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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전쟁 전후 억울하게 희생된 민간인 유해 발굴이, 유족들에 의해 자체적으로 시작했다.

13일 오후 '한국전쟁 전후 민간인 희생자 홍성군 유족회'는 홍성군 월현리 금굴에서 유족 등 3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유해발굴에 앞서 희생자들의 넋을 기리고 발굴 작업의 시작과 발굴조사단의 안전을 기원하는 개토제를 거행했다.

앞서, 홍성군 유족회는 희생자들의 유해가 있을 것으로 추정되는 홍동 월현리 일대 토지 369m²(120평)를 최근 매입하고, 70여 년 만에 지자체 도움 없이 자체 발굴에 나서기로 결정했다. (관련 기사 : 한국전쟁 민간인학살 피해자, 유족들이 땅 사서 발굴한다 http://omn.kr/1s6gc)

이날 열린 개토제는 경과보고와 제례에 이어 추모사, 분양 순으로 30여 분간 진행됐다. 특히, 이 자리에는 이곳 발굴 현장에서 어머니, 아버지가 희생된 유족 8명 가운데 5명이 참석해 잔을 올리며 흐느꼈다.

더욱이 이들 대부분은 같은 학교 친구들로 당시 같은 시기 아버지가 이곳에서 희생됐다.

홍성군유족회에 따르면 70여 년 만에 유족들에 의해 자체 발굴되는 홍동 월현리 일대 폐광산은 한국전쟁 전후 보도연맹과 인민군에 협조했다는 이유로 30여 명이 억울한 죽임을 당한 곳이다.

또한, 진실화해위원회의 자료에도 이곳에 유해 20~30여 구가 있는 것으로 파악하고 있어, 실제 유해가 발굴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뿐만 아니라, 유족들은 월현리 매장 현장은 일부가 시멘트로 막혀있는 등 지난 2016년 유해가 발굴된 광천 담산리 현장 모습과 비슷해 이곳이 학살 매장지임을 확신했다.

게다가, 마을 어르신들은 이곳은 일본강점기 당시 금을 캐던 50여 미터의 굴이 있던 자리로, 지난 1950년 10월경 공권력에 의해 희생된 유해가 묻혀있다고 증언하고 있다.

이날, 개토제에서 홍성군 유족회 이종민 회장은 "(유족들이 자체적으로) 유해발굴을 하고 있음에도 홍성군은 방관자적인 입장을 취하고 있다"면서 "이럴 때일수록 당시 가해자인 정부와 지자체 그리고 경찰이 협조해 줄 때만이 우리들의 억울함이 풀어진다"며 홍성군에 대해 서운한 감정을 내비쳤다.

이어, "유족이 (지자체와 정부 지원을) 기다릴 수 없는 상황"으로 "이번 시굴 이후 국가와 홍성군에 도움을 요청하겠다"라고 말했다.

특히, 아버지가 이곳에 묻혀있다는 이병학씨는 "(세월이 많이 지나) 이곳 지하에 계신 아버지, 어머니 유해를 찾을 수 있을지 걱정되고 안타깝다"면서도 "편히 모시고자 하는 마음으로 시작한 일이니 너그러이 용서해주시고 아버님 정말 죄송합니다"라며 이같이 말했다. 이어 "불쌍하게 돌아가신 아버님을 편히 모시기 위한 간절함으로 발굴"하겠다며 "아버님의 슬픈 영혼을 위해 한 삽 한 삽 시굴"하겠다면서 흐느꼈다.

뿐만 아니라 충남유족회 정석희 회장은 "산 사람은 죽은 사람을 이길 수 없다는 말이 있다"라면서 "발굴을 통해 희생된 분들의 억울함과 아픔 그리고 진실이 세상에 밝혀질 것"이라고 강조했다.

특히, 정 회장은 "유족들의 아픔 이상으로 지하에 묻힌 아버지들이 얼마나 춥고 아프겠냐"며 "(반드시) 우리 후손이 진실을 밝혀내고 이겨내야 한다"라고 덧붙였다.

홍성군 유족회에 따르면 이곳 학살 현장 외에도 한국전쟁 당시 홍성에서는 보도연맹 등 억울한 누명을 쓰고 홍성군 10여 곳에서 민간인 620명 이상이 희생됐다.

한편, 홍동 월현리 유해발굴은 이날 개토제를 시작으로 14일까지 2일 동안 유족들에 의해 자체 발굴될 예정이다.


태그:#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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