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프로야구는 '10개 구단 시대'가 열리면서 많은 변화를 맞았다. 그 중에서도 와일드카드 제도 신설로 가을야구 초대장이 한 장 늘어난 것은 10개 구단 시대의 가장 큰 변화였다. 비록 지난 6년 동안 와일드 카드 제도의 수혜를 입은 팀이 준플레이오프에 진출한 적은 한 번도 없지만 와일드카드 제도가 KBO리그의 중위권 순위싸움에 긴장감과 흥미를 불어 넣었다는 사실은 분명하다.

미국 메이저리그에서는 이미 20년 전부터 와일드카드 제도를 도입하고 있다. 2014년에는 와일드카드로 포스트시즌에 진출한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와 캔자스시티 로얄스가 각 지구 우승팀들을 꺾고 월드시리즈에서 격돌하기도 했다. 축구의 월드컵에서도 본선 진출국이 24개국이었던 1994년 미국월드컵까지는 와일드카드 제도를 도입해 조3위를 차지한 나라 중에서 성적이 좋은 4개국에게 16강 진출 티켓을 주기도 했다.

사실 와일드카드라는 용어는 카드게임에서 어떤 용도로도 쓰일 수 있는 '비장의 카드'를 의미하는 말이다. 흔히 조커가 와일드카드의 역할을 한다. 하지만 양동근과 정진영이 주연을 맡은 김유진 감독의 영화 <와일드카드>에서는 또 다른 의미로 쓰인다. 강력계 형사들에게 '와일드카드'란 밥도 같이 먹고 잠복도 같이 하고 심지어 칼도 같이 맞는 형사들의 용기와 끈끈한 동지애를 의미한다.
 
 <와일드카드>는 <살인의 추억>,<매트릭스2>와 개봉시기가 겹치며 흥행에서는 큰 재미를 보지 못했다.

<와일드카드>는 <살인의 추억>,<매트릭스2>와 개봉시기가 겹치며 흥행에서는 큰 재미를 보지 못했다. ⓒ 시네마서비스

 
열혈 강력계 형사로 변신한 '만능배우' 양동근 

1986년 8세의 어린 나이에 <한지붕 세가족>을 통해 데뷔한 양동근은 1990년 일일드라마 <서울 뚝배기>로 일찌감치 '천재 아역배우'로 주목 받았다. <서울 뚝배기>는 최수종, 도지원, 오지명, 주현 등 스타 배우들이 대거 출연했지만 그 중에서도 12살 짜리 양동근의 존재감은 단연 돋보였다. 양동근은 <서울 뚝배기>를 통해 1991년 KBS 연기대상과 백상예술대상에서 아역상을 휩쓸었다.

1992년 중학교 진학 후 춤과 랩에 빠졌던 양동근은 1997년 '윌'이라는 팀으로 활동하다가 영화 <짱>과 <댄스댄스>, 드라마 <학교1>을 통해 자신의 본업인 배우로 돌아왔다. 새 천년에는 조인성과 장나라 등 많은 스타들을 배출한 청춘시트콤 <뉴논스톱>에서 구리구리 양동근 역할로 대중들에게 강한 인상을 남겼다. 그리고 월드컵의 감동이 가시지 않은 2002년 여름, 양동근은 <네 멋대로 해라>라는 인생작을 만났다. 

드라마 <네 멋대로 해라>는 무언가에 강하게 심취한 사람이라는 뜻의 '폐인'이라는 신조어를 탄생시키며 많은 마니아들을 양산했다. 실제로 또 다른 주인공 전경을 연기했던 배우 이나영은 캐릭터에서 빠져 나오지 못해 1년 가까이 차기작을 선택하지 못했다. 하지만 자유로운 영혼의 양동근은 역시 남달랐다. 양동근은 <네 멋대로 해라> 종영 후 곧바로 영화 쪽으로 눈을 돌려 <와일드카드>의 신참 강력계 형사 방제수를 연기했다.

<와일드카드>는 비현실적인 능력을 가진 주인공과 극적인 장치들로 통쾌하게 악을 무찌르는 형사 영화와는 거리가 멀다. <와일드카드>는 현장에서 두 발로 뛰고 검거과정에서 총기를 사용했다가 징계위원회에 회부되는 보통 경찰들의 이야기를 담은 영화다. 2003년 5월에 개봉한 <와일드카드>는 봉준호 감독의 <살인의 추억>과 워쇼스키 형제(그땐 자매가 아니었다)의 <매트릭스2>와 개봉시기가 겹쳤음에도 전국 157만의 관객을 동원했다.

양동근은 <와일드카드> 이후 <마지막 늑대>, <모노폴리>, <그랑프리>, <퍼펙트게임>, <추적자>, <응징자> 등에서 주연을 맡았지만 대부분 흥행과는 거리가 멀었다. 따라서 <와일드카드>는 현재까지도 <바람의 파이터>(230만)에 이어 양동근의 최고흥행영화 2위로 남아있다. 힙합씬에서 존경 받는 뮤지션이자 세 아이의 아버지이기도 한 양동근은 올해 개봉 예정인 설경구, 박해수 주연의 첩보액션영화 <야차>(가제)의 개봉을 앞두고 있다.

집단 구타에는 장사 없다
 
 <와일드 카드>에서 형사들이 잡으려 하는 대상은 마약조직이나 연쇄살인범이 아닌 시민들의 안전을 위협하는 퍽치기 일당이다.

<와일드 카드>에서 형사들이 잡으려 하는 대상은 마약조직이나 연쇄살인범이 아닌 시민들의 안전을 위협하는 퍽치기 일당이다. ⓒ 시네마서비스

 
<와일드 카드>에 등장하는 형사들은 압도적인 피지컬이나 특별한 능력을 가진 '슈퍼캅'이 아니다. 그들은 힘들게 범인을 검거하고도 '총기 사용시 3회 이상 투기명령'을 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징계위원회의 조사를 받는 보통 사람이다. 그래도 반장(기주봉 분)을 위해 깜짝 생일파티를 열어 가볍고 부드러운데다 까칠까칠하지 않아서 범인들도 좋아한다는 독일제 수갑을 선물하는 정 많은 사람들이기도 하다.

강력 3반은 관내에서 발생한 4인조 퍽치기(무방비로 걸어 가는 사람을 뒤에서 공격한 후 금품을 훔치는 범행) 사건을 맡게 된다. 이들은 방제수(양동근 분)와 오영달(정진영 분)이 잠복하고 있는 관내 편의점 앞에서 범행을 저지를 정도로 대담하다. 단 5분 차이로 관내에서 범행을 저지르고 유유히 사라진 범인 앞에 열혈형사 방제수는 그저 소리를 지르며 분노를 표출하는 것 말고는 할 수 있는 것이 없다.

방제수는 강력 3반 내에서도 유능하고 똑똑하기로 유명하지만 4인조 지하철 소매치기(퍽치기 범인이 아닌 엑스트라들)를 쫓다가 집단 구타를 당하기도 한다. 보통 형사물이라면 주인공이 엑스트라 4명 정도는 가볍게 제압해야 하지만 <와일드카드>에서는 주인공도 집단구타 앞에서 크게 힘을 쓰지 못한다. 심지어 장칠순 형사(김명국 분)는 과거 범인을 쫓다가 칼에 찔렸던 트마우마 때문에 칼을 든 용의자만 보면 겁에 질려 몸을 벌벌 떤다.

'총은 쏘라고 주는 것이 아니라 범인에게 던지라고 주는 것'이라는 농담이 있을 정도로 형사들의 총기사용에 대한 기준은 매우 엄격하다. 하지만 방제수는 결정적인 순간, '경찰관 집무집행법- 3회 이상 투기 명령'을 준수하며 범인을 검거한다. 방제수가 칼을 버리라고 소리치며 혼잣말로는 "버리지 말라"고 속삭이는 장면은 캐릭터에 몰입한 양동근의 명연기가 돋보이는 명장면이다(결국엔 선배들의 조언대로 총 대신 야구방망이를 이용해 범인을 검거한다).

<와일드카드>를 연출한 김유진 감독은 1986년 <영웅연가>로 데뷔해 <단지 그대가 여자라는 이유로> <금홍아금홍아> <약속> 등을 연출했다. 2003년작 <와일드카드>는 김유진 감독이 직접 기획, 제작, 연출까지 맡은 작품으로 이 영화로 감독은 춘사영화제 심사위원 특별상을 수상했다. 2008년에는 조선 비밀병기개발을 다룬 영화 <신기전>으로 전국 370만 관객을 모으며 대종상 영화제에서 작품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데뷔 초기의 한채영과 코믹 연기 선보인 연극배우 이도경
 
 한채영(오른쪽)은 양동근과 키스씬을 선보이지만 두 사람의 러브라인은 영화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지 않는다.

한채영(오른쪽)은 양동근과 키스씬을 선보이지만 두 사람의 러브라인은 영화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지 않는다. ⓒ 시네마서비스

 
한채영은 2005년 <쾌걸춘향>을 통해 대중들에게 본격적으로 유명해졌지만 이미 2000년 영화<찍히면 죽는다>로 연예계에 데뷔했다. 원빈의 "얼마면 될까, 얼마면 되겠냐?"로 유명한 드라마 <가을동화>에서 준주연으로 출연한 한채영은 2002년 영화 <해적,디스코왕되다>에서 술집으로 팔려가는 임창정의 동생을 연기했다. 그런 한채영에게 <와일드카드>는 데뷔 후 3번째 출연하는 영화였다.

한채영은 <와일드카드>에서 방제수의 짝사랑을 받는 미스테리한 여인으로 등장한다. 사실 그녀의 정체는 본청 과학수사대의 감식반원 강나나로 방제수보다 직급이 높다. 늘 일정한 시간에 같은 곳에서 운동을 하고 인상도 차가워 보이지만 사건현장이나 부검실을 감식하면서 시체에게 말을 건네는 등 의외의 면도 갖추고 있다. 러브라인이 거의 없는 <와일드카드>에서 유일하게 양동근과 진한 키스씬이 나오기도 한다.

배우 이도경은 손님이 기대고, 앉고 누워서 잠들 때까지 길거리에서 기다리는 직업적 자부심이 대단한 부축빼기(일명 '아리랑 치기') 전문도둑 도상춘 역을 맡았다. 오영달 형사가 '도둑계의 지오디'라고 인정(?)해줄 때는 내심 흐뭇한 미소를 짓기도 한다. 도상춘은 용의자 정보 공개를 두고 밀당을 벌이다가 당장 구속시켜 버린다는 방제수의 협박에 "뭔 죄를 이리도 많이 짓고 살았느냐 말이다"라며 지난 세월을 반성하는 <와일드카드>의 개그캐릭터다.

<와일드카드>를 통해 본격적으로 영화에 진출한 이도경은 영화 <사생결단> <퍼펙트게임> <역린>, 드라마 <더킹 투 하츠> <보이스> 등에서 개성있는 연기를 선보였다. 특히 이도경은 연극 쪽에서 <용띠 위에 개띠>라는 자신의 확실한 대표작을 가진 배우다. 1997년에 초연된 <용띠 위에 개띠>는 대학로에서 20년 이상 장기 공연될 정도로 오랜 기간 동안 관객들의 사랑을 받은 연극계의 대표적인 '스테디셀러'로 꼽힌다.
그 시절, 우리가 좋아했던 영화 와일드카드 양동근 정진영 김유진 감독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