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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일 포털 사이트에서 많이 본 기사 1위를 기록한 MBN의 오보.
 2일 포털 사이트에서 많이 본 기사 1위를 기록한 MBN의 오보.
ⓒ 포털사이트 다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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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일 마트에서 조두순을 봤다는 글이 사진과 함께 온라인 커뮤니티에 게재됐다. 기사는 삽시간에 퍼졌다. '전자발찌, 소주 한 박스, 내 세금, 정신 못 차렸네...' 등 자극적인 제목들이 포털에 도배됐다. 조두순을 봤다는 기사는 실시간 포털 사이트 랭킹 1위에 올랐고 댓글창은 노골적인 욕설로 뒤덮였다.

다음날(2일) 인터넷에 사진 속 인물이 조두순 부부가 아니라는 게시물이 올라왔다. '지금 장모님은 심장이 떨리고 손이 떨리셔서 어찌할 바를 모르고 계세요. 무슨 일 날까 걱정이에요.' 사진 속 인물의 사위라고 밝힌 사람은 기사를 더이상 퍼나르지 말아달라 호소했다. 이미 수많은 기사가 작성되고 보도된 후였다. 무고한 일반인은 언론에 의해 조두순이 되었다.

두 달 전이었다면 기레기라 욕하고 말아버렸을 사건이다. 하지만 지금 나는 기자가 되기 위해 공부 중인 기자 지망생이다. 이번 오보 사건이 평소처럼 단순한 헤프닝으로 다가오지 않는다. 처음에는 안타까웠고, 그 후로는 몇 가지 고민으로 머리가 복잡해졌다. 나도 내 이름으로 베껴 쓴 기사를 퍼 나르고 있지는 않을까?

기자들은 왜 '인터넷 커뮤니티 발' 기사를 썼나

그러지 않기 위해 기자로서 해야 할 일보다 하지 말아야 할 일을 생각해 보는 것이 먼저다. 첫 번째 고민은 조두순이 실제로 마트에 갔을 때 이런 식의 보도가 과연 바람직할까 하는 부분이다. 진짜 조두순이었다면, 오보가 아니었다면 문제가 없었을까?
 
형기를 마치고 출소한 아동 성범죄자 조두순이 2020년 12월 12일 오전 경기도 안산시 법무부 안산준법지원센터로 들어가고 있다.
▲ 준법지원센터 도착한 조두순 형기를 마치고 출소한 아동 성범죄자 조두순이 2020년 12월 12일 오전 경기도 안산시 법무부 안산준법지원센터로 들어가고 있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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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두순이 출소한 직후에도 온갖 자극적인 보도가 쏟아져 나왔다. 거주지가 공개되자 언론사와 유튜버들이 매일같이 조두순 집에 찾아가는 바람에 주민들이 경찰서에 탄원서를 접수한 일도 있었다.

조두순이 감옥에서 나온다는 소식에 시민들은 그가 저지를지도 모르는 재범에 대한 두려움과 분노를 가지고 있었다. 법무부와 지자체에서는 재범을 막기 위한 장치를 마련했다. 기자는 그 시스템을 뚫고 조두순이 나왔다는 것에 초점을 맞춰야 했다. 기자들은 사람들의 분노에 편승해 시민들을 자극하는 손쉬운 보도를 택했다.

조두순이 집 밖으로 나왔다는 사실이 기사화 될 때는 조두순이 마트에서 무엇을 샀는지, 전자발찌가 보이는지 안 보이는지가 중요한 것이 아니다. 경찰의 감시체계가 어떠한지, 재범 방지를 위한 행동관찰이 어떻게 이루어지고 있는지가 더 중요하다. 기자는 조두순을 감독하는 보호관찰관이 어디에 있는지 물었어야 했다.

두 번째 문제는 아무런 사실확인 없이 기사를 내보냈다는 점이다. 기사가 보도된 바로 다음날 안산단원경찰서는 조두순이 외출한 바 없다고 밝혔다. 경찰서에 전화 한 통만 했어도 오보를 막을 수 있었을 것이다.

정확한 사실에 근거하여 보도하는 것이 기사쓰기의 기본이라 배웠다. 사실보도라는 기본원칙조차 지키지 않으면서 언론을 신뢰하라고 말할 수는 없다. 취재원이 확실치 않은 상황에서 무고한 시민을 조두순으로 지목할 것이 아니라, 교차검증과 팩트체크를 통해 커뮤니티 글을 바로잡는 것이 기자가 했어야 할 일이다.

세 번째 문제는 퍼나르기와 베껴쓰기 관행이다. 이번 오보 사건이 어쩌다 일어난 실수처럼 보이지 않는 이유는 기사 퍼나르기가 꾸준한 문제였기 때문이다. 이번 일은 언론에 만연한 잘못된 취재 관행을 다시 한번 수면 위로 드러냈다.

한 네티즌이 온라인 커뮤니티에 올린 게시글이 모든 기사의 유일한 출처였다. 커뮤니티 글을 베껴쓰기한 기사를 다른 언론들이 일제히 퍼나르면서 작은 불씨가 산불로 번졌다. 정체불명의 네티즌이 온라인 커뮤니티에 올린 글이 그대로 기사화되는 곳이 앞으로 내가 가게 될 기자의 세계일까? 기자들은 어째서 진위여부를 따질 틈도 없이 기사를 써야 했을까?

조두순 출소 때와 똑같이 이번에도 기자들은 하나같이 조두순 개인을 항해 분노를 장전했다. 기자라면 분노하는 것에서 몇 발짝 더 나가 문제의식을 넓혀야 한다고 생각한다. 조두순에 대한 분노에 그치고 마는 보도는 본질을 흐릴뿐더러 사회구조와 인식변화에도 도움이 안 된다.

가짜뉴스를 퍼뜨린 언론사는 사실이 밝혀지자 해당 기사를 삭제하고 사과문을 올렸다. 사건은 곧 잊히고 사람들의 입방아에서도 내려오겠지만 이번 오보 사건은 나에게 기자가 하지 말아야 할 몇 가지를 확실히 알게 해줬다.

태그:#조두순오보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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