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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을 '온택트(Ontact·온라인을 통해 대면하는 방식)'로 진행하기로 했다. 주된 생각은 결혼이라는 관례가 '생각을 나누는 과정'으로 재정립됐으면 하고 소망했기 때문이다.

예컨대 기존 결혼은 신랑 혹은 신부 한 측의 손님으로 식장을 방문해 지인의 결혼 상대가 누구인지 제대로 알지 못하고 박수만 치다 돌아온다. 이러한 결혼식이 과연 '대면'의 본질을 잘 살리는 것인가? 오히려 부부가 결혼하게 된 까닭과 서로가 가진 가치관 등을 주변에 소개하는 것이 더욱더 '대면'적인 것 아닐까?

2020년 12월 2일 오전 9시, 서울 영등포구청에서 '구청 문이 열리자마자' 혼인신고서를 작성한 우리는 이로부터 정확히 180일 뒤인 2021년 5월 30일, 화려한 결혼식장을 대관하고 지인들을 초대하는 행위가 아닌 유튜브로 '시민결합선언식'을 생중계하기로 했다.

이처럼 우리가 왜 관습을 타파하는 결혼식을 하고자 했는지 설명하는 '이상결혼' 시리즈를 5회차에 걸쳐 연재해 보고자 한다. (관련 기사 : 요즘 것들의 결혼식은 이렇습니다

이 이상결혼은 '이상한' 결혼일 수도 있고, 누구에게는 '이상적인' 결혼일 수도 있다. "이렇게 결혼하는 부부도 있구나"라는 메시지를 통해 집안과 집안 간 만남이라는 결혼이 그저 주체적인 '개인 간 만남'으로 거듭나길, 누군가가 용기를 얻기를 바란다.

다음은 2021년 4월 5일 오후 6시, 결혼식까지 55일이 남은 상태에서 우리 부부와 우리의 친구인 '진구' 셋이서 나눈 대담이다.

진구 : "여태 거시적인 이야기를 해왔으니, 다시 미시적인 주제로 돌아가보자. 둘은 취미가 뭐야?"

동현 : "나는 라이브 뮤직을 좋아해. 언더그라운드 클럽에 울려퍼지는 기타의 리프도, 거대한 야외 페스티벌 무대를 채우는 드럼의 비트도 너무 좋아해. 그 리프와 비트에 맞춰서 그냥 아무 춤이나 남들의 시선과는 상관없이 몸을 흔드는 게 너무 행복해. 그게 너무 좋아서 덕업일치로 삼천원이라는 인디 문화 정기 후원 크라우드 펀딩 플랫폼 창업까지 했었고. 리듬과 내가 하나되는 그 느낌이 너무 좋단 말이지."

설아 : "나는 취미가 딱히 없어. 번아웃 때문일까? 의사 선생님은 취미를 제발 만들어보라고 하시더라고. 그래서 최근에는 쿠키런 킹덤 같은 소소한 게임이나 컬러링북 채우기 등에 손대보고 있어."

진구 : "둘의 간극이 크네. 동현이는 왜 라이브 뮤직을 좋아해?"

동현 : "그냥 그 음악의 장, 축제의 장이 너무 즐거워. 작은 클럽을 가득채우는 락 사운드가 주는 짜릿함, 거대한 페스티벌 공간이 주는 해방감? 그게 너무 행복해. 그런 생각을 한 적이 있어. 퀴어퍼레이드도 그렇고, 락페스티벌도 그렇고 그 공간 안에서만큼은 억압과 차별 없이 나 자신을 드러낼 수 있는 공간이라는 생각을 했었어.


사실 우리 삶에는 축제가 필요한 거 아닐까? 첨예한 갈등, 정치적이 되었든 개인적이 되었든 뭐든 간에, 그 갈등과 차별과 혐오 그 끝에서 우리에겐 늘 화해와 치유의 무엇인가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실제로 락페스티벌의 모태인 우드스탁 페스티벌은 68혁명과 결합하여 해방과 반전 운동의 상징이 되기도 하였고. 그래서 지금도 나에게 가장 행복한 락페스티벌의 기억은 그 어떤 유료 락페보다도 강렬했던 2009년 부산락페스티벌의 기억이야. 다대포 해수욕장에서 열렸던 무료 락페스티벌이었어.

하드한 락덕들도, 지나가던 어르신들도, 해수욕장에 나온 가족들도 성별과 연령의 구분없이 저마다의 리듬으로 노래를 즐기고 어깨동무하고 춤추며 놀았던 모습은 아직도 나에게 장벽없는 락페에 대한 그리움으로 남아있어."

설아 : "나는 몰랐는데, 동현이가 락페스티벌마다 '지속가능한 덕질'이란 깃발을 들고다니는 걸로 유명하더라고. 카카오톡 프로필 사진도 그 깃발이라니까.(웃음)"

진구 : "그럼 지속가능한 덕질이 나타내는 게 뭐야?"

설아 : "동현이가 의미한 건진 모르겠지만, 나도 여기 할 말이 있어. 사실 나는 취미가 별로 없다고 했잖아. 취미도 여유가 있고, 노력해야 할 수 있는 거더라고. 어렸을 때부터 일 때문에 바쁘게 살아오다 보니 사실 내가 뭘 좋아하는지도 잘 모르겠더라고. 지속가능한 덕질을 위한 시간적, 재정적 여유와 더불어 개인 멘탈리티의 '건강함'도 지속가능한 덕질을 위한 필수 불가결한 요소 아닐까?"

동현 : "나도 배부른 소리일 수도 있지만, 좋아하는 가치들이 옳고 그름 이전에 나의 기호와 선호가 아닐까 하는 생각도 종종 하곤 해.

최근에는 코로나 때문에 공연을 못 갔어. 사실 취미라는 것이 사람에게 있어 부가적인 요소로 취급되다 보니까, 언제나 가장 먼저 '끊어도 되는 고리'처럼 취급되는 경향이 없지 않아 있어. 그런 점들이 우려스러워."

진구 : "취미도 건강함의 일종이란 거네. 현대 사회에서 건강하게 산다는 건 뭘까?"

동현 : "정신건강과 육체건강, 모두를 포함하는 말이겠지? 트위터에서 본 짤이 있어. 인간의 몸은 고장난 아이폰 6S같은 거라서 암만 고장이 나도 무상리퍼도 안 되지만 계속 살아가야 한다고. 스트레스는 의사의 다른 표현으로 불치병입니다 라는 표현도 있었지."

설아 : "그런 스트레스들을 극복해야 이제 '지속가능한 덕질'을 할 수 있는 자격조건이 생기는 거지."

동현 : "일이 너무 즐거운데, 일 때문에 괴로울 때도 있어. 근데 또 그 괴로움에서 해방되면 일이 또 너무 즐겁다? 이런 양가적인 감정이 있어. 나는 성인 ADHD가 있는데, ADHD도 사실 우습게 보이잖아. 맨날 다리 떨지 말라 그러고, 건들거리지 말라 그러고. 딴짓하지 말라고 그러고. 그냥 그게 개인의 문제, 개인의 습관적 문제라고 불리는데 사실 병인 거지. 근데 병으로 인정을 못 받으니까 치료를 못 받는 거고. 최근에야 그게 병인줄 알았어. 치료를 받기 시작하니까 한결 낫더라고."

설아 : "몸이 건강해야 건강한 관계를 쌓을 수도 있지. 항상 예민한 상태로 누군가를 대한다면 그게 원활한 대화로 이뤄질까? 나는 그런 점에서 결혼을 하고 제시간에 자고 제시간에 일어나게 돼서 많이 건강해진 거 같아."

진구 : "건강이 필수적이라는 이야기를 청년 부부에게 들으니 좀 새롭다."

설아 : "아무래도 쉽게 간과하기 쉬운 거니까. 아까도 동현이가 잠시 언급했듯, 코로나19로 사회의 연결고리가 깨어나가는 점들이 너무 안타까워. 마지막 대담에선 우리가 왜 언택트 시민결합선언식을 하게 됐는지와 더불어 그런 점들에 대해 이야기해보려고 해. 이른바 '고립을 넘는' 연대가 무엇일까와 관련된 거지."

태그:#결혼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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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폭력에 저항하는 '세계시민선언'의 공동대표입니다. 보통시민의 이야기를 담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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