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03.14 11:31최종 업데이트 21.03.14 1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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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대통령의 제102주년 3·1절 기념사를 보도하는 일본 NHK 갈무리. 상단에는 "일본과 대화 준비 돼 있다 "는 자막이, 하단에는 "양국은 경제문화 인적 교류 등 모든 분야에서 매우 중요한 이웃나라가 됐다"는 자막이 삽입됐다. ⓒ NHK

 
위안부 피해자(일본군 성노예) 김학순의 증언이 나온 1991년 8월 14일 이후의 역대 한국 정부들은 문제 해결보다는 한일관계를 우선시하는 태도를 보였다. 문제 해결 쪽으로 시선을 돌리는 듯하다가 결국에는 일본의 눈치를 보곤 했다. 문재인 정부도 금년 1월 18일 신년기자회견 및 23일 외교부 입장 발표를 통해 '일본에 대해 정부 차원에서는 어떤 추가적인 청구도 하지 않을 방침'을 천명했다.

하지만 그 직후 발생한 램지어 사태는 한국 정부를 부끄럽게 하고도 남는다. 2월 1일 <산케이신문>에서 '램지어 교수의 논문이 3월호 <국제 법경제학지>에 실린다'라는 보도가 나오면서 확산된 이 사태는 한국 정부의 태도가 과연 적절한지 생각하게 한다.


2월 1일 이후 목격했듯이 미국에서 램지어를 비판하는 힘은 한국인 유학생이나 한국계 정치인들에게서만 나온 게 아니다. 인종과 혈통에 관계없이 미국의 시민·학자·정치인들이 일본제국주의의 전쟁범죄와 존 마크 램지어의 무분별함에 분노하고 있다. 위안부 문제에 담긴 초국가적·초민족적 에너지가 자체적으로 작동하면서 미국 사회에 영향을 미쳤다.

이제 램지어 사태는 미국을 넘어 여타 지역으로 뻗어나갈 조짐을 보이고 있다. 9일 자 <연합뉴스> 기사 '램지어 망언 지구촌 공론화...주요 글로벌 매체 보도 시작됐다'에서도 나온 바와 같이 현지 시각으로 지난 8일에는 영국의 <가디언>, <인디펜던트>, <데일리메일>이 이를 상세히 보도했다. 세계적 파급력을 갖는 이 매체들은 램지어 논문이 근거 부족 등으로 비판받는 상황을 소개했다. 이로써 램지어 사태가 대서양을 건너 유럽에도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커졌다.

이번 사태를 촉발한 보도를 내보낸 <산케이신문>은 위안부 문제에 관한 국제적 공감대가 한층 커지는 지금의 현상을 애써 축소하는 기사를 내보냈다. 서울지국장을 지낸 구로다 가쓰히로는 2월 20일 자 기사에서 이번 사태를 '반일종족주의의 대미 수출'로 폄하해 규정했다. 제목도 '반일종족주의 마침내 미국에 수출'(反日種族主義"ついに米国へ輸出)이다.

구로다는 램지어 사태를 국제 문제가 아닌 '재미 한국인과 한국 사회의 문제'로 다루었다. "재미 한국인을 비롯한 한국 사회의 규탄"만 강조할 뿐 미국인들이 램지어를 얼마나 성토하는지는 언급하지 않았다. 미국을 겨냥해 위안부 선전전을 펼쳐온 일본 극우가 도리어 역풍을 맞고 있는 현실을 지적하지 않고 그저 '반일종족주의의 미국 상륙' 정도로 깎아내렸다.

이처럼 일본 극우를 불편하게 할 정도로 위안부 문제는 세계적으로 확산되고 있다. 램지어 사태가 뜻밖의 촉매제 기능을 한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램지어 사태 이전에 밝힌 것이긴 하지만 다른 나라 정부도 아닌 한국 정부가 '어떤 추가적인 청구도 하지 않을 방침'을 기본 입장으로 내세우고 램지어 사태 이후로도 이 방침에 별다른 태도 변화를 보이지 않는 건 이상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일본정부와 맞대결 피해온 한국정부

자국민보다 한일관계를 우선시하는 그 같은 방침이 오래가기 어렵다는 점은 1990년대 경험을 통해서도 충분히 증명됐다. 출범 첫해인 1993년에 김영삼 정부도 그런 방침을 천명했지만 위안부 문제를 해결하기는커녕 잠재우는 데도 성공하지 못했다. 그해 3월 14일 자 <한겨레> 기사 '위안부 보상 일본에 요구 않기로'는 전날인 3월 13일 있었던 청와대 수석비서관회의의 내용을 이렇게 보도했다.
 
김 대통령은 '종군위안부 문제는 일본 쪽에서 진실을 밝히는 것이 중요하며, 물질적 보상 문제는 중요하지 않다'면서 '그렇게 했을 때 도덕적 우위를 가지고 새로운 한일관계에 접근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영삼 정부는 위안부 문제를 국제 문제가 아닌 국내 문제로 다루려 했다. 그해 6월 11일 제정된 '일제하 일본군 위안부에 대한 생활안정지원법'에서도 그런 발상이 드러났다.

피해자들에 대한 생활보호·의료보호·생활안정지원금 제공을 규정한 이 법은 일본 정부의 배상 책임이 아닌 한국 정부의 시혜적 지원에 입각해 있다. 또 피해자들의 감정보다는 물질적 지원에만 치중하는 태도를 보였다.

거기다가 제1조에서 '국가가 인도주의 정신에 입각하여 이들을 보호하고 지원함을 목적으로 한다'(제1조)라고 규정함으로써 피해자들을 '일본 정부의 사과·배상을 받아야 할 사람들'이 아닌 '한국 정부의 인도주의적 시혜를 받아야 할 사람들'로 만들었다.

일본과의 정면 돌파를 기피하는 한국 정부의 이 같은 태도가 어떤 결과를 낳았는지는 그 뒤 2년간의 상황이 잘 증명한다. 이 2년간의 상황을 관찰하면 한국 정부의 방침이 처음에는 좋은 결과로 이어지는 듯했지만 결국에는 상황을 악화시켰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해 8월 4일 미야자와 기이치 내각의 대변인인 고노 요헤이 내각관방장관이 이른바 고노 담화를 발표했다. 이 담화에서 고노 장관은 "위안소는 당시의 군 당국의 요청에 따라 마련된 것이며 위안소의 설치, 관리 및 위안부의 이송에 관해서는 옛 일본군이 직접 또는 간접적으로 이에 관여했다"라며 일본 국가의 책임을 시인했다.

일본이 이런 담화를 발표한 데는 김영삼 정부의 입장 표명도 영향을 끼쳤다고 볼 수 있다. 한국이 정부 차원의 대응을 하지 않을 거라는 믿음이 제한적이나마 자국의 책임을 시인하게 된 배경이 됐다고 할 수 있다.

세계적 탈냉전 때문에 국제질서가 유동적이었던 그 당시, 일본은 국제연합 안전보장이사회 상임이사국 진출을 추진하고 있었다. 이에 관한 미국의 지지도 확보해둔 상태였다.

1992년 7월 3일 자 <동아일보> '미, 일(日) 안보리 상임국 지지'는 "2일의 미일정상회담에서 미야자와 기이치 일본 수상은 일본도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에 상임이사국으로 참여하고 싶다는 의사를 표명했으며, 이에 대해 조지 부시 미국 대통령도 기본적 지지 입장을 밝혔다고 일본 언론들이 워싱턴발로 보도했다"라고 전했다.

일본이 고노 담화를 발표한 것은 안보리 상임이사국 진출을 위해 이미지 개선이 필요했기 때문일 수도 있다. 김영삼 정부의 3월 13일 자 입장 표명도 어느 정도 영향을 끼쳤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김영삼 정부의 방침은 문제 해결로 이어지지 못했다. 국민의 목소리를 잠재우는 데도 성공하지 못했다. 한국 정부의 '무대응'은 일본 정부를 감동보다는 안심시키는 결과를 초래했고 이는 일본이 실질적이기보다는 형식적인 조치를 내놓는 상황으로 이어졌다.

1995년 7월 18일 일본은 '일본 정부의 책임 없음'을 전제로 위안부 문제를 대신 해결할 아시아여성기금을 발족시켰다. 일본 정부가 직접 책임지지 않고 민간 기구를 앞세워 문제를 봉합하고자 했던 것이다.

고노 담화에 기초한 이 조치는 피해자와 한국인들을 더욱 격분시키는 결과를 초래했다. 잠잠해지기를 바라는 양국 정부의 바람은 이뤄지지 않았다. 정부 차원의 대응을 기피했던 김영삼 정부의 방침이 상황을 더욱 악화한 것이다.

김영삼 이후의 역대 정부들도 마찬가지였다. 한일관계에 지장을 주지 않으려는 생각에 정부 대 정부 간의 문제 해결을 기피했다. 이런 태도는 일본이 도리어 한국을 쉽게 보도록 만들었다. 그래서 위안부 문제는 더욱 커지고 이로 인해 한일관계도 더 불안해졌다.

민족 문제 넘어 인류 문제로 
 

2월 24일 오후 서울 종로구 옛 일본대사관 앞에서 열린 '일본군성노예제 문제해결을 위한 제1천480차 정기수요시위'에서 한 시민이 위안부는 매춘부였다고 주장하는 논문을 쓴 마크 램지어 하버드대 로스쿨 교수를 규탄하는 팻말을 목에 걸고 있다. 2021.2.24 ⓒ 연합뉴스

 
그런 속에서 위안부 문제는 자체 동력을 갖고 한국과 일본을 넘어 미국과 전 세계로 퍼져나갔다. 양국 정부가 문제 해결을 기피하는 속에서도 이 사안이 세계적 공감대를 형성하게 된 것은 이것이 피해자만의 문제도, 여성만의 문제도, 한국인만의 문제도 아닌 인류의 공통 문제이기 때문이다. 그런 특성으로 인해 어느 정도는 자체적 발전 동력을 갖고 확산돼 왔다고 볼 수 있다.

한국 정부가 소극적 태도를 보인다고 해서 위안부 문제가 잠잠해지는 않는다. 위안부 문제를 덮고 한일관계를 우선시한다고 해서 한일관계가 안정되지도 않는다. 자체 동력을 가진 위안부 문제가 한일관계를 끊임없이 두드리고 있기 때문에 빨리 해결하지 않으면 한일관계는 더욱 불안해질 수밖에 없다. 진정으로 한일관계 안정을 바란다면 이 문제부터 해결하지 않으면 안 된다.

램지어 사태는 위안부 문제의 그 같은 역동성을 생생히 증명하고 있다. 위안부 문제를 좀 더 확실하게 세계적 쟁점으로 만들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한국 정부가 적극 나서지 않는다면 그것처럼 이상한 일도 없을 것이다.

일본 정부는 소녀상 설치를 막기 위해 세계 어디든 달려가고 있다. 반면 한국 정부는 '어떤 추가적인 청구도 하지 않을 방침'을 세워놓고 있다. 램지어 사태는 그런 한국 정부를 향해 '어서 일어나라'며 각성을 촉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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