12월 감리 결과보고서에서처럼 인사관리와 급여관리 분야는 아예 개발되지 않아 다른 부서의 시스템과 연동조차 할 수 없었고 지난 1월에도 인사관리와 급여관리 분야를 테스트하자고 했지만, 업체 측이 구매 분야만을 요청했고, 구매 분야마저 제대로 구동되지 않아 다른 분야에 대한 확인이 어려웠다"고 말했다.

반면 업체 측은 "통합테스트를 통한 요구사항 대부분이 적용됐고, 오류도 극히 적었다"며 "오히려 연구소 측이 또다시 수정요구를 하거나 새로운 요구를 해왔지만 반영했다"고 반박했다.

이어 "인사관리는 변경요구가 많아 시간소요가 필요했고 급여관리는 통합테스트 이후 급여담당자와 모두 수정해 검토했다"며 "구매담당의 경우 바쁘다는 이유로 검토가 어렵다고 해 예산분야를 요청했지만 이마저 바쁘다며 미뤄 검토를 못했다"고 주장했다.

업체 관계자는 "무리한 요구에도 꾹 참고 연구소 측 요구대로 개발을 해줬다"며 "인제 와서 활용이 불가하다거나 품질이 낮다고 하는 것은 억지 주장이자 말도 안 된다"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쟁점 4] 업체 측 "공개 검증하자" vs. 연구소 측 "법정에서 확인하자"

양측이 견해차가 팽팽한 가운데, 업체 측은 연구소 측에 '개발한 정보시스템에 대해 언론과 전문가 등이 입회한 가운데 프로그램을 돌려 공개검증을 하자'고 제안했다. 공정률과 품질을 객관적으로 판단할 자리를 갖자는 것이다. 지금까지 개발된 시스템은 계약에 따라 연구소 측에서만 보관·관리하고 있다.

이에 대해 연구소 측 관계자는 "어차피 견해차가 커 소송으로 갈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다"며 "법원에서 감정인을 선정해 그때 검증 절차에 응하겠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업체가 주장하는 대부분의 내용에 동의하지 않는다"며 "연구소 측 주장에 대한 입증 자료를 모두 가지고 있는 만큼 나중에 법정에서 다투겠다"고 했다.

A업체 관계자는 "무리한 요구에도 불구하고 국가정보시스템을 만드는 일에 기여한다는 마음으로 최선을 다했다"며 "이에 대해 계약해지와 손해배상 청구로 답하는 것은 갑질 중 최고의 갑질로 굴하지 않고 끝까지 책임을 묻겠다"고 말했다.

태그:#국가보안연구소, #갑질 공방, #정보시스템구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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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보천리 (牛步千里). 소걸음으로 천리를 가듯 천천히, 우직하게 가려고 합니다. 말은 느리지만 취재는 빠른 충청도가 생활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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