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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초기 조선의 근대화와 자주독립을 위해 젊음을 바쳤으나, 청나라로부터는 모략당했고, 조선으로부터는 추방당했으며, 본국 정부로부터는 해임당했다. 어느 날 일본의 호젓한 산길에서 홀로 죽음을 맞이한 비운의 의인 조지 포크에 대한 이야기이다.[기자말]
- 이전기사 신비의 인물 이동인을 증언할 영국의 극비문서에서 이어집니다.

안녕하세요? 조지 포크예요. 오늘은 의문의 승려 이동인을 증언해 줄 가장 중요한 문건을 공개하고자 합니다.

문건 이름은 사토우Satow의 <Memorandom>(보고서)입니다. 1880년 7월 26일 작성된 것으로 영국정부가 극비(Very Confidential)로 보관해 왔습니다. 이동인 스님과 사토우(주일 영국 대사관 서기관)는 1880년 5월 12일부터 하루가 멀다 하고 사토우의 집에서 만나 많은 이야기를 주고 받았습니다.

그 편린이 사토우의 일기나 편지에 담겨 있습니다. 이런 기록은 소중한 가치가 있지만 극히 일부의 정보에 불과한 것이지요. 여태까지는 알려진 것은 거기까지입니다.

하지만, 지금 공개할 문건에는 이동인이 두 달 반 동안에 걸쳐 사토우에게 했던 이야기의 전모가 갈무리되어 있어 주목할 필요가 있겠습니다. 이 보고서는 주일영국공사관에서 1880년 7월 27일(양력) 문서번호 No. 131(Very Confidential 극비)로 본국의 그랜빌(G.L.G. Granville) 외교장관에게 발송했고 접수는 9월 16일자에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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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에는 이동인의 역사관과 현실 인식, 당시 조선의 정세, 권력 관계, 대외 정책, 개화당 정보, 이동인의 식견과 포부 등이 여실히 드러나 있습니다. 여태 알려지지 않은 이 자료는 이동인에 대해서 뿐만 아니라 개화초기 역사를 이해하는 데에도 도움이 될 겁니다. 

보고서 작성자는 사토우Satow이지만 내용은 전적으로 이동인의 육성이라 할 수 있습니다. 때문에 우리는 이동인을 화자로 설정하여 그의 목소리를 직접 들어 볼 수 있습니다.

조선의 밀출국 승려 이동인이 대영제국의 외교관을 앞에 두고 말하는 목소리를 직접 들어 보겠습니다(보고서의 내용을 이동인의 말로 재구성함).

"우리나라는 수많은 외침을 당해왔습니다. 몽골족, 만주족 그리고 왜인이 여러 차례 침략했습니다.하지만 우리는 주권을 빼앗기지 않았고 기필코 자주독립을 지켜냈습니다. 16세기 말엔 왜군이 쳐들어와 점령당했지만 우리는 결국 왜군을 물리쳤습니다. 우리는 왜군이 저지른 만행을 결코 용서할 수 없었습니다. 그들과 통상조약을 체결한 것은 우리의 힘이 약해 저항할 수 없다고 여겼기 때문입니다(The wrongs inflicted during that unprovoked war have never been forgiven by the Coreans, who only submitted to conclude a Treaty of Commerce with Japan because they felt they were not strong enough to resist.).

17세기에는 조선이 또 만주족에게 점령당한 적이 있었습니다. 만주족은 수도를 급습했고 왕비와 그 아들을 인질로 잡아 왕에게 항복을 강박했습니다. 그 후로 조선은 청나라의 종주권을 인정하게 되었지만 자치를 유지했습니다. 

조선의 현 체제에 의하면, 국정은 일인지하 만인지상이라는 영의정 및 그 아래의 좌의정, 우의정의 보좌하에 왕의 이름으로 이루어집니다. 그 다음으로 여섯 부서(육조)의 장이 있는데 이러한 정부 구조는 중국 제도를 따온 것이다.

권력 행사는 명목상의 신료들에 의하여 이루어지기 보다는 국왕의 의중에 좌우됩니다. 현재 영의정은 이최응인데 왕의 숙부입니다. 하지만 그의 권한은 왕비의 숙부인 민태호에 비하면 약하지요. 왕비가 왕을 지배하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현재의 왕은 선왕의 아들이 아닙니다. 선왕은 후계자가 없는 상태에서 37세의 젊은 나이에 별세했습니다. 그 때 모친의 손에 옥쇄가 넘어갔으므로 모친이 왕위 상속자를 자기 뜻대로 선택할 수 있었지요. 이게 1864년의 일인데 당시 왕위에 오른 고종은 고작 11살 소년이었습니다.

자연히 왕의 부친인 대원군이 권력을 장악하게 되었습니다. 여러 문제적 행동에도 불구하고 대원군은 약 10년간이나 권력을 행사했습니다. 성장한 고종은 민승호의 여동생과 결혼하였습니다. 고종보다 나이가 한 살이 많은 왕비가 왕을 조종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1874년 왕비의 오라버니이자 민씨 세력의 중심 인물인 민승호의 집에 불이 나 그가 불에 타 죽은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대원군의 소행으로 추측되었습니다. 그러자 왕비는 고종에게 권력을 장악하라고 채근했고 그에 따라 왕은 관리들에게 대원군접촉을 엄금시켰습니다. 이제 대원군은 완전 고립되었습니다.

이러한 변화가 일어나자 나라 밖에서는 조선 정부가 이제 기독교인들을 배척하지 않는다느니, 개방적인 경향으로 변하고 있다느니 하는 등의 풍문이 떠돌았습니다. 하지만 그런 건 근거 없는 희망사항에 지나지 않습니다. 

현재의 지배층이 권세를 유지하는 한 외국과의 조약 체결 가능성은 매우 희박합니다. 조선이 쇄국정책을 버릴 유일한 희망이 있다면, 몇몇 젊은이들이 나라밖으로 시선을 돌리고 열강과의 수교를 염원한다는 데에 있습니다. 이홍장은 조선이 독립을 지키기 위해서는 외국과 우호관계를 갖는게 필요하다고 설득하고 있습니다.

그가 보낸 편지가 조선의 개화에 기여를 할지도 모르겠습니다. 그건 어떻든간에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젊은 양반들이 주축을 이룬 개화파들은 현재의 봉건체제를 혁신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신념을 지니고 있고 국가 자원을 외국의 지원과 기술로 개발해야 한다고 여기고 있다는 점입니다.       

(중략) 개화당의 주요인물로는 20세의 박영효, 38세의 조병하, 29세의 김옥균을 들 수 있습니다. 우리 조선 사람들은 서양 열강에 대해서는 아는 게 거의 없습니다. 우호감이 있을 리도 없습니다. 다른 어떠 나라보다도 프랑스를 싫어합니다. 1866년 병인양요 이래로 지금도 프랑스와 전쟁 중이라 여기고 있습니다. 미국을 또한 적으로 여기고 있습니다. 미국이 관계를 트기 위해 어떠한 압박을 가해오더라도  또 다시 적대감만 불러일으킬 것이 거의 확실합니다(They also look upon the United States as their enemy, and it is almost certain that any persistent attempts on the part of American Agents to enter into relations would give rise to renewed hostilities).

러시아를 또한 싫어합니다. 러시아는 음흉하게도 우리 조선 백성들에게 월경하도록 유인하고 있을 뿐 아니라 호시탐탐 우리 땅을 노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중국 및 일본과 수교한 오스트리아, 독일, 이태리 및 여타 나라들에 대해서 우리 조선인들은 아무것도 모릅니다. 혐오감을 지니고 있지 않는 유일한 외국이 영국입니다.

영국은 조선에 통상관계를 강요하거나 간섭을 해 온 일이 없기 때문입니다. 조선인들이 영국인과 접촉하게 되었던 유일한 기회는 영국 선박이 조선 해안에 난파되었을 때였습니다. 우리는 조난당한 영국 선원들을 구호해 주었고 이에 대하여 영국은 관리를 보내 감사를 표했습니다.

그러한 정중한 일들이 좋은 영향을 끼쳤음은 의심할 나위가 없습니다. 하지만 압도적인 무력시위가 있다면 모를까 현정부가 영국 사절을 접수할 가능성은 없습니다(...there is no probability that an Envoy would be received by the present Corean Government unless accompanied by a force sufficient to overwhelm resistance).(끝)


한국의 독자 여러분, 어떤 생각이 드나요? 판단과 해석은 자유입니다. 하지만, 위의 내용을 통해 분명히 드러난 사실은 왜 일찍이 이동인이 프랑스나 미국 혹은 러시아가 아니라 영국을 제 1의 접근 대상국가로 삼고 모험을 감행했는지 에 대한 것입니다. 이에 대한 구체적인 답이 나왔으므로 퍼즐 하나가 확실히 풀린 셈이군요. 

다음으로 이어집니다.

태그:#이동인, #사토우, #고종, #민비, #임진왜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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