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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암마을은 뫼봉산을 등지고 앞으로는 영산강의 상류인 지석강이 흐른다. 500여 년 전 조선 인종 때 문창후가 이곳에 터를 잡고 살기 시작했다. 홍수를 막기 위해 제방을 쌓고 나무를 심었다. 교통 오지이고 주작물은 벼농사다. 초등학교와 중학교가 소재한 곳이다.

광주에서 화순 너릿재를 너머 능주를 거쳐야 이곳에 갈 수 있었다. 완행버스로 3시간, 눈이 조금만 내리면 결행하기 일쑤였다. 마을 사람들이 대대적으로 환영했던 버스 운행이었지만 대부분 기차를 이용했다. 당시의 가난한 유학생들에게 버스요금도 큰 부담이었다.  

칠구재터널은 교통 인프라에 큰 변화를 가져왔다. 3시간 걸리던 거리를 단 15분이면 갈 수 있다. 칠구재는 광주 노대동과 화순 세량리 사이의 고개다. 분적산 봉우리가 7개여서 칠구재라 불렀다. 광주의 변두리가 중심지로 바뀌었을 뿐 아니라 화순 오지 마을이 사통팔방 교통의 중심지가 되었다.

지난 5일, 광주대를 거쳐 칠구재 터널을 지나니 세량지다. 사진가들이 즐겨 찾는 곳이다. 연분홍 빛으로 피어나는 산벚꽃, 신록의 나무들이 물 위에 투영된다. 아침 햇살에 물안개와 어우러져 이국적 풍광을 자아낸다. CNN이 선정한 한국에서 가봐야 할 곳 50곳 중 하나다. 

세량지 벚꽃길을 5분 정도 달렸을까. 학창 시절 수없이 오르내렸던 앵남역이다. 앵남역은 간이역이었다. 완행열차만 멈췄다. 여기서 도곡까지 걸어서 다녔다. 기차에서 내린 사람들 행렬이 줄을 이었다. 학생들은 어깨에 식량을 매고 십리길을 걸어서 기차를 타곤 했다. 

앵남에서 왼쪽이 화순, 보성 길이고 오른쪽이 나주 남평길이다. 광주 인근 도시 나주, 화순, 담양, 장성을 연결하는 외곽순환도로의 완성판이다. 광주-장흥 간 817번 지방도로는 고가도로를 통해 남쪽으로 연결된다.

도곡온천까지가 화순군이 지정한 음식문화 특화 거리다. 퓨전 한정식, 흑두부, 오리구이, 추어탕, 갈치조림 등 식당들이 이어진다. 전주비빔밥, 춘천 닭갈비, 할매 국수 같은 지역 대표 음식이 있었으면 하는 바람은 지나친 욕심일까. 전라도 음식은 풍성하고 담백하다고 듣곤 하지만...

도로 오른쪽에 느티나무 한그루가 덩그렇게 서 있다.  5.18 민주화 운동 당시 수습 위원을 지낸 문병란 시인의 생가가 있는 곳, 원동마을이다. 마을 뒤로 보이는 산이 종괘산, 초등학교 때 소풍을 자주 갔던 곳이다. 소부당 바위로 불렸는데 온천이 들어서면서 남근석으로 부른다. 문필봉으로 불리기도 했다.

다음이 도곡온천, 온천이 들어선다는 소문에 그냥 그렇거니 했다. 산골짜기 교통 오지에 온천이라니 가당치도 않았다. 그 기대가 실현될 때는 모두가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호남의 첫 온천 시대가 온 것이다. 전기, 전화 그리고 버스가 운행되는 것만큼 획기적인 사건이었다. 그리고 칠구재가 뚫렸다.
 
뫼봉산 정기 어린 아담한 고장
울창한 백암 숲은 선조의 유산
아침해 방긋 웃고 솟아오르고
해맑은 시냇물도 졸졸 흐르니
이곳은 우리 낙원 천암리라네

어렸을 때 부르던 마을 송, 초등학교 선생님이 작곡하고 마을 주민이 작사했다. 흥이 나고 자부심, 긍지 같은 것이 느껴졌다. 함께 부르는 노래는 동일체 의식을 느끼게 한다. 

마을 일은 주민들이 스스로 해결했다. 신작로에 자갈 다지는 일, 용수로 및 배수로 보수하는 일, 마을 골목길 청소, 숲 나무 관리, 상포계 운영... 모든 일은 마을 회의에서 결정하고 실행했다. 누구 하나 불평 한마디 없었다.

개인주의화 한 현시대에 살고 있는 우리... 집 앞 쓰레기 청소, 눈 치우기 등 당연히 해야 일 조차 모른 체 한다.  옛 농촌 사람들의 지혜로운 삶을 다시 한번 되돌아볼 일이다.
 
화순군 도곡면 천암리 백암마을에 있는 숲, 500 년 전 문창후가 터를 잡고 살기 시작했다.
▲ 백암 아름다운 숲 화순군 도곡면 천암리 백암마을에 있는 숲, 500 년 전 문창후가 터를 잡고 살기 시작했다.
ⓒ 문운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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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천을 따라 길게 쌓은 제방에는 느티나무, 팽나무, 이팝나무들이 군락을 이룬다. 이곳은 아이들의 숨겨놓은 아지트였다. 원숭이처럼 나무 위에 올라가 열매를 따먹기도 하고, 매미 소리에 슬며시 잠이 들기도 했다.

나무를 타고 노는 일은 흔히 있는 일이었다. 마른 몸이라 쉽게 나무에 오를 수 있었다. 떫은 열매를 먹어도 맛은 최고였다. 지금은 워낙 놀이 시설이 좋아서 자연과 함께하는 기회가 많지도 않지만...

숲은 여름에는 시원한 그늘과 쉼터를 만들어 주고 가을에는 단풍을 주었다. 겨울에는 까마귀가 까맣게 떼를 이루어 장관을 이루기도 했다. 아이들은 연을 날리고, 보름날이면 당산제를 지냈다. 산림유전자원보호구역 및 아름다운 숲으로 지정되었다. 

마을 주민들은 지하에 수로를 내고  황토흙으로 보를 만들었다. 지하보다. 봇물은 도랑(개울물)이 되어 숲을 지나 마을을 관통했다. 숲속에서는 멱감는 물이 되고, 마을에 들어서면 빨랫물이 되었다. 그리고는 몽리답의 용수로 이용했다. 
 
마을 주민들은 홍수를 막기 위해 제방을 쌓았다. 팽나무, 느티나무, 이팝나무 등 수백그루가 군락을 이룬다
▲ 백암 아름다운 숲 마을 주민들은 홍수를 막기 위해 제방을 쌓았다. 팽나무, 느티나무, 이팝나무 등 수백그루가 군락을 이룬다
ⓒ 문운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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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백암 아름다운 숲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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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 5시, 설렘과 기대를 안고 숲속으로 들어섰다. 느티나무, 팽나무들, 온갖 세파에 시달린 듯 등이 휘었다. 옆으로 쏠리고 휘어지고, 구멍이 뚫리고 멍이 들었다. 돌로 쌓아 만든 쉼터도 잡초만 무성하다. 돌멩이 베개 삼아 더위를 식혀가곤 했는데.

겨우내 잠자던 나무들도 연녹색 새순을 틔우고 있다. 올여름 시원한 그늘과 공기를 주기 위해서다. 여전히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고 새들을 부르려나 보다. 또 다른 이야기를 만들고, 먼 훗날 이곳을 찾는 이의 추억이 되고자.

알대미, 우대미, 뒷굴재, 삭재, 안들, 앞 냇물, 뒷 냇물, 비다실, 성적굴, 새골, 상잠...
정이 뚝뚝 넘치는 우리 고유의 민속 지명이다. 

희미해져 가는 흔적들...

태그:#천암리, #백암마을, #백암아름다운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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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의 초롱초롱한 눈망울을 보며 삶의 의욕을 찾습니다. 산과 환경에 대하여도 관심을 갖고 있습니다. 그리고 미래에 대한 희망의 끈을 놓고 싶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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