넘버링 무비는 영화 작품을 단순히 별점이나 평점으로 평가하는 것에서 벗어나고자 합니다. 넘버링 번호 순서대로 제시된 요소들을 통해 영화를 조금 더 깊이, 다양한 시각에서 느껴볼 수 있기를 바랍니다.[편집자말]
* 주의! 이 글에는 영화의 스포일러가 포함돼 있습니다.
 
 영화 <고질라 VS 콩> 메인포스터

영화 <고질라 VS 콩> 메인포스터 ⓒ 워너브라더스코리아


01.
시작은 2000년대 후반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레전더리 픽쳐스가 이 괴수가 등장하는 리부트 작품을 세상에 내놓기 위해 일본의 도호 사와 판권 계약을 진행 중이라는 이야기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레전더리 픽쳐스는 워너 브라더스와 합작하여 이 작품을 선보일 계획을 갖고 있으며, 이는 해당 캐릭터의 탄생 60주년을 기념하는 작품이 될 것이라는 루머였다. 이후 이 계획은 사실로 판명되었으며, 몇 명의 감독을 거쳐 영국 출신의 가렛 에드워즈 감독이 연출하는 것으로 확정된다. 2014년에 개봉한 영화 <고질라>의 이야기다.

결과적으로, 특히 중국에서 이 영화가 흥행에 성공하면서 레전더리 픽쳐스는 조금 더 큰 계획을 그리기 시작한다. 괴수(Monster)와 세계관(Universe) 두 단어를 합성해 만든 몬스터버스(Monsterverse)라는 이름의 세계관을 만든 것이다. 말 그대로 타이탄이라 불리는 괴수들이 등장하는 시리즈물을 만들겠다는 것. 이를 위해 레전더리 픽쳐스는 도호로부터 고질라 시리즈에 속한 몇몇 캐릭터의 사용 권리에 대한 계약을 진행하고, 유니버셜 스튜디오로부터 킹콩을 빌려온다.

이후 몬스터버스의 세계관 아래 2~3년에 한 편 정도의 작품이 공개된다. 2017년 킹콩을 주인공으로 한 작품 <콩 : 스컬 아일랜드>에 이어, 2년 뒤인 2019년에는 고질라 시리즈 2편에 속하는 <고질라 : 킹 오브 몬스터>가 관객들을 차례로 만났다. 그리고, 드디어 올해 시리즈의 네 번째 작품 격인 <고질라 VS. 콩>이 개봉했다. 이는 시리즈의 대표 캐릭터인 고질라와 킹콩을 한 작품에 함께 등장시킨 작품이다.

02.
영화는 제작 소식이 들려올 때부터 많은 관심을 받았다. 워너 브라더스 본사가 공개한 예고편 조회수만 7600만 뷰. 전 세계 각 현지 법인이 공개한 개별 국가의 영상을 모두 합치면 9000만 뷰에 달한다. 그도 그럴 것이 킹콩과 고질라가 한 작품에서 함께 등장하는 것은 역사 상 두 번째 일로, 첫 만남은 60년이나 전의 일이었다.

고질라의 판권을 갖고 있는 도호 사가 '미국을 대표하는 괴수 킹콩과 일본을 대표하는 괴수 고질라가 만나 싸우면 어떻게 될까?' 하는 아이디어로 시작한 <킹콩 대 고질라>(1962)에서다. 당시만 해도 사용료 협상으로 제작 과정이 쉽지 않았다고 알려져 있는데, 두 괴수의 사용 권리를 이미 획득한 레전더리 픽쳐스의 입장에서 이 기획을 놓칠 수 없었을 것이다. 영화 <고질라 VS. 콩>은 이렇게 만들어졌다. 한 가지 아쉬운 점이라면, 고질라와 관련한 레전더리와 도호 사 간의 판권 계약이 이번 작품을 마지막으로 종료되기에 더 이상은 만나기 힘들 수도 있다는 것.

영화의 역사나 캐릭터의 판권과 관련한 내용을 시작에서 중요하게 다룬 이유는 역시 작품 속에서 가장 힘을 주고 있는 부분이 여기에 있기 때문이다. 조금 더 직접적으로 이야기하자면, 캐릭터에서 시작해서 캐릭터로 끝난다고나 할까. 영화가 구성해야 할 아주 기본적인 서사를 완전히 포기할 수 없기 때문에 일정 부분 극을 구조화하려는 노력이 있기는 하나 영화의 모든 역량은 두 괴수 고질라와 킹콩으로 향한다.
 
영화 <고질라 VS 콩> 스틸컷 영화 <고질라 VS 콩> 스틸컷

▲ 영화 <고질라 VS 콩> 스틸컷 영화 <고질라 VS 콩> 스틸컷 ⓒ 워너브라더스코리아


03.
영화는 실제 인류의 역사와는 다른 세계관 아래에서 이야기를 진행시켜 나간다. 타이탄이라 불리는 거대 괴수들이 지구 내부에 존재하는 또 다른 공간에서 살아가며 몸을 숨기고 살아가고 있다는 지구공동설이 바로 그것. 인류의 무분별한 핵실험으로 인한 방사능 수치의 비정상적인 상승이 이들을 깨웠다는 설정이다. 시리즈의 첫 작품인 <고질라>에 등장하는 고질라와 악역 괴수 무토가 같은 설정으로 등장한 이후로, 몬스터버스의 모든 작품들에서 동일하게 적용되고 있다.

이번 작품 <고질라 VS. 콩>은 이들 타이탄을 연구하는 기관인 모나크가 옛 기록들을 통해 고질라와 콩이 오랜 숙적임을 알게 된 후 콩을 지키기 위해 해골섬을 보호하고 있는 장면에서 시작된다. 한편, 생명공학과 인공지능으로 최고 기업이 된 에이펙스 사가 소개되면서 고질라가 등장하는데, 그간 인류를 도와 악역 괴수들을 무찌른 것과 달리 도심 한복판에 있는 에이펙스 사의 건물을 파괴하기 시작한다. 나중에 밝혀진 바로는, 에이펙스 사의 CEO인 데미안 비쉬어(월터 시먼스 분)가 메카 고질라를 만들고 있었기 때문인데, 이번에도 고질라는 그의 나쁜 의도를 막기 위해 나타난 것이었다.

이후 콩과 고질라는 청산하지 못한 과거의 갈등으로 인해 맞부딪히기도 하지만, 인류와 타이탄의 미래를 위해 함께 손을 잡고 메카 고질라를 무찌른다.

04.
이번 작품에서 두드러지는 세 가지 지점은 다음과 같다. 첫째는 선역과 악역이 타이탄들 사이에서 나뉘어 갈등 구조가 이루어졌던 것이 처음으로 인간의 탐욕과 이를 저지하려는 타이탄의 갈등 구조로 전환되었다는 점. 이는 시리즈의 지난 작품들에서 지속적으로 인류의 편에서 재앙을 막아내 왔던 타이탄들의 모습과도 그 궤를 함께한다. 큰 틀에서 전환을 시도한 것. 이와 더불어 세계관의 기본이 되는 인류의 이기심과 탐욕을 전면에 드러낸 것이기도 하다.

둘째는 고질라와 콩이 대결을 펼칠 것으로 예상되었던 것과 달리 함께 협력할 수 있음을 보여줬다는 것이다. 작품의 타이틀에 대결을 의미하는 영단어 'Versus'가 속해 있는 것과 공식 예고편을 통해 두 괴수가 치열히 싸우는 장면이 드러났다는 점에서 추정되던 것에 일부 반(反)하는 부분이 있다. 이 또한 이번 작품이 시리즈 내에서 두 괴수가 함께 등장하는 처음이자 마지막 작품이 되리라는 어느 정도의 예상이 포함된 것처럼 보인다.

더불어 기존의 갈등 구조를 해결하고 화합으로 나아가는 과정에서 벌이는 두 괴수의 전투 장면과 협력하여 메카 고질라에 대적하는 장면은 화려한 볼거리를 제공한다. 시리즈 내 기존 작품들이 크리쳐 장르임에도 불구하고 대결 장면이 짧아 맥이 끊기는 액션을 보여주며 받아온 부정적 평가들을 완전히 뒤집을만한 정도다. 특히, 콩이 지구 내부에 존재하는 고향을 찾아 괴수 워배트의 머리를 찢는 장면은 굳이 없어도 되는 장면이나 이런 액션에 목마른 팬들을 위한 서비스 신 정도로 생각된다. 이에 고질라 혹은 킹콩의 오랜 팬들에게는 선물 아닌 선물이 되기도 했다.

무엇보다도 시리즈 내 기존의 작품들에 대한 정보가 없이도 이번 작품을 즐기는 데 큰 무리가 없다는 점은 이 영화를 단순한 오락 영화로 즐기고자 하는 관객들에게 큰 장점이다. 모든 영화가 그렇듯 세부적인 내용을 더 알고 보면 깊이 있는 이해가 가능하다. 다만 장르적 특성 상 스토리의 비중이 크지 않기 때문에 고질라와 킹콩이 무엇인지에 대해서만 인지하는 정도라도 충분하다.
 
영화 <고질라 VS 콩> 스틸컷 영화 <고질라 VS 콩> 스틸컷

▲ 영화 <고질라 VS 콩> 스틸컷 영화 <고질라 VS 콩> 스틸컷 ⓒ 워너브라더스코리아


05.
문제는 이러한 여러 장점들을 하나의 문제점이 모두 상쇄해 버리고 만다는 점이다. 스토리다. 물론 작품의 특성 상, 이런 종류의 작품들에서 스토리를 기대하는 것이 오히려 너무 큰 욕심 아니냐는 시선도 있다. 과거 유사 크리쳐 작품들이 그랬고, <트랜스 포머>의 경우에는 로봇들의 액션에 치중된 나머지 일부 스토리 라인에 대한 지적들이 있어 왔으니 말이다.

시리즈 내 기존 작품들인 <고질라>(2014), <콩 : 스컬 아일랜드>(2017), <고질라 : 킹 오브 몬스터> 역시 비슷한 평가를 받았다. 인간이 등장해 진행시키는 휴먼 스토리 라인이 너무 빈약하다는 것. 문제는 이번 작품 <고질라 VS. 콩>이 전작들보다 훨씬 더 액션에 힘을 주고 있다는 것이다. 

결과적으로, 기존의 작품들도 그런 평가를 받아왔는데, 그보다 더 많은 부분을 괴수들의 액션에 할애한 이번 작품의 평가가 다를 리 없는 것이다. 특히, 버니 헤이스(브라이언 타이리 헨리 분)와 조시 발렌타인(줄리언 데니슨 분)의 과장된 연기는 마치 80-90년대 할리우드 블록버스터의 공식 일부를 따르는 듯한 느낌마저 준다. 작중 개연성이나 현실성 등의 문제가 아니다. 그런 것들을 제외하고도 이 작품의 스토리 라인은 빈약하다.

06.
장점과 단점이 명확한 작품이라는 생각이 든다. 호불호가 갈리지 않는 영화가 세상에 존재할까 싶을 정도로 한 작품에 대한 평가는 다양하기 마련이지만, 이 작품은 극단적으로 나뉠 가능성이 크다. 과거 크리쳐 장르물에 대한 향수가 있는 이들에게는 고질라와 콩 두 괴수가 한 작품에서 대결을 벌이고 협력을 한다는 사실만으로도 충분히 만족스러운 작품이다. 또 반대로, 영화를 감상하는 데 있어 충실한 스토리나 감정의 공유를 중요시 하는 관객에게는 액션만으로 채워지지 않는 아쉬움이 분명히 있을 것이다.

현재까지는 개봉 첫 주 기준으로 약 35만 명의 기록이다. 올해 들어 가장 좋은 성적으로, 박스 오피스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한 <미나리>의 첫 주 기록 30만보다 높다. 앞으로 남은 시간 동안 얼마나 더 많은 관객들이 이 작품을 선택할지, 또 어떤 시선으로 바라보게 될지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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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가 숫자로 평가받지 않기를 바라며 글을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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